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10-2

 

2023.11.15 🎤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10-2

커리큘럼

09.06 예술의 목적과 예술론의 학적 위치
09.13 플라톤의 미학
09.20 예술론의 전범으로서의 《향연》
10.04 mimēsis
10.11 신플라톤주의와 고전주의 예술론
10.18 maniera grande, cicerone
10.25 Baroque, Rococo
11.01 헤겔과 역사적 예술론
11.08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1):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조르조 바사리
11.15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2): 에르빈 파노프스키, 막스 드보르작

 

교재

강유원(지음), 《에로스를 찾아서 -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

강의자료: https://www.buymeacoffee.com/booklistalk/sazuwoyewo


제10강.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2): 에르빈 파노프스키, 막스 드보르작

일시: 2023. 11. 15.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345

 

 

막스 드보르작을 보자.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에서 마지막에 지금 에르빈 파노프스키와 막스 드보르작이 있는데 막스 드보르작이 선행하는 사람이다. 파노프스키보다도 연대가 빠르다. 이 사람은 빈 대학의 교수였고 알로이스 리글의 후임으로 교수를 하던 사람이다. 지난번에도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와 조르조 바사리를 얘기했다. 그런 것처럼 파노프스키을 먼저 얘기하고 드보르작을 얘기했는데, 파노프스키는 드보르작보다는 범위가 넓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미술사의 계보가 아주 분명한 사람이니까 먼저 얘기를 했다. 그리고 파노프스키는 오늘날 거의 있지 않는 그런 사람이긴 하다. 그래도 꼭 알아둬야 되는 사람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교양으로서의 미술사를 할 때 파노프스키라든가 또는 드보르작이라든가 이런 사람들 얘기는 거의 안 한다. 바사리도 얘기를 잘 안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미술사는 크게 나눠보면, 지금 여기에 나온 것처럼 "양식사로서의 미술사(Kunstgeschichte als Stilgeschichte)"가 있다. 이것은 형식적인 것만 따져 묻는다. 어떤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표현 양식만을 따져보고 그것의 의미를 규정해 보는 것이 양식사로서의 미술사이다. 파노프스키라든가 드보르작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정신사라고 하는 것은 그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양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철학적인 부분이어서 이건 미술사라기보다는 철학이다 라고 보는 사람들 많이 있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예술]사(Kunstgeschichte als Geistesgeschichte)은 막스 드보르작이 생전에 쓴 책은 아니고 사후에 출간된 책이다. 편집자 Felix Horb가 붙인 표제인데 논문 몇 개를 묶어서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원래 서구 미술의 전개에 관한 연구(Studien zur abendländischen Kunstentwicklung)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예술의 고찰에 관하여 라고 하는 막스 드보르작의 논문을 읽다 보니 이런 문장이 있었고, 그 문장을 보니까 이것이 막스 드보르작의 미술사를 잘 표현한 문장이구나 해서 그것을 제목으로 삼았다. 

."예술은 형식적인 과제와 문제의 해결과 전개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Die Kunst besteht nicht nur in der Lösung und Entwicklung formaler Aufgaben und Probleme)."  형식적인 과제와 문제의 해결은 양식을 잘 그려내는 것, 가령 비례를 잘 이용해서 원근법을 잘 이용해서 그림을 잘 그려내는 것이 예술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데서만 예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를 지배하는 이념의 표현이며, 그것의 역사는 종교, 철학, 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편적 정신사의 한 부분이다."  막스 드보르작이 말하는 이 문장은 예술 작품을 볼 때 얼마나 정교하게 잘 표현했느냐 또는 얼마나 형식적으로 완결성을 갖추고 있느냐 이것도 중요하지만 예술작품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정신의 지배적인 이념을 표현했느냐 이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시대'라고 하는 말은 없지만 '인류를 지배하는 이념'이라 하면 모든 역사를 다 통틀어서 그 인류를 지배하는, 지배한다는 게 좌지우지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을 사로잡는 그런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인류가 사로잡힌 그 이념이 있고, 이 앞에다가 특정 시대의 인간 집단을 지배하는 이념이 있다. 그러면 특정 시대의 인간 집단을 지배하는 이념은 시대 정신Zeitgeist이다. 특정 시대에 특정 인간 집단을 지배하는 이념들을 가져다가 싹 모으면 모든 시대의 인류를 지배하는 이념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보편적 정신, 일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의 용어로 말하면 절대적 정신 또는 세계 정신이고 시대 정신이다.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인류를 지배하는 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 시대의 인간 집단을 지배하는 이념들의 총합이다. 총합인데 단순히 산술적 총합이 아니라 유기적 전체이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의 21세기를 지배하는 정신은 아파트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시대정신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것이 인류를 지배하는 이념이라고 한다면 인류가 너무 비참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식 상류층으로서의 어떤 지적인 정신을 갖는 것이 21세기 한반도를 지배하는 이념이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그때는 시대정신들끼리 투쟁을 벌이는 정신의 투쟁이 벌어진다. 이게 바로 정신사적 투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특정한 시대에 인간 집단을 지배하는 이념은, 또는 정신적인 이념이라고 말해도 좋고 심성 구조라고 말해도 좋은데, 막스 드보르작이나 도이치 철학에서는 이념이라고 말하는 멘탈리티이다. 이 멘탈리티가 물욕이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구가 항상 투쟁을 하는 것이다.  

