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마조워: 암흑의 대륙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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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대륙 - ![]() 마크 마조워 (지은이),김준형 (옮긴이)후마니타스 |
서문
1. 버려진 성전 : 민주주의의 부상과 몰락
2. 제국, 민족국가, 소수민족
3. 건강한 육체, 병든 육체
4. 자본주의의 위기
5. 히틀러의 신질서, 1938~45년
6. 황금기를 위한 청사진
7. 가혹한 평화, 1943~49년
8. 인민민주주의의 건설
9. 민주주의의 변화 : 서유럽, 1950~75년
10. 위기에 처한 사회 협약
11. 상어와 돌고래 : 공산주의의 붕괴
에필로그 : 어떤 유럽을 만들 것인가
부록
옮긴이 후기
미주
좀 더 읽을 만한 책
인명사전
찾아보기
9 우리는 늘 유럽을 역사가 오래된 국가와 사람들의 대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럽은 20세기를 전후로 정치적 격변과 자기 변신을 경험한 매우 젊은 대륙이다. 프로이센처럼 오늘날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진 나라도 있고, 오스트리아나 마케도니아처럼 건국한 지 1백 년이 채 안 된 나라도 있다. 내 할머니는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그곳은 러시아 차르제국의 일부였다. 또한 트리에스테는 합스부르크제국의 일부였고, 살로니카'는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다. 또한 폴란드는 독일이, 아일랜드는 영국이, 알제리는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오늘날 민주적 민족국가nation-state는 하나의 규범이 되어 버렸지만 당시에 이에 가까운 나라는 발칸의 몇몇 군주정 정도였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국가는 하나도 없었으며, 권력의 중심이 군주가 아니라 의회에 있던 국가도 거의 없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민족국가와 관련이 깊은 현대 민주주의는 1914년 유럽 질서가 붕괴한 이후 진행된 길고 험난한 국내 및 국제적 실험의 산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는 6천5백만 명이 동원되었으며 사망자가 8백만 명, 부상자는 2천1백만 명에 달했다. 그리고 유럽 대륙에 있던 네 개의 대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가 마사리크가 묘사한 것처럼 유럽은"거대한 묘지 위에 세워진 실험실"과도 같았다. 러시아의 예술가 엘 리시츠키티는 세계대전 덕분에 우리는 인류의 모든 가치를 시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카이저[빌헬름 2세]가 망명길에 오르고, 차르와 그 가족이 피살되는 구질서의 붕괴 속에서 정치가들은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들고자 더 공정한 사회와 독립국가의 건설 같은 전례 없는 공약을 마구 쏟아냈다. 자유주의자 우드로 윌슨은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는 안전한" 세계를 제안했으며, 레닌은 착취의 도구였던 과거의 계급 구조를 타파하고 빈곤에서 해방된 공산주의 사회를 약속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모든 잡종을 제거하고 순수 혈통의 종족들이 하나의 숭고한 목적을 갖는 제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이 경쟁적인 세 개의 이데올로기, 즉 자유민주주의·공산주의· 파시즘은 각각 자신만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질서 속에서 사회와 유럽, 나아가 세계를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 유럽을 자기 방식대로 조형하려는 이들 세 이데올로기 간의 끊임없는 투쟁이 20세기 내내 일어났다.
12 모든 이데올로기에는 역사의 종말로서 유토피아가 존재한다. 세계 공산주의, 전 지구적 민주주의, 천년왕국 등 종류만 다를 뿐이다. 이냐치오 실로네가 지적했듯이 "사람들은 역사를 승리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은 대체로 현재를 통해 과거를 해석한다. 예를 들어, 냉전이 이런 식으로 종식되었으므로 자유민주주의가 유럽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고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의 여러 투쟁과 불확실성 가운데서 비롯된 하나의 결과일 뿐이라는 새로운 역사 해석이 필요하다. 그런 역사 해석이 정치적으로는 덜 유용할지 몰라도 진실에는 더 가깝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초기에 성공적이었던 유럽 민주주의는 20년이 지난 시점부터 완전히 빈사 상태에 빠지게 된다. 1989년 사건을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규정한다 하더라도, 이런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공산주의가 전체주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가 전체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 승리할 수밖에 없고, 역사적으로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는 유럽이 어떤 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지, 또는 건설하고자 하는지 더 두고 봐야하는 이치와 같다. 이 책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서, 필연적 승리나 진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좁은 고비와 예상하지 못한 뒤틀림에 관한 이야기다.
