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6-2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4
- 2023. 10. 20.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을 듣고 정리한다. 2023.09.06~2023.11.15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 진행되는 강의이다.
2023.10.18 🎤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6-2
커리큘럼
09.06 예술의 목적과 예술론의 학적 위치
09.13 플라톤의 미학
09.20 예술론의 전범으로서의 《향연》
10.04 mimēsis
10.11 신플라톤주의와 고전주의 예술론
10.18 maniera grande, cicerone
10.25 Baroque, Rococo
11.01 헤겔과 역사적 예술론
11.08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1):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조르조 바사리
11.15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2): 에르빈 파노프스키, 막스 드보르작
교재
강유원(지음), 《에로스를 찾아서 -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
제6강. maniera grande, cicerone
일시: 2023. 10. 18.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345
주해31번, 117페이지를 보자. "'콰트로첸토'quattrocento는 '400'이라는 뜻의 이탈리아 어로 1400년대, 즉 15세기를 가리킨다." 「미학, 예술학, 예술 철학」을 배운 분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라는 말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서 사용한 말이다. 딱히 그 시대를 규정하는 말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이 '우리가 르네상스다'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르네상스'라는 재생이라는 뜻인데 그 뜻이 꼭 고대 그리스의 뭔가를 재생한다 라는 뜻은 아니고 원래는 마키아벨리라든가 이런 사람들도 르네상스라는 말을 많이 썼다. 재생한다 라는 단어를 가장 의식적으로 쓴 사람은 마키아벨리이다. 미술 회화하는 사람들이 '우리는 재생주의자다'라고 한 것이 아니다. 나중에 1800년대에 부르크하르트라든가 미술사가들이 붙인 이름이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이지 그들 스스로가 르네상스 회화를 한다는 자기 의식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의식적으로 쓴 사람은 마키아벨리이다. 마키아벨리의 《전술론》을 보면 그런 얘기 많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시대를 가리키는 가장 오래된 명칭은 콰트로첸토이다. 1400년대 즉 15세기 때와 15세기 예술을 가리킬 때indicate 콰트로첸토 예술이라고 말하면 된다.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31번
'콰트로첸토'quattrocento는 '400'이라는 뜻의 이탈리아 어로 1400년대, 즉 15세기를 가리킨다. 14세기는 '트레첸토'trecento(300), 16세는 '친퀘첸토'cinquecento(500)라 부른다.
sprezzatura라는 이탈리어어가 있다. 뜻을 찾아보면 “어떤 일이라도 능숙하게 해내는 것, 별 노력 없이 손쉽게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달인은 달인인데 달인 티를 내지 않고 별거 아닌 것처럼 쓱 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경멸스러운, 하찮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예술 영역에서도 쓰이는데, 그냥 쓱 그렸더니 그러네 이런 식이다. 패션 용어로도 사용된다. 이를테면 한껏 멋을 부리는 것이 멋있는 게 아니라 어디 한 구석이 허술해 보이게끔 그냥 실수로 뭐가 이렇게 된 것처럼 했는데 사실은 일부러 한 것, 그런데 일부러 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을 Sprezzatura라고 한다.
콰트로첸토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원칙은 양식 원리Stil prinzip이다. 콰트로첸토의 Stil prinzip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형식 원리와 내용원리이다. 어떤 사태를 파악할 때는 항상 형식 원리와 내용 원리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는 걸 꼭 기억을 해둬야 한다. Romantik은 필요 없는데 Klassik은 항상 Stil prinzip이 있다. 그리고 그 양식 원리는 형식 원리와 내용 원리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콰트로첸토의 형식 원리는 무엇인가. 주해 27번을 보자. "알베르티는 비례의 원리는 회화에 적용함으로써 '르네상스 고전기'의 양식원리(Stil prinzip)을 정립한다." 르네상스 고전기에 single quotation을 달아왔는데, '이른바'라는 뜻이다. 비례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 형식 원리인데, 비례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 가장 잘 드러난 가장 오래된, 문헌학적으로 따지면 그 이전도 있겠지만, 어쨌든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라고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다. "모든 좋은(훌륭한, agathon) 것은 아름답고(kalon) 아름다운 것(to kalon)은 불균형하지(ametron) 않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것으로 될 생물(zōon)은 균형잡힌 것(symmetron)이라 보아야만 합니다." 균형잡힌 것이 비례이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는 철학적으로는 우주론이라든가 형이상학에서 중요하지만 여러분들이 「미학, 예술학, 예술 철학」을 배웠는데 《티마이오스》의 이 구절이 처음 들어본다고 하면 그것은 안 배운 거나 다름없다. 지난번에 설명하지 않았는데 생물zōon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동물로 번역하기도 한다. 생물 살아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생명체 이렇게 이해를 해도 된다. 여기서 좋은 것, 아름다운 것, 균형 잡힌 것 이 세 개를 동일시하고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비례이다. 그 비례라고 하는 것이 바로 콰트로첸토의 형식 원리이다.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27번
알베르티는 비례의 원리는 회화에 적용함으로써 '르네상스 고전기'의 양식원리(Stil prinzip)을 정립한다.
