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신학의 영토들

 

2023.10.17 📖 신학의 영토들

📖 신학의 영토들

김진혁, ⟪신학의 영토들 - 서평으로 본 현대 신학⟫  
- 서평
“책의 숨겨진 배경을 설명하고, 저자가 가진 생각의 심층 구조를 드러내며, 책의 내용이나 수용 방식이 독자 개인이나 지식 생태계에 끼칠 영향을 평가하는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기능을 수행”

- 책을 선별한 기준
대표성, 접근성, 현실성, 희귀성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종교론⟫(Über die Religion. Reden an die Gebildeten unter ihren Verächtern, 1799)  
에티엔 질송Étienne Henri Gilson(1884-1978), ⟪철학자들의 신⟫(God and Philosophy) 
에두아르트 트루나이젠,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Dostojewski, 1921) 

 

 

오늘은 《신학의 영토들》이라고 하는 책을 소개하겠다. 이 책은 판형이 조금 작긴 하지만 그래도 750페이지쯤 되는 두툼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좀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왜 압도되었는가. 제가 저를 어디에 소개할 때 철학 선생이다 라고 소개를 하고 또 서평가라고 소개도 하는데, 철학 선생이라고 하는 건 오래 했고 오랫동안 철학과 그 주변을 공부해서 가르쳐 왔으니까, 철학 선생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저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 안 해봤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는 저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평가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노력하고 의식하고 있는 그런 일이다. 서평을 열심히 써야 한다. 어쨌든 책에 대해서 뭐라도 코멘트를 꼭 해야 한다.  늘 책을 읽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보이고 서평가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붙임으로써 그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다짐하는 하나의 징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김진혁 교수에게,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조직신학, 철학, 윤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왜 긴장을 했는가.

《신학의 영토들》은 신학은 어떤 영역들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한 책이고 부제가 서평으로 본 현대 신학이다. 즉 서평집이다. 여기에 소개된 책을 읽어라 하는 소개의 글이기도 하면서 다 읽지 않으니까 그냥 이 서평집을 읽고 읽은 거나 다름없이 느끼고 그렇게 읽은 셈으로 쳐라 라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는 서평집이다. 700페이지가 넘는다는 건 굉장한 도전이다. 굉장히 꾸준히 오랫동안 열심히 쓰지 않으면 또 읽지 않으면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서 하지 않으면 곤란한, 그래서 압도되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온 서평집을 읽어보면서 '이건 내가 좀 심란한데'라는 생각한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이건 강력하게 여러분들에게 추천한다. 그냥 여기에 소개하는 책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신에 관한 어떤 그런 논의들, 신학에 관한 논의들은 이 서평집 하나를 쭉 읽으면 어느 정도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굉장히 꼼꼼하게 잘 쓴 서평집이다. 그래서 저도 이제 적어도 이 정도 되는 서평집을, 가령 '철학의 영토들'를 써야 되나, 철학책만 싹 골라가지고 이렇게 써봐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기도 한다. 여하튼 이렇게 국내 저자가 쓴 책을 읽고 긴장을 하고 뭔가 도전적이다 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다. 이런 서평집을 만날 수 있어서 한편으론 기분이 몹시 좋다. 

사실 김준혁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잘 몰랐는데 제가 팟캐스트에 링크도 걸어놨는데 에티엔 질송의 《철학자들의 신》, 원제는 God and Philosophy이라는 책이 있다. "신과 철학"이라고 하는 책으로 강의을 묶은 책인데 그 책을 번역을 했다. 김준혁 교수가 이 책을 번역해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왜냐하면 에티엔 질송의 《철학자들의 신》은 1963년에 나온 책으로, 제가 가진 책은 《철학과 신》이라는 제목으로 김규영 선생님이 번역하신 것으로 1966년에 성 바오로 출판사에서 나온 걸 가지고 있다.  김규영 선생님은 1919년생이시니까 벌써 돌아가셨다. 김규영 선생님은 그러니까 에티엔 질송과 동시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에티엔 질송이 1884년생이고 김규영 선생님이 1919년생이니까 그렇다.   이 책이 굉장히 좋은 책인데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여전히 좋은 책이고 강의 교재로 쓰기에 참 좋은 책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금 김진혁 교수가 《철학자들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을 해서 2023년 8월 1일에 출간을 했다. 그리고 그 책의 역자 후기에 "역자는 학부 때부터 신학과 철학을 함께 공부하였지만 몇 년 전 질송의 철학자들의 신을 접하고 나서야 신 개념에 얽힌 철학적 신학적 문제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다."라고 썼다. 몇 년 전에 읽었다니 그래도 몇 년 전이라도 읽었으니 정말 다행이고 그걸 또 읽은 걸 번역을 했으니 정말로 다행이다.  


