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옥스퍼드 세계사 14-2 ─ 제3부 제7장.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2)

 

2025.05.14 🎤 옥스퍼드 세계사 14-2

14강: 제3부 제7장.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2)
일시: 2025. 5. 14.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수원시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4158


316페이지 호모 수페란스를 보자. 317페이지를 보면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의 성장이 언제나 삶의 큰 부분이었던 것은 아니다. 성장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생산적인 두뇌 그리고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이 말하는 '긴 여름', 브라이언 페이건이 쓴 책들이 몇 개 있는데 안 읽어도 된다. 생산적인 두뇌, 긴 여름 그리고 "'아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성장하는 인간' 호모 수페란스가 되었다.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해 모든 종이 개체 수를 제약하는 가용 자원의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번식했다." 그다음에 318페이지를 보면 "'성장 친화적인' 제도와 가치관을 지향한 집단들이 그러지 않은 집단들을 대체했다." 이런 것들이 되게 중요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평생 학습관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다음에 "농민들은 계속 배웠다." 계속해야 되는 것이다. 시민도 계속 배워야 한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혁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혁신을 뒷받침하고 조직을 결속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제도와 세계관을 계속 변혁해야 했다. 각각의 해결책은 새로운 문제를 유발했지만,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의 규모를 키우는 것은 아주 오랫동안 가장 일관되게 채택된 전략 중 하나였다." 중요한 부분이다. 제도와 세계관을 계속 변혁시키고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의 규모를 키우는 것, 그러니까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늘 새로운 정치 조직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특정한 어떤 국가가 일정한 규모 이상을 가진 사회 공동체가 발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뒤섞는 것이다.  

그다음에 319페이지의 장소의 힘, 운 좋은 위도대, 일종의 환경 결정론인데 어쩔 수가 없다. 넘겨보면 시간표의 세부가 있는데 "신세계에서는 가축화 할 수 있는 대형 포유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직접 읽어보면 된다. 그다음에 321페이를 보면 "인류는 더 큰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이 당면한 문제의 좋은 해결책임을 계속 깨달았다."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을 키워야 한다.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을 키운다 라고 하는 말은 그 지역에서 오래된 관행에 근거해서 뭔가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비인격적인 제도와 조직들을 가지고 투명하게 움직여 가는 곳에서 발전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이런 것들이다. 그다음 문단을 보면 "1350년까지 동아시아가 선두로 올라서는 동안 지중해와 중동의 최대 국가들은 작아졌다.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부와 권력의 이동이었지만, 현재까지 그 원인에 대한 합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까 말한 "다섯째, 기원후 175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국가들의 심장부는 왜 유라시아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했는가?"의 문제였다. 아직 원인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라고 되어 있다. 

322페이지를 보면 기원전 1000년의 세계, 여기가 이제 시작점이다. 수렵 채집 무리들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무리에 대해서는 역사학이나 고인류학의 호기심으로는 관심을 가져도 좋지만 수렵 채집 무리를 공부해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는 얻을 수 없다. 324페이지를 보면 "인류의 95퍼센트 이상은 농민이었고 그중 절대다수는 폭력의 정당한 사용을 독점하는 중앙 집권 정부를 결여한 비교적 단순한 집단에 속해 있었다." 인류의 95퍼센트 이상은 농민이었다 라고 하는 것을 꼭 기억해야 된다. 여기서 문명이 생겨난 것이고 우리는 그 농민의 후손이다. 그것에서 우리의 삶이 지금 이어졌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조직은 바로 그런 것이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누리기는 산업사회의 문명을 누리면서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에 대한 생각은 농경사회의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건 안 되는 것이다. 그다음 문단 "이런 비국가 농경 사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문맹이었는데 문자가 꼭 필요한 만큼 큰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라고 하는 것은 조직이 커지면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 조직을 키울 때 사제 계급이나 엘리트 계급들이 문자를 사용했을 것이다. 옛날에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나 이런 언어들을 보면 문장이 되게 복잡하다. 왜 그러한가. 손으로 써서 기록을 할 수 있는 매체가 적었다. 다시 말해서 말로 전해야 한다. 말로 전해야 되니까 듣는 사람이 듣는 순간 알아듣도록 얘기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확하게 말해야 되고, 정확하게 말하려면 문법이 복잡해야 한다. 고대의 언어들은 굴절어로 격변화가 많은데 이는 전치사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의사소통하는 도구가 발전한 오늘날에는 언어가 간명해지는 진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들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그 도구의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언어는 간명해지는 것이다. 옛날에는 말밖에 없어서 정확하게 말을 하기 위해서는 격변화가 있어야 했다. "기원전 800년경 페니키아 문자를 자기네 목적에 맞도록 받아들였다." 그다음에 이스라엘이나 그리스의 문헌을 보면 "불안정한 정치 조직들이 고통스럽고 대개 폭력적인 국가 형성 과정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지금 여기서 깊이 있게 다룰 문제는 아니다.  

