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조직신학 서론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1. 22.
조직신학 서론 -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지음, 박정수 옮김/비아 |
1. 조직신학의 필요성
2. 그리스도교 신론의 문제
3. 과학적 우주론 시대의 창조론
4. 그리스도론의 체계적 구성
해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에 관하여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저서 목록
10 여기서 우리는 이 장의 핵심 주제인 조직신학이 필요한이유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은 결국 진리 물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하느님, 예수가 믿는 하느님이 유일하고도 참된 하느님일 때, 바로 그때라야만 유대인이 아닌 사람도 하느님을 믿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생길 것입니다.
12 진리의 최종 기준을 규정하는 것은 일관성coherence입니다. 일관성은 진리의 속성이기도 하기에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참된 것은 무엇이든 궁극적으로 다른 모든 진리와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진리는 하나이면서 모든 것을 아우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는 한 분 하느님이라는 개념과 밀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25 근대에 새롭게 제기된 도전 중 두 가지만 소개하자면 첫번째 도전은 근대 과학의 출현 그리고 이에 바탕을 두고 전개된 현실 전체에 대한 특별히 인간의 삶과 역사에 대한 전적으로 세속적인 해석이라는 하나의 완결된 기획입니다. 이는 근대 문화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을 적어도 공적 담론의 영역에서는 쓸데없고 의미 없는 것이 되게 했습니다. 또다른 주요한 도전은 권위에 의지하는 모든 논증 형식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33 이때 조직신학자는 논쟁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논쟁은 우리의 눈을 열어 양쪽 모두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해줄 수 있습니다. 논쟁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공존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논쟁 가운데 우리는 끊임없이 오직 하나뿐인 진리에 관심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합의가 되어 새로운 종합의 윤곽이 아주 가끔 눈에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현재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합의가 된 보편적인 종합이 이루어지리라 전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36 세속 문화 세계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이라는 말을 당연시하지 않으며, 혹 그렇다 해도 종교 언어의 징표, 종교 담론이라는 고립된 섬 안에서만 유효한 말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이 신학함이 이루어지는 오늘날 상황이 지닌 특징입니다.
37 좀 더 심각한 문제는 상당수 성직자, 목회자가 하느님의 현실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결과 자신들이 전해야 할 메시지를 변화하는 시대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른 무엇보다 해야 할 일은 세속 문화의 우상숭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하느님의 궁극적 현실성을 새길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90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을 잘 보여주는 구절이라며 공격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교 포괄주의의 핵심, 달리 말하면 온 인류를 향해 교회가 지닌 사명의 원천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분명하게 다른 구원자가 있다는, 혹은 다른 이가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교 문화권이 아닌 다른 문화권에 속한 이들, 다른 종교 전통의 구성원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92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진리 주장은 어떠한 종류의 것일까요?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진술은 또 다른 명제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리고 오직 그를 통해서만 창조주 하느님이 당신의 피조물을 죄와 타락으로부터 구원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예수는 성육신한 하느님의 영원한 아들입니다. 그는 피조물이 어떻게 이 지상의 삶을 넘어서, 동시에 현재 매순간 영원한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며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리스도교인이 예수를 성육신한 하느님의 영원한 아들이라고 믿는 한 다른 누구도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존 힉의 지적은 옳습니다.
100 예수가 하느님을 부르는 방식, 그리고 그가 전한 메시지의 공통 요소를 찾는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예수가 선포한 임박한 하느님 나라, 그리고 하느님을 아버지라 말하는 방식 사이의 유사성일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의 선포는 세례 요한처럼 하느님의 심판이 곧 밀어 닥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온 인류를 사랑하고 구원하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102 예수가 공적인 활동에 나서기 전한 동안 그를 제자로 두었을 세례 요한은 하느님의 미래에 대해 상당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미래는 하느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고대하며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반면 예수의 경우 임박한 하느님 나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은총 어린 현존을 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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