서평으로 본 현대 신학. 어떠 어떠한 책들이 소개되었는지는 조금 이따 말하기로 하고 제가 이 책을 펼치고서 놀라운 점 하나를 먼저 말해보면, 이 책은 제1부가 "신학이란 무엇인가"이고 제2부가 "과거를 읽는 법"이고 제3부가 "현대 개신교 신학의 대가들" 그리고 제4부가 "한 몸 다른 전통" 그리고 제5부가 "신학의 새로운 흐름"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신학이란 무엇인가 라고 하면, 신학은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가 할 때 그냥 대게 신학개론서로 시작하기가 쉽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은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을 가지고 "신학이란 무엇인가" 파트를 시작했다. 그래서 저자가 책을 정말 잘 고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은 한남대학교의 최신한 교수가 번역한 책이다. 그 무렵에만 해도 제가 신학자로서의 슐라이어마허라기보다는 낭만주의자로서의 슐라이어마허를 알고 있을 때라 슐라이어마허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본 적은 없던 때이고 헤겔을 공부하면서 그 언저리에서 좀 읽어본 그런 때였다. 그때는 《종교론》을 진작에 읽어봐야겠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최신한 교수가 번역했길래 읽어보고, 독일 낭만주의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데는 이제 무조건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부터 시작을 해야 된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은 거기까지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이 가지고 있는 "근대 세계에 일어난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이라고 하는 것까지는 사실 신학적으로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해결 좌파의 업적이 엄청나다고 김균진 교수는 얘기를 하는데 해결 우파도 업적이 엄청나다.  에두아르트 간스와 같은 사람들, 철학이 아니라 법학 쪽을 해서 그렇지 헤겔 우파도 좌파 못지않게 업적이 있다. 여하튼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이라든가 또는 지난번에 소개했던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와 같은 헤겔 좌파뿐만 아니라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근대 기독교를 무너뜨린 그런 결정적인 저작들이 몇 개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을 처음 읽을 때는 낭만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도 뭔가를 좀 다른 시도하고 있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신학의 영토들》에서는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파트의 첫 번째 책으로 "근대 세계에 일어난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라고 하는 제목을 달고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를 소개하고 있길래 굉장히 신선하고 '여기까지는 생각 못 해봤는데, 역시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이런 식으로 읽는구나'라고 하는 어떤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   

어쨌든 신학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할 때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신학이라는 거 있는데, 저자도 "아타나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마르틴 루터, 장 칼뱅 등 위대한 신학자들은 알 길 없던, 그래서 생각할 필요조차 없던 도전이 무차별적으로 신학자들에게 던져졌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이게 바로 근대의 상황이다. 그리고 교회의 권위마저 사라지고 없었고,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신학하는 방법이 필요하고 이게 현대 신학이다. 그것의 출발점이 바로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이라는 것을, 《종교론》이라는 책이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일단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을 꼭 신학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신학의 영토들》에 있는 서평을 읽고 《종교론》을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도이치 낭만주의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책이다. 도대체 낭만주의라고 하는 건 도대체 뭐냐고 묻으면 막연한데 노발리스, 슐레겔 형제, 푸른 꽃, 괴테는 낭만주의자냐 아니냐 이런 얘기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 지리멸렬한 논쟁들에 파묻히기보다는 그게 좋다.  

머리말 12 아타나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마르틴 루터, 장 칼뱅 등 위대한 신학자들은 알 길 없던, 그래서 생각할 필요조차 없던 도전이 무차별적으로 신학자들에게 던져졌다.


