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보위: 독일 철학 개론 ─ 칸트에서 하버마스까지

독일 철학 개론 독일 철학 개론 - 10점
앤드류 보위 (지은이),김지호 (옮긴이)도서출판100

 

• 머리말
 서론
1. 칸트의 혁명
2. 언어의 발견: 하만과 헤르더
3. 독일 관념론: 피히테에서 초기 셸링까지
4. 독일 관념론: 헤겔
5. 관념론 비판 I: 초기 낭만주의에서 포이어바흐까지
6. 관념론 비판 II: 마르크스
7. 관념론 비판 III: 니체
8. 언어적 전환
9. 현상학
10. 하이데거: 존재와 해석학
11. 비판 이론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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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1 왜 독일 철학은 우리의 철학 문화와 이론 문화에서 핵심을 이루면서도 동시에 사상과 역사적 현실이 잘못된 방식으로 만날 때 발생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경고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들은 이론적 성찰이 전례 없이 널리 퍼져 있는 인문학의 현대적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이론' 및 '대륙' 내지 '유럽' 철학이라는 제목하에 진행되는 이론의 발전은 대부분의 인문학 주제에서 언어, 주체성, 과학 및 예술 개념을 재고하게 했다. 그러나 인문학에서 거의 모든 새로운 방향이 1780년대 임마누엘 칸트의 작업에서 시작하여 독일 낭만주의, 독일 관념론, 역사적 유물론, 현상학, 해석학 및 비판이론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일 철학 전통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권력과 지식이 어떻게 해서 뗄 수 없는 관계인지 관한 미셸 푸코의 성찰은 19세기 말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에서부터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F. W. J. 셸링, J.G. 피히테의 작업, 심지어 18세기 초반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의 작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상에 의존한다. 요즘에는 영미의 분석 철학 전통뿐만 아니라 모든 '이론' 영역에서 몇 가지 버전의 '언어적 전환'을 추종하는 경향이 거의 보편적이다. 언어적 전환은 철학의 초점을 정신의 작용에서 언어의 역할로 옮겼는데, 이 역시 칸트 및 칸트 이후의 독일 전통에서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사회 이론 같은 다른 몇몇 인문학 영역에서는 독일 철학 전통의 영향이 널리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제시하는 식으로 이 전통에 대한 더 폭넓은 철학적 검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4 카를 마르크스가 1848년에 <공산당 선언>에서 했던, 자본주의에서 "굳어진 것은 모두 사라진다"는 말이 여기서 실마리를 제공한다. 마르크스가 의미한 바는 새로운 시장 경제가 전통에 의해 주어진 고정된 세계 질서 관념을 약화했다는 것이다. 특정한 용도에 있는 대상의 가치를 화폐 가치에 종속시킴으로써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시장 경제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사물의 가치가 사물 자체의 본유적 가치나 사물의 전통적, 신학적 가치보다 사물이 직면한 상황에 좌우된다. 이러한 변화는 근대성의 다른 측면에도 반영되어 있으며, 독일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데 계속 큰 어려움을 겪었다. 따라서 독일이 이러한 변화에 대해 더욱 정교하게 이론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커졌다. 대략적으로 말하면,'근대성에는 이전에 확립된 질서를 붕괴시킬 만한 다섯 가지 서로 연관된 차원이 있다.) 
1. 옛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위계질서는 변천하는 새로운 위계질서로 대체되고, 이러한 새로운 위계질서에서는 더 이상 기존 전통이나 신학에서 곧바로 가치들이 도출되지 않는다. 
2. 사회에서 주어진 위치와 신이 부여한 타고난 본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안정적인 정체성을 갖는다는 생각은 상반되는 두 가지 새로운 생각으로 대체된다. 첫째, 더 높은 권위가 나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자율적으로 나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둘째, 역사적으로 변하는 새로운 사회적·경제적 압력, 나를 사회화한 언어, 그리고 어린 시절 양육, 무의식, 계급 구조에서 내 위치와 같은 다른 요인들로부터 내가 만들어지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내 통제를 벗어난 것이다. 
3. 신학에 기초한 지식과 대를 이어 내려오며 확립된 권위는 자연 과학과 인문학에서 경험적 연구를 통해 점점 더 놀라운 속도로 변하고 있는 지식으로 대체된다. 
4. 주로 권력자를 위한 유희나 종교 의식과 관련된다고 여겨졌던 예술은 오로지 예술 자체의 변화하는 규칙과 예술가의 자유에만 종속되는 '자율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예술 자체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된다. 
5. 이전에는 언어가 신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사물의 선재적 질서를 반영하는 상징 매체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언어는 사물에 그 사물이게끔 하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사물을 드러낸다. 따라서 시와 음악의 언어에 더 큰 중요성이 부여되고, 서로 다른 민족의 언어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방식에 새로운 관심이 생긴다. 

