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바사리: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5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1. 29.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5 - 조르조 바사리 지음, 이근배 옮김, 고종희 해설/한길사 |
제5부
리돌포, 다비드와 베네데토 기를란다요(Ridolfo, David and Benedetto Ghirlandaio)
조반니 다 우디네(Giovanni da Udine)
바티스타 프랑코(Battista Franco)
조반 프란체스코 루스티치(Giovan Francesco Rustici)
프라 조반니 아뇰로 몬토르솔리(Fra Giovanni Agnolo Montorsoli)
프란체스코 살비아티(Francesco Salviati)
다니엘로 리차렐리(Daniello Ricciarelli)
타데오 주케로(Taddeo Zucchero)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프란체스코 프리마티초(Francesco Primaticcio)
티치아노 다 카도레(Tiziano da Cadore)
야코포 산소비노( Jacopo Sansovino)
아레초의 레오네 리오니(Leone Lioni of Arezzo), 그밖의 조각가와 건축가들
돈 줄리오 클로비오(Don Giulio Clovio)
현대 이탈리아의 화가들
플랑드르의 여러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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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2902 [해설]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시인, 사상가다. 바사리의 방대한 저서는 결국 자신과 동시대인이었던 미켈란젤로를 고대 이래 최고의 작가로 등극시키기 위함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바사리에 의해 탄생된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개념은 미켈란젤로에게서 나온 것이며, 바사리는 그의 능력을 신의 창조 영역에 비교했다. 초기 작품은 15세기 후반의 콰트로첸토 르네상스로 시작했으나, 16 세기 초에 제작된 「시스티나 천장화」, 「다비드」를 비롯한 회화와 조각에서 이상적 아름다움을 구현한 전성기 르네상스 양식을 탄생시켰다.
바사리가 자신을 비롯한 동시대 작가들은 미켈란젤로 이후 더 이상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낼 수 없으므로 이 위대한 미술가의 방식, 즉 마니에라를 따라하는 것이 최상의 미술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매너리즘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하지만 피렌체의 폰토르모에서 시작된 매너리즘의 반고전주의적 · 반자연주의적 개념은 이미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에서 보이기 때문에 미켈란젤로 자신이 매너리즘 양식의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시스티나 천장화」에는 1세기 후의 바로크적 요소도 있는데 이는 미켈란젤로가 하나의 양식에 국한하지 않고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등 여러 양식을 동시에 구사했음을 보여준다. 미켈란젤로는 또한 르네상스 시대 미술가들의 과제였던 객관적 재현 문제를 완벽하게 달성하여 그것을 정점에 올려놓았으며 동시에 미술은 객관적 표현을 넘어 작가의 주관적 · 내면적 사고의 표현임을 보여줌으로써 근대 미술의 개념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 거장의 위대함이 있다.
...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로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으로 제작되었다. 주제는 예수의 재림을 예언한 구약의 예언자들과 예수의 선조들 그리고 천지창조다. 미켈란젤로가 4년에 걸쳐 거의 혼자 작업하여 완성한 「시스티나 천장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꼽힌다. 그동안 수세기에 걸친 역사적 평가에서 미켈란젤로는 형태는 완벽하나 색채는 탁월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교회 안의 벽화나 천장화는 수세기 동안 먼지와 촛불의 그을림 등에 노출되기 때문에 원래 색상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 완성한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를 복원한 결과 미켈란젤로가 이곳에서 사용한 색채가 기존에 시용하지 않았던 강렬하고 추상적인 색채들이었음이 밝혀졌고 이들 색채는 폰토르모 등에 의해 매너리즘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미켈란젤로가 형태뿐만 아니라 색채에서도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음을 보여주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평생에 걸쳐 율리우스 2세의 거대한 무덤 프로젝트로 고통받았으나 결국 「모세」상만이 완성되어 로마의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있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에 설치되었다. 그의 또 다른 역작은 60세가 넘어 제작한 시스티나 경당의 「최후의 심판」으로 교황 바오로 3세의 주문으로 1536년에 착수하여 1541년 완성했다.
