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강유원의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9-2

 

2023.11.08 🎤 미학, 예술학, 예술철학 9-2

커리큘럼

09.06 예술의 목적과 예술론의 학적 위치
09.13 플라톤의 미학
09.20 예술론의 전범으로서의 《향연》
10.04 mimēsis
10.11 신플라톤주의와 고전주의 예술론
10.18 maniera grande, cicerone
10.25 Baroque, Rococo
11.01 헤겔과 역사적 예술론
11.08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1):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조르조 바사리
11.15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2): 에르빈 파노프스키, 막스 드보르작

 

교재

강유원(지음), 《에로스를 찾아서 -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

강의자료: https://www.buymeacoffee.com/booklistalk/yekiliyozo


제9강. 미술사의 여러 갈래들(1):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조르조 바사리

일시: 2023. 11. 08.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장소: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345

 

 

르네상스를 이야기하는데 왜 연대적으로 바사리부터 얘기하는 게 아니라 부르크하르트부터 얘기했는지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부르크하르트가 얘기하는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과 바사리가 얘기하는 르네상스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건 문화사이다. 예전에는 미술사라고 해서 곰브리치 미술사를 읽었는데 그건 해외 여행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없던 시절 얘기이다. 지금 우리가 유럽을 가보면 '이것들이 이렇게 야만적인가'라는 것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제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문화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우리가 그쪽 동네를 한번 살펴보면 그런 것을 잘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89년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저처럼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은 해외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의 얘기가 까마득했다. 지금은 우리가 다 검증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곰브리치나 부르크하르트를 읽고 이탈리아에 가서 와 하고 입이 떡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특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읽어야 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지식의 변화의 속도가 빠른데,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프랑스 사람들은 지식의 변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그건 무엇을 말하는가. 그 사람들은 아직도 백인 문명이 아시아를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했다 라고 하는 계몽주의의 판타지에 젖어 있다. 그게 문제인 것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만 읽으면 안 되고 조르조 바사리 정도는 읽어야 한다.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6권짜리를 다 읽기 힘든 사람들은 제5권만 읽으면 된다. 바사리가 수없이 많은 화가, 조각가, 건축가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바사리가 이 사람을 빼면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불가능하다 했던 사람이 바로 미켈란젤로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는 부분이 바로 제5부이다. 

바사리와 미켈란젤로는 뜻밖에도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 바사리 자신도 예술가이기도 했다. 당대 사람의 평가가 가장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후대 사람들에 의해서 부풀려지고 이렇게 된 것을 감안한다면 바사리의 평가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뜻밖에도 다빈치가 높은 점수 받지 못했다.  바사리가 미켈란젤로에 대해서 얘기한 것을 잠깐 한번 읽어보겠다. 바사리는 미켈란젤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난한다.  그러니까 뭐라고 말할 수 있냐하면 미켈란젤로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썼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미켈란젤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비난하는 말이 없다. 

우선 미켈란젤로를 얼마나 얼마나 찬양하는지 한번 들어보겠다. "저 유명 한 조토Giotto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계몽된, 근면하면서도 뛰어난 예술가들은 행운의 별과 조화된 성품을 가지고 자신들의 재능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탁월한 예술로서 예지라고 부르는 최고의 인식에 더욱 더 접근하려고 위대한 자연을 모방하고자 무한한 노력을 경주했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이렇게 미켈란젤로를 찬양하기 위해서 앞에 조토와 같은 사람들을 한번 살짝 깠다. "그 무렵 인자한 하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눈길을 지상으로 돌리시어 예술가들의 이런 헛된 노력과 성과 없는 연구, 주제 넘은 자부심으로 어둠에서 빛으로보다는 더욱더 진리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인식하시고, 이러한 그릇됨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만능의 넋을 지닌 한사람을 지상에 내려보내기로 하셨다." 거의 예수급이다. 아직 사람 이름도 안 나왔다. "그는 각 분야의 예술과 학예에 뛰어났으며, 그의 작품만이 회화에서 선과 윤곽과 명암의 표현을 잘 구사하여 부조성 浮彫性을 부여함으로써 완전성을 보여주었다. 조각에서도 정확한 판단력으로 제작했으며, 건축술에서는 비례가 균형 잡히고 장식이 풍부한 생활하기에 쾌적하고 깨끗한 건물을 제작했다." "그밖에도 신은 그에게 진정한 생활철학과 아름다운 시를 짓는 재능을 부여했고, 누구나 그를 인간 생활과 작품 활동은 물론 성품의 고귀함, 모든 행동에서 훌륭한 모범으로 칭송했으며, 그를 땅 위의 사람으로 알기보다는 하늘이 낸 사람으로 여겼다. 그는 회화, 조각 및 건축에서 예술과 실천이 너무나 독자적이었으므로 토스카나 지방의 천재들은 그를 이탈리아에서 누구보다도 모든 분야의 예술에 부지런하고 뛰어난 사람으로 여겼는데, 신은 그에게 조국으로서는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다운 피렌체시를 맡김으로써 그로 하여금 이 도시를 가장 완벽한 기예로 장식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1474년에 카센티노Casentino에서 숙명과 행운의 별 아래서, 고귀하고 유덕한 부인과 매우 유서 깊은 카노사Canossa 백작의 후손인 로도비코 디 레오나르도 부오나로티 시모네Lodovico di Leonardo Buonarrori Simone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한 페이지를 다 읽더라도 이름이 안 나온다. "3월 6일 일요일 밤 8시경이었다. 당시 그의 아버지 로도비코는 그 옛날 성 프란체스코S. Francesco가 聖痕을 받은 아레초 교구에 속하는 베르니아Vernia 동산 근처의 키우시Chiusi와 카프레세Caprese읍의 치안 판사判事였다. 그의 부친은 태어난 아기가 어딘가 초자연적이고 초인적인 것을 느꼈으며, 이름을 미켈란젤로라고 지었다."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 5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2907 저 유명 한 조토Giotto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계몽된, 근면하면서도 뛰어난 예술가들은 행운의 별과 조화된 성품을 가지고 자신들의 재능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탁월한 예술로서 예지라고 부르는 최고의 인식에 더욱 더 접근하려고 위대한 자연을 모방하고자 무한한 노력을 경주했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그 무렵 인자한 하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눈길을 지상으로 돌리시어 예술가들의 이런 헛된 노력과 성과 없는 연구, 주제 넘은 자부심으로 어둠에서 빛으로보다는 더욱더 진리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인식하시고, 이러한 그릇됨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만능의 넋을 지닌 한사람을 지상에 내려보내기로 하셨다. 

