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 부바르와 페퀴셰 1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3. 11. 20.
부바르와 페퀴셰 1 -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책세상 |
부바르와 페퀴셰 1
주
45 부바르와 페퀴셰는 그들이 본 모든 것에 매료되었다. 그리하여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날 저녁부터 그들은 서재에서 《농촌 가옥》이라는 네 권의 책을 꺼내어 봤고, 가스파랭의 강의록을 구해 읽었다. 그리고 농업 잡지를 구독 신청했다.
그들은 좀더 편하게 장보러 다니려고 작은 이륜마차를 샀고 부바르가 마차를 몰았다.
푸른 작업복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각반을 댄 채, 마치 마필 매매상처럼 손에 막대기를 들고서, 그들은 가축 주위를 맴돌기도 하고 일꾼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농사 공진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들은 주로 휴한 체계를 불만스럽게 생각하여 충고를 함으로써 곧 소작인 구이를 성가시게 만들었다. 그러나 소작인은 자기의 방식을 고집했다. 그리고 우박을 핑계 삼아 지불 기일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게다가 소작료는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청구에 대하여 소작인의 아내는 소리를 질렀다. 마침내 부바르는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구이는 비료도 안 쓰고 잡초를 자라게 내버려두어 토지를 훼손시켰다. 그리고 복수하겠다고 벼르면서 화를 내고 나가버렸다.
부바르는 소작료의 네 배가 넘는 이만 프랑이면 직접 농사를 시작하기에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파리의 공증인이 이만 프랑을 보내주었다.
그들이 경작해야 할 것은 마당과 풀밭 십사 핵타르, 경작지 이십삼 핵타르, 그리고 작은 언덕이라고 부르는 자갈로 덮인 작은 산 위의 황무지 오 헥타르였다.
그들은 필요한 모든 장비와 말 네 마리, 암소 열두 마리, 돼지 여섯 마리, 양 백육십 마리를 마련했다. 일꾼들로는 짐수레꾼 두 명, 하녀 둘, 하인 하나에 양치기와 커다란 개 한마리를 준비했다.
빨리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바르와 페퀴셰는 사료를 팔았다. 사람들은 부바르와 페퀴셰의 집에서 값을 치렀다. 귀리 궤짝 위에서 세어보는 나폴레옹 금화는 다른 어느 것보다도 더 반짝이고 귀하고 훌륭하게 보였다.
십일월에는 능금주를 양조했다. 부바르는 말을 채찍질하고, 페퀴셰는 물통 속에 들어가 삽으로 찌꺼기를 휘저었다.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나사못을 죄고 양조통에서 국자로 거품을 떠냈다. 그리고 마개를 잘 살펴본 후에 무거운 신발을 신은 채 매우 즐거워했다.
지나치게 많은 양의 밀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그들은 인공 풀밭의 약 반을 없앴다. 그리고 비료가 없었기 때문에 빻지도 않고 묻어놓은 껫묵을 사용했다. 그 결과 수확고는 형편없었다.
다음 해에는 아주 빽빽하게 씨를 뿌렸다. 그런데 천둥을 동반한 심한 비바람이 몰아치자 이삭이 다 쓰러지고 말았다.
그래도 그들은 밀에 열성을 기울였다. 작은 언덕의 돌을 없애고 광주리로 자갈을 날랐다. 일 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가 오나 해가 비치나,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말과 한결같은 광주리가 작은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따금 부바르는 이마의 땀을 닦느라고 산 중턱에서 쉬다가 뒤에 처져서 걸어갔다.
그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으므로, 직접 동물을 돌보았다. 깨끗이 씻어내고 관장도 시켜주었다.
그런데 매우 난잡한 일이 생겼다. 가축 사육장의 하녀가 임신을 한 것이다. 그래서 결혼한 사람을 고용했더니 이번에는 아이들과 사촌, 삼촌, 시누이들이 급속도로 불어났다. 한 무리의 유목민이 그들의 신세를 지며 살게 된 것이다. 결국 부바르와 페퀴셰는 자기들이 직접 번갈아 농징에서 자기로 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그들은 서글폈고 방이 더러워서 불쾌했다. 식사를 날라오는 제르맨도 올 때마다 투덜거렀다. 사람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그들을 속였다. 마당질꾼은 자기의 물병 속에 밀을 쑤셔 넣었다. 페퀴셰가 현장에서 한 사람을 붙잡아서 어깨를 치며 밖으로 밀어내고 소리쳤다.
"비열한 놈! 너 같은 놈이 태어났다는 건 우리 마을의 수치다!"
페퀴셰는 전혀 존경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정원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원을 훌륭하게 가꾸려면 모
든 시간을 투자해도 지나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농장은 부바르가 맡으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준비했다.
첫 단계는 좋은 온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페퀴셰는 벽돌로 온상 하나를 만들었다. 틀도 직접 칠하고, 강한 태양 빛을 막기 위해 모든 유리 뚜껑에 분필로 마구 칠을 해놓았다. 그는 꺾꽂이를 하려고 잎이 달린 윗부분을 잘라냈다. 그리고 휘묻이에도 열성을 기울여 피리형 접목, 관접, 아접, 풀의 접목, 영국식 접목 등 여러 가지의 접목을 시도해 보았다. 두 개의 속껍질을 꼭 맞추려고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던가! 얼마나 단단히 동여매고 얼마나 많은 연고를 발라주었던가!
하루에 두 번, 그는 마치 향로를 흔들어 향을 뿌리듯이 물뿌리개를 들고 식물 위에서 흔들었다. 가늘게 뿌려지는 물을 받아 식물이 푸르러지자,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이 목을 축이는 것 같았고 식물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듯했다. 그러다가 흥분해서 물뿌리개의 둥근 꼭지를 빼고 잔뜩 물을 부어주었다.
여인의 석고상이 있는 소사나무 가로수 끝에는 통나무로 지은 오두막집 같은 것이 있었다. 페퀴셰는 여기에 도구를 넣어두고는 씨앗의 껍질을 벗기고 분류표를 작성하거나 작은 단지를 정리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좀 쉬려고 문앞에 있는 의지에 앉아 있다가 그는 정원을 예쁘게 꾸밀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층계 밑에 둥근 제라늄 화단을 두 개 만들었다. 실편백과 부들 사이에는 해바라기를 심었다. 화단에는 금빛 봉오리가 가득하고 통로마다 새 모래가 깔려 있어서 정원은 풍부한 노란색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그러나 온상에는 벌레가 득실거렸다. 낙엽으로 만든 새 퇴비를 썼는데도, 페인트칠한 틀과 유리 뚜껑 밑에서는 병든 식물만 돋아났다. 꺾꽂이한 것은 뿌리를 박지 못하고 접목한 것도 떨어져 나갔다. 휘묻이한 가지는 수액이 흐르지 않아 나무 뿌리가 하얗게 되고 말았다. 씨 뿌린 밭도 처참한 꼴이었다.
강낭콩 덩굴에 세워준 섶은 바람에 날아가버리고, 딸기는 인분 비료가 너무 많아 망쳤으며, 토마토에는 순자르기가 부족했다.
모란채, 가지, 순무, 나무 통에 기르려고 한 물냉이 재배에도 실패했다. 해빙이 되자 아티초크도 모두 못 쓰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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