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록: 로마 시티 Rome City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7. 9.
로마 시티 Rome City - 이상록 지음/책과함께 |
프롤로그 : 로마만의 시공간
1. 세계의 머리 : 로마의 시작
2.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곳 : 마을에서 제국으로
3. 부서짐의 역사 : 고대의 무덤, 포룸로마눔
4. 파괴자 혹은 창조자 : 율리우스 카이사르 1
5.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율리우스 카이사르 2
6. 이름의 힘 : 카이사르의 후계자들
7. 메멘토 모리 : 내일의 패배자들을 위한 개선식
8.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9. 팔자 좋은 삶 : 유일무이했던 시절
10. 위대한 패배 : 제국은 끝나지만 문명은 남아
11. 제2의 로마 : 고대에서 중세로, 인간에서 신으로
12. 로마의 새 주인 : 신의 대리자, 유럽을 다시 만들다
13. 스승들의 스승 : 천재들을 위한 학교
14.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연극 : 콜로세움이 보여주는 희극과 비극
15. 천 년 동안 잊혔던 기술 : 공중에 떠 있는 지붕, 판테온
16. 로마의 잔해 : 중세의 방식, 로마네스크와 고딕
17.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다 : 재생의 시대, 르네상스
18. 신과 인간의 사이 : 시스티나 예배당의 거인들
19. 홍수와 둑 : 르네상스의 또 다른 반쪽 면
20. 책과 칼 : 피로 물드는 이탈리아
21. 르네상스의 비용 : 다시 폐허가 된 로마
22. 격동하는 유럽 : 바로크, 무기가 된 이미지
23. 예술의 격전지 : 두 천재 예술가의 전쟁
24. 빛의 시대 : 로마의 황혼
25. 승자 없는 승리 선언 : 이름으로만 존재하던 이탈리아가 만들어지다
미주
참고문헌
프롤로그 : 로마만의 시공간
15 이런 이유로 로마는 오랫동안 많은 이방인을 끌어당겼다. 독일의 괴테 역시 그런 이방인이었다. 그는 로마를 여행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로라에서 시작하는 역사는 세계 어느 곳의 역사와도 다르게 읽힌다. 다른 데서는 바깥에서 안으로 향하는데, 여기서는 안에서 바깥으로 향한다. 모든 것은 이곳에 모여 있다가 이곳으로부터 퍼져 나간다. 로마의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로마라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지만 괴테와 같은 이유로, 로마의 '바깥'인 유럽, 더 나아가 세계에 관한 이야기로도 향하게 될 것이다. 서양문명의 두 뿌리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고 일컬어진다. 전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의) 고대 그리스 문명 후자는 유대교와 그 분파들, 특히 그리스도교 문명을 말한다. 그런데 헬레니즘은 로마제국이 계승하고 완성해 널리 퍼뜨렸고, 지역 종교에 불과했던 그리스도교 로마교회를 거치며 세계 종교의 위상에 올랐다. 로마는 고대 로마문명의 중심지였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의 본산이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양문명은 로마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내력을 지구 반대편 세상의 이야기로만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좋든 싫든 오늘날의 세계는 유럽의 문자, 철학, 문화, 정치와 제도를 기준으로 통합되고있으니까. 국가간의 거리는 나날이 단축되고 국경과민족의 경계는 옅어져,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마냥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17 로마의 자취를 좇는 일은 분명 유익할테고 교훈도 얻을 수 있겠지만, 사실 이건 부수적이다. 로마라는 도시 이야기를 나누려는 이유로 가장 먼저 꺼내고 싶은 대답은 "재미있으니까"다. 지금의 로마는 변화가 느리고 낡은 장소라는 이미지를 풍기지만 사실 이 도시는 2700년 내내 멈춰 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단지 생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격렬히 움직여 왔기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이야기 창고가 되었다. 이 책엔 '세계 최초' 또는 '세계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이야기들을 담았다.
로마의 이야기는 한사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피와 살로 실재했던 수많은 인간의 의지와 행동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말과 글뿐만 아니라 실제로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장소, 물건, 이름 등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은 이 이야기들의 후속편 혹은 외전이기도하다.
누군가 로마를 한 마디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순례의 도시라고 답하고 싶다. 순례를 떠나는 사람은 위대한 뭔가의 자취를 우러러보며 정신이 고양되고 새로이 영감을 얻어 지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수백 년 전부터 많은 순례자가 위대한 흔적을 찾아 로마로 향했다. 그 흔적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고스란히 님아 있다. 이 책을 보고 로마에 가보고 싶다, 또는 다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겠다. 로마의 낡은 벽돌더미나 부러진 기둥들을 그냥 무심코 넘기지 않게 된다면 더 좋겠다. 로마에서는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 해도 사연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은 없으니까.
37 괴테는 1786년부터 1788년까지 1년 10개월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가장 오래 머물렀고 가장 큰 자극을 받은 도시는역 시 로마였다. 로마를 더 빨리 보려고 피렌체 같은 도시들은 잠깐 머물고 이내 지나칠 정도였다. 괴테는 로마에 도착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마침내 나는 이 세계의 수도에 도달했다! 만일 내가 좋은 길벗과 함께 아주 견식 있는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15년전쯤에 이 도시를 구경할 수 있었더라면 나를 행운아라 불러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의 수도를 안내자도 없이 어차피 혼자서 방문할 운명이었다면, 이렇게 뒤늦게 나마 이러한 기쁨을 선물 받을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다.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 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로마는 하나의 세계이며 진정으로 로마를 알려면 적어도 몇 년은 필요할 것이다. 나는 대충 보고 훌쩍 떠나버리는 여행객들이 오히려 부러울 지경이다.
지고한 대상들을 접하기 위해 로마를 이리저리 쏘다니면 이 거대한 괴물 같은 존재들이 우리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중요한 유적지를 찾아 다녀야 하지만 로마에서는 그런 유적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넘쳐난다. 어디를 가든 어디에서 있든 각양각색의 풍경이 펼쳐진다. 궁전과 폐허, 정원과 황야, 집과 마구간, 개선문과 기둥 등이 아주 가까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종이 한 장에 다 그려 넣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 것을 모두 쓰려면 철필이 천 개는 필요할 텐데, 펜 한 자루로 무슨 묘사를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이 감탄한 나머지 저녁이 되면 피곤해서 기진맥진해지고 마는데 말이다.
괴테가 바이마르를 떠났던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일상에는 가치 있는것과 무가치한 것이 뒤섞여 있어서 우리는 간혹 휘발적인 피상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원의 도시'에서는 긴 시간이 일종의 거름망이 되어 영속적이고 본질적인 가치, 즉 진정한 아름다움과 의미만이 단순하고 분명하게 님아있다. 그렇지 못한 것은 시간의 가공할 파괴력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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