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10-1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5
- 2023. 11. 17.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을 듣고 정리한다. 2023.09.06~2023.11.15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에서 진행되는 강의이다.
2023.11.15 🎤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10-1
커리큘럼
09.06 예술의 목적과 예술론의 학적 위치
09.13 플라톤의 미학
09.20 예술론의 전범으로서의 《향연》
10.04 mimēsis
10.11 신플라톤주의와 고전주의 예술론
10.18 maniera grande, cicerone
10.25 Baroque, Rococo
11.01 헤겔과 역사적 예술론
11.08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1):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조르조 바사리
11.15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2): 에르빈 파노프스키, 막스 드보르작
교재
강유원(지음), 《에로스를 찾아서 -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
강의자료: https://www.buymeacoffee.com/booklistalk/sazuwoyewo
제10강.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2): 에르빈 파노프스키, 막스 드보르작
일시: 2023. 11. 15.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345
빈(Wien) 대학의 미술사학과라고 있는데, 미술사학과의 교수가 뵐플린과 알로이스 리글 그다음에 알로이스 리글의 후임 교수가 막스 드보르작이다. 드보르작은 생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와 같은 책을 쓰거나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았고 더군다나 드보르작의 책 《Kunstgeschichte als Geistesgeschichte》은 드보르작 생전에 쓴 책이 아니다. 강의 자료를 보면 드보르작 사후 출간된 책(1979) 편집자 Felix Horb가 붙인 표제인데, 편집자가 1924년에 드보르작의 논문들을 묶어서 책으로 편집하면서 낸 것이다. 막스 드보르작은 지난번에 얘기했던 해겔의 역사적 예술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를 할 수 있다. 제가 해겔 철학 전공자로서 해겔의 역사적 예술론을 설명하면서 막스 드보르작까지는 얘기를 해줘야 한다라는 생각에 공부를 하다가 이 책을 구했다. 희귀본 장서에 해당하는 것이고, 독일 인쇄술이 가지고 있는 아주 특징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책은 접으면 쪼개지는데, 절대로 쪼개지지 않는다.
첫 시간에 나눠준 강의 자료에서 나중에 설명한다고 해놓은 부분이 에르빈 파노프스키인데 강의 자료를 보자. "인공물이 가진 의미들(파노프스키 참조)" 부분을 설명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 부분을 설명을 하려고 한다. 우선 《에로스를 찾아서》의 141페이지 잠깐 펴보자. "헤겔에 그 단초가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카시러의 '상징 형식'(Symbolische Formen)의 철학과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의 예술론에서 전개된다." 드보르작은 에른스트 카시러의 《상징 형식의 철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예술론이 전개되었다. 카시러의 얘기를 하려면 사실 각론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한두 번 강의로는 안된다. 그 얘기를 하기에는 여러분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자면 기초가 없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카시르의 《상징형식의 철학》이라고 하는 건 조금 복잡하니까, 그것의 아이디어를 얻기는 했는데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예술론을 이해하는 데 그것을 꼭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43
이러한 파악 방식은 헤겔에 그 단초가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카시러의 '상징 형식'(Symbolische Formen)의 철학과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의 예술론에서 전개된다. 헤겔을 포함하여 카시러와 파노프스키의 예술이론은 예술작품을 객체화된 정신으로 파악함으로써, 역사와 사회학으로 환원되지 않고 철학적 절대적 신비적 개념으로 지양되지 않는 중간적 매개로서의 예술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헤겔을 포함하여 카시러와 파노프스키의 예술이론은 예술작품을 객체화된 정신으로 파악함으로써", 일단 "예술작품을 객체화된 정신으로 파악"한다라고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 파노프스키에서 지금 읽는 부분이 이해가 되어야 막스 드보르작 얘기도 이해가 되고, 드보르작이 알로이스 리글이라든가 또는 뵐플린라든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그다음에 현대에 있어서 예술 작품의 의미 이런 것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객체화된 정신으로 파악한다"라고 하는 것은 예술작품이 하나 있을 때 그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의 창작자로부터 독립되어서 그것 자체로 하나의 물성을 가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그 창작자의 정신과는 무관한 물건으로 있는 건 아니다 라는 말이다. 골치 아픈 얘기인데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 그 자식이 나의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지만 내 자식이긴 하지만 그의 정신은 나와 무관하게 있는 존재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두 개가 정반대되는 입장이라면 중간 입장은 이 아이는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까 부모의 유전자가 객관적인 하나의 인간으로서 성립된 경우들, 그런 것들을 우리가 객체화되었다 라고 말한다. 객체화라는 게 꼭 물건화되었다 라는 뜻은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 보인다는 말이다.
