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회사상의 흐름(8) ━ 토크빌(2)

 

2023.12.05 📖 사회사상의 흐름(8) ━ 토크빌(2)

📖 사회사상의 흐름

❧ 토크빌
-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의 목적과 방법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관한 사회학적 설명을 통해 그것을 이해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 프랑스혁명의 보편타당성 

앙시앙 레짐 시기 사회의 붕괴 사실을 설명하는 현상들. 행정의 중앙집권화, 획일성, 정치적 자유의 결여, 여러 특권 집단들과 평민들 사이의 낯설고 무관심한 격리적 단절, 연대감 결여 —> 경제적·사회적으로 가장 덜 변화된 나라이면서 정치적으로는 격동을 불러왔다. 이는 프랑스의 반보수주의半保守主義 

- 정치사상가, 사회학자
1830년 혁명에 대하여 정치적 이상이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 입헌군주제에 있어서 사회의 민주화와 자유제도의 강화가 결합하는 것 

정치체제의 유형과 사회 유형을 분류, 사실로부터 추상적 이론을 구성하는 성향

 

레이몽 아롱의 《사회사상의 흐름》의 토크빌 부분을 오늘 두 번째 읽고 간략하게 정리해서 끝내겠다. 레이몽 아롱이 토크빌에 대해서 두 번째 부분은 꽤 상세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사회학자로서의 토크빌 그리고 정치 사상가로서의 토크빌에 대해서 정리한 마지막 부분과 앞부분에 있는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의 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추출해낸 토크빌의 결론은 이 두 가지 항목 정도만 간단하게 보면 될 것 같다. 왜 그런가 하면 토크빌의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과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이 두 저작에 대해 레이몽 아롱이 지금 정리한 정도로 읽어서는 충실한 독해 가이드라인이 되질 못한다. 토크빌은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토크빌의 논의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가 얘기해 놓은 것은 어제도 말했듯이 잡다하게 이런 저런 내용들을 넣어 놨기 때문에 어떤 것은 털어버리고 어떤 것은 어디에다 집어넣고 읽어야 되는가 그런 것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데 그 점에 대해서는 레이몽 아롱이 잘 정리를 해놨다. 그런데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과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는 레이몽 아롱이 정리해 놓은 것을 읽고 나면 그냥 다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다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게 읽으면 안 되는 그런 텍스트에 해당한다. 그래서 레이몽 아롱의 얘기 중에서 이건 꼭 기억을 해둬야겠다 하는 것만 간략하게 정리를 하겠다.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과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는 아메리카는 민주주의에 성공했고 조건의 평등이 이루어졌고 그들은 자유롭다는 것, 그런데 왜 프랑스는 민주정이라고 하는 혁명을 일으켰는데도 왜 자유롭지 못한가 라는 두 가지 물음을 놓고, 사실은 하나의 물음인데, 한쪽은 성공 사례이고 하나는 실패 사례를 분석한 것이다. 그러니까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관한 사회학적 설명을 통해서 그것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사회학적 설명이란 무엇인가. 각각의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건 심리학적 설명이다. 개인이 어떻게 했는가 이런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해서 큰 사건은 큰 사건대로 일단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원인을 찾아보고 그것으로부터 일정한 정도의 보편적 법칙을 추출해낸 다음에 그런 보편적 법칙에 근거해서 자잘한 것들까지도 연역해낼 수 있으면 연역해보려고 하는 것이 사회학적 설명이다.  

