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옥스퍼드 세계사」을 듣고 정리한다.
2025.05.28 🎤 옥스퍼드 세계사 16-1
16강: 제4부 제8장. 경제적·생태적 조우(2)
일시: 2025. 5. 28.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수원시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4158
368페이지는 지난번에 얘기했던 서양의 환경, 경제, 확장이다. 필자도 얘기하고 있는데 제8장은 우리가 왜곡되어서 알고 있는 것들이 꽤 많은 부분이다. "유럽인은 명나라의 원정보다 규모는 더 작았지만 국제 연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더 중요한 일련의 해양 원정에 나섰다." 맨 먼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원정에 나섰다. 여기서는 포르투갈이 왜 나갔는지를 잘 봐야 된다. "유럽인은 의도치 않게 여러 전염병을 퍼뜨려 아메리카의 토착민 인구를 대부분 없애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양의 원정과 서양의 원정은 그 동기와 환경, 결과면에서 본질적으로 달랐다." 되게 중요한 말이다. "기독교권 서양은 오래전부터 동양의 가장 부유한 지역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서 간접적으로라는 말에 표시를 해두어야 한다. 지중해와 인도양, 중국, 아라비아 반도를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라고 하는 말은,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무슬림 상인들을 통해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교역 연계를 개척했다." 그러니까 이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무슬림이고, 여기는 기독교이다. 그러니까 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그래서 베네치아 사람들은 아무리 교황청에서 뭐라고 한다 해도 교역을 했다. 그런데 "14세기 중엽의 흑사병과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정복으로 인해 이런 연계가 헐거워졌지만, 위기가 지나간 뒤 상업망이 복구되었다. 그런 이유로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대다수 상인들은 새로운 해로를 발견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것도 중요한 내용이다. 절박하지 않으면 새로운 해로를 개척하지 않는다. 왜 지중해에서 교역이 되니까 첫째는 기본적인 세팅으로 기독교와 무슬림, 이것은 문화적 배경이다. 지중해에서 사용하는 배는 갤리선이다. 지중해는 사실상 내해, 대양이 아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사용하기에 적당한 배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갤리선이라고 하는 것은 기술적 조건이다. 아테나이의 민주정이 왜 좋은 것이 아닌 것으로 말해지는가. 민주정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을 해야 작동한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기술적인 조건이 안 된다. 그러니까 민주적인 발전하기가 어려웠다. 현대 민주정은 기술적인 조건이 굉장히 중요하다. 기술적 조건으로서의 갤리선, 그리고 문화적인 배경, 그런데 이 사람들은 기독교이고 이 사람들은 무슬림인데, 여기에 있는 베네치아 상인들이나 제노바 상인들은 사실은 조금 대충 기독교도라고 할 수 있다. 장사 본능이 뼛속까지 파고든 사람으로 partisanship이 없는 사람들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partisanship이 약하다. 그다음에 앞쪽으로 넘어가서 365페이지를 보면 지역별 교역망인데, 그 위에 보면 "아라비아의 전통적인 선박은 목재를 무거운 노끈으로 엮어 조립한 다우선이었다"가 있고, 그다음에 중국에서 만든 배는 정크선이다. 다우선과 정크선을 표시해두면 된다. 정크선, 갤리선, 다우선 이런 선박들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역할을 했고 기술적 조건이 무엇이었는가를 다룬 카를로 치폴라의 《대포, 범선, 제국》이 있다.
다시 368페이지로 와서 "새로운 해로를 찾을 동기는 오히려 남서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의 왕국들에 있었다." 일단 이베리아 반도는 지중해를 쭉 건너서 저기까지 가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베리아의 기독교도들이 무슬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오랫동안 투쟁해 온터라 무슬림과 동맹을 맺는 방안을 꺼렸다." 이는 문화적 배경이다. 이베리아 반도 사람들은 거의 800년 가까이 무슬림의 지배를 받았다. 이를 재정복이라는 뜻인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고 한다. 무슬림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게 718년에서 1492년이다. 1492년에 무슬림의 이베리아 반도 지배가 끝났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레콩키스타는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오랜 동안에 이교도의 지배를 물리치고 종교적인 정체성을 회복한 것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국토회복이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종교 전쟁에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의 800년에 가까운 이슬람 통치가 종식이 되고 무슬림과 유대인들을 추방한다. 그때 추방된 유대인들 중에는 스피노자의 조상도 있었다. 그래서 네덜란드로 가거나 아니면 영국으로 갔다. "기독교의 영토를 수복하려는 십자가 운동을 계기로 확고부동한 반이슬람 정서가 뿌리내렸다." "1250년 영토 수복을 완료한 후 포르투갈은",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은 그라나다를 1492년에 무너뜨렸고, 그다음에 포르투갈은 1250년이다. 그러니까 포르투갈이 먼저 레콩키스타를 성취했고 그러니까 대항해에 나선 건 포르투갈이 먼저이다. 갑자기 왜 나섰는가. 베네치아와 제네바의 중계 무역을 거치지 않고, 무슬림 상인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이쪽으로 오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동기는 종교적인 것과 문화적인 배경에서 시작이 되었다. 문화적인 배경이 상업 활동의 어떤 동기가 되었다 라고 말하려면 그 문화적 배경이 굉장히 절박해야 한다. 어떤 강도를 우리가 측정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절박해야 한다.
