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 모비 딕(김석희 옮김) (일러스트레이트 양장본)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3. 9. 4.
모비 딕 -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모리스 포미에 그림/작가정신 |
어원
발췌록
제1장 어렴풋이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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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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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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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장 에이해브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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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장 모비 딕
제42장 고래의 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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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장 기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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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장 스페인 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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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장 도금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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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장 세 개의 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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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장 추적―첫째 날
제134장 추적―둘째 날
제135장 추적―셋째 날
에필로그
옮긴이의 주
허먼 멜빌의 연보
고래잡이(포경업)의 역사
옮긴이의 덧붙임
제16장 배
134 이 배의 대주주이자 책임자인 두 사람 사이에 이렇듯 험악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놀란 나는 그렇게 괴상한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게다가 일시적이나마 지휘를 맡고 있는 배에 타는 것을 아예 포기할까 생각하면서, 빌대드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문에서 옆으로 비켜섰다. 빌대드가 펠레그의 분노 앞에서 빨리 사라지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다시 선미판에 조용히 앉았고, 달아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어 보였다. 그는 완고한 펠레그와 그의 행동방식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 같았다. 펠레그는 그렇게 분노를 터뜨리고 나자 더 이상 남아 있는 분노가 없는 듯 순한 새끼양처럼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휴우!" 마침내 그가 휘파람 같은 소리를 냈다 "스콜은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가버린 것 같아. 빌대드, 자넨 창을 가는 솜씨가 좋았지. 저 펜을 좀 수리해주게. 내 주머니칼은 숫돌에 갈아야 돼. 고맙네, 고마워 빌대드. 그런데 젊은이, 이름이 이슈마엘이라고 했던가? 그럼 여기 서명하게. 자넨 300 번 배당이 적당하겠어."
"벨레그 선장님" 내가 말했다. "배를 타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는데, 내일 데려와도될까요?"
"물론이지." 펠레그가 말했다. 데려오게. 만나볼테니까."
"그 친구는 배당을 얼마나 원하지?" 빌대드가 다시 몰두해 있던 성경에서 잠깐 고개를 들어 우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건 신경 쓰지 말게, 빌대드." 펠레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고래잡이 경험이 있는 사람인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고래를 죽였답니다."
"그럼 내일 꼭 데려오게."
나는 서류에 서명한 뒤 배를 떠났다 이것으로 아침 일은 잘 처리되었고, '피쿼드'호야말로 퀴퀘그와 나를 혼 곶 너머로 데려가기 위해 요조가 마련해 둔 배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이번에 함께 항해할 선장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포경선 선장은 항해에 필요한 준비가 다 끝나고 선원들 모두 배에 탄 뒤에야 마지막으로 나타나 지휘를 맡는다. 고래잡이 항해는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고, 이따금 귀항해도 항구에서 머무는 기간이 무척 짧기 때문에, 선장에게 가족이 있거나 혹은 그와 비슷하게 마음을 끄는 관심사가 있으면 정박 중인 배에 대해서는 별로 관여하지 않고 항해 준비가 모두 끝날 때까지 배를 선주들에게 맡겨둔다. 하지만 일단 배를 타고 나면 돌이킬 수 없게 되므로, 그렇게 되기 전에 선장을 미리 보아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되돌아가서 펠레그 선장에게 어디 가면 에이해브 선장을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뭣 때문에 에이해브 선장을 만나려고 하나? 걱정 말게. 자네는 틀림없이 선원으로 고용되었으니까."
"그야 그렇지만 어쨌든 만나 뵙고 싶습니다."