제4부 221 토크빌은 민주사회라는 추상적 관념에 눈을 돌려, 이 민주사회가 어떠한 정치적 형식을 취할 수 있으며 또한 왜 그것이 여기서는 이런 형식, 다른 곳에서는 저런 형식을 취하는가를 풀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는 민주주의 사회라는 이상형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가 즐겨 쓰는 말을 사용하면 비교적인 방법으로써, 가장 일반적인 것에서부터 가장 특수한 것으로의 진행을 통해 여러 원인들의 영향을 드러내 보려고 애를 썼었다. 따라서 토크빌에 있어서는 두 가지의 사회학적 방법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하나의 특정한 사회를 충실하게 그리는 것이요 또 하나는 어떤 일정한 유형의 사회의 추상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레이몽 아롱에 따르면, 제가 읽어봐도 그런데,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은 일반적인 원칙 정도는 찾아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혁명은 보편타당성을 띠고 있다. 프랑스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뭔가의 추상적인 대의를 내걸었고 그것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정도의 법칙성을 띠고 있고 그런 까닭에 보편타당성을, 아주 딱 들어맞는 필연성까지는 아닌데 개연성이 아주 높은, 그런 보편 타당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도 그러니까 프랑스와는 아주 다른 여건에서도 이것을 하나의 전범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하는 게 첫 번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앙시앙 레짐의 시기에 사회가 어떻게 해서 붕괴되었는가, 이를 알아내는 것이 프랑스혁명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의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첫째가 행정이 중앙집권화되어 있었고 다양한 여러 계급이나 사회집단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통일되었던 것이 아니라 획일화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정치적 자유가 결여돼 있었다. 그리고 여러 특권집단들과 평민들 사이에 낯설고도 무관심한 격리적 단절이 있었다. 이것이 연대감이 결여된 상태이다. 앙시앙 레짐 시기가 이러한데 프랑스혁명 초창기에 국민의회에서 그런 유기적 통일성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이제 토크빌이 보기에는 프랑스는 결국 앙시앙 레짐 시기와 프랑스혁명 이후 시기가 크게 차이가 없더라 그런 것이다. 이것이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저도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 혁명을 읽을 때 이 부분을 집중해서 단면을 잘라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뭐냐하면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의문이 나는 게 이것이다. 프랑스혁명 사태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도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는, 앙시앙 레짐 이전에 이를테면 종교적으로도 이렇게 결집되어 있는 아주 완고한 왕정이었다. 또 프랑스 가톨릭이 보통 아닌 응집력을 가지고 국민들을 딱 이렇게 죄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왕정과 아주 밀착되어 있는 종교의 교권 일치, 충실하게 왕에게 충성하는 리슐리외라든가 마자랭 같은 추기경들이 정치를 한 것을 보면 그런 걸 잘 알 수 있다. 행정이 중앙집권화되어 있고 획일적이었고 그러면서 동시에 정치적 자유도 결여되어 있는 상태, 그것을 둘러업자고 해서 프랑스혁명을 일으켰는데 프랑스혁명은 결국 본래 그것이 의도했던 바를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본다. 그런데 꼭 그걸 실패로만 보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또 굉장히 이룩한 업적이 많다. 그런데도 프랑스혁명을 거쳤는데도 프랑스는 결국 나폴레옹 황제 독재정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를테면 역코스reverse course가 일어난 것이다. 굉장히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는데 옛날로 돌아간 것 같고 그러면서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이면서도 동시에 이제 보나파르트주의가 횡행하게 된다. 

제4부 224 프랑스에 있어서의 구체제 하의 사회의 붕괴의 사실을 설명하는 주요 현상들은 무엇인가? 첫째 현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행정적 중앙집권이요 또한 행정적 획일성이다. 

제4부 225 둘째로 중앙집권적으로 통치되고 또한 점점 더 똑같은 규칙들이 전체 영토에 적용되고 있었던 이 프랑스에 사회는 말하자면 티끌과 같이 산산조각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에 관한 일들을 토의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국가 형성의 조건 즉 자유가 결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4부 226 그들은 현실적으로 서로 비슷한 자들이었으나 또한 정치적 자유의 결여 상태에서 그들은 국가의 건강에 필요 불가결한 연대감을 얻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왜 프랑스혁명은 그것이 추구했던 성취를 궁극적으로 이루어내지 못했는가,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물어야 될 핵심적인 질문은 프랑스혁명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가보다는 프랑스혁명은 어떻게 해서 자기네들이 둘러엎었던 앙시앙 레짐과 유사한 체제로 귀결되어 갔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훨씬 더 오늘날 21세기 한국에서도 굉장히 유효한 물음이 될 수 있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굉장한 격동기를 살아왔다. 아주 짧은 시기에 한국사회에서 탄핵 심판이 두 번이나 있었다. 굉장히 정치적으로는 격동적인 그런 상황을 겪어왔다. 그럼에도 경제적 사회적 토대는 아주 극적으로 변한 게 없다. 다시 말해서 1987년 6월항쟁의 기세만을 생각한다면 한국 사회는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나라가 크게 흔들릴 거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민주적 국가가 토대를 잡았고 동시에 절대적인 권력에 의해서 국민의 자유가 억압받거나 하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경제적 사회적으로는 전혀 변화가 없고 그냥 정치적인 격동만 계속 왔다 갔다 한다. 이게 바로 프랑스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고 프랑스를 절반쯤 보수주의적인 나라로 만들어낸 요소들이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 프랑스가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나라가 되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토크빌의 《앙시앙 레짐과 프랑스혁명》과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을 보면 어제 얘기한 것과 같은 법률도 중요하지만 관습과 예법, 즉 생활 방식 그리고 습속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게 바뀌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격동적인 사건이 아주 많다 해도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정신세계에서 지향하고 있는 바가 바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여전히 이익을 수취하는 방식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과거의 것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격동만큼이나 큰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불러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아직도 절반쯤 보수주의적인 나라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치적 역동의 내용이나 그 규모나 진폭을 보면 굉장히 많이 혁신적으로 바뀌었어야 하는데 여전히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이는, 젊었을 때는 그런 것을 지지하다가도 나이 들면 또다시 거의 왕당파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인구 구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토크빌의 이런 텍스트가 프랑스 혁명 이후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도움이 되리라 본다. 

