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엔 질송: 철학자들의 신

 

철학자들의 신 - 10점
에티엔 질송 지음, 김진혁 옮김/도서출판100

• 야로슬라프 펠리칸의 서문
• 서론

Ⅰ. 신과 그리스 철학
Ⅱ. 신과 그리스도교 철학
Ⅲ. 신과 근대철학
Ⅳ. 신과 현대 사상

• 역자 후기
• 찾아보기

 


75 그리스인들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신학보다 더 나간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지적으로 나약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둘 다 인간의 이성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데까지 탐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최고 원인인 누군가, 곧 "나는 있다"라는 말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는 누군가를 상정합니다. 이렇게 상정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실존을 실재의 가장 깊은 층이자 신성의 최고의 속성으로 확립하고 있었습니다. 

84 유한하고 우연한 존재자들은 그러한 신의 실존의 일부분으로서가 아니라, 영원히 그 자체로 '있는 나'에 대한 유한하고 부분적인 모방으로서 존재를 부여받습니다. '있는 나'가, 그 자체로는 있지 않은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는 이 활동을 그리스도교 철학에서는 '창조'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교의 신이 낳은beget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신의 하나임oneness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신의 하나임에 침여하지 못한 것은 필연적으로 난 것이 아니라 창조된not begotten but created 것이 라는 사실이 여기서 나옵니다. 

85 플로티노스의 경계는 일자와 일자로부터 난 것 사이를 나눕니다. 반면, 그리스도교는 신 및 신이 낳은 말씀과 신에 의해 창조된 모든 것을 나누는 경계를 그립니다. 거기서는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신적 질서에서 배제됩니다. '있는 나'와 우리 사이에는 무한한 형이상학적 골이 놓여 있습니다. 본유적으로 필연성이 결핍된 우리의 실존과 달리 신의 실존은 완전한 자기 충족이기에, 그 골은 신과 우리의 실존을 떼어 놓습니다. 

103 실존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어떤 사물이 있게 하고 그 사물이게끔 하는 활동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단지 우리 인간의 경험에서 한 사물의 본질이 '있음'인 경우는 없으며 그 본질이 '어떤 특정 사물임'이 아닌 경우도 없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경험에 주어진 사물은 어떤 것도 그 정의가 실존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물의 본질은 실존이 아니고, 실존은 반드시 본질과 구분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104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 지점까지 온 것은 성 아우구스티누수가 모든 사물이 성서의 언어로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시는 분이 우리를 창조하였다"라고 외치는 것을 들은 그날 그리스도교 신앙의 힘으로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가장 먼 영토에 도달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영원히 계시는 그분은" 본질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영원한 진리, 진정한 사랑, 사랑받는 영원"으로 계셨습니다.  

105 인간의 이성은 모든 형이상적 원리의 최고점보다 더 멀리 갈 수 없기에, 이 지점보다 더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근본적인 진리를 갖게 되면 그것을 조심스럽게 보존할 것이라고 예상한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거의 곧바로 그것을 상실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어떻게 그리고 왜 잃어버렸는지가 이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