《티마이오스》, 87c
모든 좋은(훌륭한, agathon) 것은 아름답고(kalon) 아름다운 것(to kalon)은 불균형하지(ametron) 않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것으로 될 생물(zōon)은 균형잡힌 것(symmetron)이라 보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플루티노스를 거쳐서 신플라톤주의를 거쳐서 방금 읽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의 얘기가 콰트로첸토로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비례라고 하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원근법이다. 회화에서 나타날 때는 이 비례가 원근법으로 나타난다. 흔히 고전주의 회화는 원근법이다 라고 하는 말이 이렇게 해서 연결이 되어 있다. 원근법을 무시하면 고전주의 회화가 아닌데 원근법을 무시한 대표적인 작품이 인상파의 작품이다. 왜 인상파가 현대 회화의 시작인가. 원근법을 대놓고 무시했기 때문에, 군데 군데가 아니라, 누가 봐도 원금법을 무시했네라고 하는 것이 드러나니까 그렇다. 원근법이라고 하는 게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거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게 아니라 모두 따로 그려서 떼가지고 콜라주처럼 거기다 붙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그림을 점으로 찍었다. 원근법이라는 게 있을 수 없고 전체의 구도를 완전히 깨버린 것이다. 원근법을 깨뜨림으로써 Klassik이 깨지는 것이다.
알베르티가 쓴 책이 《회화론》이 있는데 비례에 근거한 원근법을 얘기한다. 이 원근법이 알베르티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책 114페이지를 보자. "이 자연의 원칙은 바로 기하학적으로 체계화된 질서이며, 알베르티와 같은 사람들은 이러한 질서로서 세계를 보기 시작했다." 세계를 볼 때 원근법을 가지고 본다는 것이다. 그것을 way of seeing이라고 한다. 형식원리가 있는데 그건 제작원리이기도 하지만 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나오는 게 way of seeing인데 볼 관觀를 써서 관점觀點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가, 말하자면 사물을 볼 때 원근법의 방식으로 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콰트로첸토의 형식원리는 비례 그리고 그것이 구체화된 원근법인데, 이것이 《티마이오스》에 있는 것처럼 우주가 원래 그런 게 아니라 비례에 따라서 만들어졌다고 하면 자기네들이 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얘기하는 것이겠다. 신의 시각으로 그러니까 신의 눈을 가지게 된 인간이라고 자부하면서 세계를 본다.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27번
이 "자연의 원칙"은 바로 기하학적으로 체계화된 질서이며, 알베르티와 같은 사람들은 이러한 질서로서 세계를 보기 시작했다.