막스 드보르작은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 정신을 탐구하는 것인데, 그 보편적 정신을 탐구하는 학문 영역이 종교, 철학, 시 이 세 개의 영역에서 표출되어 나온다고 말한다. 시를 포함한 예술, 종교, 철학 이 세 가지가 헤겔에서는 절대적 정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원래 빈 대학 미술사학과에는 뵐플린과 리글이 대를 이어서 교수를 하면서 양식사로서의 미술사가 집중적인 연구 주제였다. 양식사라는 것은 형식적인 과제와 문제의 해결에서만 예술이 성립한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리글은 뵐플린의 제자인데, 그것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해서 예술의욕Kunstwollen이라고 하는, 알리글의 이 개념은 양식사에 딱 들어맞는 개념은 아니다. 양식과 그것의 전개를 결정하는 것이 예술의욕이라고 말을 해버리면 온전히 형식적인 것만이 아니다. 예술의욕은 그 정신에 있는 것이니 그렇다. 그래서 뵐플린의 양식사로서의 미술사의 정신을 승계하면서도 리글은 그 양식을 결정하는 것이 예술 의욕이라고 말함으로써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를 가는 길을 열었다 라고 얘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 말하면 돌아가신 선생님께 굉장히 누가 되는 얘기지만 예를 들어 말해보면 제 선생님은 철학이라고 하는 학문은 형이상학이 전부다 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공부를 할 때 어떤 전공 영역 철학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항상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바탕에다 깔아야 된다 라는 게 선생님의 생각이셨다. 가령 제가 영국의 홉스의 정치철학을 전공해서 석사 논문을 썼는데, 정치철학의 영역인데도 홉스 정치철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연구해서 석사 논문을 썼다. 박사 논문을 쓸 때도 헤겔의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해서 정치철학을 연구했다. 전공은 정치철학인 것 같은데 항상 바탕에다가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깔아야 된다 라는 게 선생님 말씀이다. 그러니까 나의 전공이 형이상학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저는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깔고 정치철학을 연구하면서도 항상 사회과학의 영역들을 덧붙여서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하되 정치철학의 영역을 넓히려고 노력을 한다. 사회지리학이라든가 또는 예술학이라든가 문화사라든가 이런 것들을 공부해서 형이상학이 적용되는 범위를 넓히려고 한다. 그러면 선생님은 좀 언짢아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형이상학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고 늘 변명을 한다.  

뵐플린은 양식사를 바탕으로 하는데, 리글도 양식사를 연구하지만 그 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Kunstwollen이라고 말함으로써 뵐플린의 태도를 확장시켰다. 알로이스 리글의 예술 의욕은 창작자 한 개인의 예술 의혹이다 라고 했던 반면에, 드보르작은 예술의욕이 개인을 넘어선 정신으로 전개된다고 했는데, 정신Geist이라고 하는 말은 한 개인의 정신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보다는 항상 집단 정신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게 바로 보편적 정신사라고 하는 것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구별되는 3명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뵐플린, 리글, 드보르작에 대해서 쫙 연결고리를 보면서도 구별되는 것을 이해를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그것이 종교, 철학, 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편적 정신사의 한 부분이다. 이런 것들 드보로작이 얘기했는데 사실 이것은 해겔에서 성립했던 얘기이다. 예술, 종교, 철학 이 세 가지 영역이 절대적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 라고 하는 헤겔의 입장이다.  그리고 성립 배경을 보면 이전 시간에서 헤겔의 역사적 예술론을 보면 예술은 시대 정신의 표현이고 예술, 종교, 철학은 절대 정치 정신의 계기들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면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시대 정신을 이해해야 하는데, 시대 정신은 간단히 말하면, 시대 정신이라는 말을 뭔가 잘 모르겠다고 하면 일정한 경향을 가진 문화적 성향 이런 정도로 이해를 하면 된다. 문화적 성향, 시대적 정신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아까 말한 것처럼 서로 쟁투를 벌이면서 쟁취하는 것이다. 