그다음에 이제 "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두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게 이제 칼 바르트의 《로마서》인데, 칼 바르트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것과 나란히 붙어 있는 게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실존철학을 강의하는 데 있어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는 것, 도스토옙스키는 그리스 정교회의 신자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고 하는 것은 실존철학 또는 실존적 문학의 최정점에 있는 작품인 것이다. 카뮈의 작품보다도 더 정점에 있는 게 도스토옙스키이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데 필요한 책들은 늘 검색해서 읽어보지만 말하지 않는 이유가 러시아어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난 이렇게 생각해'라고 안 떠드는 건 도스토옙스키를 한글로 된 번역본들만 읽어봤기 때문이다.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영어판으로도 읽어보긴 했다. 예전에 철학과 전공 과목 가르치던 시간강사 시절에 현대 유럽 철학이나 실존철학을 가르칠 때 도스토옙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를 교재로 쓰곤 했었다. 지금은 아마 러시아어를 조금이라도 배우기 전에는 도스토옙스키 강의는 못할 텐데 그냥 혼자 읽고 즐기기에도 좋다. 여하튼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를 바르트와 함께 소개를 해놓았다.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은 스위스의 신학자로 칼바르트와 함께 뭔가 작업을 한 사람인데 이런 시도들이 좋다.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책들, 신학이란 무엇인가 라고 할 때 그냥 교과서적으로 얘기하기보다는 정말 신학을 요청하는 또는 신학을 요구하는 그런 책들을 얘기하는 것이 더 좋다. 

그다음에 이제 "신비로서 신, 상상으로서 신학"은 《신학 방법론》 그다음에 "교리의 본성과 목적 논쟁"에서 《교리의 본성》과 《교리의 본성》 그다음에 이제 다섯 번째로 읽고 있는 책이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 서론》, 판넨베르크의 조직 신학은 사람들이 어려움의 끝판왕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다음에 "아름다움은 우리를 구원할 것인가?", "하느님 말씀이 거룩하니 신학도 거룩하라" 그런 것들이 신학이란 무엇인가에 들어가 있다. 


"제2부 과거를 읽는 법"에서는 "복음과 교리 사이에 선 역사학자로서 신학자"로 아돌프 폰 하르낙의 《기독교 신학과 교회 교리의 형성》, 이건 필독서이다. 그리고 이제 한스 큉 신부님의 《그리스도교》, 그리고 로널드 헨델의 《창세기와 만나다》, 제가 지금 신학을 딱히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읽어볼 만한 책들을 거론하고 있다. 저도 마찬가지이다. 이걸 읽고 여기에서 소개한 책들을 다 사서 읽어볼 생각은 전혀 없다. 성서신학에 관한 책들은 이제 빠져 있는 것 같고 이를테면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또 동방교회의 신비신학도 굉장히 많다. 그동안 신학 분야에서 읽은 책들을 제가 꽤 읽은 줄 알았는데 런 것들을 보니 안 읽은 게 정말 많다. 그렇다 해도 읽어볼 생각은 없고 그냥 저도 이 신학 서평집으로 그냥 땜질을 해보려고 한다. 