지난 번에 이 강의를 팟캐스트 통해서 듣기로만 하는 것과 여기에 와서 현장에서 듣는 것은 어떤 들려오는 정도가 다르다고 얘기했었다. 음성이라고 하는 것은 무형의 것이기 때문이다. 소리로만 듣는 것, 그러니까 음악이 가장 추상적인 예술 장르이다. 현장에서 강의가 진행이 되고 있고, 저라고 하는 사람에 의해서 그 목소리가 어떤 객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들린다. 객체가 눈앞에 보이니까 그렇다. 이런 경우에는 제 정신 속에 있는 어떤 그런 지식들이 저라는 사람의 육체적인corpus 입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러면 지금 제가 말하는 것들이 사실은 정신이 객체화되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다. 객체화라는 말은 유형의 어떤 것으로 변화되었다 라고 이해하기 쉽다.
객체화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을 하나의 기호sign로서 해석을 해 나가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미라고 하는 것은 정신이 부여하는 것이니까 객체화된 정신이라고 말할 때 그 포인트는 어떤 객체냐가 아니라 어떤 정신이냐에 있다. 이것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오늘 받은 강의 자료에서 보면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로 되어있다. 일단 정신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했다 라고 말을 하면 그 사람들은 다 기본적으로 그 바닥에 해겔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각각의 개인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인들이 공유하는 것이고,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라고 하면 시대 정신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특정한 집단이 그걸 가지고 있다 라고 하면 집단 정신이라고 하고, 그러면 그것은 각각의 개인에게만 귀속되는 게 아니라 그 집단 정신이 무엇으론가 구현이 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나치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는 사실 나치의 고유한 상징이 아니다. 룬 문자라는 유럽에서 아주 오래된 옛 문자에서 신비한 주문을 외울 때 사용하는 그런 문자였다. 그걸 가져다 쓴다. 나치가 그걸 가져다 씀으로써 마치 얘네들이 아주 뭔가 규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함을 가장하면서도 굉장히 상스럽고, 그다음에 피와 대지, 어머니 이런 걸 강조하는 거 있는데, 그런 것들이 막 엉켜 있는 그 미묘한 살육의 정신이 그 물건에 딱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것들을 우리는 나치의 정신이 객체화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그것의 객체화된 정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식별해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냥 십자가를 꺾어놨네만 되어버린다. 그러면 여기에서 지적 하층민과 지적 상류층이 갈리는 것이다.
객체화된 정신으로 파악한다 라고 하면 그것은 우리가 관련된 정보들을 다 끌어 모아서 해석을 해 들어가면 알아낼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다음 문장을 보면 "역사와 사회학으로 환원되지 않고", 역사와 사회학으로 환원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들을 싹 끌어 모아서 성립된 것이긴 한데 그 이상의 것이고, 그다음에 사회적인 요소를 싹 끌어 모아서 성립된 것이긴 한데 그 이상의 플러스 알파가 있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식은 내 것이다 라고 말하는 부모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은 나에게서 기원하니까 내 것 아닌가. 그런데 자식은 나에게서 기원하지만 성장의 과정에서 플러스 알파가 덧붙여져서 그 아이의 고유함이 생긴다. 그러니까 그런 경우에는 자식은 부모로 환원되지 않고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적 절대적 신비적 개념으로 지양되지 않는 중간적 매개로서의 예술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석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것을 중간적 매개로서의 예술이라고 한 것이다. 중간적 매개라고 하는 것은 역사와 사회학, 철학적 절대적 신비적 영역 이런 것들에 다 관여하면서도, 그런 영역으로부터 뭔가를 끄집어내다가 객체화된 물체를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에게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예술작품을 보면서 예술작품이 표상하고 알려주고자 하는, 예술작품을 통해서 그 너머를 보려고 하는 것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은 중간적 매개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유기체로서의 존재를 유지한다는 게 너무 괴롭다. 그러니까 저 너머에 있는 삶을 생각해 보면 그 중간에서 예술작품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로 보내주는 것이다. 그것을 삶을 잠시 잊게 해준다. 그것을 지금 여기에 중간적 매개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것이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겠다.
