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옥스퍼드 세계사」를 듣고 정리한다.
2025.06.11 🎤 옥스퍼드 세계사 18-2
18강: 제4부 제9장. 근대 초 세계의 지성과 예술(2)
일시: 2025. 6. 11.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수원시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4158
방금 전에 얘기한 것처럼 "토착민 가톨릭 사제, 물라토 순수자, 메스티소 광명파, 성스러운 '혼혈인', 카리스마적인 개신교 목사" 부분이 종교 혼합주의이고, 429페이지를 보면 "종교 혼합주의와 각양각색 결과"와 연결이 된다. 종교 혼합주의와 각양각색 결과,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천주교가 어떻게 하고 개신교가 어떻게 하고 불교가 어떻게 하고 하는 것들이 굉장히 곧이곧대로 원래의 종교적인 의례를 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고 굉장히 로컬라이즈된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라고 하는 것은 이미 창시자가 사망한 다음부터는 순수한 형태를 가질 수가 없다. 그것이 종교 혼합주의이다. 429페이지를 보면 "고수해온 모든 전통에는 변화의 씨앗이 들어 있으며, 모든 공동체는 자기네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여 의례와 전통을 조정한다." 꼭 기억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네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여 의례와 전통을 조종하지 않았으면 그 종교가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않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나라에 가톨릭 교회가 전파가 되었을 때만 해도 제사 지내는 것을 딱히 그렇게 심하게 금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살아남은 것이다. 그다음에 불교가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서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인 종교로 유지가 되었다. 사실은 유교도 종교지만 유교보다도 더 훨씬 더 오래전부터 신라 시대부터 불교가 전해 내려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교는 원래 석가모니가 창시한 종교의 어떤 모습하고 지금 우리가 불교라고 지칭하는 것 사이에는 말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반영해서 의례와 전통을 조정했다 라고 볼 수 있다. 일단 하나가 있고 그다음에 407페이지로 다시 와서 지금부터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이것은 근대 종교사의 영역에 속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려면 굉장히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종교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데 교리를 조금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아두어야 두어야 할 부분만 설명하겠다. 407페이지를 보면 "유럽 기독교권은 16세기에 조각이 났다." 16세기라고 하는 시기를 기억해 둬야 한다. 그러니까 유럽은 기독교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라고 하는 말은 16세기부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때부터는 프로테스탄트 영향력 아래 있고 카톨릭 영향력 아래에 있다 하더라도 그 영향력이 순전한 의미에서의 종교적인 영향력만이 아니라 종파적인 영향력, 내가 이번에 카톨릭을 받아들이면 정치 권력을 잡는 데 도움이 되겠어 라고 하는, 그러면 군주들이 거침없이 개종을 한다. 유럽 사람들이 그렇게 독실한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은 아프리카에 있고 그다음에 한국에 있다. 그러니까 유럽은 16세기부터 기독교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기보다는 기독교를 표면으로 하는 정치적인 영향력이 있었다. 그 다음에 1545년에서 1563년의 트리엔트 공의회를 기억을 해야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기준점이다. 그다음에 409페이지를 보면 "유럽 탐험가와 선교사가 세계의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도 기독교권은 변했다." 유럽 탐험가와 선교사가 세계에 복음을 전한다 라고 하는 것이 종교적인 열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국주의적인 점이 있다. 지난번에 이 책을 갖고 와서 소개하려다가 소개를 못했는데 《경도 - 해상시계 발명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과학에 관련된 책들인데 역사 책을 볼 때 알아두면 좋다. 그다음에 411페이지를 보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면, 비록 모호함의 정도는 지역별로 달랐을지라도, 유럽 어디서나 섭리의 설계는 불분명해 보였다." 중요한 말이다. 섭리의 설계라는 것은 신의 섭리를 말한다. 신의 섭리가 불분명해 보였다는 곳은 "지중해의 도시 공화국들, 특히 제노바, 피렌체, 베네치아는 흑사병 이후에 번창하면서도 이단과 광신적 숭배를 길러내는 듯이 보였다. 교황의 권위와 수도의 기반은 부패와 분열로 손상되었다." 그러니까 유럽의 기독교의 기반이라고 하는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를 기점으로 해서 더 이상 여기는 통일된 기독교 국가들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그런 상황이다. 섭리는 불분명해 보였다 라는 말을 기억해 두면 좋다. 그렇게 섭리가 불안정해 보인 시기에 사람들은 그러면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 라는 의지하고 싶은 신념 체계를 찾는다. 바로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은 고대의 신념 체계를 찾은 것에 불과하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에 걸쳐서 사람들을 지배한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가 지배한 곳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고대 플라톤을 가져다가 삶을 재설계하고 그럴 수가 없다. 