그는 각 분야의 예술과 학예에 뛰어났으며, 그의 작품만이 회화에서 선과 윤곽과 명암의 표현을 잘 구사하여 부조성 浮彫性을 부여함으로써 완전성을 보여주었다. 조각에서도 정확한 판단력으로 제작했으며, 건축술에서는 비례가 균형 잡히고 장식이 풍부한 생활하기에 쾌적하고 깨끗한 건물을 제작했다. 

그밖에도 신은 그에게 진정한 생활철학과 아름다운 시를 짓는 재능을 부여했고, 누구나 그를 인간 생활과 작품 활동은 물론 성품의 고귀함, 모든 행동에서 훌륭한 모범으로 칭송했으며, 그를 땅 위의 사람으로 알기보다는 하늘이 낸 사람으로 여겼다. 그는 회화, 조각 및 건축에서 예술과 실천이 너무나 독자적이었으므로 토스카나 지방의 천재들은 그를 이탈리아에서 누구보다도 모든 분야의 예술에 부지런하고 뛰어난 사람으로 여겼는데, 신은 그에게 조국으로서는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다운 피렌체시를 맡김으로써 그로 하여금 이 도시를 가장 완벽한 기예로 장식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1474년에 카센티노Casentino에서 숙명과 행운의 별 아래서, 고귀하고 유덕한 부인과 매우 유서 깊은 카노사Canossa 백작의 후손인 로도비코 디 레오나르도 부오나로티 시모네Lodovico di Leonardo Buonarrori Simone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3월 6일 일요일 밤 8시경이었다. 당시 그의 아버지 로도비코는 그 옛날 성 프란체스코S. Francesco가 聖痕을 받은 아레초 교구에 속하는 베르니아Vernia 동산 근처의 키우시Chiusi와 카프레세Caprese읍의 치안 판사判事였다. 그의 부친은 태어난 아기가 어딘가 초자연적이고 초인적인 것을 느꼈으며, 이름을 미켈란젤로라고 지었다. 

 