369페이지를 보면 "포르투갈 왕의 셋째 아들로서 세우타 공격을 지휘한 엔히크 왕자", 문화적 배경이 하나 있고 그다음에 기술적 조건, 그다음에 레콩키스타가 있는데 이는 역사적 배경이겠다. 레콩키스타라고 말하면 역사적 맥락에서 문화적 배경까지 다 아우르는 얘기가 된다. 대항해 시대에서 우리가 배우기를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로 왔다. 그런데 왜 인도로 왔는지는 안 배웠다. 왜 인도로 왔는가. 인도에 가야만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먼 길을 가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으면 안 움직인다. 그 이유가 종교적인 맥락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1600년대가 되면 유럽 안에서는 종교 전쟁이 벌어진다. 15세기와 16세기 유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기독교 종파 간의 갈등, 이슬람과의 싸움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계몽주의도 얘기할 수가 없고,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가 없고, 뉴턴이라든가 이런 사람들 얘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실은 서양사에 대해서 또는 세계사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해를 하려고 한다면 15세기와 16세기는 유럽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한다. 369페이지를 보면 "포르투갈은 항해 기법과 지리 지식에서 전진을 이루어냈다." 항해 기법과 지리 지식이라는 기술적 조건이 생겨났다. 그리고 "대형 삼각돛을 갖춘 조종하기 쉬운 범선"인 캐러벨을 표시해두자. 아까 다우선과 정크선, 갤리선을 얘기했다. 지중해 안에서는 이런 대형 삼각돛이 필요가 없다. 그다음에 "북쪽 하늘의 익숙한 별자리에 의존하는 대신에 아스트롤라베라는 천문 기구"를 사용했고,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이끈 원정대는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에 이르는 것이 어렵기는 해도 가능하다는 걸 입증"했고, 그다음에 이제 바스쿠 다가마가 나온다. 그러니까 바스쿠 다가마는 최종 결과물이다.
일단 거기까지가 한 덩어리이고, 그다음에 370페이지를 보면 스와힐리 해안의 무슬림 통치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포르투갈 측은 선물로 건넬 만한 것이 조잡한 옷감과 거친 옷밖에" 없었다. 스와일리 통치자들은 "맛있는 음식과 향신료를 환영 선물"로 내놓았다. 그러니까 상징적인 사건이다. 서양은 조잡한 옷감과 거친 옷밖에 없던 시대이다. 그다음에 371페이지를 보면 "다가마는 힌두교도 통치자를 기독교도로 착각한 데 더해 몇 가지 문화적 결례를 범했다. 그다음에 "그중 최악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교역품을 보란듯이 과시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캘리컷의 최고위 관료는 다가마가 통치자에게 전해달라고 내놓은 줄무늬 옷감 열두 개, 진홍색 모자 네 개, 세면기 여섯 개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다가마는 자신은 그저 탐험가이지 부유한 상인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다음을 보면 "포르투갈 본국은 가난하고 여러 문화를 아우르는 교양이 부족했을지 몰라도 두 가지 뚜렷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함포의 군사적 우위였고, 다른 하나는 선단의 화물 적재 능력이었다. 그리고 포르투갈인들은 권력과 신앙을 확대하는 일에서는 충분히 무자비했다." 함포의 군사적 우위, 그러니까 기술적 조건과 항해 지식, 그다음에 무기, 군사적 우위 이런 것들이 묶이면 바로 강대국의 조건이다. 1905년 러일 전쟁 때까지 이어진 프로세스의 출발점이다. 1905년 러일 전쟁 시기에 일본이 러시아를 간신히 이겨서, 그때 프랑스,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미국, 5대 강국이었는데, 거기에 러시아를 일본이 이기면서 6대 강국이 되었다. 그게 오늘날까지 오는 것이다. 이걸 만들려면 당연히 기술적인 우위, 무기 군사적 우위, 항해법, 지리 지식, 이게 계몽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그 다음에 "선단의 화물 적재 능력"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인들은 권력과 신앙을 확대하는 일에서는 충분히 무자비했다." 왜 무자비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레콩키스타를 거치면서 이교도들을 절멸시키지 않으면 자기네가 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화적 배경 안에 무슬림에 대한 그러니까 타 종교에 대한 무자비함이 덧붙여진다. 