지금은 물질적으로 굉장히 넉넉한데도 정신 문화에 관련된 부분들은 부끄러움에 대해 어떤 의미가 없다. 그다음에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작동해야 되는가 이것에 대한 개념이 없다.  그러니까 정신사적으로 뭔가 쇠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런 경우에는 클래식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것을 최소한 더 이상 쇠락하지 않도록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의 숫자를 늘리지도 않고 그냥 유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해야겠다 라고 하는 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시대정신에 대한 미션이다. 간단히 말하면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알고 있는 어떤 클래식한 것들에 대해서 이렇게 기여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면 이것은 어떤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정신 문화의 쇠퇴가 상당 부분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고 그래서 지금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대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그런 확신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가 이것이 옳다 라고 여기면 그것이 시대 정신이라고 주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시대 정신이라고 하는 철학적인 일종의 신념pistis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다. 예술은 시대정신의 표현이라고 했을 때 무엇을 시대정신이라고 할 것인가는 규정하는 사람 마음에 달려 있다. 저는 문화적 쇠락의 시기라고 생각을 한다. 이건 저의 규정이다. 그리고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보존해야 된다는데도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면 시대정신을 함께 나누어 가진 사람이 된다. 


헤겔의 이 얘기를 딜타이는 정신과학이라고 하는 데서 성립을 시켰는데, 이것에 대한 책이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이다.  그다음에 딜타이의 제자인 헤르만 놀이 뵐플린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의 양식 원리를 재해석을 해서, 사실은 양식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형식적인 것만 해당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 은연 중에 직관적 관조에 근거한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러니까 양식이라고 하는 것은 세계관의 형식을 드러낸다고 했는데, 그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앞에서 얘기한 시대 정신의 다른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헤르만 놀은 자연주의(Naturalismus), 객관적 이상주의(Objektive Idealismus), 주관적 이상주의(Subjektive Idealismus)라고 하는 이 세 가지 세계관의 형식을 제시하는데, 자연주의는 있는 그대로 예술 작품을 표현하는 것이다.  유치원 애들이 그림을 그린 것은 자연주의가 아니라 주관적 이상주의이다. 제 멋대로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 심리 치료하는 분들이 그림을 그려보라고 해서 해석을 한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 그림으로 드러난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관적 이상주의는 그림의 규칙 따위는 지키지 않고 생각을 표현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표현주의가 된다. 생각을 잘 정리해서 나름 규칙대로 그린다고 하면 객관적 이상주의이고, 자연주의는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주관적 이상주의라고 하는 것이 계속 전개가 되면 표현주의가 되는 것이고, 그게 바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표현주의 예술로 등장하게 된다.  형태는 정신적 근본태도의 표현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이 표현주의라고 하는 것이 사실 극단으로 가면 객관적 규범을 무시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내적 체험이나 시대 정신을 표현한다는 미명 하에 악한 짓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것이 위험하다. 


지금까지 10번에 걸쳐서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을 했다. 이 분야에 대해서 그냥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라는 것이 아닌 상당히 탐구해 볼 만한 어떤 내용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러분들에게 일단 권하고 싶은 건 미술사 공부는 그만하고 문화사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의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어떤 물질적 삶의 구조가 응축된crystallize 것이다. 물질적 삶의 구조가 모여서 결정화crystallization된 것이 문화다 라고 생각한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물질적 삶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부르크하르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쓰면서 취한 방법론이 이런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할 때도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결국 문화적인 접근인 것이다. 


제가 형이상학을 전공했는데 형이상학은 모든 철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읽고 잘 이해가 안 되더라도 지금 이런 얘기들은 다 기본적으로 형이상학적인 어떤 바탕에서 얘기를 하는 것이므로 형이상학은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다. 강의 순서상으로는 인문 고전 강의와 역사 고전 강의를 하고 나서 문학 고전 강의를 했다. 문학 고전 강의를 먼저 강의했고 책으로 출간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 원고는 그냥 놔두고 철학 고전 강의를 강의해서 《철학 고전 강의》를 출간한 다음에 《문학 고전 강의》를 출간했다. 왜냐하면 《문학 고전 강의》를 먼저 출간하면 철학 전공자로서 철학한테 뭔가 잘못을 하고 저지르는 것 같았다. 어쨌든 《철학 고전 강의》를 먼저 출간을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이 형이상학 연구서를, 플라톤부터 헤겔에 이르는 형이상학을 1차 문헌에 근거해서 연구를 해서 쓴 책으로는 이 책이 처음이다. 서양 철학은 형이상학 철학은 기본인데, 철학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 책이 2016년에 나왔는데 저는 《철학 고전 강의》를 쓰기 전까지는 철학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을 쓴 적이 없다. 철학과에 입학한 지 36년 만에 철학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을 쓴 것이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강의했고 쓴 책이니까 이 책은 열심히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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