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7-2

 

2023.10.25 🎤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7-2

커리큘럼

09.06 예술의 목적과 예술론의 학적 위치
09.13 플라톤의 미학
09.20 예술론의 전범으로서의 《향연》
10.04 mimēsis
10.11 신플라톤주의와 고전주의 예술론
10.18 maniera grande, cicerone
10.25 Baroque, Rococo
11.01 헤겔과 역사적 예술론
11.08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1):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조르조 바사리
11.15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2): 에르빈 파노프스키, 막스 드보르작

 

교재

강유원(지음), 《에로스를 찾아서 -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


제7강. Baroque, Rococo

일시: 2023. 10. 25.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345

 

 

주해 41번에서 "매너리즘에서 징후를 볼 수 있었듯이"라고 얘기를 했다. 지금부터는 58페이지 본문을 읽는다. "서구 중세는 기독교의 신 안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 시대에는 신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부지런히 성사聖事를 당한다면 구원은 틀림없는 것이었다. 루터도 이것에 의심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자신의 죄를 고백해도 구원을 확신할 수 없었다. 끝없는 의심이 밀려올수록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비관은 커졌다.  루터는 문득 구원은 오로지 신의 역사役事임을, 신이 하는 일이다 이 뜻이죠 인간은 이 구원에 조금도 가담할 수 없음을 자각하였다. 그는 신의 전지전능함을 새삼스럽게 선언하였다." 이게 프로테스탄트의 기본적인 정신이다.  "그러나 구원이 인간의 소행을 넘어선 곳에서 결정된다면", 지금까지 읽은 문단에서 접속사가 하나 있는데 '그러나'이다. 지금 문장이 굉장히 짧다. 짧은 문장을 계속 이어가면서 중간에 '그러나'라고 하는 접속사를 효과적으로 쓰면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는 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게 그냥 쓴 게 아니라 궁리해서 이렇게 쓴 것이다. 《에로스를 찾아서》, 《숨은 신을 찾아서》을 읽을 때 이런 문장을 한 번쯤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구원이 인간의 소행을 넘어선 것에서 결정된다면 일상의 행위, 심지어 선행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만 하는가, 여기서 프로테스탄트의 우울과 강박이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프로테스탄트한테는 공갈과 협박과 우울과 강박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이 신에게 달렸다 하면 믿으나 안 믿으나, 안 믿어도 구원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신의 마음인데, 믿어서 우리가 거기다 증거를 갖다 대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착한 일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렇게 얘기를 한단 말이다. 그러니까 그래도 착한 일을 해야 되니까 의외로 프로테스탄트에서 《욥기》 같은 것을 열심히 읽는다. 

《에로스를 찾아서》 탈취
서구 중세는 기독교의 신 안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 시대에는 신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부지런히 성사聖事를 당한다면 구원은 틀림없는 것이었다. 루터도 이것에 의심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자신의 죄를 고백해도 구원을 확신할 수 없었다. 끝없는 의심이 밀려올수록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비관은 커졌다.  루터는 문득 구원은 오로지 신의 역사役事임을, 신이 하는 일이다 이 뜻이죠 인간은 이 구원에 조금도 가담할 수 없음을 자각하였다. 그는 신의 전지전능함을 새삼스럽게 선언하였다. 그러나 구원이 인간의 소행을 넘어선 것에서 결정된다면 일상의 행위, 심지어 선행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만 하는가, 여기서 프로테스탄트의 우울과 강박이 시작되었다. 