대표적인 사람이 피치노 같은 사람인데, 피치노의 《사랑에 관하여 - 플라톤의 <향연> 주해》를 읽어봐도 플라톤의 향연을 본떴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 서적이다. 그러니까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을 과장해서 이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412페이지의 "아우구스티누스회 수사 마르틴 루터가 면벌부에 반대하는 95개 논제를 비텐베르크 교회에 내걸기 한참 전부터 서유럽은 섭리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마르틴 루터가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다. 그 연도가 1517년이다. 16세기는 마르틴 루터, 15세기는 르네상스가 아니다. 15세기는 그냥 뭘 믿고 살아야 하나 하던 때이다. 천 년 가까이 유럽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던 게 기독교 사상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갑자기 플라톤 읽어서는 인생을 달리 설계할 수 없다. 400년부터 1400년까지 천 년 넘게 기독교를 믿고 살았다. 고대 플라톤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살겠는가, 그렇지 않다. 마르틴 루터가 이제 이렇게 믿읍시다 라고 얘기했다고 해서 엄청나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마르틴 루터의 질문은 어떻게 해야 내가 죄를 면할 수 있는가인데, 그 질문은 사실 가톨릭의 질문이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호의 수도사였다. 어떻게 해야 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루터의 질문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섭리주의적인 분위기에 있는 것이다. 구원을 받고는 싶은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 기독교 안에서의 다른 방법이 없을까 라는 궁리에서 나온 게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중세 500년 동안 일어난 사건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건이 1500년대부터 1600년대에 일어났다. 그래서 계몽주의가 종교에 대해서 냉소주의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그 과정을 거치면서 종교가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의미를 준다 하는 것에 대한 종교의 신용이 떨어졌다. 그래서 개신교와 가톨릭이 1500년대와 1600년대 유럽 사회를 피로 물들였다고 하는 것을 꼭 기억해야 된다. 412페이지를 보면 "유럽의 재기독교화는 종교 재판을 열어 마녀를 '망치'로 심판하고, 비신자를 근절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나 미신적이고 이교적인 우선순위에 부적절하게 복종하는 자세를 드러내는 점성술과 전복 같은 민중 문화의 뿌리 깊은 특징을 퇴치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신앙이 극단적으로 가게 되면 경건주의라고 불리는 것들로도 가게 된다. 그다음에 415페이지를 보면 "사보나롤라를 처형하기 위한 장작더미와 연료를 쌓고 있다"는 그림이 있고, 416~418페이지에 있는 얘기들은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니까 기억을 해두면 되겠다. 419페이지의 전 세계적 개종은 해외선교 얘기를 하는 것이겠다. 그다음에 불교나 이슬람도 마찬가지고 430페이지를 보면 서양의 과학과 계몽사상은 약간 견강부회를 하는 느낌인데, 세상을 살려면 믿을 만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기독교가 신뢰를 잃었다. 그러면 믿을 만한 게 생겨나야 하는데, 그 믿을 만한 것에 자리를 잡고 올라온 게 자연과학과 계몽이다. 그러니까 신념 체계라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한다.
430페이지를 보면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근대 과학은 서양, 특히 유럽의 '과학 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아까 말한 유럽 중심 사관의 핵심이다. 서양에서 과학 혁명에 근거해서 문명 세계를 만들었고, 그 문명 세계가 계몽주의로 이어졌으며, 그것을 전 세계에 투사해서 전 세계 문명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유럽 사람들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럽은 과학적이라고 얘기하는데 이것은 절반만 맞는 얘기이다. 현대 과학이 유럽에서 시작된 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다 문명인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요즘에는 근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오로지 유럽에서만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하는 것에 대해서 반박이 되는 데이터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도 과학의 역사를 새롭게 생각을 하면서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근대 과학사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들은 상당 부분 유럽 중심주의 서사의 하위 단위에 있는 것들이었다 라고 생각을 하면 된다. 그 다음에 437페이지를 보면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18세기 중엽에 이르자 누구나 예컨대 바다에서 경도를 알아내느냐 하는 지극히 심각한 문제 해결책이 금방 나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아까 소개한 《경도》, 바다에서 경도를 어떻게 알아내는가, 해상 시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역사 책에서 부문사라고 하는데, 이런 부문사들도 아주 중요한 것들에 해당하는 부문사들은 한 권씩은 읽어놓아야 한다.
