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소동파 산문선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7. 29.
소동파 산문선 - 소식 지음, 류종목 옮김/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형벌과 포상을 지극히 충후하게 함에 관해 논함(刑賞忠厚之至論) ··3
남행전집서(南行前集敍) ·············12
유후론(留侯論) ··················15
봉상 태백산의 기우제 축문(鳳翔太白山祈雨祝文) ··25
희우정기(喜雨亭記) ···············28
능허대기(凌虛臺記) ···············34
아내 왕씨 묘지명(亡妻王氏墓誌銘) ·········39
구양문충공 영전에 올리는 제문(祭歐陽文忠公文) ··45
후기국부(後杞菊賦) ···············50
초연대기(超然臺記) ···············56
해에의 비유(日喩) ················63
호주 부임 보고서(湖州謝上表) ···········69
문여가가 그린 운당곡의 누운 대(文與可???谷偃竹記) ··74
방산자전(方山子傳) ···············83
적벽부(赤壁賦) ··················89
후적벽부(後赤壁賦) ···············97
승천사에서의 밤놀이(記承天寺夜遊) ········102
황주안국사기(黃州安國寺記) ···········104
돼지고기 찬가(?肉頌) ·············109
석종산기(石鐘山記) ···············111
영리한 쥐(?鼠賦) ················118
사민사 추관에게 보내는 편지(與謝民師推官書) ··123
문설(文說) ···················132
해설 ······················135
지은이에 대해 ··················152
옮긴이에 대해 ··················161
적벽부(赤壁賦)
임술년 가을 7월 열엿샛날 소자가 손님들과 함께 적벽 밑에서 배를 타고 노느라니 바람은 산들 불고 물결은 잔잔하다. 술잔을 들어 손님들에게 권하며 명월을 노래한 시를 읊고 얌전하다고 읊은 시를 노래한다. 이윽고 동산 위에 달이 떠올라 북두칠성과 견우성 사이에서 배회한다. 하얀 이슬은 강 위에 질펀하고 강물은 멀리 하늘에 닿아 있다. 갈댓잎 한 조각을 멋대로 가게 놓아두어 아스라한 만경 창파 저쪽으로 건너간다. 바람을 타고 허공을 건너갈 제 어디서 멈춰야할지 모르는 것처럼 강은 한없이 넓고, 속세를 떠나 홀로 우뚝 서서 날개를 펴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듯 마음은 더없이 가뿐하다.
이에 술 마신 즐거움이 지극해져 뱃전을 두들기며 노래한다. "계수나무 노와 목란나무 상앗대로, 번쩍이는 투명한 강물을 치며 흘러오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노라. 아득하도다 내 마음이여! 하늘 저쪽의 고운 임을 바라보노라." 손님 중에 퉁소를 부는 사람이 있어 내 노래에 맞추어 반주를 하니 그 소리가 하도 구슬퍼 원망하는 듯하고 사모하는 듯하며 우는 것도 같고 호소하는 것도 같다. 그 여운이 하늘하늘 실오리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져 깊은 계곡에 숨어 있는 교룡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의 과부를 흐느끼게 한다.
소자가 울적한 표정으로 옷깃을 여미고 반듯이 앉아 손님에게 "어째서 그 소리가 이리도 구슬프오?" 하고 묻자 손님이 대답한다. "'달이 하도 밝아서 별이 듬성듬성한데, 까마귀와 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라고 한 이것은 바로 조맹덕의 시가 아닌가요? 서쪽으로 하구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을 바라보니 산천이 서로 얽혀 울울창창 에워싸고 있는데 여기가 바로 조맹덕이 주랑에게 곤욕을 당한 곳 아닌가요? 그가 한창 형주를 쳐부수고 강릉을 무너뜨린 뒤 강물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올 때 꼬리를 문 군함이 천 리에 뻗어 있고 깃발은 하늘을 뒤덮었는데 술을 걸러 강가로 나가 긴 창을 비껴들고 시를 읊었으니 참으로 한 시대의 영웅이었건만 그렇던 그가 지금은 어디에 있나요? 하물며 나와 선생은 강가에 살면서 고기나 잡고 나무나 하며, 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 삼으며,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표주박 잔을 들어 서로 술을 권하니 더 말할 것이 있나요? 하루살이 인생을 천지간에 맡기고 사는 우리는 드넓은 바다에 떨어진 좁쌀만큼 작지요. 우리 내 인생이 한순간인 것이 슬프고 이 장강이 끝없이 흐르는 것이 부럽군요. 신선을 끼고 마음대로 노닐고 명월을 안고 오래 살고 싶지만 갑자기 그렇게 할 수 없는 줄을 잘 알기에 구슬픈 바람에 퉁소소리를 실어 봤지요."
