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향연(5)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5
- 2023. 8. 15.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향연》을 듣고 정리한다.
2023.08.14 📖 향연(5)
플라톤, ⟪향연⟫(Symposion)
- 디오티마의 이야기: 에로스의 정체, 기원과 본성, 정의, 기능, 원인, 효과 201d1-209e4[via illuminativa]
에로스의 정체. 중간자; 에로의 기원과 본성. 풍요의 신과 가난한 여인; 에로스의 정의. 좋은 것을 늘 소유하려는 욕구; 에로스의 원인. 새로운 것을 낳음에 의한 불사; 에로스의 효과. 불사의 자식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을 읽고 있다. 오늘은 디오티마의 이야기를 소크라테스가 전해주는 부분이다. 이게 바로 via illuminativa에 해당하는 것이다. 201d부터 209e까지 얘기이다. 지난번에는 소크라테스와 아가톤이 뭔가를 얘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가톤이 에로스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들이 제대로 된 게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출발점을 원점으로 돌린 셈이다. 어떻게 보면 아가톤 이전에 했던 에로스에 대한 얘기들을 다 무위로 돌려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elenkhos가 나오면 항상 조심을 해야 한다.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기존의 견해들 중에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않고 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럴 때 받아들이는 것과 받아들이지 않는 것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elenkhos라고 해서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서도 특히 《향연》은 우리가 그 대화편을 읽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대화편 읽기 훈련용 교재로 아주 좋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자동차 경주가 있다고 해보자. 정해진 트랙을 수없이 도는 것이 트랙 경기이다. 그다음에 파리 다카르 랠리처럼 이른바 투어링이라고 하는 경기가 있다. 가는 동안에 온갖 난관을 겪어가면서 가는 경기이다. 그런데 정해진 트랙을 수십 바퀴를 도는 것을 무슨 경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전문적인 운전사들은 그걸 하면서 운전 기술을 연마한다. 그렇게 연마된 기술을 자기에게 스폰서하는 자동차 회사에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그 기계를 개선해가는 방향을 택한다. 바로 그것을 트랙 경기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것처럼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을 읽을 때는, 물론 내용을 아는 것도 중요하고 목적이지만, 어떻게 읽든 내용만 알면 된다는 것도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가도 중요하다. 그래서 일종의 자동차 트랙 경기처럼 계속해서 그것을 읽는 감각을 길러내는 것이 책을 읽는 데서 굉장히 중요하다.
디오티마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소크라테스의 연설을 들을 시간인데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연설을 이야기하지 않고 디오티마라는 이방 여인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전해주겠다고 한다. 그러면 이게 무엇을 말하는 걸까. 소크라테스는 남의 이야기를 그저 옮기는 사람에 불과한가 라는 부분을 생각해 봐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논점이다. 트랙 경기를 할 때 첫 번째 커브를 돌 때 우리가 보기에는 이렇게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도는가. 극한 상황까지 계속 연습을 해보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첫째 여기서 왜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라는 이방 여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준다고 하는 형식을 택하고 있는가. 그것은 단순한 수사 기법이 아니다. 두 번째로는 소크라테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은 어떤 정체를 가진 사람인가. 즉 디오티마라는 여인은 누구인가. 신화mythos를 말하는 사람인데, 미토스를 말하는 사람을 설정해 둔 이유는 무엇일까. 미토스를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그게 왜 미토스인가. 과학적인 얘기를 전해 들은 게 아니라 미토스를 들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지금 여기 Symposion에 온 사람들에게 전해준다고 할 때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의 성격은 분명히 신화이다. 신화이기 때문에 이것은 엄밀한 인과관계에 따른 논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논증을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는 에로스의 정체 그리고 에로스의 기원과 본성, 정의, 기능, 원인, 효과이다. 이것들은 via illuminativa이다. illuminativa는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 해명하는 것이다. 즉 에로스의 정체, 기원과 본성, 기능, 원인, 효과 이런 것들을 다 묶어서 에로스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대답을 하는 부분이다. 앞에서는 에로스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의하기 전에 정리하고 가야 될 것들, 어떤 것들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들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들을 얘기했다. 그게 바로 via purgativa인데 정화의 단계를 거쳤다. elenkhos를 거쳐서 왔는데 여기서는 일단 에로스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그다음에 에로스의 권유, 즉 앞에 나온 얘기들을 다시 정리해서 집약을 한 다음에 에로스를 권하는 via unitiva이다.