우울과 강박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신이 하는 일에 인간이 가담할 수 있다는 가톨릭, 그리고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의 오만일 뿐이라는 프로테스탄트의 분열은 종교의 영역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땅 위의 여러 영역에서 파열음을 내며 터져나왔다." 이제 종교의 영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이 서로 편을 갈라 싸우고 싶은데 종교가 명분을 갖다 준 것도 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이 파열음들 사이에서 여전히 가톨릭을 신봉하는 궁정이든,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인 영주든, 어느 땅에 사는 시민들이든 누구나 자신만의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려는 열망으로 불타오른다. 그 열망은 살육으로 현실화된다. 1572년 8월 18일에 '여왕 마고'(La Reine Margot)라 불린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앙니 드 나바르의 결혼식이 거행되었고, 여기에 참석하려고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파리에 모였다.  이들을 습격한 가톨릭 교도들은 8월 23일 자정부터 24일 아침 사이에 프로테스탄트 교도 3000명 정도를 학살하였다." 강에다가 막 던졌다고 한다. 그때가 바로 앙리 4세의 시대이다. 나바르는 태어날 때는 가톨릭, 어머니의 영향으로 프로테스탄트, 가톨릭 교도와 결혼하고, 성 바르텔미 축일의 대학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톨릭으로 다시 개종한 뒤에, 파리에 감금되었다가 프로테스탄트 교도들과 힘을 합해 내전을 시작하고, 다시 파리에 입성하기 위해서 가톨릭으로 다시 개종, 끝도 없다.  이렇게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또는 성취하기 위해서 종교도 넘나드는 이런 태도들, 이런 태도들을 우리는 현실 정치적 태도다 라고 말한다. 이를 Real Politik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비유를 할 수 있다.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강의를 잘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런데 이 강의가 유지되려면 사람이 좀 모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일단 사람을 모으는데 잔머리를 좀 쓰고 이러는 게 Real Politik이라고 비유해서 쓰자면 할 수 있다.  Real Politik이라는 단어는 경멸적인 의미로도 쓸 수 있지만 굉장히 유능한 사람을 가리킬 때도 쓸 수 있고 두루두루 사용할 수 있다.  

《에로스를 찾아서》 탈취
신이 하는 일에 인간이 가담할 수 있다는 가톨릭, 그리고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의 오만일 뿐이라는 프로테스탄트의 분열은 종교의 영역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땅 위의 여러 영역에서 파열음을 내며 터져나왔다. 이 파열음들 사이에서 여전히 가톨릭을 신봉하는 궁정이든, 프로테스탄트를 받아들인 영주든, 어느 땅에 사는 시민들이든 누구나 자신만의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려는 열망으로 불타오른다. 그 열망은 살육으로 현실화된다. 1572년 8월 18일에 '여왕 마고'(La Reine Margot)라 불린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앙니 드 나바르의 결혼식이 거행되었고, 여기에 참석하려고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파리에 모였다.  이들을 습격한 가톨릭 교도들은 8월 23일 자정부터 24일 아침 사이에 프로테스탄트 교도 3000명 정도를 학살하였다. 

《에로스를 찾아서》 탈취
나바르의 생애는 그 자체로 종교와 정치가 얽힌 한없이 복잡한 현실 정치, 레알 폴리틱Real Politik의 집약체이다.


그때 앙리 드 나바르가 했던 유명한 말이 "파리는 미사를 드릴 가치가 있다."라는 말이다. 파리에 입성하려면 가톨릭으로 개종을 해야 된다. 내가 파리에 입성하려는 업적을 이루고 가기 위해서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해야겠구나 라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미사를 드린다는 것은 가톨릭 신도가 된다는 것이고 파리를 위해서 나는 미사를 기꺼이 드리겠다 라는 말이니까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겠다. "지상은 살육과 그것의 산물이 시신屍身으로 황량해지고 있는데 화가는 앙리 4세를 현존하는 초월적 존재라도 되는 냥 찬양한다." 17세기 이래로 유럽에서는 주권자들이 자기 영토를 늘리기 위해서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인하는 것이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앙리 4세의 유명한 낭트칙령,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화해를 바란다면 소원이 없었을 것이다.  앙리 4세가 죽은 지 20년 후에 루벤스는 이 연작을 그렸다.  그 평가를 보면 "평화에 대한 루벤스의 소망을 넘치도록 반영한 탓인지 절제의 선을 넘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충실히 지켜졌던 조화와 비례를 저 멀리 팽개쳐버렸다. 세상은 여전히 신을 필요로 한다. 눈앞의 현실이 참혹할수록 신 닮은 무엇에라도 매달리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군주에 대한 흠모로 표출되었다. 앙리 4세를 지상에 내려온 신처럼 찬양하려는 화가의 예술의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예술의욕Kunstwollen이라는 말 나왔다. 아까 설명한 주해 41번이다. 그러면 루벤스의 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Kunstwollen이다. 그 당시 앙리 4세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루벤스의 작품은 없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앙리 4세의 파리 입성이라고 하는 이 작품은 그 당시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천상으로부터 초월성을 '탈취해서' 그것을 제 몸에 두르고 17세기의 '예외 상태'를 절멸시키려는 군주의 의지."  천상으로부터 초월성을 탈취했다는 것은, 초월성이라는 건 신이다. 그러니까 신이 가진 초월적 능력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에로스를 찾아서》 탈취
내전에서 우세해지자 파리에 입성하기 위해 파리는 미사를 드릴 가치가 있다."(Paris vaut bien une messe)고 선언하면서 가톨릭으로 다시 개종, 도대체 몇 번이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오고 갔는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에로스를 찾아서》 탈취
지상은 살육과 그것의 산물이 시신屍身으로 황량해지고 있는데 화가는 앙리 4세를 현존하는 초월적 존재라도 되는 냥 찬양한다. 