이데올로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안내자로서보다는 이념과 정치적 행동의 견인차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과거의 도그마가 더는 우리에게 매력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처음부터 거대한 속임수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재 많은 사람이 공산주의의 종언을 "환상의 종언"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 분석은 추도사가 아니다. 1945년 직후에 사람들은 전체주의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했다. 악마에 사로잡힌 광기 어린 한 독재자가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었던 정치적 병리 현상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 대륙이 받은 상처를 그저 몇몇 정신나간 인간들의 소행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으며, 그 상처가 남긴 정신적 외상이 히틀러나 스탈린의 정신세계 속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좋건 싫건 간에 파시즘과 나치즘 모두 대중 정치· 산업화·사회질서라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했다. 자유민주주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리자면, "나쁜 과거를 내던지고 시간의 망각 속에 묻어 버리면서 과거에 좋았던 것만을 우리의 유산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15 내가 생각하는 유럽의 지리적 개념은 기본적으로 실용적이다. 이 책은 유럽 안에서 일어난 사건과 투쟁에 관한 것이지, 유럽이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논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론 대륙을 향한 히틀러의 야망은 해외 식민지를 향한 유럽 제국주의의 맥락에서 보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으며, 미국을 빼고 냉전을 설명할 수는 없다. 또한 유라시아 국가로서 소련은 시기에 따라 유럽의 안이기도 했고 바깥이기도 했다. 따라서 유럽의 경계선에는 허점과 동시에 유연성이 있다. 동유럽도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발칸도 스칸디나비아와 마찬가지로 유럽인 것이다.
23 1930년대에는 의회 역시 군주들과 같은 운명을 걷는 듯했다. 좌파는 축출되거나, 서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수세에 몰렸다. 그리고 모든 정치적 논쟁은 우파 내에서만 벌어졌다. 북유럽의 한쪽 끝에서만 의회주의가 겨우 살아남았다. 1934년 "민주주의에 대한 현재의 반동"이라는 주제를 분석한 이는 이런 상황을 놓고 마치 "가장 용감했던 사람들이 엄청난 절망의 순간을 맞이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으로 난파된 사회적 안정과 국제 평화를 향한 희망이 슬프게도 환영처럼 느껴지는 그런 시기를 살고 있었다"라고 표현했다. 이를 두고 1925년 독일의 법학자인 모리츠 본은 "유럽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말했으며, 유스타스 퍼시는 1931년에 "시험대에 오른 민주주의"라고 표현했고, 허버트 조지 웰스는 이미 "민주주의 이후"를 말하기 시작했다. 살바도르 데 마다리아가는 스페인 내전의 한가운데서 "진정 민주주의의 종말인가?"라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네바에서 윌리엄 라파드 교수는 이를 두고 "현대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명백히 승리한 이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문명화된 인류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3 전기의 민주주의 실험을 새로운 것으로 간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가 유럽에 원래부터 적합한 제도라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냉전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해서, 그것이 민주주의가 오래 전부터 유럽의 토양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우리에게 그 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18년의 승리는 꼭 20년 뒤에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도 당시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위기와 경제적 혼란기를 맞아 붕괴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은 너무 이상주의적이었으며, 야심이 너무 컸던 반면에 그 숫자는 너무 적었다. 헌법적 권리에 지나치게 집착한 반면, 사회적 책임에는 무관심했던 당시의 민주주의는 20세기보다는 오히려 19세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까지 대다수 유럽인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반대로 근대성의 도전에 대해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었던 것이다. 유럽은 그들의 전통과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권위주의라는 정치 질서를 발견했고, 이를 사회·산업·기술을 통제하는 아주 효율적인 제도라고 생각했다.
532 유럽 국 역사에 새로운 것은 갈들의 전재가 아니라 갈등의 규모이다. 과거의 대제국들 ─ 비잔틴제국, 합스부르크제국, 오스만제국이 통치했던 오랜 세월 ─ 과 비교하면, 20세기의 이데올로기들이 시도한 유토피아적 실험들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가 사라져 갔다. 그러나 이런 이데올로기 투쟁은 사회 전체를 군사화하고 국가를 강화했으며, 현대적 관료 체계와 기술을 이용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학살함으로써 유럽인들의 삶에 새로운 수준의 폭력을 불러왔다. 1870~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은 18만4천 명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8백만 명,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4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그 가운데 절반이 민간인이었다)이 죽었다. 이 상처의 깊이만큼이나, 유럽을 새로 건설하겠다는 열망 또한 어느 때보다 컸다. 오늘날 유럽이 이데올로기적인 피로 현상을 겪고 있다거나, 정치가 전망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도 이는 별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전 총리프란츠 프라니츠키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 비전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의사한테 가봐야 할 것이다."
