알프레드 J.허트: 고대 근동 문화 - B.C 3,000년경~ B.C 323년

 

고대 근동 문화 - 10점
알프레드 J.허트 외 2인 편집, 신득일.김백석 옮김/기독교문서선교회(CLC)

머리말 / 9
서문 / 12
역자서문 / 14
유물사진목록 / 16
약어표 / 19
기고자 / 20
시리아-팔레스타인 고고학적 연대 / 22
고대 근동 지도 / 23

1부 메소포타미아
1장 수메르인 / 월터 R. 보딘 / 27
2장 바빌로니아인 / 빌 T. 아놀드 / 61
3장 아시리아인 / 윌리엄 C. 괄트니 / 107
4장 페르시아인 / 에드윈 M. 야마우치 / 151

2부 아나톨리아, 시리아-팔레스타인, 이집트
5장 히타이트인 / 해리 A. 호프너 / 181
6장 가나안인과 아모리인 / 키이스 N. 스코빌 / 225
7장 페니키아인 / 윌리엄 A. 워드 / 263
8장 아람인 / 웨인 T. 피타드 / 299
9장 블레셋인 / 데이빗 M. 하워드 / 333
10장 이집트인 / 제임스 K. 호프마이어 / 363

3부 트랜스 요르단
11장 암몬인 / 랜돌 W. 영커 / 425
12장 모압인 / 제랄드 L. 매팅리 / 459
13장 에돔인 / 케네스 G. 호글런드 / 483

성경 색인 / 501
저자 색인 / 509
주제 색인 / 523

 


머리말

9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 7:6).

고대 이스라엘은 열국 가운데 살았고 그들과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성경은 그들 중 일부에 관해서는 얼마간 말하고 있지만 다른 민족들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일부는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지만 다른 민족들은 몇 권의 책에서 계속 출현하여 이스라엘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 민족들에 관한 지식은 "히타이트 족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아시리아인은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와 같은 질문들에 답변하면서 성경본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것임에 틀림없다. 성경이 거명한 민족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찾기 위해서 손쉽게 성경사전을 살필 수도 있겠지만 본서를 통해서 주요 민족들에 관해 흔히 그런 목록들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상세한 정보를 구체적인 참고문헌과 함께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성경이 몇 민족들에 (예를 들어, 블레셋인, 에돔인 그리고 가나안인) 관해서는 주요한 지식의 원천이 되지만 다른 민족들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이집트인과 아시리아인) 그들의 명문들이 그들에 관해 더 많은 지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경은 부수적 인 자료로 간주된다.

성경은 종종 이스라엘과 동시대의 국가들을 적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그것은 정치적이고 특히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가들은 이러한 편견에 반대하여 성경본문을 비평적으로 해석한다. 경우에 따라서 이런 현상은 성경본문이 다른 증거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성경의 진술을 신뢰하지 않는 부정적 태도를 낳았다. 지난 150년간 고대 근동의 연구과정은 히브리 성경이 저자들의 실제 현실을 얼마나 훌륭하게 반영했는지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와 같은 국가는 빈번한 이웃국가들의 적대감과 지평선 너머로부터 몰려온 강대국들로 인해 매우 불안정해졌다. 나아만 장군의 여종처럼 급습에 의해 사로잡히든지(왕하 5장) 또는 민족 전체가 유배를 당하는 것은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이 멸망했을 때의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역사를 통틀어 모든 이들이 겪었던 위기였다. 당시 열방의 상황을 안다면 아모스, 이사야 그리고 다른 선지자들의 예언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참상이 얼마나 긴박하고 위협적이었는지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의 세계에서 발견된 수천 건의 문헌들 외에도 방대한 양의 고고학 증거들이 있다. 매몰된 건물들, 항아리와 냄비들, 철제 칼들, 황금 사발들, 유아들의 무덤 등 과거를 생생하게 되살리기 위해 결합된 이 모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똑같은 실제적인 인간군상에 관해 읽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왕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왕궁들과 신전들을 소유했지만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온 상인들과 장인들, 농부들과 노예들이었다.

