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71 제30강(1) 셰익스피어 《오셀로》

 

2023.12.05 문학 고전 강의 — 71 제30강(1) 셰익스피어 《오셀로》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30강(1)

- 이아고
“그를 따르는 것은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니까.”
I follow him to serve my turn upon him.(1.1.42)

“그를 따르면서 나는 단지 내 자신을 따를 뿐이네.
하늘이 알지, 사랑과 의무감이 아니라,
그렇게 보임으로써 내 개인적인 목적을 따른다는 걸.
내 겉보기 행동이 
내 마음의 본질적인 행동과 모양을
정말 외양으로 드러낸달들, 오래잖아
나는 심장을 내 옷소매에 입고
갈까마귀한테 쪼아 먹게 할 걸세. 나는 지금 내가 아니야.
In following him, I follow but myself;
Heaven is my judge, not I for love and duty,
But seeming so, for my peculiar end:
For when my outward action doth demonstrate
The native act and figure of my heart
In compliment extern, 'tis not long after
But I will wear my heart upon my sleeve
For daws to peck at: I am not what I am.(1.1.58-65)

- 브라반치오
“도둑이라 했더냐? 여긴 베니스다.
내 집은 시골 오두막이 아니야.”
What tell'st thou me of robbing? this is Venice;
My house is not a grange.(1.1.105-106)

“오, 하늘이여, 어떻게 빠져나갔지? 오, 혈연의 반역이로다!
아버지들이여, 지금부터는 믿지 말라, 딸의 마음을,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판단치 말라. 어떤 마법이
젊음과 처녀성의 특질을
현혹한 거 아닐까? 책에서 읽은 적 없는가, 로드리고,
그런 종류에 대해서?”
O heaven! How got she out? O treason of the blood!
Fathers, from hence trust not your daughters' minds
By what you see them act. Is there not charms
By which the property of youth and maidhood
May be abused? Have you not read, Roderigo,
Of some such thing?(1.1.169-174)

 

 

 


《문학 고전 강의》 제30강은 "자신의 아름다운 사랑을 과시하는 오셀로"라고 제목을 달아놓았다. 이 문학 고전 강의 30강은 분량이 꽤 된다. 280페이지부터 295페이지까지 그러니까 15페이지쯤 되는데, 1막을 분석을 해서 《문학 고전 강의》 30강을 정리해 놨다. 드라마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것을 규정하는 1막1장, 1막을 잘 분석한다는 것을 처음에 얘기했다. 드라마를 읽을 때는 근대 드라마가 되었건 고대 헬라스 드라마가 되었건 1막1장이 중요하다. 1막1장은 고전적인 드라마에서나 근대 드라마에서나, 근대라고 하는 것이 여기서는 특정한 시기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도이치어로 Neuzeit, 영어로 modern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문화 유형을 가리키는 말이고, new age는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modern이라고 하는 말 자체는 moderna나 antiqua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어떤 유형을 가리키는 말이다. 양식사에서 흔히 말하는 하나의 양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1막 1장의 등장 인물이 이아고와 로드리고, 브라반치오이다. 1막 1장을 읽을 때는 이아고와 브라반치오에 대해서 읽어야 한다. 오셀로가 등장하기 전에 이 두 사람이 나타나서 관객들에게 오셀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데스데모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된다. 그러니까 이아고와 브라반치오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고 그들에 의해서 언표되는 오셀로, 그들은 오셀로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이아고가 이제 얘기를 시작을 한다. 우리는 이아고에 대해서 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아고가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 《문학 고전 강의》 제30강에서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이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라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이아고가 오셀로를 "도둑"이라고 규정을 하고 그다음에 "늙고 시커먼 숫양"이라고 규정을 하고 데스데모나를 "하얀 암양"이라고 얘기를 하고 이렇게 하면서부터 이제 관객들에게 오셀로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 그런데 이아고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가. 1막1장을 보면 캐시오가 부관으로 뽑힌 게 못마땅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아고의 행위 목적은 자기가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그를 따르는 것은 뒤통수를 치기 위해서니까. I follow him to serve my turn upon him." 행동 목표는 아주 분명하다. 이런 행동 목표를 위해서 이아고가 어떤 짓을 하는가.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자기의 고정적인 어떤 그런 정체성은 일체 다 소멸시켜버리고 자기의 목적을 향해서만 움직여가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이아고는 나쁜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건, 악하다고 하는 것은 정말 아주 뚜렷하게 규정이 되는데 나쁘다고 하는 것은 특정한 상황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 그러니까 나쁘다는 것은 상황의존적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별로 안 좋은데, 그게 다른 상황에서는 좋을 수도 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안 좋을 수 있어.'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러면 이아고를 악인이라고 규정하지 말고 그냥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그런 무정형의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게 훨씬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여기 58행부터 65행까지를 보면"그를 따르면서 나는 단지 내 자신을 따를 뿐이네. In following him, I follow but myself;" myself니까 자기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갖고 있네 라기보단 나의 목적이 뚜렷하네 그런 뜻이겠다. "하늘이 알지, 사랑과 의무감이 아니라, / 그렇게 보임으로써 내 개인적인 목적을 따른다는 걸. Heaven is my judge, not I for love and duty, / But seeming so, for my peculiar end." 나의 고유한 개인적인, 나만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 목적, 끝을 보겠다는 것이겠다. "내 겉보기 행동이 / 내 마음의 본질적인 행동과 모양을 / 정말 외양으로 드러낸달들, For when my outward action doth demonstrate / The native act and figure of my heart"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이아고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본질적인 행동과 모양 그다음에 겉으로 드러난 것이 나오든 말든 그런 말이다. 이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그 겉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뚜렷하게 자기 입장을 밝힌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 다 그렇다. 살면서 지금 상황을 좀 모면하기 위해서 그렇게 좀 해봐야겠지 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악하다고 하지 않고 쟤가 좀 나쁜 짓을 하네 라고 생각한다.  