지금 읽는 부분은 분량이 많다. 여기서 다시 에로스의 정체, 기원과 본성, 정의, 기능, 원인, 효과를 논의하면 에로스란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데 왜 이런 것들을 논의하고 있는가. 가령 철학이란 무엇인지 누가 물어보면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라고 대답하면 적당한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지금 여기서 what is 에로스 라는 질문에 대해서 illumination을 내놔야 한다. 그런데 그 illumination은 바로 이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 방금 전에 예를 든 것처럼 철학이란 무엇인가 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철학은 원래 어디서 시작했고 라고 하는 것처럼 여기서 에로스의 정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기원에 해당한다. 그다음에 철학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고 철학 공부를 해서 어떤 효과가 있느냐 이런 것들을 집약해서 설명해야 what is philosophy 라고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는 것처럼 에로스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것이다.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첫째는 에로스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에로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모범 답안은 알려주는 일종의 교육적인 그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화편을 읽을 때 이렇게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살펴가면서 읽는 것이 굉장히 필요하다. 책을 읽어서 그 책의 내용만 알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책이 어떤 방식으로 쓰여져 있는가를 늘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 바로 플라톤의 대화편 같은 고전 텍스트를 읽는 방법이라고 하겠다.
디오티마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소크라테스는 왜 자기 이야기를 안 하고 남의 이야기를 하는가. 작품 안내에 보면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이러니를 구사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핀잔을 받을 만하다." 진짜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은 얘기하지 않고 남의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 시치미 떼기이다. "이 장면들을 보지도 않은 알키비아데스가 나중에 등장해서 소크라테스가 아이러니를 부리고 있다고 꼬집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름 적확하게 소크라테스를 평가하고 있다 하겠다." 알키비아데스는 나중에 등장해서, “이 장면들”이라고 했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이다. 나중에 이제 알키비아데스의 틈입에 대해서 얘기할 때 얘기할텐데 알키비아데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그리고 왜 알키비아데스는 나중에 갑자기 느닷없이 등장하는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이제 그 얘기가 나왔으니까 미리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에로스의 정체는 무엇인가. "방금 전 소크라테스가 아가톤에게 가했던 것과 동일한 논박을 가한 디오티마의 논변으로 에로스가 위대한 신이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논점이 무너지고", 소크라테스도 디오티마에게 그런 식으로 얘기를 했었다. 에로스는 위대한 신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게 디오티마의 논박으로 무너졌다. 그러면 에로스라는 건 무엇인가. "아름답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는 점이 새로운 출발점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면 그것은 바로 에로스는 중간자다 라는 것을 말한다. 중간자로서의 에로스다. 중간자라는 말은 플라톤의 거의 핵심적인 술어이다. 중간자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도 중간자, 플라톤에선 그렇다, 신도 아니고 뭣도 아닌 그런 중간자. B를 대문자로 써서 the Between이라는 말을 쓴다. 에로스라고 하는 것을 중간자라고 하면서 모든 사람을 이제 에로스에 비유해 볼 수 있는 그런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중간자인가. 아름다움과 추함, 좋음과 나쁨 사이에 있다. 더군다나 신도 아니다. 신은 아름다우니까 행복한데 좋고 아름다운 것을 결여하고 있다. 죽을 운명을 가진 존재와 죽지 않는 존재의 중간적 존재다.
