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9-1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을 듣고 정리한다. 2023.09.06~2023.11.15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 진행되는 강의이다.

 

2023.11.08 🎤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9-1

커리큘럼

09.06 예술의 목적과 예술론의 학적 위치
09.13 플라톤의 미학
09.20 예술론의 전범으로서의 《향연》
10.04 mimēsis
10.11 신플라톤주의와 고전주의 예술론
10.18 maniera grande, cicerone
10.25 Baroque, Rococo
11.01 헤겔과 역사적 예술론
11.08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1):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조르조 바사리
11.15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2): 에르빈 파노프스키, 막스 드보르작

 

교재

강유원(지음), 《에로스를 찾아서 -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

강의자료: https://www.buymeacoffee.com/booklistalk/yekiliyo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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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강.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1):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조르조 바사리

일시: 2023. 11. 08.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345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을 이야기하는데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와 조르조 바사리를 하고, 그 다음에 에르빈 파노프스키, 막스 드보르작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잘 안 맞는 얘기일 수도 있고, 미술사의 주요한 흐름이 아닐 수도 있다. 지난 번에 바로크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하인리히 뵐플린과 알로이스 리글에 대해서 얘기를 잠깐 했다. 사실 뵐플린이라든가 리글이라든가 이런 사람은 지나치게 현학적인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는 미술사를 다루는 아주 전문적인 경우가 아니면 얘기하지 않고, 이번에 4명의 미술사 학자를 선별해서 말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학문적인 맥락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사람들이라서 그렇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1818년에 태어나서 1897년에 죽었고, 조르조 바사리는 1511년에서 1574년이다. 연대기적으로 보면 바사리가 먼저 태어난 사람이니까 바사리부터 다뤄야 될 것 같지만 부르크하르트부터 얘기하는데, 이는 부르크하르트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탈리아 르네상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어서 그렇다. 이 둘은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는 것을 에 관련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하는 개념 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한 연구를 창시한 사람이 부르크하르트인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부르크하르트는 예술사와 미술사에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하는 시대는 아무런 규정이 없던 시기이다. 그냥 Quattrocento라고 부르던 시대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강의한 것처럼 사실 지금은 부르크하르트가 가 규정했던 르네상스라는 개념이 그 시대를 규정하고 설명하는 데 합당치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고 적용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지금은 르네상스라는 말을 쓰지 않고 Quattrocento라는 말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는 르네상스라는 말이 Quattrocento이탈리아를 가리키는 데 쓰기보다는 이미 일반 명사가 되어버렸다. 간단히 말해서 고유명사로서의 르네상스는 이제 무의미한 언명이다. 부르크하르트가 말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미술과 예술에 관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을 이해하려면 바사리의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 바사리의 《이탈리아 미술가 평전》을 읽어보면 바사리가 이미 '재생'rinascita이라는 말을 썼고 회화, 조각, 건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그 당시에 통용되던 기법과 이상적인 것에 대해서 이미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은 바사리 책을 읽으면 된다. 바사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네들이 하던 것을 보고 써놓았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고 하는 부르크하르트의 개념은 문화사의 방법적인 모델로서 개발된 개념이다. 문화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살펴보겠다. 역사의 세부적인 영역에 대해서 보자면, 역사가 있으면 세계사가 있고, 각 국가의 역사가 있고, 그것은 지역이나 범위에 따라서 다른데, 가령 중세의 역사, 근대의 역사, 고대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문화사는 분야별로 다루는 것인데, 분야별로는 정치사 또는 사회사, 경제사, 문화사 또는 철학사 이런 것들이 있다. 특별히 사회나 문화의 변천 과정을 다루는 것에 대해 사회사라고 하기도 하고 문화사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정치와 경제, 사회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실체가 있어 데이터가 있다. 그런데 가치라는 건, 문화라고 하는 건 바로 무형의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치는 반드시 위계질서가 있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사실 그 당시에 정치적인 것도 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고 경제적인 것도 영향을 미칠 수가 있고 사회적인 어떤 분위기도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즉 최종적인 성과물로서 나타나는 어떤 비가시적인 것을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숫자로 측정할 수가 없는 것이고 계량화될 수 없는 것이다.   