이 작품은 공개 직후 수염 없는 그리스도, 날개 없는 천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 나체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여러 차례 파괴당할 위기에 처했다. 당시에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교회가 18년에 걸쳐 트렌토 공의회를 개최하며 교리 정비를 하고 미술의 표현에서도 엄격함을 강조하는 등 가톨릭 개혁이 진행 중이던 시기로서 결국 미켈란젤로가 사망하던 해 이 책에서도 소개된 제자 다니엘로 리차렐리가 나체의 중요한 부분을 천으로 가리는 덧칠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최후의 심판」은 15세기 초반 원근법 발명 이후 르네상스 회화의 근간이었던 투시도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의 공간 표현방식을 열었다는 점에서 회화사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말년의 걸작으로는 3점의 미완성 조각 「피에타」가 있다. 이들 조각은 젊은 시절 인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고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의 깊이와 신앙을 대리석에 표현했다. 미켈란젤로는 90년 가까운 긴 생을 살면서 하나의 양식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전형이 되었고, 바사리는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을 증언하고 존경한 가장 충실한 제자였다. 동시에 미켈란젤로는 바사리 전기의 절정이자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다.
2907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저 유명한 조토Giotto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계몽된, 근면하면서도 뛰어난 예술가들은 행운의 별과 조화된 성품을 가지고 자신들의 재능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탁월한 예술로서 예지라고 부르는 최고의 인식에 더욱 더 접근하려고 위대한 자연을 모방하고자 무한한 노력을 경주했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그 무렵 인자한 하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눈길을 지상으로 돌리시어 예술가들의 이런 헛된 노력과 성과 없는 연구, 주제 넘은 자부심으로 어둠에서 빛으로보다는 더욱더 진리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인식하시고, 이러한 그릇됨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만능의 넋을 지닌 한사람을 지상에 내려보내기로 하셨다.
그는 각 분야의 예술과 학예에 뛰어났으며, 그의 작품만이 회화에서 선과 윤곽과 명암의 표현을 잘 구사하여 부조성 浮彫性을 부여함으로써 완전성을 보여주었다. 조각에서도 정확한 판단력으로 제작했으며, 건축술에서는 비례가 균형 잡히고 장식이 풍부한 생활하기에 쾌적하고 깨끗한 건물을 제작했다.
그밖에도 신은 그에게 진정한 생활철학과 아름다운 시를 짓는 재능을 부여했고, 누구나 그를 인간 생활과 작품 활동은 물론 성품의 고귀함, 모든 행동에서 훌륭한 모범으로 칭송했으며, 그를 땅 위의 사람으로 알기보다는 하늘이 낸 사람으로 여겼다. 그는 회화, 조각 및 건축에서 예술과 실천이 너무나 독자적이었으므로 토스카나 지방의 천재들은 그를 이탈리아에서 누구보다도 모든 분야의 예술에 부지런하고 뛰어난 사람으로 여겼는데, 신은 그에게 조국으로서는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다운 피렌체시를 맡김으로써 그로 하여금 이 도시를 가장 완벽한 기예로 장식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1474년에 카센티노Casentino에서 숙명과 행운의 별 아래서, 고귀하고 유덕한 부인과 매우 유서 깊은 카노사Canossa 백작의 후손인 로도비코 디 레오나르도 부오나로티 시모네Lodovico di Leonardo Buonarrori Simone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3월 6일 일요일 밤 8시경이었다. 당시 그의 아버지 로도비코는 그 옛날 성 프란체스코S. Francesco가 聖痕을 받은 아레초 교구에 속하는 베르니아Vernia 동산 근처의 키우시Chiusi와 카프레세Caprese읍의 치안 판사判事였다. 그의 부친은 태어난 아기가 어딘가 초자연적이고 초인적인 것을 느꼈으며, 이름을 미켈란젤로라고 지었다.