《에로스를 찾아서》 탈취
앙리 4세가 죽은 지 20년 이후에 그려진 이 작품은 평화에 대한 루벤스의 소망을 넘치도록 반영한 탓인지 절제의 선을 넘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충실히 지켜졌던 조화와 비례를 저 멀리 팽개쳐버렸다. 세상은 여전히 신을 필요로 한다. 눈앞의 현실이 참혹할수록 신 닮은 무엇에라도 매달리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군주에 대한 흠모로 표출되었다. 앙리 4세를 지상에 내려온 신처럼 찬양하려는 화가의 예술의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천상으로부터 초월성을 '탈취해서' 그것을 제 몸에 두르고 17세기의 '예외 상태'를 절멸시키려는 군주의 의지, 이는 인간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분열을 극복해주기를 바라는, 지상의 존엄체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다. 


17세기의 예외 상태, 예외 상태Ausnahmezustand라고 하는 건 정치 철학의 용어이다. Ausnahme가 예외이고, zustand가 상태이다. 영어로 말하면 exceptional situation이다.  Ausnahmezustand는 일상적으로 정치적인 어떤 일들이 벌어져 가는데 급작스럽게 평화로운 상태가 깨져 나가고 절대적인 어떤 위력들로서,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17세기 절대왕정 시기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미술사의 용어가 아닌 정치철학의 용어지만, 이때부터는 Baroque 회화로서의 루벤스 회화를 표현한다고 하면 반드시 사용해야 되는 용어가 바로 예외 상태Ausnahmezustand라는 것이다.  Baroque 시대부터 회화는 시대와 연결되니 그 시대를 가리키는 말을 알고 있어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작품을 얘기할 때 다빈치의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를 쓸 필요가 없다. 이 작품은 구도가 어떻고 소실점이 어디에 있고 이런 얘기한다. 다빈치가 이걸 그릴 때 심정이 어땠을까, 안 궁금하다. 다빈치가 이것을 했을 때 피렌체는 어떤 상황이 있을까, 안 궁금하다.  Klassik한 작품들은 작품이 이 안에서 그친다. 그런데 Baroque 시대 이후로 나면 작품은 작품 바깥에 있는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고급스럽게 표현하면 '작품은 액자 안에 머물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루벤스 회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루벤스가 살아가던 시대, 특히 앙리 4세라는 사람의 일생을 알지 않으면 이 회화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 그림만 봐서는 설명이 안 된다. Baroque 시대 이후에 예술 작품들을 이해를 하려면 공부가 많이 필요한 것이다. 


그다음에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은 Baroque라기보다는 Rococo에 가깝다. "편안하고 느긋하게, 나면서부터 지켜온 의례를 습관처럼 수행하는 이들이 어느 편에 서야 구원을 얻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내면에 넘쳐나는 과도한 열망을 마구 표출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61페이지 맨 마지막 문장이 "예술과 시대는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있고 62페이지를 넘겨보면 "헤겔은 예술미를 역사적 맥락 속에 정위定位시키면서도"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면 이제 헤겔이 바로 역사주의적 예술미를 했다는 것이다.  

