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언 채드윅: 종교개혁사 ─ 펭귄 교회사 시리즈 3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3. 10. 9.
종교개혁사 - 오언 채드윅 지음, 서요한 옮김/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제1부 항거
제1장 개혁을 위한 외침
제2장 루터
제3장 칼빈
제4장1559년까지 잉글랜드에서의 종교개혁
제5장 개혁 교회의 성장
제6장 급진적 종교개혁자
제7장 칼빈주의에 대한 공격
제2부 반동 종교개혁
제8장 반동 종교개혁
제9장 가톨릭 해외 정복자들
제10장 동방 정교회
제3부 종교개혁과 교회생활
제11장 분단된 기독교
제12장 교회세력의 쇠퇴
제13장 목회와 예배
제14장 결론
제14장 결론
468 종교개혁 이전까지 기독교 세계는 평신도 귀족들과 교회 귀족들이 교회가 부당하게 거둬들인 재산을 바탕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현실을 개탄했었다. 이제 종교개혁 이후에 평신도 귀족들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재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들의 재산은 더 이상 교회의 재산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교회가 지나치게 많은 재산을 보유해 왔다면 적어도 이 교회의 재산은 흔쾌히 개혁되었다.
르네상스 전통에 서 있던 비평가들은 성경과 현실 교회 사이의 괴리감을 고통스럽게 의식했다. 서방 교회의 절반은 현실 교회를 성경을 이해하는 열쇠로 선택했고, 나머지 절반은 현실 교회를 판단하는 잣대로 성경을 선택했다. 서방 기독교 세게는 분열된 채 통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되었다. 서방이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으로 양분된 상황은 마치 한 근원에서 흘러나온 두 강이 저마다의 교리와 경건이라는 강바닥을 깊게 파놓음에 따라 영구적으로 고착되었다.
렘브란트의 성화(聖畵)는 당시 네덜란드의 삶을 빌어 성경 이야기의 내면을 꿰뚫는다. 그의 작품은 가족과 일반 가정을 그린 그림으로서, 북유럽 종교개혁의 정신을 내쉰다. 반면에 엘 그레코의 성화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묘사하고, 천상의 거룩한 영역까지 올라가고 구별된 정신을 드러내고, 여전히 수도원 봉쇄 구역을 그리면서도 세상을 향해 수도원 문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등 스페인 종교개혁의 정신을 내쉰다. 두 개의 서로 다른 경건의 물줄기는 각자 제 길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아나테마(저주)의 단호한 교리적 제재 조치들보다는 미세하되 과거에 못지 않는 중요한 방식으로 신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었다.
기독교 세계는 그렇게 많은 성직자들이 여자와 불법 관계를 맺은 채 사는 현실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이후 서방 교회의 절반은 성직자의 결혼을 합법화했고, 나머지 절반은 성직자 독신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씨름을 했고, 그 씨름에 성과가 없지만은 않았다.
기독교 세계는 성직자들의 무식과 그로 인한 민중의 무지를 통탄했었다. 그런 무지를 성직자의 복장이나 예배자의 신체적 자세를 바꾼다고 치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의 목회적 열정은 교육에 집중되었고,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사제와 목사와 평신도의 수준이 꾸준히 높아졌다.
기독교 세계는 효율적인 근대 국가가 교회와 교회법의 면책 특권들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결과 모든 곳에서 그러한 면책 특권들이 폐지되거나 제한되었다.
기독교 세계는 기독교 윤리와 평신도들의 관행 사이에 패여 있는 커다란 골을 비극적인 일로 인식했었다. 종교개혁은 욕정과 교만과 탐욕과 압제를 치유할 수 없었다. 국가의 치안이 새로 확립되고 공권력 체계가 향상되면서 민중을 교화하는 점에서 설교 못지 않은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도덕 수준, 예절과 관습의 질은 향상되었다.
가정 예배가 보다 보편화했고, 성경 지식이 보다 넓어지고 깊어졌으며, 교회에서의 태도도 겉으로는 보다 조심스러워졌다. 시편이 평신도의 찬송이 되었고 경건 저서들과 시들이 유행했다. 종교개혁 시대 경건서의 최고봉 가운데 하나는 「천로역정」이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찬송하고 크리스챤이라는 주인공의 장성 과정을 추적하며, 직업 성직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논밭이나 부엌에서 일하는 평범한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기독교 세계는 수도회들에서부터 교회 관료제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다른 면들이 주목을 믿느라 정적 가정 중요한 소교구가 홀대를 당하는 현실을 개탄했었다. 중교개혁은 종교적 열정과 일부 교회 재산을 목사와 신도 들을 유지하는 대로 돌러놓았다.
