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오 가쿠: 마음의 미래 ━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가

 

마음의 미래 - 10점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김영사

서문
<1부 마음과 의식>
1장 마음 해독하기
2장 의식: 물리학적 관점

<2부 마음으로 육체를 극복하다>
3장 텔레파시: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는가?
4장 염력: 마음으로 물체를 조종하다
5장 주문 제작된 생각과 기억들
6장 아인슈타인의 뇌: 지능 높이기

<3부 변형된 의식>
7장 꿈속에서
8장 마음 조종하기
9장 달라진 의식
10장 인공정신과 실리콘의식
11장 두뇌의 역설계
12장 미래: 물질을 초월한 정신
13장 순수한 에너지로 존재하는 의식
14장 외계인의 마음
15장 맺음말

부록: 양자적 의식
감사의 글
역자의 글
후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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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마음 해독하기

58 뇌과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질 때마다 새로운 두뇌모형이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최초의 두뇌모형은 아마도 '호문쿨루스(homunculus: 뇌 난쟁이)'일 것이다. 호문쿨루스란 "뇌 속에 살면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작은 인간"을 뜻하는데, 인간의 몸 안에 인간이 또 있으면 그 작은 인간의 뇌를 또 문제 삼아야 하므로, 뇌과학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호문쿨루스 안에 더 작은 호문쿨루스가 존재할 수도 있다).

단순한 역학적 기계장치가 처음 발명되었을 무렵 사람들은 인간의 두뇌를 '바퀴와 기어로 이루어진 시계 같은 기계장치'로 생각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한 과학자와 발명가들은 역학적 장치로 작동하는 인조인간을 설계하기도 했다.

1800 년대 말에는 증기기관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증기기관 두뇌 모형'이 제시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 모형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두뇌이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 에고(ego: 이성적 자아)와 이드(id: 억눌린 욕망) 그리고 슈퍼에고(superego: 양심을 관장하는 초자아)라는 세 가지 힘이 서로 경쟁하고 있으며, 이들이 서로 충돌하여 심리적 압박이 커지면 뇌 기능이 저하하거나 시스템 전체가 와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의 모형은 매우 정교하면서 독창적이지만, 뉴런 단위의 자세한 분석이 없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어렵다(프로이트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게다가 이 분석은 거의 100 년 이상 걸리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20세기 초에는 전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전화교환기와 비슷한 두뇌 모형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두뇌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연결된 일종의 전화망이며, 인간의 의식은 거대한 계기판 앞에 일렬로 앉아 전화선을 연결하거나 차단하는 교환원 무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여러 메시지가 두뇌 안에서 하나로 종합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그 후 트랜지스터가 최신발명품으로 떠오르자, 컴퓨터에 기초한 두뇌모형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모형에서 구식 개폐소(송전선을 연결하거나 끊는 장치)는 수백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박힌 마이크로칩으로 대체되었으며, 인간의 마음은 '웨트웨어(wetware: 트랜지스터 역할을 하는 두뇌조직)'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컴퓨터 두뇌모형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지만, 여기에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두뇌에서 진행되는 모든 연산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려면 컴퓨터 크기가 뉴욕시와 비슷해야 한다. 게다가 두뇌에는 프로그램도, 펜티엄칩도 없고 윈도우와 같은 운영체제도 없다(펜티엄칩이 탑재된 개인용 컴퓨터는 연산속도가 매우 빠르긴 하지만, 모든 연산이 하나의 프로세서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병목현상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는 이것과 정반대다. 개개의 뉴런이 활성화되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1천억 개에 달하는 뉴런이 동시에 작동하므로 병렬처리가 가능하다. 병렬처리 프로세서는 속도가 느려도 빠른 프로세서 한 개보다 나올 수 있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두뇌모형은 수십억 개의 컴퓨터를 하나로 연결한 '인터넷 모형'이다. 이 모형은 인간의 의식을 "수십억 뉴런의 행동이 하나로 종합되어 나타나는 기적 같은 현상"으로 설명한다(그러나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혼돈이론을 도입하여 두루뭉술하게 설명할 뿐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두뇌모형들은 각기 부분적으로 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어떤 이론도 두뇌의 복잡성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나의 개인적 소견으로는 두뇌를 거대한 주식회사에 비유한 모형이 가장 그럴듯한 것 같다. 이 모형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에는 거대한 관료 체계와 일련의 지휘계통이 존재하며, 방대한 정보들이 수많은 사무실 사이에서 수시로 교환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정보는 최종 결정권자인 CEO의 지시에 따라 처리된다. 주식회사 모형이 맞는다면, 두뇌의 몇 가지 특이한 성질을 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대부분의 정보는 '잠재의식'에 저장되어 있다
즉, CEO는 주식회사 안에서 유통되는 복잡다단한 정보를 모두 알 필요가 없다. 실제로 CEO의 책상 앞에 배달되는 정보는 극히 일부분이다. (CEO의 집무실은 전전두피질일 것으로 추정된다.) CEO는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보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에 파묻혀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다.