부르크하르트는 사실 문화사의 창시자라고도 알려져 있다. 문화사를 창시하려면 문화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문화사 방법론이 있어야 한다.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고 하는 책은 문화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그렇게 궁리한 방법론을 이탈리아 Quattrocento 시기에 적용해서 연구한 성과물로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이탈리아 Quattrocento 시기의 예술만을 대상으로 해서 한 책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회화, 건축, 조각 이런 것들은 문화의 일부분으로 예술의 한 특정한 부분일 수는 있어도 문화 전체는 아니다. 미술사의 영역에서 다뤄지기보다는 문화사의 영역에서 다뤄지는 것이고, 문화사라고 하는 것은 결국 정치, 경제, 사회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문화사가 미술사, 조각사, 건축사, 예술사보다는 범위가 넓다. 공부를 할 때 거기까지는 가야 된다. 독서 모임을 하면 미술사들을 많이 하는데, 저는 미술사를 그렇게 권하지 않는다. 차라리 문화사를 하는 것이 좋다.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와 부르크하르트의 직접적안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 같은 책을 권한다. 

예술의 역사, 미술의 역사, 조각의 역사, 건축의 역사는 사실 장비의 역사이다. 미술사만 봐서는, 미술사 그림을 보면서 그림을 식별하는 안목만 길러가지고는 그 분야에 대해서 알 수는 없다. 사실은 그림을 보고 이해한다고 하는 건 그 그림을 만들어낸 장비와 그 시대의 기술 수준까지도 알아야 되는데 미술사만 가지고 공부가 안 된다. 그래서 문화사를 공부해야 된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문화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게 필요하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하면 바사리를 읽는 게 낫다. 그러면 이제 문화사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강의 자료에서 보면 Quattrocento에서 Cinquecento까지의 문화의 총체적 산물로서 제시했다고 했고 특히 조심해야 되는 게 그다음 문장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하는 시기는 "중세와 단절된 근대의 기원이라기보다는 중세와의 연속에 있으면서도 근대의 기원을 이루는 계기적 기원"이다. 계기적繼機的 기원이라고 하는 말이 중요하다. successive는 '연달아 이어지는'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계기적이라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연속적인이라고 하면 안되고, 계기적이라고 해야 한다.  연속적인이라는 말은 중간에 이음매가 없이 쭉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 강의실 바닥은 연속적이다. 우리의 인생은 연속적이지 않다. 대나무는 쭉 하나의 나무로 되어있다. 그런데 중간이 매끄럽게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중간에 매듭이 하나씩 있다. 그게 한 번 맺고 가는 것이다.  완전히 단절이 아니라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이 대나무는 몇 개의 마디를 갖고 있구나 '라고 말할 때 그 매듭에 해당하는 것을 계기라고 한다. 중요한 터닝 포인트인데 끊어지는 건은 아닌 것, 그래서 그 계기를 모멘트라고 한다. 중세와의 연속에 있으면서도 근대의 기원을 이루는 계기적 기원이라는고 했는데 이때 계기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연속되어 있는데 계기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4세기에서 16세기를 거치면서 중세의 특정한 사태들이 마무리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는 아닌데 어쨌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근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니까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는 중세적인 면모도 있고, 중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면모도 있는 일종의 혼재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계기적 기원이라고 할 때, 계기적 시대의 특징은 모순적인 것의 공존이라고 하는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어떤 것이 주류가 되어 있는 시기에는 이것이 일색으로 있다. 그러니까 이질적인 것이 섞여 있지 않다.  그런데 계기적인 시기에는, 지금 14세기에서 16세기에는, 서양 중세적인 것도 있고 동시에 아직 이것이 근대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근대적인 건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근대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시인인 페트라르카가 있다. 우리가 이탈리아 체라고 부르는 것은 페트라르카의 필기체를 보고 만든 것이다. 자기 글씨체가 그냥 글씨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페트라르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의 시인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계기적 기원으로서의 르네상스 시대, 근대의 계기적 기원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굉장히 근대적인 생각, 서양 중세와는 거리가 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 같지만 이 사람은 굉장히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굉장히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하는 건 중세적인 것이 있는 것이다. 페트라르카는 틈만 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었다고 한다. 네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미켈란젤로도 엄청나게 독실한 신자이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피에타를 조각을 한 것이다. 신앙이 무디어져서가 아니라 그렇게 봐야 된다는 말이다. 이 시기에는 미켈란젤로가 전성기를 이루는 시기이기이고, 사실 굉장히 중세적인 믿음이 이 시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작품을 만드는 기법은 근대적인데 정신은 중세적이다. 그러니까 이게 모순적인 것의 공존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것들을 다 계기적 기원이라는 말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뭔가 계기적이다고 하면 투명한 연속성이 아니라 불투명하고 울퉁불퉁하고 얼핏 보기에는 끊어져 있는 것 같은데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런 것들을 갖다가 계기적이다 라고 말한다. 이게 바로 이제 이 시기의 특징이다. 부르크하르트는 14세기에서 16세기의 문화를 중세와의 연속에 있으면서도 근대의 기원을 이루는 계기적 기원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면 문화사의 본질적인 탐구 대상은 거대한 정신적 연속체, 부르크하르트가 탐구하고자 했던 것을 가장 잘 집약하고 있는 말이 바로 이 거대한 정신적 연속체이다. 문화는 특정 인간 집단의 위력을 발휘하는 거대한 정신적 실체이면서 선행하는 시대의 정신적 실체와 연관성에서 특정 시대에 규정적으로 나타나는 연속체이다. 거대한 정신적 연속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보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국가가 있고 종교가 있고 문화 이런 것들이 있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 안에는 정치적인 것들도 있고, 사회적인 것도 있고, 기술적인 것도 있다. 이 여러 가지 것을 부르크하르트는 역동적 힘들Potenzen이라고 말한다. 그런 힘들이 특정한 시대에는 다양한 상황과 사건들로서 구성이 된다. 특정한 시대 속에서 국가와 종교와 문화와 같은 역동적인 힘들이 구성이 되고, 그렇게 구성된 것들이 그 시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적인 모습을 보인다 라고 할 때 그것을 넓은 의미의 문화라고 한다. 여기서 부르크하르트는 문화사를 연구했다고 했는데, 문화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의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사회적인 것 또는 오늘날에는 기술적인 것도 되게 중요하다. 사실 스마트폰이라고 하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굉장히 강력한 역동적인 힘이다. 이건 기술이다. 스마트폰에 의해서 우리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는 게 다 문화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문화를 바로 정신적 연속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르크하르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읽으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서 공부하는 건 바보이다. 문화적인 것을 탐구할 때 어떤 요소들이 문화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데 개입되는 가를 연구한다는 말이다. 

