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69 제29강(1) 셰익스피어 《오셀로》

 

2023.11.29 문학 고전 강의 — 69 제29강(1) 셰익스피어 《오셀로》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29강(1)

- 드라마 제목The Tragedy of Othello, the Moor of Venice(베니스의 무어 인 오셀로의 비극)오셀로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니스’라는 배경을 전제하여야 한다.
- 오셀로, 데스데모나, 이아고질투하는 오셀로, 착한 데스데모나, 사악한 이아고라는 전형적 규정을 벗어나야 한다.베니스라는 배경 위에서 전개되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관계

오손 웰즈의 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HWpiby5nHYs

 

 

 

셰익스피어의 드라마 《오셀로》는 의외로 많은 대립 구도를 가지고 있는데 그냥 치정극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경향이 있는 드라마이다. 오늘 《문학 고전 강의》 제29강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속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제29강은 두 페이지 반 정도밖에 안 되는데 제목부터 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래서 제29강에 있는 내용을 일단 간단하게 설명하고 그다음에 보충 설명을 해보겠다. 《오셀로》는 날 잡아서 바짝바짝 읽어볼 만한 어떻게 보면 《맥베스》보다도 훨씬 더 내면의 갈등이 있다. 《맥베스》의 상황은 보통 사람들은 겪어보기가 어렵다. 우리가 글래미스의 영주 같은 자리에 올라가기는 어려운데 《오셀로》는 일상생활 속에서 반드시 어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그 문제가 아니라도 많이 겪어볼 수 있는 그런 사태들이다. 그래서 《오셀로》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갈등 기재들이 많으니까 읽어볼 만하다. 유명한 영화인 《시민 케인》의 오손 웰즈가 연출한 《오셀로》 작품이 있다. 데스데모나 역을 맡은 수잔 클로티어라고 하는 배우가 있는데 아주 전형적인 1920-30년대에 태어난 여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오셀로는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의 비극The Tragedy of Othello, the Moor of Venice"이다. 셰익스피어 드라마에서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베니스라고 하는 장소가 드라마 제목에 나와 있고 그다음에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의 비극》에도 나오는데, 베니스라고 하는 장소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된다. 베니스라는 장소에 무어인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셰익스피어가 왜 베니스를 무대로 삼았는가는 생각해 볼 게 있다. 

우선 오셀로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틀이 있다. 착한 데스데모나 그다음에 엄격하지만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반대를 '극복'하는게 아니라 '무시'한다. 무시하고 오셀로와 사랑을 했는데, 이제 질투에 눈먼 오셀로, 이것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다. 질투라고 하는 것은 누구도 해서 안 되는, 그런데 질투는 인간 움직이는 힘이다. 한국인이 또 질투가 심하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질투라고 하는 것이 인간을 움직이는 힘인 건 틀림없다. 질투에 눈먼 오셀로라고 했을 때 그 질투라고 하는 심정은 부러움, 열등감 그다음에 넘고 싶은 어떤 경쟁심 이런 것들이 아주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오셀로가 가진 질투심의 전개에 주목을 하지 말고, 그 질투심이라는 감정이 처음에는 자만심, 우월감, 뿌듯함 이런 것에서 시작해가는데, 질투라고 하는 것 하나에 포인트를 맞춰서 지나치게 거기다가 막 눈을 가져다 대면 다른 게 안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중요한 포인트이다. 착한 데스데모나와 질투에 눈먼 오셀로라는 식으로 전형화해서 이해하면 안 되고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미묘하게 변해가는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 이 두 사람이 있는데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처음부터 봐야 된다. 희랍비극은 다르다. 신에 의해서 결정된 운명에 순종하면서도 자신에게 닥쳐온 tykhē를 무시하는, moira를 향해 밀고 들어가는 것이 이제 숭고함을 드러내는데, 여기서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의 비극"이라고 했을 때 오셀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들을 자기가 다 선택한 것이다. 정해진 moira는 없다. 인간의 비극성이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라는 것이 르네상스 비극의 특징일 테고, 그런데 그 오셀로의 비극이라고 하는 게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베니스에서 이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라고 할 때 콜로노스라고 하는 장소가 오이디푸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오셀로에게는 베니스에 살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은 오셀로에게는 영향을 미친다. 이 제목에서 오셀로의 비극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것을 유추해내야 되는데, 그 유추라고 하는 것은 베니스의 무어인이라고 하는 사회적 관계, 그 집단의 관계 그리고 그 집단의 관계를 표상하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관계, 이 관계 속에서 비극이 나온다. 어쨌든 착한 데스데모나, 질투에 눈먼 오셀로 이 두 개의 구도를 그냥 그들이 놓여 있는 배경을 싹 삭제해버리고 그 두 사람만의 어떤 마음이 오고 가는 관계로 보면 안 된다. 그게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첫째로 주목해야 하는 포인트이다. 오셀로가 나쁜 놈이 되어버리는 그리고 데스데모나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짠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다음에 중요한 인물이 이아고이다.  '이아고는 나쁜 놈, 오셀로는 호구' 거의 이런 것들이 상투적으로 붙어 있다.  그러니까 '사악한 이아고'는 우리에게 많은 걸 주지 못한다. 이아고의 악마성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그리고 과대평가된 건 아닐까. 겉으로 보면 이아고가 그렇게 나쁜 놈 같아 보이진 않는다. 아이고가 나쁜 짓은 안 한다. 얼핏보면 나빠 보이는 게 오셀로이다. 나쁘다는 게 악한 짓인데, bad와 evil의 경계선에서 미묘하게 어기적거리고 있는 것 그런 것들이다. 

1번이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을 주목할 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단 말인가 하는 것들만 생각하지 말고,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라고 하는 배경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이 배경 속에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오셀로의 말과 오셀로의 행동, 데스데모나의 말과 데스데모나의 행동 이런 것들로 나타난다. 그다음에 2번은 이아고의 역할과 의미를 보자는 것이다. 이아고는 과연 나쁜bad 놈인가 악한evil 놈인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가. 이아고가 여기서 어떤 일을 저질렀길래 영원히 이렇게 욕 먹는 놈이 되고 있는가를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 3명이 굉장히 중요하다.

오셀로의 말과 오셀로의 행동 그다음에 데스데모나의 말과 겉모습으로 나타나는 행동, 내면이 어떤가 이런 것들은 이제 차츰차츰 따져 보기로 하고 얼핏 드는 생각들을 말해보면 데스데모나도 사실 이렇게 보면 잘못한 것은 없고 오셀로의 질투를 유발시킨 증거를 생각하면 억울한 점이 있다. 또 '손수건 하나 가지고 그럴 일이야' 이런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처럼 오셀로도 가볍고 경박하다.  그런데 데스데모나도 잘해 보이는 건 없다. 아버지의 말을 안 듣는 건 베네치아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말이다. '극복'이 아니라 완전히 아버지를 속된 말로 쌩까고 말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동정을 보일까. 죽었기 때문일까. 약자를 동정하는 인간 보편의 심리에 딱 데스데모나가 들어맞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것 저런 것들을 고려하면서, 일단 이번 주에는 《오셀로》가 시작이 되었다. 이 책은 책상에 앉아서 읽지 않아도 된다. 갖고 다니면서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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