"회화에서의 원근법은 지오토(Giotto di Bondone)와 두초(Duccio di Buoninsegna)에서 유래하며 1330년경이면 모든 곳에서 수용하고 있었다. 원근법은 인간의 시각으로써 무한한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그러면 이제 원근법이라고 하는 것으로 공간을 구축하면 무한히 뒤로 이렇게 물러나며 소실점을 향해 간다. 무한 공간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연속적이고 동질적으로 구성된 '체계공간'(Systemraum)이라고 부른다. 체계공간Systemraum이라고 하는 것이 원근법에 의해서 형성된다. 이른바 고전주의 회화다, 고전적이다, 고전적인 작품이다 그러면 항상 이 형식원리를 갖춰야 한다. 이것을 벗어나면 고전적인 작품이 아니다. 이 체계공간이라는 말을 잘 기억을 해두어야 하는데 고전적 양식의 건축물을 가리킬 때 체계공간이냐 아니냐라는 말을 사용한다.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27번
회화에서의 원근법은 지오토(Giotto di Bondone)와 두초(Duccio di Buoninsegna)에서 유래하며 1330년경이면 모든 곳에서 수용하고 있었다. 원근법은 인간의 시각으로써 무한한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원근법으로 구성된 공간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연속적이고 동질적으로 구성된 '체계공간'(Systemraum)에 있게 되어 인간은 이것들을 하나의 시점에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원근법으로써 세계를 보기 이전의 회화들은 사물들 각각을 그 자체 독립된 것으로 모아둔 '집합공간'(Aggregatraum) 안에 배치하였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지금 이게 공부하고 있는 글로벌 평생학습관과 같은 건물들도 어쨌든 회화보다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지어지지만 건물의 안정성이라든가 지속성이라든가 경제성이라든가 이런 것을 고려해볼 때 결국 비례에 의한 체계 공간을 만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건축물들은 아무리 sprezzatura를 구사한다 해도 무심코 파격적인 뭔가를 구사한다 해도 기본적으로는 체계공간을 만든다. 그래서 건축물을 이해하는데 이 체계공간 개념을 갖고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예술》을 소개했는데, 이것들의 특징은 체계공간과 아무 관계없이 그림이 그려지고 회화가 만들어지고 그랬다. 왜 그러는가. 비잔틴 예술은, 말하자면 정교회에서는 비례 개념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쓰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여전히 가톨릭 교회가 작동하던 시대이기 때문에 체계공간에 대해서 많이 잘 나와 있다.
콰트로첸토뿐만 아니라 서구 세계에서 그러니까 인상주의 화가들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체계공간 개념이 가장 잘 드러난 건축물은 피사 미라클 광장Piazza dei Miracoli이다. 십자가 형태의 본당이 있고 본당 뒤에 세례를 받는 곳이 있고 종탑이 있다. 이게 말하자면 기본적으로 교회 건축의 3요소이다. 본당, 세례당, 종탑, 종탑이 피사의 사탑이다. 중요하긴 한데 여기서 사진 찍을 일은 아니고 본당을 열심히 봐야 한다. 이게 체계공간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콰트로첸토 뿐만 아니라 중세의 양식 원리 중에서도 특히 형식원리가 잘 드러나 있는 것이 건축이다. 그래서 회화보다도 더 중요한 건 건축이다. 건축은 일단 건축비가 많이 들고 쉽게 잘 안 변하고 세워놓으면 오래 간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양식의 변형을 잘 일으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한 번 정립된 양식들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이 건축이다. 그래서 서양 예술사를 공부할 때 콰트로첸토 이후에 뭔가를 보고 싶다 또는 그 이전 뭔가를 보고 싶다 그럴 때는 건축의 역사를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다시 115페이지에 보면 "세계를 보기 이전의 회화들은 사물들 각각을 그 자체 독립된 것으로 모아둔 '집합공간'(Aggregatraum) 안에 배치하였다." 그럼 체계공간에 반대되는 말이 Aggregatraum이다. Aggregat라는 것은 total이라는 뜻이고, raum이 공간이다. 그래서 집합 공간, 그냥 모아놓은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하나 일단 형식원리가 이렇다. 117페이지를 보면 주해 32번 "알베르티가 신적 입장에 올라선 인간의 시선을 원근법으로 집약함으로써 콰트로첸토의 형식적 원리를 제시했다면, 피치노는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즉 내용원리를 제시하였다." 그러니까 피치노의 《사랑에 관하여》를 보면 내용원리가 나오는데 이 내용원리는 간단히 말하면 사랑이다. 사랑인데 그냥 사랑이 아니라 신적 사랑, 말하자면 신의 사랑,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도 신적 사랑이고 그다음에 인간이 신적인 어떤 위치에 올라서서 만물을 사랑하는 것도 신적 사랑이다.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32번
알베르티가 신적 입장에 올라선 인간의 시선을 원근법으로 집약함으로써 콰트로첸토의 형식적 원리를 제시했다면, 피치노는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즉 내용원리를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서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그림[천지창조]의 내용이 신적 사랑divine love이다. 회화를 통해서 또는 예술을 통해서 신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 그런 것들이 바로 내용원리이다. 118페이지를 보면 "피치노는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경건한 철학'(pia philosophia)을 플라톤에 의거시킨다." 그러니까 divine love이긴 한데 그냥 뜨겁고 불타오르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경건한 사랑이다. 경건한 철학pia philosophia이다. 철학이라고 하는 것도 원래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니까 경건한 지혜로 이해할 수 있다. divine love와 pia philosophia 이런 것들을 내용으로 담으려고 한다. 이게 내용 원리이다. 그러면 이런 것들을 체계공간Systemraum 속에서 또는 비례에 맞춰서, 원근법에 맞춰서 이렇게 해놓으면 하나도 어긋남이 없는 짜임새 있는 뭔가가 만들어지겠다. 그러면 예술가는 수학자라고도 할 수 있고 그러니까 다빈치가 여러 가지 일을 했던 것이 당연하겠다 .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32번
피치노는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경건한 철학'(pia philosophia)을 플라톤에 의거시킨다.