2990 만일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려진 인물의 사색과 감정에서 다른 화가들이 표현할 수 없는 비상한 박력을 느낄 것이다. 그리하여 남녀노소의 갖가지 자세에서 하늘이 그에게 내린 은총과 더불어 그의 예술이 얼마나 큰지 헤아릴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인물은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까지 뒤흔든다. 돋보이게 그린 곳에서 보이는 부드럽고 조화된 단축법과 여기저기 세심한 뒤처리가 정말 뛰어나 진정한 화가의 그림임을 느끼게 한다. 어느 화가도 진정한 심판, 진정한 천벌, 부활의 세계를 미켈란젤로만큼은 도저히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최후의 심판」은 신이 지상에 보내신 어떤 사람에게 어느 정도 예지를 안겨주실 수 있는지를 보여준 위대한 표본으로 생각된다. 회화 예술을 체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미켈란젤로가 그린 인물화의 필치에 놀라서 떨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이 노작을 본 화가들은 과거와 현재의 다른 작품들을 그의 작품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지 혼란을 느낄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이 세대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중에서도 특히 행복하고 운좋은 이가 바로 교황 파울루스 3세였다. 하늘은 교황성하에게 이런 영광을 향유할 것을 허락하셨다. 성하의 이름은 일찍이 세상에 이름이 드높은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그 명성을 영원히 전하리라. 미켈란젤로의 탄생은 실로 지금 세대에 사는 모든 예술가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왜냐하면 화가, 조각가, 건축가로서 그의 작품은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3038 미켈란젤로는 예술을 천직으로 생각하여 전 생애를 바쳐 꾸준히 노력했으며 어떤 어려운 일이든 성취하고야 말았다. 자연은 그를 화가로 길러냈다. 해부학을 열심히 연구하여 근육의 배치, 골격과의 관계와 인체를 움직이는 조직들을 하나하나 밑바닥부터 연구했다. 그밖에도 각종 동물 특히 말의 근육을 열심히 연구했다. 미켈란젤로는 예술의 모든 부문에 통달한자에게는 한 부문에만 집착하는 자가 도저히 미치지 못함을 우리에게 잘 보여준 예다. 즉 그는 어떤 선지자보다도 뛰어난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3052 참말로 미켈란젤로는 예술을 천직으로 삼는 모든 이의 모범이 되도 록 하고자 하늘이 세상에 내린 사람이다. 그의 생활과 작품은 진지하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예술가들이 걸어갈 길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게 된 것, 또 친구로서 친하게 된 것을 마음 속 깊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3059 이윽고 밤이 되자 회원들이 붐빌 정도로 유해 둘레에 모여들었다. 최연장자인 뛰어난 예술가들이 그곳에 준비된 횃불을 하나씩 들었으며 젊은 예술가들은 관을 만져보려고 했는데 관 가까이 가서 어깨를 관 밑에 대본 사람은 운이 좋을 정도였다. 앞서 세상을 살다 간 최고 예술가의 유해를 운반했다는 것을 훗날 자랑거리로 삼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제단 주위의 광경을 구경하려고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더구나 미켈란젤로의 유해가 도착하여 산타 크로체성당으로 옮기도록 되었다는 소문만 난다면 더욱 많은 시민이 몰려들어 혼란과 법석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3060 행렬은 미켈란젤로의 공적을 칭찬하는 인파를 뚫고 겨우 산타 크로체 성당에 도착했다. 성직자들의 관례에 따른 미사 의식이 끝나고 유해는 성기안치소에 안치되었다. 이때 직무에 따라 등장한 아카데미아 회장은 참여한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관을 열고 과거에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 위인의 사상을 바라보았다. 이미 22일 전 관 속에 넣었으므로 유해가 틀림없이 부패되었으리라고 회중은 믿었지만, 시체는 조금도 악취를 발하지 않을 뿐더러 창백한 얼굴은 전혀 변함이 없고, 완연히 정갈스럽게 잠들어 있는 듯하며, 머리와 뺨을 만지니 조금 전까지도 살아 있었던 것같이 생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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