그다음에 325페이지를 보면 "인류학자이자 철학자인 어니스트 겔너가 그린 아래의 도표는 소수의 초기 국가들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유익하게 요약해 보여준다. 겔너는 이 이념형 초기 국가를 '아그라리아라Agraria'고 불렀다." 아그라리아는 농경사회라는 뜻이다. 그리고 아까 얘기한 것처럼 산업사회는 인두스트리아Industria이다. 326페이지의 그림을 보면 "군인, 행정가, 성직자, 때로는 상인 등으로 층층이 계층화된 통치 계급"이 있다. 밑에는 "좌우로 격리된 농업 생산자 공동체들"이 있는데, 그 위의 정확한 그림을 보면 세 덩어리가 있는데, 옛날에는 군인 집안 사람들은 군인만 하고, 행정가 집안 사람들은 행정가만 하고, 성직자 집안 사람들은 성직자만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실선으로 되어 있다. 서로 연결이 안 되는 곳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이 모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안 좋아하는 것이다. 이 모형이 꼭 농경사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다. 철학적인 의미가 있는 모형이다. 흔히 말하는 사회 상류층에 있는 특권층이라고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밑에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실선을 긋고 절대 못 올라오게 할 것이다. 이게 고착이 되면 민주적 국가가 깨지는 것이다. "좌우로 격리된 농업 생산자 공동체"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점들은 점선으로 되어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되는데 아주 원활하지는 않다. 이 표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부나 이런 것들이 지극히 불평등한 집단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불평등이 특정한 직업과 서로 매치되어 있다.  

327페이지를 보면 "사회의 상층은 누구나 이득을 보았다. 이 저가 국가의 통치자들은 수익을 많이 얻지 못했지만 비용도 많이 들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았다는 건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 그렇게 신경을 안 썼다는 얘기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저 선을 강고하게 유지한 상태에서 무력을 잘 쓰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통치자이고 지배 계급이라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그렇게 많은 노력이 필요치 않다. 친족 사회이기 때문에 어른이고 혈통이기 때문에 그냥 정당화되어 버린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지배 계급이 되려면 지배 계급이 왜 지배를 해야 되는지를 정당화시키는 게 굉장히 어렵다. 민주정 국가는 특히나 정당화 이론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331페이지의 기원후 175년의 세계를 보면, "세계 인구가 대략 두 배가 되었고, 국가에 사는 사람 수가 열 배로 늘어났다." 이게 중요한 점이다. 175년이 되면 국가에 사는 사람의 수가 늘어났다. 336페이지를 보면 "사료들은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가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 말해주지 않지만, 여하튼 '하늘의 아들들'을 우회한 것은 분명하다." "티글라트필레세르는 관료제를 창안해 세금을 거두고 병력을 직접 고용함으로써 전리품을 모두 국가 소유로 두었다." 이제 바로 고가 국가가 시작되는 지점인데, 시작되는 장소가 중동이다. 중동에서 시작된 고가 국가는 아시리아가 일단 스타트를 끊었다. 337페이지를 보면 "기원전 730년대 아시리아"라고 되어 있고, 그 다음 문단이 페르시아이다. 페르시아가 중동에서 등장한 고가 국가 중에 가장 전성기에 이르렀던 나라이다.  