"지금은 만날 수 없을 걸세. 무슨 일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지만 선장은 집에 틀어박혀 있다네. 일종의 병인데, 아픈 것처럼 보이진 않아. 사실 병에 걸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건강하지도 않아. 어쨌든 선장은 나하고도 만나려 하지 않으니까, 자네도 만나주지 않을 걸세. 에이해브 선장을 괴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선장은 좋은 사람이야. 자네도 무척 좋아하게 될 거야. 걱정하지 말게 괜찮아. 에이해브 선장은 위엄 있고, 신앙심은 없지만 신 같은 사람이야. 말이 많지는 않지만 에이해브 선장이 말할 때는 귀담아 듣는게 좋아. 조심하게 미리 주의를 주는 거니까. 에이해브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대학물도 먹었고, 식인종과 어울린 적도 있어. 파도보다 더 깊은 경이에도 익숙해져 있지. 고래보다 더 힘세고 무서운 적들에게 불같은 작살을 꽂은 적도 있다네. 그의 작살은 우리 섬 전체에서 가장 날카롭고 확실하지! 에이해브는 빌대드 선장이 아니야. 펠레그 선장도 아니야. 그야말로 에이해브 선장이지. 알고 있겠지만 옛날의 에이해브는 왕관을 쓴 왕이 었어!"
"게다가 아주 나쁜 왕이었죠. 그 사악한 왕이 살해되었을 때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아먹지 않았나요?"
"가까이 오게. 이리 와." 펠레그가 말했다. 그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나를 놀라게 했다. ''조심하게, 젊은이. '피쿼드'호에 타고 있을 때는 절대로 그런 소리를 하지 말게. 아니, 어디에서도 그런 말은 하지 말게. 그 이름은 에이해브 자신이 지은 게 아니라네. 미친 홀어머니가 어리석고 무지한 변덕으로 지은 이름이지. 그 어머니는 에이해브가 태어난 지 겨우 열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어. 하지만 게이헤드에 사는 티치그라는 인디언 노파는 그 이름이 에이해브의 운명을 예언해준다고 말했다네. 아마 그 할망구 같은 바보들은 자네한테도 같은 말을 할 거야. 미리 경고해두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야. 나는 에이해브 선장을 잘 알아. 오래전에 동료 선원으로 함께 항해한 적이 있지. 에이해브는 좋은 사람이야. 빌대드처럼 독실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처럼 욕을 잘 퍼붓는 좋은 사람이지. 우리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은 사람이야. 그래, 그래. 에이해브가 명랑한 얼굴을 한 적이 없다는 건 나도 알아. 지난번에 귀항할 때는 한동안 좀 미쳐 있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피를 흘리는 다리의 통증 때문이었어. 잘린 다리의 격렬한 통증 때문에 정신이 나간 거지. 지난번 항해에서 그 저주받은 고래한테 다리를 잃은 뒤로는 좀 침울했다는 것도 알아. 기분이 지독히 언짢았고 때로는 난폭해지기도 했지. 하지만 그건 시간이 흐르면 차츰 사라질 거야 분명히 말하지만, 잘 웃는 나쁜 선장보다는 침울하지만 좋은 선장과 함께 항해하는 편이 나아. 그럼 이제 가보게. 그리고 에이해브가 사악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를 나쁘게 생각지는 말게. 게다가 그에겐 아내가 있다네. 결혼한뒤 그가 항해에 나간건 세 번밖에 안돼. 상냥하고 순종적인 여자지. 생각해보게. 그 노인네가 그 상냥한 여자한테서 자식을 얻었어. 그래도 자네는 에이해브에게 절대적이고 구제할 길 없는 악의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 아니야. 에이해브는 고통에 시달려 망가졌을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라네!"
그곳을 떠나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에이해브 선장에 대해 내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들 때문에 내 마음은 막연한 아픔으로 가득 찼다. 그때 나는 그에게 연민과 슬픔을 느꼈지만, 그가 다리 하나를 무참하게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내가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야릇한 경외감도 느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종류의 경외감은 엄밀히 말하면 결코 경외감이 아니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느꼈고, 그 때문에 그가 싫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수수께끼 같은 면에 조바심을 느꼈지만, 당시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너무 불완전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드디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우울한 에이해브 선장은 당분간 내 마음에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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