중세 기독교는 부유하고 다양했지만. 가구가 잔뜩 어질러지고 제단은 어두침침하고 모퉁이는 먼지로 가득한 교회와 같았었다. 종교개혁 시대는 비록 무분별한 파괴라는 유감스러운 일을 자행하는 가운데서도 잔뜩 어질러진 것을 치우고 단순한 이상을 추구하고 예배자들의 시선을 진정으로 중요한 대로 쏠리게 했다. 루터 이후에는 프로테스탄트든 가톨릭이든 과거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무시하는 관행을 모방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루터가 부르짖은 항거(the Protest)가 구원은 의식으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 즉, 외적 행위나, 면죄부 판매자나, 순례나, 감동을 일으키는 성모가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 내용으로 이루어진 동안에는 그 항거가 성공을 거두었다. 한때 비텐베르크 성문에 내걸렸던 구십오개조는 혁명을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구십오개조가 요구한 핵심은 결국 성취되되 프로테스탄트권에서만 성취된 게 아니었다.
1650년경에 신학적 관심의 초점이 이신칭의에서 다른 데로 바뀌어 있었다. 루터의 그의 세대에게 필요했던 것은 이신청의 교리뿐이었다. 그것은 행위에 의한 종교의식과 외적 행위에 의한 구원을 비판하는 예언에 필요한 주장이었다. 루터와 그의 세대는 마음과 의지의 종교를 부르짖을 필요가 있었다. 1650년에도 그들은 여전히 마음과 의지의 종교를 외칠 필요가 있었지만, 교회사의 모든 시대에 필요한 것보다 더 열정적으로 외칠 만큼 그 필요가 절박하지는 않았다.
이제 새로 대두된 큰 필요는 윤리였고, 신학의 주된 문제도 선한 삶의 과정과 장성이 되어있었다. 17세기 프랑스 교회를 지배한 신학 논쟁은 예수회 수도사들의 이른바 이완된 윤리적 교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청교도들은 '결의론', 즉 양심의 문제를 연구했다. 그리고 제레미 테일러 같은 영국 국교회주의자들은 그 문제를 더 심층적으로 연구했다. 종교개혁 시대를 계기로 싹이 난 근실함은 윤리를 중심으로 밀어 넣되, 윤리를 신앙의 대체가 아닌 신앙의 결과로 보았다. 이렇게 해서 이신칭의는 비록 여전히 프로테스탄트권에서 핵심적인 교리였으면서도 약간 관심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는 다른 문제들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실상 세계는 기독교 세계의 전쟁을 수반한 교리 논쟁들에 약간 지쳐있었다. "분쟁을 그치자. 자비와 관용을 되찾자. 본질적인 교리들을 최소도로 줄이고 서로의 공통 분모를 찾자" 이러한 주장이 세력을 얻어가고 있었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기독교 세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정치적 평화뿐 아니라 지적 평화를 모색하는 데로 돌아섰다.
1660년의 영국에서는 종교개혁이라는 단어가 기피를 당했다. 이 단어는 200여년 동안 영광스럽고 선망의 대상이 된 단어였다. 희망과 이상을 제시한 단어였다. 이 단어는 중세의 거룩을 향한 극진한 노력을 감싸안았고, 과거의 황금기와 같은 순수한 시대를 되돌아보았다. 그런데 이제 마침내 이 단어는 이상의 후광을 상실하게 되었다. 오히려 광신과 파괴와 불만과 연관지어졌다. 선량한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고 광적인 비판자들을 선동하는 골치 아픈 단어가 되었다. 이 무렵에 이르면 세계가 개혁되고 파괴되되 땅바닥으로 내려앉을 정도로 개혁된 종교개혁에 의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주된 과업이라고 생각했던 일은 성취되었다. 이제는 인간의 제도라는 게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기억해야 할 때였고, 도무지 만족을 모른 채 끊임없이 변화를 외쳐대거나, 합리적인 사람들이 무해하거나 유익하다고 보는 관습들을 형식주의나 우상숭배로 보게끔 사람들을 호도함으로써 건전한 목회 노력을 매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때였다. 어느 시인은 그러한 부정적인 풍조를 다음과 같은 시구로 꼬집었다.
마치 종교가 수정되는 것 외에는
목적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 세계는 16세기와는 다른 관심사와 열망을 지닌 채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이 이미 변할 만큼 충분히 변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보존하고 안식하고 구원하고, 차분함과 이성이 해내게 될 일을 지켜봐야 할 때가 도래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성이 신앙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종교개혁에 못지 않은 혁명적인 과업을 수행해 내게 되었음이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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