이아고는 "나는 심장을 내 옷소매에 입고 / 갈까마귀한테 쪼아 먹게 할 걸세." 이렇게 58행부터 65행의 앞부분까지 얘기를 하고 나서 자기에 대해서 얘기를 딱 한마디로 규정한다. "I am not what I am." what I am이라는 말은 철학에서 많이 쓰인다. what I am은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whoI am은 나는 누구인가.  누구인가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규정되는 것이지만 what I am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나를 말한다. what I am은 본질주의이다. 흔히 실존철학에서는what I am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Die Existenz geht der Essenz라는 말을 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겉으로 드러난 지금 그 상황에서, 실존Dasein이라고 하는 건 상황이니까, 여기에 있는 존재니까, 여기라고 하는 게 특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정한 상황에서의 자신이 본질을 선행한다, 본질보다 앞선다, 본질보다 우위에 있다, 본질보다 더 중요하다 라는 얘기이다. 그러니까 좀 현학적으로 말을 해보면 이아고는 실존의 모습 그대로를 따라가고 있는 실존주의자이다. 그런데 이것을 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뚜렷하게 규정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야고는 그러니까 나쁜 사람이라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서 나쁜 짓을 한다. 본래 그놈은 정말 처치 곤란하게 악한 놈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셀로도 그렇다. 오셀로도 괜찮은 사람이다. 훌륭한 장군이고 그 정도면 스펙도 괜찮다.  오히려 시종일관 자기의 정체성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브라반치오이다. 시대 착오적일지는 몰라도 브라반치오의 대사를 보면 "도둑이라 했더냐? 여긴 베니스다. / 내 집은 시골 오두막이 아니야. What tell'st thou me of robbing? this is Venice; / My house is not a grange." 이 대사 들어보면 딱 알게 된다. '나 어디 살아. 내 집이 몇 평이야' 이렇게 말하는, 그러니까 전형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귀족의 특징이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잘 안 변한다는 데 있다. 

위르겐 오스터함멜이 쓴 《하버드-C.H.베크 세계사: 1750~1870 - 근대 세계로 가는 길》 제4부를 보면 "가족, 결혼, 성 역할은 장소에 결부된, 사회 생활의 변화 속도를 보여주는 사례"인데 이게 진짜 잘 안 변한다고 말한다. "유럽 사회는 ‘동양화’하지 않은 반면, 다른 대륙에서는 유럽의 관념과 관행이 유럽인의 이주와 소수 식민지 엘리트의 정주를 통해, 기독교 선교회의 문명화 선전을 통해 확산"된다.  문화인류학 개론 책들을 읽어보면 잘 안 변하는 사례 중에 하나로 거론되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브라반치오 같은 경우에는 데스데모나가 그렇게 한 것은 굉장히 충격이 컸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오, 혈연의 반역이로다! O treason of the blood!", 혈연의 반역이라는 것이 내 딸이 이럴 수가 있어 라는 말도 되지만 혈연이라는 건 정말 안 변하는, 사람이 거기에 자기를 얽매는 딱 거기다 묶어놓는 그런 것 중에 하나이다.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판단치 말라. 어떤 마법이 젊음과 처녀성의 특질을 / 현혹한 거 아닐까? 책에서 읽은 적 없는가, 로드리고, 그런 종류에 대해서?" 책에 쓰여질 리가 없다. 책이라고 하는 건 세상이 아주 왕창 변한 다음에야 그것을 뒤늦게 쓸 뿐이다.  책이 뭔가 세상을 앞서가는 일이라는 것은 사실 글쎄, 책을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어떤 미래학의 책은 저는 아닌 것 같다. 2004년에 《책과 세계》를 쓴 이후로 텍스트는 항상 컨텍스트에 뒤따라 간다 라고 하는 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다. 그러니까 로드리고한테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이걸 물어보는 것이다. 브라반치오가 하고 있는 이 이야기가 참으로 황당하기 때문에, 브라반치는 자기 정체성이 뚜렷하다. 베니스와 살고 있는 동네와 살고 있는 집을 가지고 자기를 규정하니까 그것은 객관적으로 물체적인 어떤 외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브라반치오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데스데모나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냥 아버지로서 이해를 못한다기보다는 베니스에서 기득권을 가진 상원senate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브라반치오라고 하는 사람을 쭉 추적해서 읽어보는 것도 이 드라마에서의 흥미로운 대목 중에 하나이다. 대체로 사람들이 많이 주목하지 않는 지점들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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