1989년 이후 유럽 민주주의의 기묘한 승리는 이런 환멸로 물들어 있었다. 70년 전만 해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 유럽에서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한 자유주의적 꿈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유럽은 마치 전 인류의 모델이 될 운명인 것처럼 보였다. 국제연맹을 통해 동유럽의 신생 국가들은 좀 더 성숙하고 발전된 서유럽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유럽의 거대한 제국들은 식민지를 통해 전 세계로 민주주의를 널리 전파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89년 유럽에서 일어난 공산주의의 붕괴는 그런 식의 전 지구적 함의를 갖지 않았으며, 그런 복음주의적 꿈도 없었다. 민주주의 체제가 오늘날 유럽인들에게 적합한 이유는,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승리를 동반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다른 대안들에 비해 개인의 삶에 덜 간섭하고, 책임을 덜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은 정치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 국가 간 비교를 위한 교차 여론조사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높게 나타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무관심이 상당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늘날 유럽의 민주주의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인종주의적 극우 정당과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정당이 공존할 수 있다. 또한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에는 스위스의 풀뿌리 정치에서부터 거의 독재에 가까운 크로아티아까지 존재한다.
533 1989년 격변의 진정한 승자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 유럽은 1930년 대 이후에 서유럽이 직면했던 문제들, 즉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작동 가능한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다시 직면하고 있다. 전간기의 대공황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사실,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선된 사회 협약이 없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고용의 시대가 가고 복지가 축소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업적을 유지하기가 어느 때보다 어려워지고 있으며, 특히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금융시장의 세계화로 개별 국가는 점점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렵고, 시장은 여전히 일련의 공황과 시장의 붕괴 사례가 보여주듯이 비합리성과 사회적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노동의 세계화 역시 일국적 시민권·문화·전통에 대한 기존의 정의에 도전하고 있다.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자유를 유지하면서 유럽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개인주의와 동아시아의 권위주의 사이에서 어떤 경로를 선택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은 민주주의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정의할 수 있게 해주었던 적수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정치적 이정표들은 사라졌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537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국가 체제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즉, 협력이 경쟁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포기했으며 번영을 위해 식민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핵무기의 등장으로 과거의 전략적 사고는 진부한 것이 되었으며, 전쟁을 더 이상 국가 정책의 일부로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군대는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뀌면서 규모가 작아졌다. 국경을 지키는 일은 이제 군대가 아니라 경찰의 일이 되었다. 불법 이민이 이웃 나라의 군대보다 더 큰 근심거리가 된 것이다. 소수민족은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1950년 이전과 비교하면 숫자가 훨씬 작아졌다. 대량 학살과 추방, 동화 정책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의 중요한 원인은 사실상 사라졌다. 요컨대, 유럽은 전쟁이나 제국, 또는 영토 같은 것들이 과거와는 달리 국가적 안녕에 덜 중요해 보이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그 결과 오늘날 유럽의 인구 감소 추세는, 과거 1930년대에 광풍처럼 번졌던 인종적 순수성이나 군사적 업적, 국가적 생식 능력의 과시 같은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이제는 연금이나 복지 개혁 같은 것들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해 있거나 가입하기를 원하는데, 이는 역사상 전례 없는 현상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유럽주의자들'의 기획은 비현실적인 공포와 예측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족국가는 그 어느 시기보다 강력하며, 자발적으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유럽 평화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유럽연합은 자본주의에 대한 서유럽 국가들의 순응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럽연합의 존재는, 일국적 경제정책이 더 이상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회원국들이 인정하고, 그들의 번영이 유럽연합을 통한 협력과 합작에 달려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것이 바로 유럽연합이 가장 중요한 경제공동체로 남아 있는 이유이다. 즉, 유럽연합은 유럽 자본주의가 점점 전 지구화되고 있는 시대의 필요에 적응하려는 시도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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