"파노프스키는 자신의 예술학을 전개하는 근본 개념으로 카시르의 상징형식 개념을 수용하거니와, 그의 저작 《상징 형식으로서의 원근법》"이 있고, "파노프스키는 상징 형식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공물(Kunstwerk)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물음을 제기한다." 인공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것인데 이 인공물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객체화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인공물은 다 의미가 있다. 자연물에는 의미가 없다. 자연이 아름답다고 해달라고 했는가. 그렇지 않다. 자연물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연미라고 하는 건 사실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43
파노프스키는 자신의 예술학을 전개하는 근본 개념으로 카시르의 상징형식 개념을 수용하거니와, 그의 저작 《상징 형식으로서의 원근법》은 이것의 명료한 증거이다.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43
파노프스키는 상징 형식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공물(Kunstwerk)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물음을 제기한다.
첫 번째 시간에 나눠준 강의 자료를 한번 보자. 인공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러면 먼저 우리가 이해하기 접근하기 쉬운 영역부터 한번 생각해 보자. 세상의 모든 인공물은 실용품과 예술품로 이렇게 둘로 나뉜다. 실용품이 되었건 예술품이 되었건 그런 물건에는 만든 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다. 아무 의도 없이 만든 건 없다. 그러니까 실용물과 예술물의 공통점은 의도에 있다는 것이다. 가령 마르셀 뒤샹의 '샘', 변기를 올려놓은 것이 있다. 우리가 그것을 '변기네'라고 얘기하면 실용물로 보는 것이다. 뒤샹이 그것을 설치를 했을 때는 내가 이 인공물을 가져다 놨는데 이것을 예술품으로 이해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술품으로 이해를 해준 것이다. 만약에 '난 변기에 불과해'라고 생각하면 그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모나리자 그림을 보고 모나리자를 그렸을 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 모나리자를 예술품으로 이해해 달라고 요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럴 경우에는 거기다가 이 그림이 실물하고 똑같이 생겼네 아니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의미한 것이다. 색채의 구성이 어떠한가 그다음에 작품의 구도는 어떠한가, 이 특정한 부분을 이렇게 칠한 것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것을 따져서 물어야 되는 것이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것을 실용품으로 보느냐 예술품으로 보느냐의 차이가 있는데 감상자가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아니 이게 왜 예술품이야 변기잖아'라고 해버리면 그때는 단순한 대상이 된다. 뒤샹이 그 작품에 자기의 정신을 객체화시켰다. 정신이 있는데 정신을 어떤 특정한 물체 안에다가 집어넣었다. 정신을 이입Einfühlung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물건이 말하자면 예술작품이다. 정신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니까 의도intentio라고 해보겠다.
의도가 있는데 이 의도를 물체 안에다 집어넣는 것을 코드화encoding한다고 얘기한다. Werk는 코드화된 대상encoded object이다. 이 코드화된 대상을 보고 우리의 정신이 작동을 해서 물체를 통해서 여기까지 가야 된다. 이 과정이 decoding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고 하는 것은 decoding을 하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들은 제 강의를 여러 차례 들었다. 제가 강의를 하면서 특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코드들이 있다. 제 강의의 흡수력과 또는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서 그런 것을 많이 궁리한다. 그러면 그런 것들을 고려해서 강의를 하면 여러분들은 특별히decoding을 해서 본래의 내용을 흡수를 해 간다. 그런데 예술 작품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톡 던져져 있다. 우리 앞에 현전한다. 우리 앞에 코드화된 대상이 내 앞에 현전한다. 현전하는 코드화된 대상이라고 하는 게 예술 작품이다. 그런데 이것을 decoding을 하지 못해서 '변기가 왜 여기 와 있어'라고 말해버리면 이것은 decoding이 안된 것이다. decoding을 하는 것이 말하자면 감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decoding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오브젝트에 본래 집어넣었던 의도가 decoding이 되는 수가 있고, 안 되는 수가 있다. Kunstwerk는 decoding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 단어가 인공물로 이해될 수도 있고 예술 작품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다음에 감상자가 미적으로 경험하겠다 라고 하는 것은 미적 의도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품으로서의 Kunstwerk가 성립하는데 중요한 건은 그 정신을 파악하는 것이다. 