그러면 그러한 시대가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는 긴장해서 어떤 정자세를 취하고 올바른 생각만 하는 것은 10분 이상 할 수 없다. 생각해 보자. 콰트로첸토의 Stil prinzip을 이렇게 보면 이 형식원리와 내용원리가 정말 빈틈이 없고 꽉 짜여 있다. 이것을 우리는 Klassik이라고 부른다. 위대하긴 위대한데, 위대한 양식maniera grande이긴 한데 Klassik을 지키기는 너무 힘들다. 그런데 왜 Klassik이라고 하는 게 왜 위대한 양식인가. 콰트로첸토 시대의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중세 사람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고딕 양식의 성당은 Systemraum방식이 아닌 Aggregatraum방식으로 지어진 것이다. 그냥 계속 덧붙인 것이다. 예를들어 우리들의 방이 그렇다. 처음부터 이렇게 설계한 건 아니고 하다 보니 이거 놓고 이거 놓고 그걸 우리는 다 통칭해서 중세적인 의미에서는 고딕이라고 그러는 것이고 Romantik은 근대 이후에 나온 얘기이다. 그래서 Klassik이라고 하는 건 고대 헬라스 세계도 가리키는 말일 수 있고, 중세는 Klassik의 시대가 아니라 고딕의 시대이다. 계속 땜질하는 거였다. 노트르담 성당을 고딕 성당이라고 그러는데, 고딕 성당은 집합공간Aggregatraum이다. 그렇기 때문에 콰트로첸토 시대의 사람들은 자기네가 중세사람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동안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배우고 미술사도 배웠다. 지금 이번에 강의에서 Klassik과 Romantik의 구별을 확실하게 해야 되고 개념적으로 정리해야 되고 classified knowledge도 해야 되는 것을 배웠다. 그러면 저는 어쨌든 적어도 여러분들에게 Systemraum, 체계적인 것들에 대해서 가르친다. 그때그때 설계도 없이 그냥 이거 이거 알면 좋아요 하고 꿀팁을 잔뜩 알려주는 것이 고딕이다. 콰트로첸토 시대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시스템을 설계했고 그 시스템에 따라서 divine love 또는 divine way of seeing, 우리가 신의 눈을 가지고 세계를 본다고 생각을 했을 테고 그것으로써 창작 활동을 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관광을 가서 고딩 양식을 보면 대단히 멋있긴 한데 그게 Systemraum은 아니다 라는 것을 꼭 기억을 해야 된다. 멋있다 라고 생각할 수는 있는데 멋있는 것과 체계적인 것은 다르다.