고고학자들은 결코 과거를 온전히 복구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발견한 주요한 유물들이 과거의 편린에 불과하며 그마저 체취를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식에는 수많은 간격이 존재한다. 또한 물질적 유물들은 항상 명문들보다 정확하지 못한 정보를 지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문헌기록들은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데 특히 다른 기록문헌들을 해석해 줄때 더욱 가치가 있다.

본서의 논문들은 구약 세계 민족들에 관한 전반적인 상황을 재현하기 위하여 최근의 연구결과들과 발굴, 기존에 인식된 사실과 성경본문을 함께 엮은 것이다. 저자들은 고대 이스라엘의 독특한 특징-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계시-을 더 잘 이해하려는 목표를 갖고 가능한 한 완벽하고도 정확하게 논문을 저술하였다.

 

1장 수메르인

수메르인은 본서의 각 장에 기고된 열세 개의 민족 가운데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유일한 민족이다. 그러나 고대 근동의 여타 국가들뿐만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에 끼친 그들의 영향력은 본서에서 논의될 다른 모든 민족들만큼이나 중요하다.

수메르인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그중 하나는 성경에서 그들을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제까지 고대 근동학의 각 분야는 자체의 정당성을 지닌, 연구할 가치가 있는 학문으로서 그 독자성을 확립하였다. 이것은 확실히 아시리아학에서도 해당되지만 고대 근동 문명 연구를 진전시킨 주된 동인 중 하나가 히브리 성경이라는 것도 엄연한사실이다. 

2장 바빌로니아인

바빌로니아인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구약성경 시대에 주목해야 할 민족이다. 첫째, 순전히 역사적 관점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이야기 가운데 훗날 예루살렘을 멸하신 하나님의 도구였다는 것이다. 둘째, 이 이유가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인데 그들은 구약 세계에 나타난 거의 모든 문화와 종교의 토대를 물려주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그 근원이 되었다. 바빌로니아인과 그들의 선조인 수메르인은 이스라엘의 이웃 민족들을 위한 철학적, 사회적 기반을 수립했다. 그래서 바빌로니아인과 이스라엘인간의 역사적 접촉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바빌로니아의 공헌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3장 아시리아인

고대 아시리아의 고고학적 유물이 발굴된 이래로 그 나라의 역사, 문학, 종교 그리고 물질문화를 복원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었다. 설형문자의 기록문서와 유형 유물을 근거로 하여 지난 150년간 학자들은 이라크 북부의 여러 언덕으로부터 아시리아 민족과 그들의 문화를 부활시켰다. 아시리아의 역사적 유적은 히브리 성경이 그들을 갈릴리의 약탈자로 그리고 한때 교만했던 사마리아의 파괴자로 기억하기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한 것이다. 더군다나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을 아시리아-바빌로니아 세계와 가깝게 결부시키고 있다(예를 들어 창 10:8-12의 시날, 니므롯과 칼라). 여기서 우리는 서구문명에 끼친 아시리아의 공헌을 가늠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고대 이스라엘 세계와 아시리아의 연관성을 추적하며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이들의 유물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4장 페르시아인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메대인과 페르시아인은 2천년기 중엽 이후 어느 시점에 이란 고원으로 들어왔던 인도-유럽족과 밀집한 관련이 있다. 그들은 카스피해 동쪽 내지는 서쪽의 길을 따라와서 차츰 이란 서부의 자그로스 산맥 북부 지역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철기시대의 초기촌락에 관한 중요한 발굴이 말릭과 테페 시알크에서 진행되었다. 자그로스 산악지대에 나타난 광범위한 철기 Ⅲ 문화(800-550)는 당시 그 지역을 제패했던 메대인과 연관지어져 왔다.

