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향연(6)

 

2023.08.16 📖 향연(6)

플라톤, ⟪향연⟫(Symposion)

- 디오티마의 이야기와 소크라테스의 권유: 에로스의 사다리, 에로스로의 권유 209e5-212c3 [via unitiva]
에로스의 사다리.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앎으로 올라가는 길, “갑자기”(exaiphnēs) 아름다운 것 자체를 보게 됨; 에로스로의 권유. “나는 모든 사람이 에로스를 존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 자신도 에로스의 일들을 높이 평가하고 남다르게 연습하면 남들에게도 그러라고 권유한다네.”(212b)

 

 

오늘은 《향연》 여섯 번째 시간이다. 이 부분은 분량은 적지만 플라톤 미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원시 글로벌 평생학습관에서 플라톤의 미학, 예술론 강의를 할 때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설명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게 말하자면 에로스라고 하는 것의 가장 최후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역자의 작품 안내를 보면 "에로스학의 중급 과정(혹은 기초 과정의 심화)"라고 되어 있는데 작품 안내에 있는 부분을 먼저 읽겠다. 에로스의 사다리는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앎으로의 상승, 올라감이다. 올라간다고 하는 것은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굉장히 중요한 상징적인 매개를 보여주고 있다. "다소 곡절을 겪으면서 이 단계까지 따라온 소크라테스에게 디오티마는 아직 에로스가 다른 한 고비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수준의 고급 과정이 남아 있으니 잘 따라오라고 다독인다." 첫 단계는 인도자의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몸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하고, 그리고 그 몸 안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낳고 그다음에 특정한 몸들에 속한 아름다움이 서로 같은 종류임을 깨달아서 몸의 아름다움 일반으로 나아가고 점점 추상화되는 것인데 그게 일반적인 것으로 가는 것이다. 그다음에 셋째 단계는 몸의 아름다움보다 더 귀중한 영혼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단계의 시작으로 행실들과 법들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행실들과 법들은 인간 정신이 만들어 내놓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들어있는 아름다움이 서로 같은 종류임을 깨닫게 되고 그다음에는 우리의 앎, 지식의 아름다움으로 이끌고 그 아름다움의 큰 바다를 향해 가서 아름다움 일반을 관조하게 됨으로써 거기서 이제 아름다운 이야기와 사유를 낳아놓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갑자기'exaiphnēs, 갑자기라는 단어가 여기서 등장하는데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는 갑자기 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단계가 이야기의 질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걸 이제 요즘 식의 용어로 말하자면 지적 직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이 모든 단계를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부분이 바로 에로스의 사다리이다. 차례차례 올라가다 보면 마침내 아름다운 것 자체를 직관하게 된다. 아름다운 그 자체 를 직관화하게 되면 모상으로서의 덕이 아니라 진짜 덕을 낳고 기르게 되어서 결국 신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된다. 그다음에 이제 마지막엔 소크라테스의 맺는 말이 있는데 에로스를 권하는 것이다.  

 

본문을 본다. "이 일을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간다는 것은 육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꼭 우리는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고 사람들마다 다르다. 그래서 《에로스를 찾아서》에서도 본문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아름다움은 내가 아름답다고 하면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결론을 맺어 놨다. 그런데 또 그게 누구나 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아름다운 것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기에 아름다운 것, 이거 두 개가 서로 호환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 플라톤은 여기서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을 해야 되는데 그게 올바르게 이끌어질 경우에는 " 하나의 몸을 사랑하고 그것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낳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어느 한 몸에 속한 아름다움이 다른 몸에 속한 아름다움과 형제지간임을 깨달아야 하며, 종적(種的)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때", 종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 종류를 말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때 모든 몸들에 속한 아름다움이 하나다. 그러니까 같은 종류의 것들이 보이는 동일한 특성을 찾아내야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주 어리석은 일이 된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아주 명백하게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아름다움에 관한 등급이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가치value에 관한 것이고, value는 위계질서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것이 더 위계질서상 위에 있는가 하는 것은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에 다툼의 소재가 된다. 그런데 그것을 위아래 없이 누구나 다 자기 나름대로의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가치라고 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더 아름다운가 이런 것을 둘러싼 논쟁은 아마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그런 싸움일 것 같다. 

210b 이 일을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끄는 자가 올바로 이끌 경우 그는 하나의 몸을 사랑하고 그것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낳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어느 한 몸에 속한 아름다움이 다른 몸에 속한 아름다움과 형제지간임을 깨달아야 하며, 종적(種的)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때, 모든 몸들에 속한 아름다움이 하나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주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걸 파악하고 나면 모든 아름다운 몸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하나의 몸에 대한 이 열정을 무시하고 사소하다 여김으로써 느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미미한 아름다움의 꽃을 갖고 있더라도 영혼이 훌륭하다면 그에게 충분하며, 이자를 사랑하고 신경 써 주며 젊은이들을 더 훌륭한 자로 만들어 줄 그런 이야기를 산출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에로스를 찾아서》 72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어딘가에 절대 불변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일까. 아름다움에 관한 논의는 '내가 아름답다고 하면 아름다운 것이다'이든지 '아름다움의 기준은 나나 네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변함없이 따로 있다'이든지 '아름다움의 기준이 따로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에 따라 세상 사람들이 어느 정도 합의하는 것이다'이든지 일 것이다.  