창작자 한 개인의 정신만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어떤 시대 정신을 파악한다고 하면, 예술작품은 다 그 시대의 시대 정신을 드러내 보이는 물건들이다. 그것들을 쭉 연결하면 정신사가 되고, 시대 정신의 역사가 된다. 그러면 예술 작품을 쭉 나열했을 때 시대 정신의 역사를 쭉 알 수 있다. 그러면 정신사로서의 예술사가 된다. 그것이 막스 드보르작의 의도이다.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인공물의 세 가지 의미를 보겠다. 첫 번째 현상 의미Phänomensinn이다. 현상 의미라고 하는 건 말 그대로 표면에 드러난 의미이다. 일단 현상 의미를 보면 사실 의미와 표현 의미로 나누는데, 이것은 형태로서 사물을 식별하고 의미를 담은 형태 이런 걸 말하는데, 현상 의미는 어느 경우에 쓰냐하면 특정 시대에 특정 사물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분석하는 영역이 있다. 그게 바로 양식사의 영역이다. 양식사라고 하는 건 미술사에서 중요하다. 그다음에 규약 의미가 있는데, 규약 의미를 따져 묻는 것을 예술학이라고 한다. 규약 의미는 도상학 분석을 한다. 이것은 픽토그램 같은 약속이다. 그 약속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객체화된 물건이나 아이콘 이런 걸 통해서 규약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빨간 불이면 멈추고 파란 불이면 간다. 이런 건 일상생활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규약들에 속한다. 그런 규약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 이쯤 오면 문화적 맥락에서 규약으로 연결된다. 문화적 맥락이 굉장히 중요하다. 문화라고 하는 말은 굉장히 범위가 넓어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는데, 문화라고 하는 것은 다르게 보면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특정한 집단의 하위 문화, 저급이라는 뜻이 아니라 서브컬처라고 부르는, 그 문화 영역이 굉장히 많이 발달해 있어서 그 집단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규약들을 다른 집단의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술학의 영역에 들어왔을 때 문화적 맥락에서 규약을 decoding을 해야만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고, 이 이미지를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마음속에 어쨌든 심상이 생겨나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심상이 형성되고 그다음에 그 심상을 규약에 따라서 묶어내면 그게 알레고리이다. 알레고리는 말하자면 은유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맥락 따지지 말고 은유라고 번역하면 가장 안전하다. 이게 반드시 예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어떤 집단, 서브 컬처라고 하는 것에도 모두 해당한다. 철학과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전공 영역이 다르면 서로 대화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자체가 달라지니까 그런 경우에는 통약가능성이라고 하는 것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통약가능성이라는 것이 규약이다. 규약이 서로 통할 가능성이 아주 없어져버린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맥락에 따라서 어떤 알레고리들이 달리 해석되기 시작한다. 이게 비슷해야 대화가 된다. 적어도 서로 커뮤니케이션에서 확정할 수 있다.
그다음에 나와 있는 본질 의미이다. 본질 의미는 도상 해석학에서 획득하는 것인데, 예술작품의 근저에 놓인 원리에 대한 종합적 직관을 통해서 파악한다 라고 되어있고, 보편적 정신사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사실 철학자들이 규정해 주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술학이다 라고 하는 것은 두 번째 것인 규약 의미이다. 본질 의미라고 하는 것은 사실 예술철학이 관여하는 영역인데 그 본질 의미는 사실은 알 수가 없다. 그냥 어떤 철학 학파에 속하는 사람들끼리만 서로 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예술철학의 영역인 것이고, 일반적으로 예술학의 영역에서는 규약 의미까지, 규약 의미는 그나마 객관적으로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본질 의미는 보편적 정신사회의 영역인데 그 보편적 정신사라고 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철학적으로 규명하기 어렵다.
오늘 나눠준 강의 자료를 보자. "예술은 형식적인 과제와 문제의 해결과 전개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를 지배하는 이념의 표현이며, 그것의 역사는 종교, 철학, 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편적 정신사의 한 부분이다." 보편적 정신사의 독일어가 allgemeinen Geistesgeschichte이다. 그러니까 막스 드보르작이라는 사람이 바로 본질 의미라고 하는 것을 탐구하는 것이 예술철학에서 중요하다 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예술철학에 관한 한 헤겔리안의 바탕 위에 서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적으로 미술사를 하는 사람들은 다루지 않고, 예술철학의 영역에서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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