그다음 에로스의 기원과 본성. 그러면 에로스는 도대체 왜 그런 정체를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얘기할 때 기원genesis을 얘기한다. 이 에로스의 기원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어떤 개념에 대해서 설명할 때도 늘 그런 걸 사용하지 않는가. 말의 어원을 따져묻는 것처럼 그 기원과 기원에 근거해서 본성을 따져 묻는 것, 좋게 말하면 역사적 탐구이고 나쁘게 말하면 원래 무엇이었는지를 따져묻는다. 원래 무엇이었는지는 알아서 뭐 하겠는가. 사실 수많은 겪음 속에서 변화하는 것도 있다. 에로스는 풍부함을 상징하는 신 포로스와 가난함을 대변하는 여성 페니아가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생일날 동침해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풍부함의 신 아버지와 가난한 여인 페니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둘 다 가지고 있다. 신의 아들이니까 불사이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죽을 운명에 놓여 있는 것도 중간이다.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생일날 어머니와 아버지가 동침했다. 그래서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에 있고 지혜와 무지 사이에 있고 그다음에 지혜를 갖고 싶어 하니까 사랑하는 자이고, 아름다운 자 그리고 사랑받는 자가 아니라 그 중간에 있는 것이다. 즉 에로스의 정체는 중간자다. 그 기원을 보니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것으로부터 곧바로 나오는 게 에로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핵심인 좋은 것을 늘 가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걸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걸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갈증이 난다는 말이다. 좋은 것을 늘 가지려고 한다. 이게 에로스에 관한 아주 기초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에로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큰 질문에서 기원을 따져 묻고 그다음에 그 기원으로부터 에로스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 본래 이런 애니까 이런 걸 하고 싶지 않겠어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네 번째로 나오는 게 에로스의 기능이다. 에로스는 어떤 일을 하는가. 에로스의 기능이라는 말은 하는 일을 말한다. 에로스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 안에서 출산한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가지고자 하는 어떤 추구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인데 사실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보다 더한 것은 아름다운 것 안에서 뭔가를 낳아 놓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 안에서 생산하는 것 그러니까 아름다운 것을 갖고 그 아름다움을 이용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가.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남을 사랑한다. 그게 바로 아름다운 것 안에서의 출산이라는 것의 적절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학대 받고 자란 아이들은 학대한다. 대물림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다정하게 얘기하려면 다정함과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야 한다. 그게 없으면 악담만 하다 죽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사랑받고 자랐는가. 아닌 것 같다면 아름다운 것 안에서의 출산은 거의 불가능한 인간이라고 봐야한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이번 생은 틀렸다 라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것 안에서의 출산은 포기하고 아름다운 걸 계속 추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마이너스 상태니까 플러스 상태로 가기는 어렵고 제로 베이스 정도까지는 가야 한다. 학대의 경험들을 없애고 그다음에 사랑 받을 또는 아름다운 것 안에서 출산을 준비할 수 있는 상태 그 정도까지 하고 죽어도 극복은 이루어지는 셈이니까 그 정도까지면 되지 않겠나 생각해보게 된다. 에로스에 대해서 다룬 책들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것을 추구할 것인가, 계속 아름다움을 보고 좋은 그림을 보고 이러면서 자기 안의 부정적인 것들을 없애야 한다. 자꾸 부정적인 것들을 의식하고 부정적인 것을 없애야지 해봐야 안 없어진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자꾸 코끼리가 떠오르게 된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것을 없애려면 긍정적인 것을 자꾸 채워 넣어야 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다음 다섯 번째가 에로스의 원인은 새로운 것을 낳음에 의한 불사이다. 에로스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에서 더 나아가면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는 원인이 어디 있는가 라고 물어보는 것이 사랑의 원인에 대한 물음으로 가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낳으면서 계속 불사로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에로스의 효과는 불사의 자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본문을 읽어가면서 핵심적인 포인트들을 조금 더 짚어보겠다.