5장 히타이트인

우리는 여러 문헌과 고고학적 탐구를 통하여 히타이트 역사에 관해 알려진 것을 논하기 전에 히타이트인이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기록했는가라는 질문을 간략하게 다루어 봐야 한다. 히타이트인은 연대기를 기록한 문헌이 없다. 왕의 명부와 가장 흡사한 히타이트의 문헌에는 연대나 통치 기간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6장 가나안인과 아모리인

두 고대 민족인 가나안인과 아모리인은 주로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와 관련된다. 우리가 현재의 지식수준을 따라 가나안인과 그들의 문화를 정확히 기술하는 것이 가나안인과 이스라엘인 간에 존재했던 차이점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성경은 가나안 땅과 그 주민들에 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가나안과 가나안인이란 단어가 성경에 약 160번 나온다. 그 이름의 첫 등장은 노아의 손자 가나안에 대한 언급이다. 가나안은 아버지 함이 술에 취한 할아버지 노아의 벗은 몸을 쳐다 본 창세기 9:18-23 의 사건의 결과로 저주를 받았다. 훨씬 후에 이 옛 사건의 이야기는 가나안인의 일부가 이스라엘의 노예로 전락한 이유에 대한설명이 되었다.

족장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갔다. 그가 요단 강 서쪽의 가나안땅 중앙 언덕 지역인 세겜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영원한 복으로 아브람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1-7). 이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 반복되었고(창 26:3; 28:13; 35:12) 창세기의 끝부분에서 요셉이 임종시 그의 형제들에게 그 약속을 회상시키면서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움직이실 때 자신의 유골을 그들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가져가야 할 것을 주장하는 곳에서 언급되었다(50:24).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고난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들을 "가나안인, 헷인, 아모리인, 브리스인, 히위인, 여부스인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3:8,17)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공식적 진술에서 이름의 순서가 큰 민족에서부터 작은 민족으로 넘어가는 것을 볼 때 약속의 땅에서 가장 큰 거민은 가나안인이라 불리던 민족이었다.

7장 페니키아인

페니키아인이란 단어는 첫 천년기에 지중해 동부 연안의 도시들과 사람들을 일컫던 고대 헬라어의 별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페니키아는 북쪽의 아라두스 섬에서 남쪽의 두로에 이르기까지 거의 321킬로미터에 걸친 좁고 긴 해안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의 레바논 산맥은 역사상 줄곧 해안지대와 내륙의 시리아 사이에 정치적, 문화적 장벽이 되어왔다.
그 지역은 동절기에만 비가 내리고 한 해의 나머지 기간에는 산의 샘들이 바다를 낀 비옥한 농경지에 물을 공급했다. 그러나 땅은 좁고 해안의 천연항구들 주변에 세워진 도시들은 소규모였다.

8장 아람인

아람인은 언어학적으로 아람어로 알려진 서부 셈어의 방언들을 사용하고 첫 천년기에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주요지역인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에 주로 살던 민족들과 관련된 큰 집단이었다. 남부 시리아의 아람인은 성경의 이스라엘과 수많은 접촉을 가졌고 히브리 성경에 꽤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이것은 그 수도를 다메섹에 두었던 아람 나라에 해당된다. 비록 아시리아인이나 바빌로니아인처럼 통합적 정치력을 가진 적은 없었지만 그들의 언어는 서서히 페르시아 제국의 국제공용어 (lingua franca)가 되었고 결국 히브리어를 포함한 그 지역의 여러 방언을 대체했기 때문에 아람인은 근동에서 막대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성경은 아람인의 기원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대하여 약간의 전설적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분명히 이스라엘과 근동의 이웃들과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작성된 창세기의 족보들은 근동의 정치구조에서 아람인의 위치와 관련된 두 개의 독특한 전승을 제공한다. 초기 족보(창 22:21)에서 아람인의 이름의 시조가 되는 아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자이다. 이것은 아람이 한때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야곱 아브라함의 손자)과 동등하게 여겨졌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아람의 세력이 근동을 가로질러 퍼져나가던 때로 추정되는, 제사문서의 민족 목록에(창 10:22) 아람은 엘람, 앗수르(아시리아), 아르박삿, 룻과 함께 셈의 아들들의 명단에 있다. 아람인의 기원에 대한 세 번째 전승은 야웨께서 아람인(아마도 여기에서는 특히 다메섹 아람인을 가리킬 것이다)을 기르라고 하는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그들을 지금의 본거지로 데려왔다고 말하는 아모스 9:7에서 나타난다.