17 근대 독일 철학 전통의 주요 요소들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질서의 파괴와 창조 사이에서 본질적인 긴장의 조짐을 살펴보면 유용하다. 이는 우리가 살펴볼 독일 사상가들에 대한 빈번한 참조점이 된다. 근대 세계의 기반이 되는 두 개의 텍스트인 1638년의 《방법서설》과 1641년의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에서, 르네 데카르트는 중세 세계상과의 작별을 고한다. 그는 전통에서 파생된 모든 과학적 진리─자신과 다른 이들이 수행한 과학적 연구에 비추어 보니 검증 불가능해 보였다─와 모든 지각 경험의 진실성─자신이 꿈을 꾸고 있지 않으며 환각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할 수 없었다─을 의심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중세 세계에 작별을 고한 것이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확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로서 실존한다는 점이며, 의심 가능성 자체는 남아 있더라도 이 점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의심할 수 있는 존재가 없으면 의심하는 일 자체도 없다. 그는 경험의 다른 측면은 모두 잠재적으로 기만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데카르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의심 불가능하다고 확정 지을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기존에 받아들여진 지혜가 아닌 엄격한 방법론에 기초하여 진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세계상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이후의 역사는 이 기획의 긍정적 목표를 확인하기 위해 나올 것이다. 자연 과학은 신화적인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목적에 맞게 실제로 자연 세계를 통제할 수 있게 해 주는 이론을 점점 더 많이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데카르트 이후 철학의 역사는 과학이 신뢰할 만한 예측을 제공하는 데 그토록 성공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 실패의 역사였다. 과학은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등의 작업을 통해 예측 법칙을 바탕으로 자연과 우리 자신을 점점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제공한다. 이러한 개념이 예측과 설명에 성공한 것을 해명하는 일은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어떤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철학은 '과학의 과학'이 되지 않는다. 훨씬 더 중요한 점은, 설명과 예측 능력의 성장이 이러한 능력의 결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합리적 의사 결정 능력을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6 독일 철학은 역사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가르침을 주는 이러한 긴장에 대해 여러 반응을 보여준다. 따라서 '논증 기반 접근법과 '역사적 접근법 사이의 긴장을 보다 성찰적인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방금 설명한 긴장은 '실증주의적' 사고와 '낭만주의적' 사고 사이의 긴장을 또 다른 형태로 제시한 것이며, 이제 점점 널리 논의되고 있는 '분석' 철학과'대륙' 내지 '유럽' 철학 사이의 분열과도 연결된다. 이 분열에 다리를 놓을 수 없다고 보는 철학자가 최근까지 많았다. 한 전통은 문제를 분리하여 세부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최대한 논리적으로 엄밀하게 논증하려 한다고 여겨졌고, 다른 전통은 연구하는 텍스트에서 논증의 타당성만큼이나 철학의 텍스트성과 철학의 역사를 탐구하려 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두 접근 방식의 경계가 확고부동하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짐에 따라 양쪽을 나누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일부 '대륙' 철학자들의 논증 스타일은 반대편에 있는 일부 분석 철학자들과 다를 수 있지만, 현재 헤겔에 관심 있는 사람이 예컨대 한편에서 헤겔을 연구한 것에만 골몰한다면 좋을 게 없을 것이다. 이렇게 철저히 다른 접근 방식이 현대 사상에 제기하는 도전은 현재 상황에서 불가피해 보인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나의 목표는 전통들 사이의 보다 창조적이고 미래적인 대화를 세워 나가는 데 기여할 만한 쟁점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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