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통史通(27) ─ 史通, 內篇 - 曲筆, 鑒識

 

2025.05.18 δ. 사통史通(27) ─ 史通, 內篇 - 曲筆, 鑒識

유지기, ⟪사통⟫(劉知幾, 史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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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필曲筆
"대개 역사의 역할은 공과를 기록하면서 좋은 일은 드러내고 나쁜 일은 비판하여 하루아침의 잘잘못도 영욕이 천 년을 가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어긴다면 어찌 사관이라고 하겠는가? 옛날부터 직필로 죽임을 당했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곡필 때문에 죄를 입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개사지위용야蓋史之爲用也 기공사과記功司過 창선단악彰善癉惡 득실일조得失一朝 영욕천재榮辱千載 구위사법苟違斯法 기일능관豈曰能官 단고래유문이직필견주但古來唯聞以直筆見誅 불문이곡사획죄不聞以曲詞獲罪) 
     

"그 결과 사관으로 하여금 자신의 뜻에 따라 애증을 역사서에 드러내고 마음대로 시의에 따라 높이고 낮추면서, 나아가서는 공적인 처벌도 꺼리지 않고 물러나서는 집에서도 창피한 줄을 모르게 만들었으니, 아무리 믿을 만한 역사를 찾고자 한들 어렵지 않겠는가? 이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경계로 삼아 혁신해야 할 일일 것이다." (고사신득애증유이故史臣得愛憎由已 고하재심高下在心 진불탄어공헌進不憚於公憲 퇴무괴어사실退無媿於私室 욕구실록欲求實錄 불역난호不亦難呼 오호嗚呼 차역유국가자소의징혁야此亦有國家者所宜懲革也) 


감식鑒識
"역사서에서 사실을 서술할 때는 할 말은 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꾸며서는 안 되며, 소박하되 비속해서는 안 된다. 문장은 바르고 사실은 핵심을 짚는 서술, 이렇게 하면 그걸로 족하다." 
(부사지서서야夫史之敘事也 당변이불화當辯而不華 질이불리質而不俚 기문직其文直 기사핵其事核 약사이이가若斯而已可) 

"대개 사람의 몰락과 성공은 시세에 달렸고, 궁벽할지 영달할지는 운명에 달렸다. 역사서의 쓰임새도 이와 마찬가지다." (부인폐흥夫人廢興 시야時也 궁달명야窮達命也 이서지위용而書之爲用 역부여시亦復如是) 
moira 命, tykhē 運 


오늘은 사통史通 내편內篇 제25장 곡필曲筆과 감식鑒識을 읽는다. 지난번에 직서直書와 반대되는 말이 곡필曲筆이다. 추려서 음미해 볼 만한 구절은 그렇게 많지 않고 곡필曲筆의 사례라든가 이런 것들을 많이 들고 있다. 그 사례들은 말로 설명을 하고 추려서 읽을 만한 구절은 제가 쓴 카드를 가지고 말하겠다.  