군사적 우위, 선반의 화물 적재 능력, 그다음에 권력과 신앙을 확대하는 일이 있어서 충분히 무자비함, 15세기와 16세기 이 시기의 요소들은 어떤 사태를 분석할 때, 다른 사건들을 생각할 때도 생각해야 한다. 372페이지부터는 각각의 나라들이 어떤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했는가, 각국의 해외 네트워크 전략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가를 다룬다. 포르투갈은 "교역의 종착점들을 통제"했다. 그다음 문단에 보면 "1600년 영국 동인도 회사가 출범"했고, 그다음에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발족"했고, 아래로 내려오면 프랑스도 자체 인도 회사를 설립했는데, 에스파니와 포르투갈의 모험사업도 프랑스의 모험사업과 마찬가지로 잘 안 되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꽤 오래까지 남아 있었는데, 그 이유는 거점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 가면 네덜란드 식민지 후손들이 꽤 많다. 현지 교육 파트너를 구하고, 거점을 확보했고, 그다음에 아예 거점을 확보했기 때문에 373페이지를 보면 "17세기 중엽 말라카와 실론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다." 거점을 확보하려면 사람을 주재를 시켜야 한다. 사람을 보내고 주제를 시키면 돈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이윤이 남았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374페이지를 보면 "전통적으로 역사가들은 아시아를 유럽과 아메리카 시장에 직접 연결하는 대양 횡단 교역을 개척한 유럽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교역의 양들은 양으로 보나 가치로 보나 아시아 내부의 거래가 대륙 간 거래를 크게 웃돌았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포르투갈 같은 경우는 이쪽으로 들어올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 동네 사람들은 기를 쓰고 이 사람들과 교역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양쪽의 요구가 잘 안 맞아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만약에 여기서 거점을 확보하는 일도 어긋났다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가 안 이루어졌을 것이고 식민지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도나 중국이나 이 동네 사람들은 서양과의 무역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다. 376페이지를 보면 "초기에 유럽인들은 향신료, 그중에서도 인도산 후추와 말루쿠 제도산 정향과 육두구, 메이스 같은 '고급 향신료'를 구했는데, 어느 정도는 유럽으로 수출하기 위해서였으나 주로 거대한 중국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중요한 지점이다. 유럽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이것을 가져다가 유럽으로 가지고 가면 이윤이 남지 않는다. 지난번에 읽은 것 중에 중국은 상대적으로 고립돼 있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인도양 무역과 중국 지역의 무역, 유럽인들이 아시아 내부 무역에 가담을 하게 된 것이 첫번째이다. 우리가 수출이라고 하면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그런 것만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두 번째로 "17세기에 대서양으로 수출된 인도산 면직물의 가치는 향신료 교역의 가치를 넘어섰다. 1670년대에 매년 100만 개 이상의 면포가 인도에서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인도산 면포, 그다음에 "중국에서 생산한 사치스러운 고가품인 중국산 견직물", "아라비아 남부와 자바 섬의 커피 원두", 그다음에 "중국의 차", 차는 후추, 고급 향신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었다. 첫째는 유럽의 상인들이 아시아 내부 거래에 개입을 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아시아에서 유럽에 판매한 물건들은 인도산 면직물, 중국산 견직물, 아라비아 남부와 자바섬의 커피 원두, 그다음에 중국의 차, 이렇게 네 가지이다. 이것은 엄청 이문이 남았다. 그러면 이제 거점을 만들어서 장사를 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교역에는 국적도 없고 애국심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교역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일단 국경의 경계를 생각하면 안 되고 상대적인 교역의 가치. 시장의 움직임을 생각해야 한다. 16세기, 17세기, 18세기에 인류의 역사를 바꿔낸 교역 상품들이 바로 면직물, 견직물, 커피,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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