그다음에 339페이지를 보면 "기원전 1세기 로마의 공화정 도시 국가 제도는 세계 최대 제국을 운영하기에 부적합한 것으로 입증되었고, 결국 처참한 내전을 거치며 해체되었다." 로마 공화정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 제도만 가지고는 넓은 지중해 세계를 이제 통치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내전이 벌어졌고, "기원전 31년 평화를 회복했을 때, 명칭을 아우구스투스로 바꾼 옥타비아누스 ─ 최후의 승리자로 남은 군벌 ─ 는" "로마 전제정을 조용히 개시했다." 그러니까 로마 공화정이 제국으로 된 것은 바로 땅이 넓어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농경 문화로서 이룰 수 있는 한계까지 가다 보면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이 당연히 늘어나게 된다. 처참한 내전을 거치면서 최후의 승리자가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삼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생각해야 된다. 그다음에 340페이지를 보면 "고가 국가는 모든 종류의 조직을 재편했다." 큰 도시 그다음에 "식량을 두루 운반할 수 있도록 도로와 선박, 항구를 개선"해야 했고, 교환 수단도 필요했고, 주화가 발명되었고, 읽고 쓸 줄 알아야 했고, 교육이 확대되었다. 그다음에 "무엇보다도 통치자들은 스스로를 쇄신해야 했다." 중요한 포인트이다. 일반적으로 사회학에서는 사회 구성체가 달라지면 그에 상응해서 리더십의 유형도 바뀌어야 된다고 얘기한다. 그게 일반론이다. 그다음에 341페이지를 보면 "유라시아 '축의 시대' 사상 혁명은 어느 정도는 이런 전개에 대한 지적 대응이었다. 다시 말해 왕이 우주적 원리로서의 권력을 잃어가는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제공한 대응이었다." 이것은 이언 모리스의 혼자 생각으로 이견이 많다. 이언 모리스가 쓴 책 중에 《가치관의 탄생》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얘기가 나오는데, 전체를 읽어보면 약간 억지가 있다. 그다음에 343페이지의 기원후 1350년의 세계 바로 위에 있는 문단은 네모 쳐놓으면 된다. "유라시아의 고전기 제국들은 그 이전의 성취와 당대 다른 지역들의 성취를 무색하게 하는 비범한 조직적 성취였다. 로마 제국은 순전한 농업 세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상한에 실제로 도달했을 것이다. 다른 사회 ━ 송나라 ━가 기원후 2세기 로마제국의 발전 수준에 근접하기까지 1000년이 걸렸고, 그후로 18세기 영국이 산업 혁명 직전에 이를 때까지 어떤 사회도 그 상한을 넘지 못했다." 

그다음에 349페이지를 보면 "수나라 문제는 성공하고 유스티니아누스, 카롤루스, 알마무는 실패한 이유는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반면에 중국에서 복부를 대부분 차지한 선비족은", "황허 유역의 고대 국가를 세우고 스스로를 수왕조로 재편한 이후, 초대왕제 문제는 함대를 건설하고 50만 군대를 양성한 뒤 589년 남부 양쯔강 유역의 진나라를 평정하고 남북조를 통일했다." 남북조 시대를 통일했다. 그런데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나 서로마의 카롤루스와 같은 사람들은 그게 안 되었다. 왜 실패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에서는 통일 왕조를 만들어냈고 서양에서는 안 되었다. "문제가 거둔 성공의 결과는 분명하다. 바로 세계 조직의 중심축이 유라시아 서부에서 동부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는데 수나라와 당나라 때부터 세계의 패권이 이쪽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둘째 문단의 "기원전 6세기 콘스탄티노플의"은 "기원후"로 고쳐놓으면 된다.  

그다음에 352페이지의 결론을 보면 "1350년의 세계와 1850년의 세계 사이의 간극이 워낙 큰 까닭에 학계에서는 1350년 이전을 더 긴 이야기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기로 여기곤 한다." 1850년의 세계가 산업혁명의 세기이다. 그 이전하고 1850년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런 말이다. "지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에 따르면, [말을 가축화한] 시대와 콜럼버스를 비롯한 항해자들이 대양으로 보낸 사회들이 발전한 시대 사이에 대략 4000년이 흘렀으며, 그 시간 동안 그 이전과 비교해 중요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앨프리드 크로스비가 약간 오바한 것으로 그가 쓴 《콜럼버스의 교환[콜럼버스가 바꾼 세계]》이라는 책은 그렇게 추천하지 않는다.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1350년까지 도시, 국가, 종교 집단, 교역의 규모는 열 배 증가했다. 이 변화가 없었더라면 스텝 지대를 닫을 수 없었을 것이고, 대양들을 열 수 없었을 것이며, 근대 세계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Modern Age라고 하는 것이 시작이 되었다. "이 세월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은 순전한 농경 환경에서 도달할 수 있는 한계에 이르렀고, 세계 조식의 중심축은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했다." 수 문제 때부터이다. "그리고 유라시아에서 이런 대사건들이 펼쳐지는 동안 지구의 대다수 지역들로 농경과 저가 국가가 확산되었다." 일단 국가가 생겨났다는 것, 그리고 1350년까지 이런 것이 늘어났다는 것, 어떻게 보면 세계사의 맥락에서 보면 조선부터가 근대인 것이다. 그리고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가 서구적인 기준으로 봐도 근대 국가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관료제가 있고 중앙집권적 통일 국가이고, 여기 나온 용어를 빌려서 얘기를 해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순전한 농경 환경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한 것이다. 그 정도의 문명을 이룩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농경과 저가 국가, "기원전 1000년 전에는 열 명 중 한 명만이 정부 치하에서 살았던 반면, 기원 후 1350년에는 열명 중 아홉 명이 정부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니까 1350년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두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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