"처음에 인륜이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가와 국이라고 불리는 것이 생겼다. 아비는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답게,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게, 친소와 차등이 구별되었다." 『논어』에서 말하기를 "자식은 아비를 숨겨야 하니, 정직이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아비의 도둑질을 증언한 자식을 정직한 사례로 거론하니까 공자가 그건 정직한 게 아니라고 한 말이다. 자식이 아비를 숨겨야 하는 게 정직이라는 것이 『논어』에서 말한 순리이다.  공자 시대에는 그게 정직이었겠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다. "또한 국내와 국외는 당연히 구별되어야 하며, 나쁜 일은 덮어주고 좋은 일은 선양한다는 것은 『춘추』의 의리였다." 『춘추』의 의리라는 것이 사실 그렇다는 것이다. "그 뒤로 모두 이들 고전을 따랐다. 역사가들도 사안이 군주나 부모와 관련되면 감추고 숨기는 경우가 많았으니, 정직의 문제로 보면 부족했지만 명분이라는 가르침이 그 속에 유지될 수 있었다." "역사서 중에는 사실마다 거짓 증거인 것과 문장마다 터무니없는 것도 많다."는 얘기도 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면 "왕침은 위에서 후를 폄하하는 조서를 함부로 기록했고, 육기는 진사에서 제갈량의 공격을 막은 일을 과장했으며, 반고조차 다른 사람에게 금을 받고서야 비로소 기록을 남겼고, 진수는 쌀을 빌려주어야만 열전에 넣어주었다. 이들은 언어를 기록하고 붓을 잡은 사람들에게는 간교한 도적이자 흉인이니, 저잣거리에 늘어놓고 이리나 호랑이에게 주어도 될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서의 곡필曲筆은 그런 사례가 있으니까 생겨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다. 게다가 후환서를 보면 그런 일들도 많다.  역사가들이 다 이 모양 이꼴이었다는 것을 예를 들어서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역사서의 곡필曲筆이라고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중국의 사례들을 쭉 늘어놓고 있는데, 문제는 이때의 중국에서의 역사의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오늘날에 생각하는 역사하고는 조금 다르다. 역사는 대개 감계鑑戒 역사학이다. 뭔가 잘못된 것을 똑바로 기록을 해서 그것을 후대에 널리 남기고, 그러니까 역사에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중국 역사에서의 중요한 목표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 신경을 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역사책을 읽어보면 선악을 판단하는 것들은 거의 논의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역사를 읽는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선악을 판단하는 것보다는 역사로부터 뭔가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교훈이라는 것이 반드시 옳고 그름에 관한 어떤 선악을 판단하는 것, 그것이 과연 교훈을 얻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유지기의 경우에는 선악을 판별하는 것이 되게 중요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곡필曲筆 마지막에 보면 "대개 역사의 역할은 공과를 기록하면서 좋은 일은 드러내고 나쁜 일은 비판하여 하루아침의 잘잘못도 영욕이 천 년을 가게 하는 것이다." 역사에 기록되는 것, 아주 기본적인 사료 안에 그렇게 기록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심각한 사건은 헌법을 어기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정치 체제에 대해서 약속한 것인데, 그것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은 역사의 가장 큰 죄인이다. "이런 이치를 어긴다면 어찌 사관이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옛날부터 직필로 죽임을 당했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곡필 때문에 죄를 입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개사지위용야蓋史之爲用也, 대개 역사의 쓸모는 역할은, 기공사과記功司過, 공을 기록하고 잘못을 비판하여, 사司는 맡는다, 살펴본다는 뜻이 있다. 창선단악彰善癉惡, 좋은 일은 드러내고 나쁜 일은 비판하여, 득실일조得失一朝, 영욕천재榮辱千載, 하루아침의 잘잘못도 영욕이 천 년을 가게 하는 것이다. 구위사법苟違斯法 기일능관豈曰能官, 이런 이치를 어긴다면 어찌 사관이라고 하겠는가?,  단고래유문이직필견주但古來唯聞以直筆見誅, 옛날부터 직필로 죽임을 당했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불문이곡사획죄不聞以曲詞獲罪, 곡필 때문에 죄를 입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 유지기가 사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부 기록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곡필을 하면 죄를 입어야 되겠다. 그러니까 직필로 죽임을 당했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곡필 때문에 죄를 입었다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 어찌 되는가. 

"그 결과 사관으로 하여금 자신의 뜻에 따라 애증을 역사서에 드러내고 마음대로 시의에 따라 높이고 낮추면서, 나아가서는 공적인 처벌도 꺼리지 않고 물러나서는 집에서도 창피한 줄을 모르게 만들었으니, 아무리 믿을 만한 역사를 찾고자 한들 어렵지 않겠는가? 이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경계로 삼아 혁신해야 할 일일 것이다." 고사신득애증유이故史臣得愛憎由已, 자신의 뜻에 따라 애증을 역사서에 드러내고, 고하재심高下在心, 이는 고사성어 같은데, 높고 낮은 것을 마음에 두고, 그러니까 마음대로 시의에 따라 높이고 낮추면서, 춘추좌씨전 선공 15년에 "속담에 높고 낮은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진불탄어공헌進不憚於公憲, 나아가서는 공적인 처벌도 꺼리지 않고, 퇴무괴어사실退無媿於私室, 물러나서는 집에서도 창피한 줄을 모르게 만들었으니, 욕구실록欲求實錄 불역난호不亦難呼, 아무리 믿을 만한 역사를 찾고자 한들 어렵지 않겠는가?, 오호嗚呼, 오호라, 차역유국가자소의징혁야此亦有國家者所宜懲革也, 이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경계로 삼아 혁신해야 할 일일 것이다. 되게 중요한 말인 것 같다. 곡필 때문에 죄를 입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포인트라고 본다. 