제4부 227 프랑스에 있어서 혁명과 그 후 뒤따르게 된 모든 프랑스의 혁명들의 기원에 있어서 특징적 현상은, 특권을 가진 여러 집단들이 자기 나라에 대한 정치 양식에 관해서 합의를 이룰 능력이 없다는 것임을 토크빌은 자신이 관찰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관찰에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현상이 오늘날까지도 존속하고 있는 정권 교체의 빈도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토크빌은 행정적 중앙집권화가 19세기를 통하여 또한 20세기에 들어가서도 증가할 것이며 프랑스의 부하고 개명된 요소가 계속 합의를 이룰 능력을 갖지 못할 것이고 그 결과 때때로 민주정부가 불가능 하게 되어 하나의 지도자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부언하곤 하였다. 프랑스 정치에 관한 이 분석은 심히 명석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19세기 및 20세기에 있어 프랑스의 전 정치사에 적용될 수 있 다. 그것은 서유럽 여러 나라 중 19세기에 있어서 또한 20세기에 있 어서 또한 근자에 이르기까지 프랑스가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가 장 덜 변화된 나라이고 또한 정치적으로는 아마 가장 격동을 일으켰던 나라라는 이 기이한 현상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경제적 및 사회적 반보수주의(semiconservatism)와 정치적 격동의 이러한 결합은 토 크빌 사회학의 맥락 속에서 쉽게 설명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사상가로서의 토크빌은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1830년 혁명에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입헌군주제에 있어서 사회의 민주화와 자유제도의 강화가 결합하는 것을 시도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집안을 배신한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다음에 사회학자로서의 토크빌은 정치체제의 유형과 사회 유형을 분류하고 추상적인 이론을 또는 전망을 섣불리 내놓기보다는 사실로부터 추상적 이론을 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점에서는 토크빌리 사회학자의 면모를 보인다고 볼 수 있겠다.  

제4부 250 정치사상가로서 토크빌은 그 스스로 말했던 것과 같이 고독한 사람이었다. 그는 부르봉왕가를 옹호하는 정통주의자 당(Legitimist Party) 출신이었다. 그의 가정은 프랑스 왕정에 애착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토크빌이 오를레앙 왕조 (Orleans dynasty)를 지지하였을 때에는 상당한 주저와 심적 고려를 한 연후였다. 어느 의미에서는 그는 자기의 가족적 전통과 결별하였으며 그가 깊이 사랑했던 가족을 배반한데 대하여 불안해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830년 혁명에 대하여 그의 정치적 이상이 마침내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을 걸었다.  

제4부 251 사회학자로서 토크빌은 몽테스키외의 계보에 속했었다. 그는 사회 학적 묘사가로서의 방법을, 여러 정치체제의 유형과 사회 유형을 분류하는 습성과 결합하고 또한 나아가서 적은 수의 사실로부터 추상적 이 본을 구성하는 성향과 결합했던 것이다. 그는 역사를 예언할 생각으로 광대한 종합을 하는 일을 거절한 점에 있어 콩트와 마르크스와 같은 소위 고전사회학자들과 달랐었다. 그는 과거의 역사가 변할 수 없는 법칙에 의해서 지배당했다든가, 미래의 사건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토크빌은 몽테스키외와 같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를 원했으나 그는 그것을 저버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콩트나 마르크스적 유형의 사회학자들은 항상 역사를 저버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역사를 앞서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역사로부터 역사 전체의 차원인 행위를 박탈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행위를 말하면 우리는 또한 예측 불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레이몽아롱의 책이 사회학자들과 1848년의 혁명 그리고 뒤트켕, 파레토, 베버가 남아 있는데 사회학자들과 1848년의 혁명을 다루고 그다음에 베버에 대해서 정리를 하고 마무리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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