그다음에 444페이지의 괴물로 들어가기: 혁명의 이념과 나폴레옹의 이념은 프랑스 혁명 얘기이다. 제4부는 1350년에서 1815년까지인데,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나서가 1815년이니까, 혁명의 이념과 나폴레옹의 이념이라는 것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근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그다음에 근대 과학과 계몽주의는 일종의 종교 개혁의 반대 테제로서 등장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종교 개혁 시기를 거치면서 유럽에서는 기독교가 거의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지금 유럽에서 기독교가 쇠퇴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에 영향이 클 것이다. 한 300년 지났으니까 그렇다. 한국에서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세계사》라는 책이 있다. 프랑스 혁명에서 꼭 알아야 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계몽주의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성급한 가정이다." 장자크 루소와 같은 사람들이 계몽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고,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프랑스 혁명이 터졌고 하는 얘기들은 더 이상 저기 지탱되지 않는 내러티브이다. 계몽주의 자체가 굉장히 여러 가지 사조들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계몽주의가 현존하는 정치 체제를 둘러업고 뭐를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계몽은 적극적으로 뭘 세우는 게 아니다. 계몽은 빛을 비추는 것이다. 계몽이라고 하는 것은 어쨌든 지금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에서 상태가 변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계몽은 지극히 negative한 것으로, 그렇게 해서 다른 것을 적극적으로 공부하려는 것이 positive한 태도이다. 첫째로는 "이신론적·자연주의적 계몽주의가 있었다." 이신론적·자연주의적 계몽주의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인격신을 믿지 말고 하늘의 이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삽시다 하는 것이다. 계몽은 일단 빛을 비추는 것인데 무엇에다 빛을 비추는가. 기독교에다 빛을 비추는 것이다. 그다음에 나오는 얘기가 이신론적·자연주의적 계몽주의, 자연의 이치를 따라가자는 것이다. 그다음에 "지중해 연안에는 계몽주의의 다른 갈래, 즉 가톨릭 편에서 교황에게 경의를 표하는 한편 바로크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감수성으로 마술을 경계하고 저주를 거는 눈에 주의하는 갈래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체사레 베카리아의 저서 『범죄와 형벌』 그다음에 '인간의 시대'를 꿈꾼 잠바티스타 비코, 이것을 갖다가 교양주의라고 대게 부른다. 위에 것을 합리주의, 아랫 것을 교양주의라고 한다.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것을 깨뜨리자는 것이다. 계몽주의는 기본적으로 반 종교주의, 반기독교주의이다. 그렇게 한 다음에 이신론적·자연주의적 계몽주의가 하나 있는데 이를 합리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과학주의에 가깝다. 그다음에 교양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그다음에 445페이지를 보면 장자크 루소가 나오는데, 장자크 루소는 교양주의에 가깝다. 그러니까 계몽주의에서 나온 적극적인 어떤 흐름들을 이해하고자 할 때는 큰 틀로 이 사람이 합리주의에 가까운가 아니면 교양주의에 가까운가를 식별해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존스트어트 밀 같은 사람은 공리주의라고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공리주의라는 것은 계산을 해봐서 사람의 이익이 되는 걸 쫓아간다는 것인데 그러면 계몽주의에서 합리주의이다. 서양에서 18세기 이후에 등장한 모든 사상은 일단 기본적으로 계몽주의에서 시작을 한다. 즉 반종교주의에서 시작해서 합리주의, 인간의 욕망을 계산해라 하면 공리주의, 극단적으로 하면 철학적 급진주의라고 한다. 그러니까 계몽주의에서 합리주의 계보로 가는 것이다. 그다음에 심하게 그러지 말고 교황도 챙겨주고 사람은 복잡다단한 존재야 라고 생각하는 것이 교양주의이다. 비코라든가 헤겔이라든가 낭만주의라든가 이런 사람들이다. 그다음에 445페이지를 보면 프랑스 혁명과 관련해서 "루소의 사상이 이 사건에 영향을 주었다"라고 있는데 그것은 옆에다 물음표를 쳐두면 된다. 루소가 영향을 미친 바가 거의 없다 라고 하는 게 요즘의 정설이다. 그다음에 프랑스 혁명이 거기까지 나왔는데, 프랑스 혁명에서 왕을 죽였는데 왜 나폴레옹이 등장했을까 하는 것이 18세기 19세기 역사의 최대의 아이러니이다. 나폴레옹이 한 일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폴레옹은 굉장히 근대적인 일을 했다는 정도만 기억을 해두면 되겠다. 《나폴레옹 세계사》에 대해서는 다시 나중에 얘기를 하겠다. 계몽주의가 이렇게 있고 그다음에 나폴레옹을 넘어가면 낭만주의가 있다. 낭만주의는 교양주의 아래 써두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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