플라톤은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제 몸과 정신은, 몸이라고 하는 것은 외관상의 아름다움인 것이고,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인데, 몸이라고 하는 것은 소멸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 아름답다는 것을 그 사람에게 부여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 줄리앤 무어라고 하는 영화배우가 있다. 저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어서 그런지 그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게, 또 아네트 베닝도 있다. 요즘에 줄리앤 무어가 나오는 스틸 앨리스라는 영화를 하나 봤는데 치매에 걸려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예전에도 저 사람이 아름답다 생각했는데 지금 봐도 아름답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그 사람이 피부 관리를 잘해서 아름다운가 생각을 하다가도 그게 꼭 어떤 육체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닌 그가 풍겨내는 것이 있다. 그러면서 저 사람들이 보여주는 뭔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을 말한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미미한 아름다움의 꽃을 갖고 있더라도 영혼이 훌륭하다면 그에게 충분하며", 플라톤은 여기서 영혼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훌륭하다는 것으로 바꿔서 이야기한다. 영혼이 훌륭하다면 그러면 이제 이 아름다움을 좋음이라고 하는 것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이 아름다운 자들은 행실이 아름답다. 행위의 아름다움, 아름다운 행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미담이 있다고 얘기할 때의 그 미담은 누군가가 아름다운 행위를 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이야기인데 결국 그것은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이다. 그러니까 행실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영역으로 넘어오면 이제 좋음으로 가는 것 그런 길목들에 있는 것들이다. 그렇게 하면 이제 앎들의 아름다움, 이것은 훌륭한 지식이다.  


그래서 "이제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해보세요. 아름다운 것들을 차례차례 올바로 바라보면서 에로스 관련된 일들에 대해 여기까지 인도된 자라면 이제 에로스 관련 일들의 끝점에 도달하여 갑자기 본성상 아름다운 어떤 놀라운 것을 직관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 갑자기라는 말이 나와버렸으니까 이건 사람 힘으로 안 된다는 얘기이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그런 것이다. 갑자기 본성상 아름다운 어떤 놀라운 것, 본성상 아름다운 것은 우리를 놀랍게 놀라게 한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갑자기 얻어지는 거니까 여기서부터는 매뉴얼이 없는 것이다. 본성상 아름다운 어떤 놀라운 것은 좋은 것이기도 하고 늘 있는 것이고 생성되지도 소멸하지도 않고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 것, 이런 걸 한마디로 말해서 불변의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계속 노력을 해야 그것이 유지되지 않겠는가. 인간이 알게 되는 건 결국 소멸하는 것인데 게으름 부리고 내버려두면 진리든 아름다움이든 좋은 것이든 간에 생성되지도 소멸하지도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은 계속 생성을 해내야 한다. 211b에 있는 것처럼 "오히려 그것은 그것 자체가 그것 자체로 그것 자체만으로 늘 단일 형상으로 있는 것", "아름다운 것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저 아름다운 것을 목표로 늘 올라가는 것", 그렇게 하다 보면 "저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여기까지 에로스의 사다리이다. 이건 그냥 신비한 이야기이다. 신비한 이야기기 때문에 사람이 살면서 평생에 걸쳐서 해도 성취하지 못하는 그런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계속해서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고 살아도 아름다운 것은 얻기 어려울 것이다.  

210e 그러니 이제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해보세요. 아름다운 것들을 차례차례 올바로 바라보면서 에로스 관련된 일들에 대해 여기까지 인도된 자라면 이제 에로스 관련 일들의 끝점에 도달하여 갑자기 본성상 아름다운 어떤 놀라운 것을 직관하게 될 것입니다. 

211a 우선 그것은 늘 있는 것이고, 생성되지도 소멸하지도 않고,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211b 오히려 그것은 그것 자체가 그것 자체로 그것 자체만으로 늘 단일 형상으로 있는 것이며, 다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다음과 같은 어떤 방식으로 바로 저것에 관여합니다. 

211c 아름다운 것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저 아름다운 것을 목표로 늘 올라가는 것말입니다. 마치 사다리를 이용하는 사람처럼 그는 하나에서부터 둘로, 둘에서부터 모든 아름다운 몸들로, 그리고 아름다운 몸들에서부터 아름다운 행실로, 그리고 행실들로부터 아름다운 배움들로, 그리고 그 배움들로부터 마침내 저 배움으로, 즉 다름 아닌 저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그는 아름다운 바로 그것 자체를 알게 되는 거죠. 