제가 읽어본 것 중에 여러분들에게도 권할 만한 것을 이어서 말해본다. "역사를 통해 배우는 신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폴 카페츠의 《그리스도교의 신》은 《철학자들의 신》과 함께 구매했는데 함께 읽을 만하다 라고 생각을 했다.  그다음에 후카이 토모아키의 《신학을 다시 묻다》, 《사상으로서의 편집자》도 읽을 만한 책이다. 그다음에 에밀부르너와 칼바르트의 대화를 다룬 《자연신학》 그리고 폴 틸리히의 《성서 종교와 궁극적 실재 탐구》, 이 책은 존재론과 형이상학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가, 어디까지가 존재론이고 어디서부터 형이상학인가를 잘 알려주는 책이다. 폴 틸리히의 이 책은 "신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어선 경계선 위에서의 사유"로 아주 좋은 책으로 교과서이다. 사실 제가 기독교 신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기독교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그게 형이상학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또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기독교 신학의 일정한 영역은 철학에 있어서의 형이상학과 서로 겹치는 영역이 있고 그런 영역들을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럴 때 가장 적절한 텍스트가 《성서 종교와 궁극적 실재 탐구》 그다음에 폴 카페츠의 《그리스도교의 신》 그다음에 아주 당연하게도 에티엔 질송의 《철학자들의 신》이다. 이런 것들을 함께 읽으면 굉장히 좋다.  이것은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러 기독교의 여러 전통들을 다루는 게 제4부의 "한 몸 다른 전통"이다.  "부정신학을 통해 하느님의 신비에 다가가기"라고 해서 블라디미르 로스키의 《동방교회의 신비 신학에 대하여》, 블라디미르 로스키의 책은 많이 번역되어 있다.  그다음에 이제 가톨릭 교회의 칼 라너. 대표적인 가톨릭 신학자이다. 저도 가톨릭 신자이긴 한데 의외로 가톨릭 교회에서 나온 책들은 별로 잘 안 와닿는다. 그다음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도 다뤄지고 있다. 제가 신학이라고 하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으로 처음 읽어본 게 《해방신학》이다. 가톨릭 교회는 지역마다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국에서 천주교 성당 다니면 신부님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걱정하시고 미사도 하고, 사회 정의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도 동네마다 다르다.  한국도 동네마다 다르고 그러다가 미국 같은 곳에 가서 가톨릭교회를 가면 여기 완전히 15세기 중세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리타분하고 아주 보수이고 그렇다. 실제로 예전에 남북 전쟁 시기 전에 남부의 흑인 노예 농장주들이 가톨릭 신자들이 많았다. 


"제5부 신학의 새로운 흐름"에서는 이런 저런 책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 있는 책들은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교회의 정치학》외에는 읽어본 게 없다. 이 책에선 특히나 성서신학에 관한 책들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저자가 조직신학, 철학 윤리쪽을 가르치다 보니까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 저는 사실 성서신학 관련된 책들을 많이는 아니고 몇 권 읽어보긴 했는데 지금 말한 부분들을 골라서 보면 적당할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저자의 머리말을 보면, 이 책은 서평의 형식으로 되어 있고 "서평은 책의 숨겨진 배경을 설명하고, 저자가 가진 생각의 심층 구조를 드러내며, 책의 내용이나 수용 방식이 독자 개인이나 지식 생태계에 끼칠 영향을 평가하는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서평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를 알 수 있다. 그다음에 "이 책은 현대 신학의 '영토' 곳곳을 가능한 한 많이 둘러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통시적으로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사상 흐름을 소개하고, 공시적으로는 시대를 가로지르며 발전한 다채로운 방법론과 주제를 살펴보도록 기획되었다." 이제 각 영역을 대표하는 책 그리고 예전에는 출간되었지만 지금은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는 책은 가능한 한 배제하고 원서로만 접할 수 있는 것도 배제하고, 즉 접근성을 고려한다. 그다음에 현실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얼마나 직접 와 닿는가 하는 부분들, 즉 현실성을 고려하고 그다음에 기존의 신학사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거나 충분히 좋은 책이긴 한데 독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양서를 재발견해서 했다고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 '이런 책이 있었어'하는 것들이 있게 되었겠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반드시 읽어봐야겠다. 

머리말 15 서평은 책의 숨겨진 배경을 설명하고, 저자가 가진 생각의 심층 구조를 드러내며, 책의 내용이나 수용 방식이 독자 개인이나 지식 생태계에 끼칠 영향을 평가하는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머리말  16 이 책은 현대 신학의 '영토' 곳곳을 가능한 한 많이 둘러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머리말 16 통시적으로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사상 흐름을 소개하고, 공시적으로는 시대를 가로지르며 발전한 다채로운 방법론과 주제를 살펴보도록 기획되었다. 


서평가의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도전적인 서평집을 읽게 되어서 즐겁고 저도 반성하고 뭔가 저도 《책 읽기의 끝과 시작》에 이어서 또 계속 서평집을 해야겠다.  그러려고 지금 이것도 하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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