이와 같은 구조는 진화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비상사태에 직면했을 때 지나치게 많은 정보 때문에 혼란스러웠을 것이고 오랜 세월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보 대부분을 잠재의식에서 처리하도록 진화 해왔을 것이다. 우리 두뇌는 매 순간 수조 회의 연산을 수행하고 있지만, 다행히 의식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숲 속에서 호랑이와 마주쳤을 때 자신의 위장이나 발가락, 또는 머리카락 상태까지 일일이 감지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이럴 때는 그저 '뛰어야 산다'는 사실만 알면 충분하다.

• '감정'이란 하위부서에서 속성으로 내리는 결정이다
이성적 사고는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비상시에 가동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이때는 하위부서에서 상황을 빨리 판단하여 CEO나 중간임원의 결재 없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상책인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감정emotion'이다.

즉, 감정(두려움, 분노 공포 등)은 하위부서에서 들어올리는 '경고용 적색 깃발'로서, 진화를 통해 얻은 능력이다. 우리는 감정을 발휘할 때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많은 청중 앞에서 연설하는 사람은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긴장하기 마련이다.

• 모든 생각은 CEO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두뇌에서 내리는 결정은 하나의 호문쿨루스나 CPU, 또는 펜티엄칩을 통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지휘본부 안에 있는 다양한 지부들이 CEO의 관심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다 따라서 '매끄럽고 연속적인 사고'란 존재하지 않으며, 각 부서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온갖 불협화음이 양상되는 중이다. 모든 결정을 연속적으로 내리는 '나'라는 존재감은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하나이며, 정보를 매끄럽게 처리하여 나름대로 타당한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뇌스캔을 통해 나타난 영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음'과 완전 딴판이다.

MIT 교수이자 인공지능 창시자의 한 사람인 마빈 민스키는 언젠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이렇게 말했다. "한 개인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마음의 집합체에 가깝다. 마음에는 다양한 하부구조가 존재하며, 각구조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내가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스티븐 핀커와 인터뷰하면서 "이 복잡한 체계 안에서 어떻게 생각이 탄생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의식이란 뇌 안에서 휘몰아치는 폭풍과 비슷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저서에 다움과 같이 적어 놓았다.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가 두뇌의 통제실에 앉아 모든 장면을 스캔하면서 근육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느낌은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의 의식은 뇌 전체에 퍼져 있는 수많은 사건의 소용돌이이며, 이 사건들은 CEO의 관심을 끌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자신의 존재를 가장 큰 소리로 외치면, 두뇌는 거기에 합리적인 해석을 내림과 동시에 '하나의 지아가 모든 결정을 내린다'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 최종결정은 지휘본부에서 CEO가 내린다
두뇌 관료체제의 목적은 정보를 수집하고 조합하여 CEO에게 보고하는 것이며, CEO는 각 부서의 책임자하고만 접촉한다. 또한 CEO는 중앙통제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 중 서로 상충하는 것들을 적절히 조정하여 딜레마를 피한다. 바로 여기가 두뇌의 최종 결정기관이며, 더 이상의 상부구조는 없다. 즉, 전전두피질에 있는 CEO가 최후의 결정을 내린다. 대부분의 동물은 본능에 따라 결정을 내리지만, 유독 인간만은 다양한 정보 덩어리를 이리저리 조합하고 변형한 후 좀 더 고차원적인 결정을 내린다.

• 정보의 흐름은 계층적이다
CEO에게 전달되는 정보와 CEO가 각 부서로 하달하는 정보는 너무 방대해서, 여러 분기점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형태를 취해야 한다. 즉, 인간의 두뇌는 중앙통제실이 맨 꼭대기에 있는 나무와 비슷하며, 아래로 갈수록 많은 분기점이 나타난다.

물론 관료체제와 인간의 사고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관료체제의 제1계명은 "체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 없도록 가능한 한 모든 공간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뇌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운영되어야 하므로 에너지를 낭비할 여력이 없다. 우리의 두뇌는 20W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으며(희미한 전구의 전력소모량과 비슷하다), 이 값은 몸이 고장 나지 않는 한 절대 증가하지 않는다. 만일 뇌에서 이보다 많은 열이 발생한다면 뇌조직이 손상되면서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두뇌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면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름길'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뇌는 긴 진화과정을 겪으면서 철차를 무시하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 장치를 다양하게 개발해왔다(우리는 이런 장치가 가동되고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이 내용은 앞으로 이 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논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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