그런 다음에 이제 디오티마가 이렇게 말한다. "친애하는 소크라테스, 인간에게 삶이 살 가치가 있는 건 만일 어딘가에서 그렇다고 한다면 바로 이런 삶에서일 겁니다.  아름다운 바로 그것 자체를 바라보면서 살 때 말입니다." 이제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올라가게 되고 마침내 아름다운 바로 그것 자체를 알게 된다고 했다. 아는 것 가지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그것 자체를 바라보면서 산다는 것이다.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그걸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한번 우리의 삶에다가 가져다 대보면 날마다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게 아름다운 것 자체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가. 내가 지금 좋다고 여기고 있는 것, 일상적으로 이런 게 좋은 거다 라고 생각하고 추구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해보겠다. 그런데 그게 과연 아름다운 것인가,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인가, 나에게만 좋은 것인가 아니면 몇 사람에게 좋은 것인가, 내가 좋다고 여기고 있는 게 과연 몇 사람이나 좋다고 하는가를 한번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이 정말로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은 반성을 해보고 따져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따지는 것은 골치 아프니까 그냥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은 정말 과연 몇 사람이나 좋다고 하는 것인가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아름다운 것 자체를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스스로 검증해보고자 할 때 그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는가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걸 알았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걸 바라보면서 산다 할 때 정말 내가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한 번쯤은 생각을 해봐야 된다는 것이다.  

211c 친애하는 소크라테스, 인간에게 삶이 살 가치가 있는 건 만일 어딘가에서 그렇다고 한다면 바로 이런 삶에서일 겁니다.  아름다운 바로 그것 자체를 바라보면서 살 때 말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소크라테스는 에로스를 권유한다. "참된 덕을 산출하고 키웠을 때 비로소 신이 친애하는 자가 되는 일이 그에게 있게 되고, 불사자가 되는 일이 인간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있다고 하면 다름 아닌 그에게 그런 일이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디오티마의 이야기가 끝난다. 그런 다음에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파이드로스 그리고 나머지 여러분, 바로 이것들이 디오티마가 말한 것들인데 나는 그것들에 설득되었다네. 내가 설득되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설득하려 시도한다네.  이 소유물을 얻는 데 있어서 인간 본성에 협력할 자로서 에로스보다 더 나은 자를 찾기란 쉽지 않으리라고 말일세." 왜 에로스보다 더 나은 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가 하면 에로스는 아름다운 존재도 아니고 훌륭한 존재도 아니고 중간자라고 얘기했다. 그것이 자기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좋은 것, 훌륭한 것을 추구하려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인간 본성에 협력할 자로서 에로스보다 더 나은 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권유를 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에로스를 존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 자신도 에로스의 일들을 높이 평가하고 남다르게 연습하며 남들에게도 그러하라고 권유한다네." 여기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 "에로스의 일들을 높이 평가하고 남다르게 연습한다"고 했다. 그리고 남들에게도 그러하라고 권유한다고 했으니까 남들에게도 그렇게 연습하라고 권유한다는 말이겠다. 그러면 이 연습이라는 말을 처음에 아폴로도로스가 했었다. 아폴로도로스가 처음에 이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나는 자네들이 묻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꽤 되어 있다고 생각하네."  연습meletē을 안 거친 상태가 아니라네 라고 했다. 그러면 아폴로도로스가 처음에 말할 때 "자네들이 묻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소크라테스가 심포지온에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에로스에 관한 얘기이고 그다음에 결정적으로는 에로스의 일들을 연습하는 것에 관한 얘기이다.  에로스의 일들을 연습한다 하는 것은 사랑의 연습에 관한 얘기이다.  다시 말해서 소크라테스는 무엇을 권유하고 있는가. 사랑의 연습을 권유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212a 참된 덕을 산출하고 키웠을 때 비로소 신이 친애하는 자가 되는 일이 그에게 있게 되고, 불사자가 되는 일이 인간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있다고 하면 다름 아닌 그에게 그런 일이 있게 됩니다. 

212b 파이드로스 그리고 나머지 여러분, 바로 이것들이 디오티마가 말한 것들인데 나는 그것들에 설득되었다네. 내가 설득되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설득하려 시도한다네.  이 소유물을 얻는 데 있어서 인간 본성에 협력할 자로서 에로스보다 더 나은 자를 찾기란 쉽지 않으리라고 말일세.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든 사람이 에로스를 존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 자신도 에로스의 일들을 높이 평가하고 남다르게 연습하며 남들에게도 그러하라고 권유한다네. 


처음에 말했듯이 수원시 글로벌 평생학습관에서는 지금 이 부분인 에로스의 사다리 그리고 에로스를 권유함 이 부분이 플라톤에 있어서는 미학 이론의 토대가 된다. 플라톤이 이것을 가지고 미학 이론을 만든 게 아니고 후세의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가져다가 미학 이론의 토대로 삼았다는 얘기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소크라테스의 얘기는 끝나고 갑자기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한다. 그렇게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한 얘기가 뒤에 이어지는 얘기이다. 소크라테스는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가에 관한 얘기를 알키비아데스가 하게 된다. 이제 두 번 정도 더 읽으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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