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창: 헤겔의 정신현상학

 

헤겔의 정신현상학 - 10점
이병창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EBS BOOKS

서문
1장 자유의지의 철학자, 헤겔
2장 『정신현상학』 읽기
3장 철학의 이정표
생애 연보
참고 문헌

 


46 합리적 자유의지 개념은 달리 표현하면 도덕적 자유 의지가 된다. 인간의 목적은 곧 그 사람의 가치, 규범이다. 그러므로 합리적 자유의지는 가치, 규범이 인간의 의지를 지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경우 가치, 규범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만일 억압적인 가치, 규범이라면 그것은 외적 강제에 속하게 된다. 자기가 원하는 목적이 지배하는 이런 도덕적 자유의지를 가장 옹호한 철학자가 바로 칸트이다. 

47 칸트의 자유의지 개념은 헤겔의 자유의지 개념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헤겔은 자유의지를 법적 인격과 구분한다. 법적 인격은 무엇이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헤겔은 이를 형식적 자유의지라 한다. 헤겔은 이런 인격의 실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이 사회적 정의라고 한다. 정의를 따르는 자유의지를 헤겔은 실질적 자유의지라고 하는데, 이 사회적 정의가 곧 도덕법칙이니, 헤겔의 자유의지 개념은 칸트의 순수의지 개념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겠다. 물론 헤겔은 칸트의 자유의지가 지닌 한계를 넘어 공동체적 자유의지로 나가지만, 그 출발점은 도덕법칙을 따르는 의지라는 개념에 있다. 

62 헤겔은 자기를 타자화하여 자기 내로 복귀하는 발전적 과정을 개념의 변증법적 운동이라 했다. 이 학문적 체계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것은 그 매개 과정이다. 

63 그는 개념의 발전 체계틀 서술하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독특한 언어를 만들어낸e다. 앞에서 내부에 감추어져 있는 일반적 개념 P를 그 자체적인 존재(an sich) 라고 이것이 자기틀 타자화하여 나타난 구체적인 현존 A를 대자적 존재(für sich)라고 한다. 이 현존 A가 부정되어 다시 등장하는 새로운 일반적 개념 P'를 헤겔은 '그 자체 존재대로 현상하는 존재(an sich und für sich)'라고 한다. 

69 「서문」에 나오는 개념의 운동으로 볼 때 전체 과정은 목적론적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추상적인 것이 자기를 구체적으로 실현한다. 그러나 「서론」에 나오는 의식 경험의 길을 통해서 볼 때 전체 과정은 끊임없이 모순을 해결해 나가는 열린 과정이다. 여기서 특정한 개념틀은 점차 일반적인 개념틀로 발전한다. 두 변증법이 나가는 방향은 전혀 반대처럼 보인다. 하나는 추상에서 구체로 나가며, 다른 하나는 개별에서 일반으로 나간다. 이 이중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헤겔이 「서문」에서 제시한 형태와 계기라는 개념은 이 관계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헤겔은 인식의 발전 과정에서 이전의 형태는 이후의 형태에서 내적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이를 기억, 또는 내면화(Erinnerung)의 과정이라 한다. 

136 정신 장에서 전체 과정은 개인이 이성을 자신의 목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다. 개인은 자신의 개별적 자아를 도야하여 이성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실질적 자유의지로 발전한다. 이 실질적 자유의지가 도덕적 자유의 지이며 이는 개인적 자아와 구별되는 일반적 자아이다. 

138 인륜적 실체는 가족과 국가로 분열되어 있다. 가족 속에서 개인은 미분화 상태에 있어서 개인은 그 통일성을 내적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다. 반면 국가에서 개인은 독립적으로 출현하면서 국가의 명령을 관습적인 방식으로 수행한다. 국가의 명령은 개인에게 습속으로 주어진 당위일 뿐, 개인은 이를 자각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 헤겔은 가족의 통일성을 신의 법칙이라고 하며 국가의 명령은 인간의 법칙이라고 규정한다. 

232 지금까지 정신은 개인의 정신이었다. 그런 정신은 역사적으로 발전하면서 앞의 정신보다 더 포괄적으로 완성되었다. 그런데 절대정신은 더이상 개인이 지닌 어떤 정신은 아니다. 절대정신은 하나의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내적으로 서로 구분된다. 각 부분은 각자 고유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전체를 구성한다. 또한, 각자는 자기의 한계를 지니면서, 자신의 한계를 타자를 통해 극복한다. 각자는 전체의 부분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곧 전체가 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공동체는 단순히 목적의 통일성만은 아니며 마침내 이루어진 의지의 통일성이다. 이 공동체를 공동적 자아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아직 그 자체로서 출현하지는 않았다. 절대정신의 마지막 단계인 절대지에 이르러 비로소 그런 공동체가 출현한다. 절대정신의 첫 단계에서는 공동체의 자아가 직접 출현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출현한다. 그게 바로 신이다. 

244 계시 종교는 마침내 삼위일체라는 상징을 발전시킨다. 이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을 말하지만, 헤겔은 이를 신의 수육과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교회의 출현을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삼위일체라는 상징은 사실 공동체의 내적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계시 종교는 아직 공동체의 내적 관계를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종교적 상징의 차원에 머물렀다. 계시 종교가 개념의 차원에서 파악되면서 『정신현상학』의 마지막 장인 절대지로 이행한다. 

245 헤겔에서 절대지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정신의 발전 과정 중에 최종적으로 등장한 정신의 최종 형태라는 의미다. 이 정신의 최종 형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절대지에서 전개되는 개념의 운동은 곧 개인과 공동체의 통일을 의미한다. 개인은 공동체적 의지를 자발적으로 따르며, 공동체는 개인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된 것이다. 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는, 곧 하나는 전체가 되고 전체는 하나가 되는 관계이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이런 사회를 '개념의 운동'으로 표현하는 데 그쳤다. 이런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은 『법철학』에서 국가의 형태로 구체화한다. 간단하게 그 모습을 그려내보자. 국가는 군주와 의회 그리고 관료의 통일체이다. 군주는 개별성의 계기이며, 의회는 일반성의 계기다. 관료는 양자를 매개하는 특수성의 계기다. 의회를 통해 결정된 법은 관료를 통해 구체적 현실에 맞게 특수하게 실행된다. 그 가운데 특수하게 실현된 법은 본래 입법의 정신에서 이탈할 수 있으니, 군주가 개입해 이를 본래의 입법 정신으로 되돌린다. 

247 절대지는 정신이 발전한 최종 형태다. 그런데 헤겔은 이 절대지에서 학문이 출현한다고 한다. 이것이 절대지가 가진 두번째 의미다. 절대지의 두 번째 의미를 이해하려면 헤겔이 제시하는 형태와 계기의 변증법을 이해해야 한다. 정신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이행한다. 이 형태는 개별적인 것에서 더 복잡한 것으로 전개되니, 밀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전의 형태는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에서 체계를 형성하는 내적 계기로 떨어진다. 헤겔은 이를 내면화 (Erinnerung, 기억)의 과정이라 한다. 새로운 형태에 포함된 이전의 형태들은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 이 체계는 논리적 체계 즉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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