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미헬스: 정당론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4. 8. 12.
정당론 - 로베르트 미헬스 지음, 김학이 옮김/한길사 |
초판 서문
독일어 제2판 서문
서론
제1부 지도자의 형성
제2부 지도자 권력의 사실적 특징
제3부 대중 지도의 심리적 영향
제4부 지도자에 대한 사회적 분석
제5부 지도자 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예방 조치들
제6부 종합: 조직의 과두적 경향
주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508 지도부의 등장은 어떤 형태의 사회에도 필연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그것이 유용한가 해로운가, 그중 어떤 경향이 더 지배적인가를 말하는 것은 학문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도부의 발전이 민주주의의 근본적 원리들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과두정의 역사적 필연성' 법칙이 일차적으로는 다만 일련의 경험적 사실에 근거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모든 학문적 법칙은 우선적으로 경험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문제는 경험에서 도출해낸 법칙에서 기술적이고 묘사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대신 분석적 설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현상들을 하나의 통일적인 관점하에 질서 지워야 하고, 또한 그 발생 원인들을 규명해야 한다. 우리의 연구 과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민주주의 정당의 내부에서 나타나는 과두적 현상의 원인들을 다시 한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도자들이 담합하는 경우와 보편적인 대중의 정신적 무기력을 논외로 하면, 과두적 현상의 원인은 지도자들의 지배욕과 그들 존재의 기술적인 불가피성이다.
그 과정은 분업과 함께 시작되어, 대중으로부터 분리된 지도자가 일련의 특성들을 발전시키면서 완성된다. 지도자들은 처음에 자발적으로 나타나 무보수의 부업으로 활동하지만, 이내 직업적인 지도자가 된다. 그리고 직업적 지도부의 형성이라는 첫 번째 단계에 뒤이어 안정된 종신 지도부의 등장이라는 두번째 단계가 나타난다. 이러한 과두적 현상은 부분적으로는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운동에 참여한 지도자 개개인이 운동의 발전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변화가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본질적인 것은 조직의 심리학, 다시 말해 정치 무대에서 활동하는 규율화된 결집체가 성장하면 그에 따른 전술적, 기술적 문제가 필연적으로 과두적 지도부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정당이라면 피할 수 없는 그 사회학적 기본 법칙을 간략하게 공식화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선출된 자가 선출한 자들을 지배하고, 수임자가 위임자를 지배하며, 대의원이 대의원을 선출한 사람들을 지배하도록 하게 만드는 것은 조직 그 자체이다.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에서 과두 체제가 형성되는 것은 '유기적인' 과정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회주의적인 조직이든 아나키즘적 조직이든 할 것 없이, '모든' 조직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할러가 이미 지적한 대로, 모든 조직 관계에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자연적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모든 정당 조직은 민주적 토대 위에 선 강력한 과두정이다. 어느 곳이나 선출하는 자와 선출되는 자가 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선출된 지도자는 선출한 대중을 지배한다. 조직의 과두적 구조는 조직의 민주적 토대에 의하여 숨겨진다. 후자는 당위이고, 전자는 현실이다.
이러한 본질적 차이는 대중에게 철저하게 은폐된다. 예컨대 사회주의 대중은, 새로운 정치 엘리트들이 그 전임자들보다 공약을 더 잘 지킬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대다수 민주주의자들, 특히 독일어권에 속하는 나라의 노동 대중은 인민의 이해가 대표될 수 있다는 이념을 끈질기고 진지하게 믿는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조명 효과, 곧 신기루 효과에서 생겨난 망상이다. 근대의 돈키호테 현상을 분석한 알퐁스 도데의 찬란한 글에서, 용감한 기사인 브라비다는 결코 타라스콩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남부의 태양이 자기암시 효과를 유발하자, 자신이 중국의 상하이로 가서 온갖 진기한 모험을 경험했다는 환상에 빠진다. 오늘날의 프롤레타리아트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적으로 우월하고 말솜씨도 뛰어난 지도자들의 견고한 연설에 지속적인 영향을 받은 나머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하나의 고정 관념이 생겨난다. 투표를 통하여 자신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대변인에게 위임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자신이 "지배에 한 몫"한 것이라는 관념이 그것이다.
515 민주주의의 본질은 각 개인의 정신적 비판 능력을 강화하고 촉발시킨다는 데에 있다. 비록 민주주의 조직이 관료화되면서 그러한 통제 능력이 크게 약화되지만, 본질은 그렇다. 특히 노동운동은 이제까지 내세우고 싸워온 이론적 공리에 힘입어, 지도자들의 뜻과는 달리 자유로운 개인들을 창출하여 왔다. 이 자유로운 개인들은 원칙에 입각한 것이건 본능에 의한 것이건 기존의 권위들을 항상 새롭게 '수정하고', 인식에 의해서건 기질 때문이건 모든 인간 제도의 궁극적인 원인을 지치지 않고 반복해서 묻는다.
우리의 귀중한 문화 요소의 하나인 그러한 자유로운 연구에의 경향은, 대중의 경제적 생활수준이 보장되고 향상될수록, 그리고 교육의 기회가 넓어질수록 더욱 더 커질 것이다. 교육 수준의 향상은 비판 능력의 제고를 의미한다. 이는 오늘날 부유한 지들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부유한 계급 동지에게 행사하는 권력이 가난한 자들의 지도자들의 권력보다 훨씬 제한적이라는 경험적 시실에서도 드러난다.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지도자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는 대중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은 공식 교육을 적게 받은 탓에, 지도자를 올바로 평가하고 지도자가 취하는 행동의 영향을 예측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과두화를 약화시키기 위한 주된 과제는 사회 교육에 있다.
516 현대의 민주주의 조직들에 대한 깊은 분석은 물론 이상주의자들에게 실망감과 좌절감을 안겨줄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아마도, 염세적인 딜레탕티즘에 빠지지 않은 채 모든 과학적, 정치적 이상의 상대주의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순수 귀족정과 비교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내재한 단점들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악이 가장 적은 통치 형태는 민주주의이다. 우리의 이상은 윤리적으로 선하고 기술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의 귀족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드문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때로 선출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유산의 원칙이 지배적인 곳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순수한 군주정은 힘의 전도이며, 선동가의 독재보다 이론적으로 나쁘고 치료도 불가능한 체제이다. 선동가의 독재는 허약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 것으로서, 그 정신이 그 신체를 치료할 가능성은 원칙적으로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고 하더라도 비교적 잘 작동하는 귀족정보다 장점이 많은 체제이다. 물론 거기에 예외가 있다. 좋은 교육을 통해서만 갖추게 되는 몇 가지 자질과 형식이 그것이다. 이 문제에서는 귀족정이 항상 민주주의의 선생이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모방하기도 하지만, 그 작업을 소홀히 하거나 혹은 왜곡시키고 날조하고 역설로 둔갑시켜버린다. 이런 측면을 논외로 하고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인식하게 되면 민주주의의 허약성을 발견했다고 해서 귀족정으로 회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민주주의의 허약성이 소위 대중의 지배란 성격 이외에 바로 그 버리지 못한 귀족정의 잔재에 있는 바에야, 귀족정으로의 회귀는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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