126페이지의 주해 37번을 보면 "콰트로첸토의 '위대한 양식'과 아름다움의 이념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것이어서 오래 지속될 수가 없었다. 짧은 이상주의적 시기가 지나면서 곧바로 객관주의가 해체되고", 객관주의라고 하는 건 비례라든가 이런 것들이 구현될 수 있다고 보니까 객관주의이다, "여기에 예술가의 자의식, 즉 모방자가 아닌 창조자로서의 자기 규정이 덧붙여지면서 이른바 '고딕화 현상'이 나타난다. 엄격한 비례에 의해 구축되었던 공간의 통일성이 사라지고, 공간의 가치가 같은 화면에서 서로 다르게 매겨진다. 회화는 갈등을 표현하고 예술가가 초자연적 경험으로 침잠하거나 양식을 의식하지 않는 회화들도 나타난다." 고전 콰트로첸토의 위대한 양식을 만들어낸 사람이 동시에 갑자기 미쳐가지고 그걸 뭉개버리면 위대한 사람인 것이다. 그 사람이 미켈란젤로이다. 미켈란젤로가 위대하다는 것이 두 번의 인생을 살아서이다. 티치아노하고 미켈란젤로 이 두 사람이 굉장하다.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노예들, 피에타 그런 것들이 매너리즘 작품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래서 위대한 작품이다.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37번
콰트로첸토의 '위대한 양식'과 아름다움의 이념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것이어서 오래 지속될 수가 없었다. 짧은 이상주의적 시기가 지나면서 곧바로 객관주의가 해체되고 여기에 예술가의 자의식, 즉 모방자가 아닌 창조자로서의 자기 규정이 덧붙여지면서 이른바 '고딕화 현상'이 나타난다. 엄격한 비례에 의해 구축되었던 공간의 통일성이 사라지고, 공간의 가치가 같은 화면에서 서로 다르게 매겨진다. 회화는 갈등을 표현하고 예술가가 초자연적 경험으로 침잠하거나 양식을 의식하지 않는 회화들도 나타난다.
본문으로 한번 들어가 보겠다. 56페이지를 보면 "고전주의(Klassik)은 하나의 전범典範이므로 어디에나 그것의 흔적을 남기며 오래도록 지속된다. 그러나 콰트로첸토와 친퀘첸토의 고전주의는 성립하자마자 그것을 세운 이들의 손으로 해체되어 간다. 죽기 직전에 가장 높은 물마루에 오른 현상처럼 그러하였다. 갑작스럽게 예술가들은, 동일한 사랑과 아름다움의 이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의식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르네상스 시대에서 특히나 그랬다는 것이고 미켈란젤로의 '노예들' 그다음에 파르미지아니노의 <긴 목의 성모>, 원근법이 무시되고 "품 안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건지 아니면 흘러내리도록 방치하고 있는지, 그것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특히 파르미지아니노의 <긴 목의 성모>는 당시에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그다음에 "아폴론의 저주를 받아 거꾸로 매달린 채 <살가죽이 벗겨지는 마르시아스>의 모습, 티치아노인데 우피치 미술관 들어가면 있다고 한다. 회화로서는 콰트로첸토의 최고다. 그런데 그걸 그린 사람이 <살가죽이 벗겨지는 마르시아스> 그렸다. 그게 바로 똑같은 사람이 전혀 상반되는 두 개를 해야 그게 위대한 것이다.
《에로스를 찾아서》 위기
고전주의(Klassik)은 하나의 전범典範이므로 어디에나 그것의 흔적을 남기며 오래도록 지속된다. 그러나 콰트로첸토와 친퀘첸토의 고전주의는 성립하자마자 그것을 세운 이들의 손으로 해체되어 간다. 죽기 직전에 가장 높은 물마루에 오른 현상처럼 그러하였다. 갑작스럽게 예술가들은, 동일한 사랑과 아름다움의 이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의식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위대함의 기준이라고 하는 건 아주 간단하다. 훌륭함이라고 하는 것은 늘 시종일관하는 것이다. 위대하다는 것은 훌륭함이라고 하는 그런 덕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시대를 바꾸는 것이다. Klassik의 시대에서 매너리즘의 시대로 갔다. 두 시대를 사는데 남들이 하는 걸 따라간 게 아니라 자기가 시대를 규정해 버렸다. 위대한 예술가다 라고 하는 것, 위대한 배우다 하는 것은 그 지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시대를 바꾼다고 하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예를 들면 샤이먼 샤마의 《파워 오브 아트》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위대한 우리가 great라고 하는 단어를 가령 정치가에게 쓴다고 하면 프랭클린 루즈벨트 같은 사람들이다. 루즈벨트는 민주당 대통령인데도, 전통적으로 남부의 노예 농장주들의 당이었던 민주당을 건전한 국가적 이념에 충실한 중산층의 당으로 만든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위대한 정치가라고 한다. 시대를 바꾸는 것이다. 미국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 민주당이라고 하면 노예 농장주, 가톨릭이었는데 그 사람들을 민주당 지지자들로 만들어낸 사람을 위대하다고 그러는 것이고, 예술은 시대를 바꾼 사람이다. 두 개의 예술 사조를 쓴 사람들을 위대하다 할 수 있다.
다음 주에는 미켈란젤로에 대해서 얘기하고 바로크를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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