9장 블레셋인

성경의 독자들에게 블레셋인은 사사시대와 왕국 초기에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고학은 가시적 유물뿐만 아니라 (특히 이집트의) 문학적 문헌을 통해서 부가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 특히 최근학계에서 밝혀진 그들의 모습은 다양한 기원을 가진 민족들로 구성된 하나의 혼합 집단이며 그들의 물질문화는 많은 영향을 미친 다양한 요인들을 혼합한 것이다.

블레셋(Philistine, 혹은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어 플리쉬팀에서 유래한 것으로 구약에서 288번 나타나고, 플레셋이라는 용어도 8번 나온다. 플리쉬팀은 보통 그리스 역본들에서allophuloi("이방인들, 외국인들")로 번역되고 풀리스티임은 빈번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집트 자료들에서는 prst("Peleset")로, 아시리아 자료들에서는 필리스티 (pilisti)와 팔라스투(palastu) 로 발견된다. 그것의 원래 어원과 의미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대 영어에서 블레셋은 블레셋인에 대한 성경의 묘사로부터 나온 과장된 추정으로 "상스러운" 또는 "교양없는"을 의미하게 되었다.

10장 이집트인

"나일 강의 선물"인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와 팔레스타인에 인접하며 전략적으로는 아프리카 동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로는 사막에 둘러싸였고 남으로는 일련의 폭포로 천연요새를 이룬 이집트는 나일 강에 의해 유지되는 오아시스이며 다소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11장 암몬인

성경과 성경 외적 자료들을 통해 알려진 암몬인은 2천년기 중엽부터 1천년기 중엽까지 트랜스 요르단의 중앙고원에서 살았던 고대 민족이다. 그들의 고향은 암몬(Ammon) 으로 알려지고 그들의 수도는 랍바-암몬 또는 암만(Amman)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성경의 이스라엘 민족과 수많은 조우가 있었던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성경 문헌에 그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암몬인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해온 학자들이 거의 없는 것은 대개 암몬인이 성경 외적 문헌에서 좀처럼 언급되지 않고 최근까지도 그들의 옛 영토에서 고고학적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몬인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근 1세기 동안의 탐험과 최근 증가한 고고학적 연구와 발굴들로 인해 크게 확장되었다.

12장 모압인

모압의 역사와 문화를 상세히 조사하기 전에 모압과 모압인이란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들은 이 연구의 지리적 경계와 연대기적 중심을 한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란 명칭도 역사의 어떤 특정 기간에 국한된 땅과 그 민족을 명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처럼 모압도 특정 민족과 그들의 영토를 지칭하는 것이다. 지리적 용어로서 모압은 사해 계곡 바로 동편에 위치한 트랜스 요르단 고원에 속한 부분이다.

13장 에돔인
첫 천년기의 시리아-팔레스타인에 있었던 다른 여러 문화들 가운데 에돔인 만큼 이스라엘과 가까웠던 민족은 없을 것이다. 창세기에서 에서의 별명은 "에돔"(25:30)이었고, 나중에 동생 야곱과 화해한 후 그는 에돔 지역에 살았다(36:1-8).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방랑할 동안 에돔인을 만났을 때 에돔왕은 "형제”로 불렸다(민 20:14). 이런 친밀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587년에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한 후에 이스라엘은 매우 통렬하게 에돔인을 바라보게 되었다(예를 들어 시편 137:7; 오바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동쪽에 있는 이스라엘의 "형제"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서 좀 알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