그다음에 감식鑒識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서에 대한 평가이다. 과거의 역사서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춘추에 대한 좌씨전左氏傳,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이 있는데, 유지기가 보기에 좌구명이 쓴 좌씨전이 가장 최고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공양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각기 나름대로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하튼 유지기는 좌씨전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좌씨전』은 『춘추』에 대한 세 전 중에서 으뜸이지만 한나라와 삼국시대 위나라를 거치는 동안 끝내 태학에서 강좌가 개설되지 못했다. 많은 지식인은 모두 이 『춘추좌씨전』을 비방하고 『공양전』과 『곡량전』을 높이 평가했다." 유지기가 보기엔 그게 좀 못마땅한 것 같다. "좌구명이 노나라 사관이라는 점과 직접 공자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실을 염두에 두면, 시대로 말하더라도 공자와 같은 시대에 살았고 재능으로 따지더라도 공자와 거의 같았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저런 역사 책들을 자기가 보기에는 좋은 것 같은데 평가를 제대로 안 해서 제대로 짚어 놓지 않았다 라는 얘기들을 쭉 말하고 있다.  역사서에서 사실을 서술할 때 해야 될 말, 곡필曲筆이나 감식鑒識이나 이런 게 식견識見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고 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 서술에 대한 얘기들이 많다. 그러고 보면 유지기가 식견이 좀 있나 라는 의심도 살짝 들기도 한다. 

여기 보면 "역사서에서 사실을 서술할 때는 할 말은 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꾸며서는 안 되며, 소박하되 비속해서는 안 된다. 문장은 바르고 사실은 핵심을 짚는 서술, 이렇게 하면 그걸로 족하다." 부사지서사야夫史之敘事也, 역사서에서 사실을 서술할 때는 할 말은 해야 하지만, 당변이불화當辯而不華, 지나치게 꾸며서는 안 되며, 질이불리質而不俚, 소박하되 비속해서는 안 된다, 질質을 소박하다고 번역했다. 문질빈빈文質彬彬, 그리고 리俚는 속된다 라는 말이다. 기문직其文直 기사핵其事核 약사이이가若斯而已可, 문장은 바르고 사실은 핵심을 짚는 서술, 이렇게 하면 그걸로 족하다.  
 

그다음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대개 사람의 몰락과 성공은 시세에 달렸고, 궁벽할지 영달할지는 운명에 달렸다. 역사서의 쓰임새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어떤 역사책이 좋은데도 사람들한테 안 읽히는 이유는 때를 못 만나서 그렇다 라는 말이다. 부인폐흥夫人廢興, 무릇 사람의 흥하고 망하는 것은, 시야時也, 때를 만났는가에 달렸다. 궁달명야窮達命也, 궁벽할지 영달할지는 운명에 달렸다. 운명에서 운運은 희랍어로 tykhē이고, 명命은 moira, 정해진 것이라는 얘기이다. 이서지위용而書之爲用 역부여시亦復如是, 역사서의 쓰임새도 이와 마찬가지다. 

"시대가 보물을 몰라보고 세상이 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장차 불에 타서 연기나 재가 되고 빗속에 묻혀 진흙이나 물에 가라앉아버릴 것이니, 어떻게 죽은 뒤에도 썩지 않고 후세에 이름을 떨칠 수 있겠는가!" 굉장히 애틋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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