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6-1

 

2023.10.18 🎤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6-1

커리큘럼

09.06 예술의 목적과 예술론의 학적 위치
09.13 플라톤의 미학
09.20 예술론의 전범으로서의 《향연》
10.04 mimēsis
10.11 신플라톤주의와 고전주의 예술론
10.18 maniera grande, cicerone
10.25 Baroque, Rococo
11.01 헤겔과 역사적 예술론
11.08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1):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조르조 바사리
11.15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2): 에르빈 파노프스키, 막스 드보르작

 

교재

강유원(지음), 《에로스를 찾아서 -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


제6강. maniera grande, cicerone

일시: 2023. 10. 18.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345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에 카이사르를 제대로 비난하는 사람은 키케로이다. 키케로가 로마에서 말하자면 로마 제1의 연설가이다. 제1의 연설가라는 것은 박식하고 그다음에 남을 잘 설득하고 수없이 많은 정치 연설에서도 상대방을 말로 패퇴시킨 그 힘을 가진 사람이 최고의 연설가이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가 보낸 칼잡이들에 의해서 죽었다. 거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말을 하더라도 적을 만들지 말라.  cicerone라는 키케로가 워낙 말을 잘하다 보니까 '저놈 키케로 같네'라는 말에서 나왔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치체로네 : 회화편 ━ 이탈리아 미술을 즐기기 위한 안내》라는 책에서 썼다. 이 책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주는 것이 아주 부수적인 목표이고, cicerone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룬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건축, 조각, 회화 이 세 가지 영역에 걸쳐서 해설 안내서를 썼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cicerone를 닮은 안내자처럼 예술을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계속 얘기한 것처럼 잘 즐기고 그럴 수 있으려면 Klassik을 먼저 알아야 된다. 오늘 강의하면 이제 Klassik에 관한 얘기는 끝난다. 사실 지금까지 계속 Klassik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얘기해온 거나 마찬가지인데 cicerone에 대해서 먼저 얘기를 하겠다. 

처음에 우리가 이 강의의 목표는 향유Genuss라고 했다.  뭔가를 향유한다 라고 하는 것은,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면 마약을 한다고 하면 향유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투약하는 것이다. 단순한 수용, 단순한 투여는 향유가 아닌 것이다. 내가 이것에 대해서 뭔가를 해봐야겠다 라는 의도intentio가 있어서 그 의도를 가지는 것, 향유의 제일 조건은 의도intentio이다. 그런데 의도라고 하는 건 지향성이다. 자기 의식이 그쪽으로까지 넓혀져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쫙 퍼져가는 것이다. 이 지향성이라고 하는 것이 먼저 발동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들이 여기 강의 들으러 온 것도 예술은 무엇이고 예술학은 무엇이고 예술 철학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이다.  그 관심이라고 하는 게 사실은 지향성이다. 나의 의식이 그리로 이렇게 뻗치는 것이다. 그게 있기 때문에 이걸 할 수 있다. 어떤 것을 우리가 향유한다고 하면 1번은 그것을 향해서 지향성을 갖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라고 하는 건 어떤 것을 향해서 이렇게 쭉 나아가면 반드시 거기서 취사 선택을 하게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과 재미없는 것을 취사 선택을 한다. 취사 선택을 해서 머릿속에서 재구성해서 이해를 한다. 그러니까 취사 선택 그다음에 재구성적 이해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취사 선택을 할 때 대체로 줄기가 되는 것, 그다음에 부수적인 것들을 식별할 줄 알고, 중심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을 식별할 줄 알고, 그런 것들을 하려면 1번 취사 선택을 해야 한다. 1번이 어떻게 보면 어떤 지식과는 무관한non-knowledge 의식의 작용이라면, 2번은 취사 선택과 재구성적 이해를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앎이 있어야 한다. 또 앎의 체계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앎과 지식이라는 말을 쓰는데 지식知識이라는 말은 知와 識이 합쳐진 말이다. 知라는 것은 그냥 아는 것이고 識은 식별하는 것이다. 영어의 knowledge를 지식으로 번역하는 건 사실 틀린 것이다. 지식이라는 말을 영어로 옮기면 structural knowledge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적 앎이다. 識이라고 하는 것은 식별이다. 그러니까 분류classification에 해당한다. 뭐가 막 들어와서 알긴 아는데 얘는 이 영역이고 얘는 저 영역이고 이렇게 해서 식별해하고 분류를 해서 딱 알고 있으면 그게 지식이라고 classified knowledge라고 할 수 있다. 즉 분류가 되었다, 식별이 되었다classified 라고 하는 것, 우리는 식별된 것을 구조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향유를 하려면 2번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한 다음에 재구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 다시 말해서 유희Spiel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적 유희라고 하는 것은 그냥 아무렇게나 어려운 단어를 쏟아내면서 말장난 하는 게 지적인 유희가 아니라 사실은 knowledge와 classification이 결합되어서 그것이 재구성된 것이 지적유희이다.  

