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애플비: 가차없는 자본주의

 

가차없는 자본주의 - 10점
조이스 애플비 지음, 주경철.안민석 옮김/까치

감사의 말
제1장 자본주의의 수수께끼
제2장 새로운 방향의 무역
제3장 농촌에서 일어난 핵심적 발전
제4장 시장과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제5장 18세기 자본주의의 두 얼굴
제6장 독일과 미국의 부상
제7장 산업계의 리바이어던과 그 반대자들
제8장 자본가 군주들
제9장 전쟁과 대공황
제10장 새로운 수준의 번영
제11장 새로운 배경 속의 자본주의
제12장 21세기를 향하여
제13장 위기와 비판

역자 후기
인명 색인

 


제1장 자본주의의 수수께끼

11 잘 쓰인 탐정소설처럼 자본주의의 역사도 하나의 수수께끼로부터 출발한다. 수천 년간 사업활동은 경제적, 윤리적으로 엄격히 제한된 전통사회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6세기에 과감한 방향전환이 일어났다. 더 효율적으로 식량생산이 이루어지면서 노동력과 자금이 서서히 다른 경제활동으로도 옮겨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인도와 서인도를 비롯한 다른 대륙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설탕, 담배, 면, 차, 비단 등의 가공업이 그런 사례이다. 이런 개선이서 유럽인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 것은 분명하나 구 경제질서의 관습과 권위라는 구속을 돌파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정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극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와 같은 수준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원동력은 자연철학지들이 물리법칙들을 새롭게 이해하면서 얻어졌다.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실용적인 발명가들은 자연의 힘에서 에너지를 획득하는 놀라운 방법들을 찾아냈다. 생산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사회의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시장성 있는 상품생산에 대한 개인의 투자에 기초하는 체제─가 전통적인 방식들을 서서히 대체해 나갔다. 초기 산업화 시대부터 현재의 글로벌 경제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혁명들이 사람들의 행태와 삶의 터전을 가차없이 변화시켰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는, 이런 발전들이 실현되는 데에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느냐 하는 것이다. 

12 나는 이런 질문들에서 시작하여 자본주의 발전의 기준점들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동시에 이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오랫동안 관습의 외피로 싸여 있던 관행과 사상, 가치와 이념을 뒤흔들어 정치를 변형시켰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이 책은 단순히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가 아니라 현대 경제체제의 형성과정을 추적하는 하나의 서사(narrative)이다.

13 사회의 불안을 막기 위해서 통치자들은 농작물의 재배와 판매 및 수출을 감시했다. 입법부가 존재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규제법안이 제정되었다. 워낙 갖가지 제한들로 막혀 있어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혹은 새로운 사업에 착수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제조활동은 대개 가내에서 이루어졌다. 가족 구성원들이 실을 자가서 옷감을 만들고 식료품을 가공했다. 경제활동과 노동의 흐름을 통계한 것은 수익의 유인(incentive)이 아니라 관습(custom)이었다. 

15 “자본(capital)"이라는 단어가 나의 역사여행의 전략을 잘 설명해준다. 자본은 특정한 용도로 편성된 돈이다. 돈은 궁할 때를 대비해서 매트리스 속에 숨겨놓을 수도 있고 상점에서 소비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간에 돈은 여전히 돈인데, 누군가가 상당한 이윤을 기대하고 그 돈을 사업에 투자할 때만 자본이 된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은 대개 무엇인가를 생산하여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서 사용될 때에 자본이 된다. 그런 사적투자의 원칙과 전략이 지배적인 때가 되어야 비로소 "자본(capital)"에 "주의(ism)을 붙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등장했고, 서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동유럽과 일본이 그 다음 순서였다.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관행이 세계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28 자본주의란 사람들의 성향과 특정한 사회의 목적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체제라는 믿음에 우리가 현혹되었다고 믿는다. 경제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기계적 모델은 불편부당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선택범위에 대해서 지적(知的)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위축시킨다. 

31 이 책의 주요 주장들 가운데 하나는 자본주의의 출현에 관한 한, 그 어떤 것도 불가피하거나 미리 정해진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점을 그렇게 크게 강조할까? 왜 지본주의의 씨앗은 중세에 뿌려지지 않았으며, 지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인간에게 고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까? 왜? 이유는 단순하다. 그런 관념들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방식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단 전통과 단절되고 나면, 그것이 인간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방식에 저항하는 사회는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사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았을 때, 규범에서 벗어난 것은 오히려 유럽인들이었다. 한 가지 더 지적하면 최초의 자본주의적 변화과정을 본보기로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건의 과정은 결코 복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36 서론을 마치기 전에 "자본주의"에 대한 나의 정의를 내려야 할 것 같다. 자본주의는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투자자들의 요청에 부응하는 경제관행들에 뿌리내린 문화체제이다. 대개 이윤추구는 분업, 규모의 경제, 전문화, 특정한 상품을 위한 시장의 팽창 그리고 무엇보다도 혁신을 초래하여 그것을 통해서 생산의 효율성을 촉진한다.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체제가 아니라 문화체제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요인들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초창기 자본주의적 관행들은 엄청난 공격과 방어를 불러일으켰다. 경쟁은 이 투자자 주도의 경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그들이 자본을 투자하건, 상품을 판매하건, 노동을 판매하건 간에─을 괴롭힌다. 18세기에 처음 증기기관이 등장한 후, 천연자원을 이용하는 일련의 발명들이 등장하면서 경제성장이 화석연료에 의존하게 되었다. 한때 석탄과 석유는 무제한인 것처럼 보였지만, 오늘날에는 점점 더 희소해져서 과연 우리의 경제체제가 지속 기능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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