부르크하르트가 살고 있던 시대는 1818년에서 1897년이다. 부르크하르트와 동갑인 사람이 칼 마르크스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가 쓰여진 게 1860년이다. 이때 유럽이라고 하는 곳은 굉장히 격동의 시대였다. 부르크하르트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세계는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이 나타났을까. 간단히 말하면 부르크하르트는 고전적인 사람이다.  그러니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태들을 자기가 이해할 수가 없는 게 너무 많다. 이 사람이 생각하기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도대체 어디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을까, 그 기원을 따져 묻기 시작하니까 14세기에서 16세기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더라 라는 말이다. 부르크하르트는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이렇게 돌아가는데, 도대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를 따져 물으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를 연구한 것이다.  그래서 그 시기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고 말한 것이다. 이 책을 보면 미술사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목차를 보면 제1부 인공물로서의 국가, 제2부 개인의 발전, 제3부 고대의 부활, 제4부 세계와 인간의 발견, 제5부 사교와 축제, 제6부 윤리와 종교이다. 그러니까 부활에 해당하는 것은 제3부뿐이다. 여기서 예술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사실 거의 없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정치적인, 경제적인, 사회적인 또는 기술적인 이런 것들을 연구해서 그것이 응집된 하나의 정신적인 경향성, 사람들을 강하게 규율하는 정신적인 경향성을 밝히려는 그런 역사적 연구를 문화사라고 한다. 문화사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으로 관심을 갖고 계속 연구를 해볼 만한 그런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