이 말을 듣고 소자가 말한다. "손님도 저 물과 달을 아시오? 물이 이처럼 밤낮없이 흐르지만 한 번도 가 버린 적이 없고, 달이 저처럼 찼다가 기울지만 끝내 없어지거나 자라지 않았다오. 변한다는 관점에서 볼라치면 천지는 한순간도 변하지 않을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볼라치면 만물과 내가 모두 끝이 없다오. 그렇거늘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오? 그리고 저 천지간의 만물은 저마다 주인이 있으니 내 것이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일지라도 가져서는 안된다오. 다만 강 위에 부는 산들바람과 산 위의 밝은 달만은 귀에 들어오면 소리가 되고 눈에 닿으면 색깔이 되는데 아무리 가져도 금하지 않고 써도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오. 이것은 조물주의 무진장한 보물이요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리는 것이라오."
손님들이 이 말을 듣고 기뻐 웃으며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따르는데 안주는 떨어지고 술잔과 쟁반은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배 안에서 서로서로 베고 깔고 누웠는데 어느새 벌써 동쪽하늘이 훤하다.
문설(文說)
나의 글은, 만 섬이나 되는 많은 샘물이 땅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마구 솟아나와 평지에서는 막힘없이 콸콸 흘러서 하루에 천 리를 가는 것도 어렵지 않고, 굽이진 바위를 만나면 그 모양대로 구부러져 형체를 이루지만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알 수 있는 것은 항상 가야만할 곳으로 가고 항상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단지 이러할 뿐이다. 그 밖의 것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지은이에 대해
152 소동파(1036~1101)는 북송 인종 경우 3년(1036) 12월 19일 미주 미산현(지금의 쓰촨성 메이산시) 사곡행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식이고 자는 자첨 또는 화중이며, 동파는 그의 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본명 대신 호를 주로 사용해 왔다.
소동파는 일곱살에 책을 읽을 줄 알았고 여덟 살에 향교에 입학해 천경관 도사 장이간에게 수학했다. 당시 100명에 가까운 학생 가운데 그가 가장 뛰어났음은 물론, 2등인 학생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탁월했으니 그의 타고난 재주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재주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패기 또한 남 달라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156 본래 소동파는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었는데 4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목숨까지 잃을 뻔한 사건을 겪은 이후 그의 사상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이후로 관직 생활에 대한 염증을 더 강하게 느끼고 현실 도피적인 경향이 이전 보다 짙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는 이와 같은 필화 사건을 어느 정도 예견했으면서도 자신의 양심을 거역할 수 없어서 양심의 명령에 따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그가 완전히 운명에 순종하는 낙천가로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고,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현실 참여와 현실 도피의 두 가지 사상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종전보다 많이 초연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국가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도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국가와 백성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는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에 투철했기 때문이다.
159 쉰아홉 살 되던 해 (1094) 10월 2일에 혜주에 도착해 예순두 살까지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북쪽으로 돌아갈 희망이 없음을 알고는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노력해 마침내 혜주를 자신의 고향으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혜주에서 너무 마음 편하게 지낸 것이 회근이 되어 예순두 살 되던 해(1097) 4월에 다시 담주안치의 유배령이 떨어졌다. 더 이상 쫓겨 갈 곳이 없을 줄 알고 최악의 유배지인 혜주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체념한 채 편히 지내는 소동파를 본 정적들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환갑이 지난 노인을 바다 건너 해남도의 담주까지 보내 버린 것이다. 말하자면 소동파는 중국 문화권 바깥으로 추방된 셈이었다. 그러나 소동파는 더위 · 습기 · 장기 · 가난 등 모든 악조건과 싸우면서도 초연한 마음을 견지함으로써 3년에 걸친 열대 섬 지방에서의 유배 생활을 무사히 견뎌 냈다.
예순다섯 살 되던 해 (1100) 1월에 철종이 세상을 떠나고 신법파가 실각하면서 그해 5월에 소동파도 죄가 경감되어 염주안치로 바뀌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는 마침내 거주의 자유가 회복되었다.
소동파는 오래 전에 땅을 사둔 상주까지 가기는 했으나, 노구를 이끌고 뜨거운 태양 아래 먼 길을 이동하느라 지칠대로 지친데다 심한 병까지 나는 바람에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예순여섯 살 되던 해(1101) 7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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