한 인간에 의해서 이보다 더 찬양할 수 없다 싶을 정도로 찬양을 한다. 미켈란젤로를 위해서 이 모든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물론 바사리의 이 책이 미켈란젤로만을 찬양하기 위해 썼다 라는 것은 약간의 과장은 있다. 사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고 이 사람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거쳐서 당대 미술가들에 대해서 쓴 것은 자신이 본 것 또는 들은 것, 조각과 회화와 건축에 있어서 그 당시에 탁월한 기법으로 하나의 모형을 제시하고, 그 모형에 못 미치는 자들도 서술함으로써 당대의 예술의 현 주소를 서술하고자 쓴 것이다. 1550년에 초판이 나왔고 1568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제목은 "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 architettori"이다. 여기서 vite라고 하는 생애이다.  한국어판 제목은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으로 되어 있는데, 이 책도 이탈리아판을 가지고 번역한 건 아니다. 영어판의 제목은 "The Lives of the Most Eminent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이다.  "가장 탁월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생애"라고 할 수 있다. 바사리는 14세기에서 16세기의 200년의 미술사를 전기, 전성기, 후기 르네상스로 분류를 했다. 바사리의 이 분류는 꽤나 오랫동안 통용되었고,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같은 경우도 이것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 분류는 오늘날에는 이제 사용하지 않는다.  대개 후기 르네상스하면 매너리즘의 시대하고 겹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Quattrocento라는 말을 그냥 쓰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바사리가 '재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라고 했는데 '재생'이라는 말은 바사리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도 알려져 있지만 마키아벨리도 이 말을 못지않게 썼다.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이 말을 쓴 건 《전술론》이다. 이때는 온갖 영역에서 재생이라는 말이 쓰였다. 부활이라는 말이 쓰였는데 무엇을 재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실 그 내용은 굉장히 다양했다. 황당한 것을 재생하지 않는 태도도 있었을 정도로 다양했다. 바사리가 vite를 쓴 이유는 예술가들이 제작한 작품을 선택하고 작품 분석을 해보겠다 라는 것이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작품 분석을 해서 그들이 어떤 양식maniera을 쓰는가, maniera는 이탈리아어로 manner이다, 그러니까 작가의 style을 일단 분석한다.  style을 분석을 하면서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작품의 특징, 그다음에 여기서 상상력이라고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는데, 구성력이라고 이해를 하면 된다. 작품을 분석하는데 그 작품에 들어가 있는 양식을 분석하는 게 첫번째이다. 두 번째는 양식이 유래한 근원과 여러 시대를 거쳐온 예술의 진보와 태초의 원인을 밝히려고 시도이다. 그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부터 그 양식을 가지고 작업을 한 것은 아닐 거라는 것을 전제하고 그 양식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특정한 작가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그 작품에 대한 역사적 기원까지도 분석하려는 태도가 바로 바사리의 미술사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대개 우리는 평전이라고 말한다. vite를 평전으로 번역하는데, 평전과 전기는 어떻게 다른가. 전기는 몇 년 몇 월 며칠 태어났다 라는 것을 쓰는 것이고, 지금 바사리는 미켈란젤로에서 3페이지에 걸쳐서 찬양을 했다. 그것이 평전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 대해서 쭉 이야기를 하되, 그 사람의 일생에서 남김없이 일기를 쓰는 게 아니라 특징적인 면모를 드러내 보이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는지에 대해서 연원을 추적해서 그걸 밝혀보이면서 그 사람의 생애를 기술하면 평전이 된다.  그러니까 평전은 그 평전을 쓴 사람이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 또는 그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계기momentum를 이루는 사건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평전은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평전이 나올 수 있다. 

그다음에 도입부에서 건축에 관하여, 조각에 관하여, 회화에 관하여라는 제목 아래 미술 기법과 재료 등 실제 작품 제작에 필요한 지식과 이론을 서술했다. 아까 읽은 것처럼 바사리는 미켈란젤로 이런 사람들 높게 평가했는데 그 당시에 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이른바 르네상스, Quattrocento 시대부터 사람들은 개성이라고 하는 것에 이제 관심을 가졌다. 그러니까 욕을 먹더라도 그냥 묻어가지 않는 것이다. 대충 하면 욕 먹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게 개성이다.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 예술을 지탱한 힘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 이름을 대고 비난하는데 왜 그러는가. 이때부터 예술가의 자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바사리의 생몰연대가 1511년에서 1574년이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 그게 이탈리아 예술의 큰 힘이다.

자연을 모방하는 있어 나의 정신세계로 극복을 해서 철저하게 개인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것이 바로 개성의 발현이다. 개성을 발현하고 싶으면 자기가 작품의 모티프motif를 선택selectio해야 한다. maniera 달성의 목표는 나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고, 그러려면 자연에서 motif를 얻어야 된다. 그게 선택selectio이다. 그다음에 disegno. disegno는 드로잉 또는 스케치, 거기에 설명이 많이 되어 있는데 '완벽한 기술'로 이해하면 된다. 기술을 엄청 갈고 닦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목표는 maniera의 달성. 그런데 maniera는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개성, 나만의 개성을 성취해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자연으로부터 motif를 따와서 그걸 갖다가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그것을 연마해 나가야 된다. 공부로 말하면 그 사람만의 고유한 학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maniera겠다.  

바사리가 왜 이런 얘기를 했는지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한다. 바사리는 그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개성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쓴 부르크하르트가 얘기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특징은 개인의 발견이고, 각각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유니크한 점을 존중하기 시작했고 말한다. 그게 Quattrocento의 시기 특징이라고 했다.  바사리를 읽거나 아니면 부르크하르트를 읽을 때 초점은 개성의 발견에다 두고 것이 적당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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