Genuss를 위해서는 뭔가를 취사선택을 해서 재구성적 이해를 해야 되는데, 취사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지식이 요구된다. 뭐는 쓰고 뭐는 안 쓴다 라고 할 때 classified knowledge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이게 있을 때 Spiel이 가능한데, 바로 이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cicerone라고 부를 수 있다. 여러분들이 미학, 예술학, 예술 철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cicerone가 되는 데 있다. 그러니까 cicerone가 되려면 의도intentio는 있고 최소한의 관심interest은 있는데, 그러면 결국 배워야 되는 것은 classified knowledge와 이것을 재구성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재구성은 스스로 열심히 많이 하다 보면 되겠지만 적어도 classified knowledge 정도를 습득을 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cicerone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세 번째로 여기서 한 가지 더 요구되는 것은 창작자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이해하는 것, 의도라는 것은 예술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재구성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작품은 몇 세기에 어떤 재료로 가지고 어떻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라고 이해하는 것도 이해겠지만 사실은 궁극적으로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어떤 의도로 예술 작품 보는가. 창작자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예술 작품을 본다. 나의 의도는 창작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보다 예술 작품 이론을 이해하는 게 훨씬 쉽다. 예술 작품을 하는 크리에이터들은 규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규칙을 지켜야 예술 작품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것은 예술 작품이라고 부르고 어떤 것은 예술 작품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분명히 예술계라고 불리는 어떤 영역이 있다. 그 영역에서 통용되는 암묵적인 규칙들이 있다. 그 규칙에 따라서 창작 행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예술가로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술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게 훨씬 쉽다. 

철학의 영역에서도 나름대로 위아래가 있다. 말하자면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고 하면 논문 심사 기준이라는 게 있다. 탁월함을 측정하는 기준이 있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의 레퍼런스를 가지고, 1차 문헌을 얼마나 따져 물었는가, 그다음에 기존에 나와 있는 학설들을 얼마나 논파했는가 이렇게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기준들이 있다. 그러면서 가령 제가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는 박사학위 논문 심사오신 분들이 너 무슨 의도로 이걸 썼어 라고 물어보지는 않는다. 철학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데 객관적으로 내 의도는 필요치 않다. 그들이 평가하는 기준에 따라 썼는가로서 평가해서 통과를 시키고 말고 한다. 그런데 예술 작품은 일단 정해진 규범에 따라서 Klassik의 기준인지 아니면 Romantik의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규범에 따라서 작품이 제작되었는가를 본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어야 된다.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 의도까지 알아야 온전한 이해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예술 작품과 일반적인 객관적인 Werk의 차이점이다. 

우리는 예술 작품에 대해서는 반드시 작가의 의도를 물어야 한다. 되게 중요한 것이다. 재구성적인 이해를 하고 의도를 알아야 되는 한다. 그러니까 3번이 작가의 의도인데 시작은 나의 의도였다. 나의 의도는 작가의 의도를 아는 것이다. 즉 향유Genuss는 의도에서 시작해서 의도로 끝난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향유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나의 의도와 크리에이터의 의도가, 의도와 의도가 만나는 지점에 이르러야 향유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의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주관subject이다.  주관과 주관이 만나는 것을 Intersubjectivity라고 한다. 상호 주관성이라고 번역한다. 예전에는 간間주관성이라고 번역했는데 요새는 잘 안 쓰고 상호주관성이라는 말을 쓴다. 작가의 subject와 감상자 또는 관조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인 구경꾼의 subject 두 개가 서로 포개지는 지점, 그 지점이 바로 향유가 성립하는 지점이다.  고상하게 말하면 두 개의 subject가 중첩되는 지점에 향유가 성립한다. '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어'라고 말하면 무식한 것 같으니 '너의 subject와 나의 subject가 중첩되지 않으니 향유가 성립되지 않는군' 이렇게 말을 해도 된다. 

다시말해서 Genuss라고 하는 것은 창작자의 subject와 구경꾼(관람자)의 subject가 서로 중첩되는 지점에서 성립한다. 그런데 그 향유가 성립하려면 객관적으로 classified knowledge도 필요하지만 반드시 재구성적인 이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의도가 있어야 되고, 이 의도에 어마어마한 노고가 겹쳐져 들어가야 한다. 어마어마한 노고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 그래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 성립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갔다 와야지만 이탈리아 고전 클래식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한 것이다.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을 왜 기록으로 남겼는가. 아무도 안 알아주는 것이라면 그걸 굳이 그렇게 열심히 써서 남겼겠는가.  이게 굉장히 중요하니까 썼을 것이다. 그곳에 갔다 와서 씀으로 해서 자기가 classified knowledge가 있다는 것 그리고 고전 시대의 의도에 나는 중첩되어 있는 아주 확실한 구경꾼이라고 하는 것, 그럼으로써 나는 자격을 갖춘 cicerone라는 것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서 이탈리아 기행이라고 하는 책을 쓴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