《에로스를 찾아서》 탈취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은 아름답기보다는 부담스럽다.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아닌 듯하고 천상의 여인은 더더욱 아니다. 편안하고 느긋하게, 나면서부터 지켜온 의례를 습관처럼 수행하는 이들이 어느 편에 서야 구원을 얻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내면에 넘쳐나는 과도한 열망을 마구 표출해 버리는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주관에 충실하고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격류가 되었다. 고전주의는 철저하게 물러났고, 예술과 시대는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드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미켈란젤로에 대해서 잠깐 얘기 좀 하겠다. 콰트로첸토Quattrocento에 이어지는 것이 친퀘첸토Cinquecento이다. 예술이 성취한 게 일단 3차원 공간, 체계공간Systemraum이다. 소실점이 있는 3차원 공간 속에 있는 것, 3차원 공간 안에서 있기 때문에 원근법을 사용해서 도시와 먼 곳의 시골 이런 것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그것을 거의 콰트로첸토Quattrocento의 예술적 성취를 거의 끝까지 밀고 나가서 내놓은 작품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이다. 콰트로첸토Quattrocento의 성취의 끝판왕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중심부에 있어서,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담을 그릴 때 약간 전조가 나타났다.  예전의 작품들에 비해서 인간을 좀 크게 그린 건 사실 신과 맞먹는 분위기가 약간 있다. 그 회화를 볼 때 크기도 있지만 주목해야 되는 것이, 지금 미켈란젤로가 매너리즘으로 이행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해석 해볼 때, 자세히 보면 아담은 절정기의 젊은이다. 신은 지혜롭고 자유로운 노인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아담과 신이 동일인이다. 생긴 게 똑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젊었을 때의 아담, 늙었을 때 아담, 젊었을 때의 신이 아담이고, 늙었을 때의 아담이 신이다. 아담을 그릴 때는 절정기의 젊은이를 그리고 신을 그릴 때는 지혜롭고 자유로운 노인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게 바로 그 시대의 성취인데 약간은 신성 모독이라 할 수 있다. 중세에 신을 그릴 때는 규약protocol이 있다. 하얀색은 순결을 상징하고 이런 것들, 중세의 회화들을 보면 구도도 안 맞고 다 엉망인데 색깔은 칼같이 지키는 게 있다. 규약을 어기고 그렸다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에 대한 가장 유명한 설명은 조르지오 바사리의 미술가들의 생애[《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다. 바사리는 "만능의 넋을 지닌 한 사람, 신은 그에게 진정한 생활 철학과 아름다운 시를 짓는 재능을 부여했고, 누구나 그를 인간 생활과 작품 활동은 물론 성품의 고귀함, 모든 행동에서 훌륭한 모범으로 칭송했으며, 그를 땅 위의 사람으로 알기보다는 하늘이 낸 사람으로 여겼다"라고 얘기했다. 이보다 더 나은 칭송은 있을 수 없다. 바사리의 설명을 이어받아 에른스트 곰브리치도 미켈란젤로가 최고라고 얘기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바사리의 관점에서 쓴 미술사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걸 그만 읽으라고 하는 것이다.  바사리와 곰브리치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는 무엇을 갖고 있는가. 첫째 아주 엄청난 신적인 영감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로서는 이보다 더한 게 없다. 이에 대하여 mimēsis,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을 현실화하는, 모방하는 능력, 기술적인 능력이 있다. 게다가 미켈란젤로의 신앙심이 엄청났다고 얘기한다. 약간 의심스러운데 신앙의 열정이 깨지면서 매너리즘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켈란젤로가 왜 매너리즘으로 갔는가이다. 이느 시대와의 연결을 생각해야 한다. 미켈란젤로와 동시대 사람이 3명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비치, 마르틴 루터 그리고 사보나놀라가이다. 그 당시 유럽은 내전의 시대였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 독립 전쟁이 1500년대, 잉글랜드 내전이 1600년대였다. 그래서 매너리즘으로의 이행을 설명할 때. 그의 후기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그림은 제대로 못 그린 게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놓아두었다 라고 말하게 된다. 여기서 큰 영향을 미친 루터라, 사보나놀라처럼 미켈란젤로가 과연 가톨릭 교회에 의한 세계의 구원을 믿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많다고 얘기할 수 있다.  

Quattrocento에서 뚜렷하게 알 수 있는데, 미켈란젤로가 매너리즘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면, 매너리즘은 한마디로 gloomy tragic atmosphere라고 할 수 있다. 음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라는 말이다. 시대적인 '상황'이라 하면 구체적인 이벤트들이 있는 것인데, '분위기'는 '분위기가 쎄하네'라는 할 때 그 의미이다. 분위기와 상황이라는 말을 구별해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여기서 불확실함을 분명하게 알았을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불안Angst으로 가면서 그 불안을 응축시켜서 피에타를 만들어냈다. 어떤 비평가들은 아주 사려 깊게 그 상태로 남겨두었다 라고 표현을 하기도 한다. Klassik을 하던 사람이 그렇게 남겨둔 것이 믿어지지 않는데, 일부러 사려 깊게deliberately 남겨뒀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미켈란젤로가 가지고 있는 mimēsis의 탁월함이다. 일부러 엉망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게 더 어렵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great한 것이다. great하다는 건 한 사람이 전혀 다른 완전히 모순되는 두 가지를 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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