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E. 카페츠: 그리스도교의 신

 

그리스도교의 신 - 10점
폴 E. 카페츠 지음, 김지호 옮김/도서출판100

서문
1. 유대교와 유일신론의 발전
2. 헬레니즘과 그리스도교의 출현
3. 고전 그리스도교 전통의 전제들
4.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 교리
5. 중세
6. 개신교 종교개혁
7. 계몽주의와 근대
8. 20세기
9.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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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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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간결한 책은 그리스도인들이 2천 년 동안 신에 관하여 숙고한 방대한 내용을 조망하기 위한 안내서입니다. 이 책에서 저는 '역사신학'을 시도하려 합니다. 역사 연구라는 점에서 이 책은 성서 시대부터 현재까지 그리스도교의 신 이해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연대기적 틀을 따릅니다. 신학 연구라는 점에서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신에 대한 신앙의 의미를 어떻게 오늘날에 맞게 표현할지를 고민할 때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몇몇 문제를 강조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이 책의 논의는 이 역사의 가장 기본적인 윤곽만 소개할 뿐이기에, 주제들을 완전하게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합니다. 실제로 여기서 그저 몇 문장이나 단락으로 다룬 쟁점들은 모두 각 분야에 정통한 학지들이 쓴 논문에서 전문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서 극도로 복잡한 역사의 두드러진 흐름과 그 안의 중요한 긴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에 대해 확언하는 바에 대해서, 또한 그러한 확언을 공식화하는 방식을 놓고 자기들끼리 논쟁을 벌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이해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9 유일신론과 택일신론은 둘 다 오직 한 신만 경배한다는 말이지만, 학자들은 이 두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즉 택일신론은 여러 신이 존재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중 딱 한 신만 골라서 섬기는 것인 반면, 유일신론은 오직 한 분의 진정한 신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핵심 문제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완전한 형태의 유일신 신학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종교사에서 엄청난 전환점이며, 이 전환점이 없었다면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의 탄생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4 이러한 새로운 결말은 유배 중인 이스라엘이 여전히 신의 백성일 수 있음을 내비친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약속의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에 충실한 것이 이스라엘과 신의 관계를 규정한다는 것이죠. 게다가 야웨가 자기 백성을 벌하기 위해서 바빌로니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그가 섭리하는 능력을 더 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음을 내비칩니다. 이제 야웨를 이스라엘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모든 역사의 주인으로 보게 된 것이죠. 

66 서방 전통 내지 라틴 전통이 일신론적 관점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동방전통 내지 그리스 전통은 세 인격의 독립적 본체를 강조하면서 삼신론의 방향으로 기울었습니다. 서방은 신의 하나됨에서 고찰을 시작했고, 거기서부터 세 인격 사이의 실제 구별을 긍정하는 난제로 넘어갔습니다. 반면 동방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독립된 실재에서 고찰을 시작했고, 그런 다음 신의 일치를 긍정하려는 시도 중에 동방 특유의 어려움을 발견하였습니다. 교회는 이런 양극단 속에서 삼위일체론의 중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155 종교 철학의 과제는 종교적 신앙 내용의 합리적 필요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슐라이어마허와 관련하여, 헤겔은 종교를 감정으로 보는 견해를 경멸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견해가 이성을 배제함으로써 인간 존재를 격하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슐라이어마허와 달리 신학은 철학과 별개가 아니며, 오히려 신에 대한 지식과 관련된 철학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절대 의존이 진정 종교의 본질이라면, 강아지야말로 최고의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슐라이어마허와 극명히 대조적으로, 헤겔은 인간이 자유라는 감정에서 자신의 신성함을 발견한다고 확언했습니다. 인간 역사는 더 큰 형태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213 과거를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은 역사에서 현재 순간의 방향에 대한 관심에서 어느 정도 비롯됩니다. 게다가 모든 역사 해석은 동시대의 환경이 제기한 중요한 도전을 인식함으로써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신 이해 방식에 대한 이 간략한 역사는 신을 믿는 신앙의 의미를 살피는 현재의 성찰을 위한 여러 선택지와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만으로는 이 모든 물음에 답하기에, 그리고 역사의 현 순간의 모든 도전에 옹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역사적 조망에서 도출되는 딱 부러지는 깔끔한 결론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조망은 그리스도교 전통이 변화하는 필요와 통찰들에 응답하면서 계속 발전함에 따라, 미래가 열려 있을 뿐만 아니라 토론, 논쟁, 논란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215 그리스도교의 신론은 순전히 '그리스도교적’이기만 한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 중 상당수가 유대교 및 이슬람교와 공유하는 부분입니다. 이 특수한 중첩은 고대 이스라엘 전통에 공통의 조상을 두고 있다는 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신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발전시키면서 주변 환경으로부터 여러 특색을 빌려와서 개작하였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 철학에서 매력적인 점을 많이 발견했고, 이 전통을 성서의 유산에 동화시켰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가장 독특한 점인 삼위일체적 신론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구축한 범주들로 성서의 신에 대해 말하려는 시도를 통해서 발전했습니다. 고전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헬레니즘의 교차점에서 등장했는데, 이 전통들 모두 획일적으로 통제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각자 자기 안에 신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여러 방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 분명히 나타나는 상당수의 내적 다원성은 한 전통의 다양한 측면과 다른 전통의 다양한 조각들을 결합하는 다양한 가능성에서 나온 결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216 오늘날 핵심 쟁점은 그리스도교 내부의 에큐메니즘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및 비그리스도교 종교와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발견하는 세계가 점점 작아져서 더욱 서로를 의존하게 되는 우리 시대에는, 다른 종교들과 그들의 역사가 그리스도교 못지않게 복잡성을 띤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이 전통 중 일부는 '신'에 대해 이야기는 반면, 또 다른 전통들은 세계에서의 인간 실존의 신비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 상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궁극적 실재의 본성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또한 다른 종교 전통의 추종자들에게 존중과 겸손함을 가지고 다가간다면, 과거를 살피는 것만으로는 예견할 수 없는 무언가 새롭고 희망적인 것이 미래에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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