"언젠가 내가 만티네아 여인 디오티마에게 들은, 에로스에 관한 이야기를 자네들에게 죽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네." 그다음에 이제 논의의 순서를 죽 이야기한다. 디오티마와 자기가 주고받은 얘기를 전해주는 것이다. 아리스토데모스가 아폴로도로스에게 전해준 이야기를 아폴로도로스가 지금 얘기하는데 아리스토데모스가 전해준 이야기 안에 또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에게 전해들은 이야기가 또 있는 셈이다. 전해준 게 굉장히 많다. 여기저기 바톤 터치가 되어서 지금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 그러면 202a에 보면 "지혜와 무지 사이에 뭔가가 있다" 뭐가 있을까. 중간자가 있다. 지혜와 무지 사이에는 지혜롭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무지도 아닌 그런 것들이 있다. 즉 사리 분별과 무지 사이에 뭐가 있다는 얘기를 한다. 게다가 에로스는 죽을 운명인 존재와 죽지 않는 존재 사이에 있다 말한다. 죽기 아니면 살기지 세상에 중간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이런 얘기들은 결국 논증이 아니라 신화에 의해서 얘기들이 움직여 간다는 것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그다음에 이제 소크라테스가 묻는다. "그런데 그는 어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나왔나요?", 기원을 묻는 것이다. 그 얘기는 앞서도 말했듯이 널리 알려져 있다. 풍요로운 신과 가난한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것이 기원이고 그다음에 소크라테스가 다시 또 묻는다. "좋습니다, 부인. 훌륭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에로스가 그런 자라면 인간들에게 무슨 쓸모가 있나요?", 에로스의 쓸모를 물어보는 것이다. 즉 기원 다음에 쓸모를 물어보니까 "바로 그게 이것들 다음으로 내가 당신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들이 자기 것이 될 때 그에게 행복하게 된다. 좋은 것을 가지면 행복하다. 좋은 것을 가져봐야 한다. 악을 자꾸 가지면 악한 자가 되고 불행한 자가 된다. 행복한 자들은 좋은 것들을 소유함에 의해서 행복하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까 좋은 것들이 자기 자신에게 늘 있기를 바란다. 그게 이제 앞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얘기했던 것이다. 반쪽을 갖고 싶어 하는 것도 좋은 것이 자신에게 늘 있음에 대한 것이다. 그게 이제 에로스의 정의이고 그러면 그렇게 좋은 것이 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사랑인데 사랑의 기능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 안에서 출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되면 "이 일은 신적인 것입니다. 가사자인 생물 안에 들어있는 불사적인 것이죠." 그러니까 이게 바로 신적인 것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 안에 불사의 것이 들어가 있는 건데 이게 바로 이제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208b를 보면 "사실 가사적인 것이 다 이런 방식으로 보존되지요 즉 신적인 것처럼 모든 면에서 늘 같은 것으로 있음으로서가 아니라 늙어가고 떠나가는 것이 그것 자체의 원래 모습과 닮은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남겨놓음으로써 보존됩니다." 이 부분이 포인트이다. 신은 불변하니까 늘 똑같은 것이 복제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모든 면에서 늘 같은 것으로 있음으로서가 아니라 늙어가고 떠나가는 것이 자신을 닮은 것을 낳아 놓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닮은 것을 낳아놓게 되어서 이렇게 가능해진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이제 에로스가 하고 있는 일이다. 에로스의 기능에 관한 이런 논변들은 좀 더 촘촘하게 읽어봐야 되는데 일단 이런 식으로 논증을 해 나가는구나, 처음 읽는 분들을 위한 얘기니까 그 정도까지만 오늘은 하겠다.
201d 언젠가 내가 만티네아 여인 디오티마에게 들은, 에로스에 관한 이야기를 자네들에게 죽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네.
202a 지혜롭지 않은 것이면 다 무지하다는 건가요? 지혜와 무지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나요?
203b 그런데 그는 어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나왔나요?
204d 좋습니다, 부인. 훌륭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에로스가 그런 자라면 인간들에게 무슨 쓸모가 있나요?
204d 바로 그게 이것들 다음으로 내가 당신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206b 이것은 몸에 있어서 그리고 영혼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 안에서 출산하는 것입니다.
206c 이 일은 신적인 것입니다. 가사자인 생물 안에 들어있는 불사적인 것이죠.
208b 사실 가사적인 것이 다 이런 방식으로 보존되지요 즉 신적인 것처럼 모든 면에서 늘 같은 것으로 있음으로서가 아니라 늙어가고 떠나가는 것이 그것 자체의 원래 모습과 닮은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남겨놓음으로써 보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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