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 호센펠더: 헬레니즘 철학사

 

헬레니즘 철학사 - 10점
말테 호센펠더 지음, 조규홍 옮김/한길사

이 책을 읽기에 앞서|역자 서문· 10

여는 말: 헬레니즘 철학의 중심사상

1 스토아학파
2 에피쿠로스학파
3 퓌론학파
4 나머지 다른 학파들

맺는 말:‘태연자약함’으로 세상과 거리두기· 485

참고문헌· 493
찾아보기|인명, 학파·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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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 말:‘태연자약함’으로 세상과 거리두기

485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에 대한 소개는 여기서 시도했던 바와 같이 특히 두 가지 관점에서 진행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 첫째는, 이 시대의 주된 세 학파들이 비록 서로 구별되는 극단적인 특성을 따라 저마다의 입장을 구현하고자 했더라도, 실상 하나의 공통된 사유형식과 주제를 좇고 있다는 관점과 둘째로, 그들 모두 윤리적인 관심에 의해서 세계관과 가치관이 형성되었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이를 요약하여 다시 말하자면, 헬레니즘 시대에는 고전적인 '행복'이념과 새롭게 유행한 '개별주의'가 그 근간에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개별적인 인간의 자기목적 설정과 관련하여 인간이 손수 처리할 수 없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무가치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싹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로부터 이끌어 낸 몇 가지 결론과 더불어 모든 것에 일괄적으로─단 그 판단 자체만은 예외로 하고─'가치의 동등성'을 적용하기에 이른다.  

486 다른 한편 [인간이] 지신들의 목표를 지유로이 선택하는 이성의 활동이 보장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스토아학파는 물질을 지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고 보고, 마침내 그 물질에 합목적적으로 활동하는 이성이라는 형상 원칙을 개입시켰다. 그로써 '처리 불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또다시 재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이성을 비-서양적인 법칙성과 첨부시켜 소개했으니, 이는 '모든 것이 앞서 정해진 대로 존재하게 되어 있다'는 법칙을 가리킨다. 

에피쿠로스학파 역시 그와 동일한 기본입장에서 출발했지만, 인간적인 가능성을 고려하는데 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모두 '임의로(의지적으로)' 결정한다고 믿지 않았고, 오히려 쾌락과 불쾌감이란 느낌에 따라 정한다고 보았다. 또 이런 비의지적 가치설정은 인간의 그 어떤 이성적인 행위로부터는 이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 학파는 마치 '쾌락주의' 한통속으로 비쳐졌다. 

487 에피쿠로스학파는 스토아학파와 동일한 기본입장과 신념을 취했기 때문에, 세상의 전개과정에서 기본적으로는 이들과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 역시 감각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론 전개 속에서 결코 합목적적인 세계관에 대한 암시는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합목적적 이론이란 에피쿠로스학파의 윤리적인 도식에 부응할 수 없는, 일종의 비인간적인 의지와 결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인간에게 완전히 예상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에 대한 처리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전체적이고 광대하면서도 꾸준히 지속하는 하나의 자연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 때문에 그들은 서물들이 한결같이 맹목적인 인과성에 내던져졌다고 보는 '원자론적인 모형'을 넘겨받았다. 이로 인해 그들의 결정론적인 입장은 스토아학파의 입장과는 다른 모습을 띠었고, '자유문제'에 대해 또 다른 해결책을 개진하게 되었는데, 실상 이 자유문제로 이들 두 학파는 서로 팽팽한 접전을 벌여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퓌론학파 역시 위 두 학파와 동일한 문제점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해결책은 보다 강경하게 '회의적'이었다. 이들에게는 모든 가치경험을 균일하게 만들거나 인간이 몸소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예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는 처리할 수 없는 가치들만이 존재하므로, 행복 자체는 '처리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489 퓌론학파는 지속적인 행복에 대한 생각을 아예 포기하고, 반면 객관적인 가치들과 현상적인 가치들을 서로 구별함으로써 감정에 대한 가치평가에 최소한의 절대적인 성격을 부여하고는 그런 감정평가와 대면하여 '체념'하도록 이끌었다. 그러고는 더 나아가 격정적인 열의로 불행을 더욱 확대시키거나 행복을 스스로 소유한다고 자만함으로써 그만 빗나가 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므로 이들 세 학파의 윤리적인 확신이 서로 공통된 모습에서뿐만 아니라 서로 차이가 있는 가운데서도 각각의 고유한 이론적인 체계를 세우도록 이끌었다고 본다. 그로부터 우리가 이론적인 세계관이 반-이론에 의해 형식화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아마도 도대체 무엇이 이론적인지 자주 그리고 쉽사리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봄 직하다. 

492 개별 인간은 각자의 고유한 행복을 위해 노력할 것인데 이때 중요한 점은 '자연질서'를 무덤덤한 것(냉담한 것)으로 바라보고, 그 터전 위에서 그 자연 질서에 거역하듯 비껴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세 학파 모두 세계에 대해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니, 그것은 이른바 개별주의적인 입장과 연계된 인간 현존재의 불확실성에 기초해서 구축한세계관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에서 물러나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을 등등하게 대하는 태도를 취하지만, 결코 외적으로 "자포자기"하는 모습과는 구별된다. 그것은 마치 실망한 사람처럼 마음에 상처를 받고 토라져버린 태도가 아니며, 이 서상에서 단념한 행복을 세상 저편으로 옮겨놓으려는 종교적 태도도 아니며, 혹은 문명의 발전된 생활양식에 진저리쳐서 그만 기피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마치 세상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처럼 거리를 두는 '태연자약함'을 따라 세상에서 내면적으로 일탈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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