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노 과레스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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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리커버 특별판) |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리커버 특별판) 1 | 죠반니노 과레스끼 - ![]()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은이),이승수 (옮긴이)서교출판사 |
프롤로그- 돈 까밀로와 뻬뽀네의 재미난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 및 토막
하느님마저 겁을 집어먹으셨던 이야기∣ 약속을 지킨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 ∣ 고해성사∣세례 ∣성명서∣ 추적 ∣ 때늦은 공부∣ 사냥∣ 화재사건 ∣보물 ∣ 무기여 잘 있거라∣ 경쟁 ∣ 돈 까밀로의 응징∣폭탄 ∣ 기적의 달걀∣ 죄와 벌 ∣ 돌아온 돈 까밀로∣ 축구시합 ∣ 기이한 복수전 ∣돈 까밀로와 뻬뽀네의 공동작업 ∣행렬 ∣ 무관심하기 운동∣ 종 ∣총파업∣도회지 공산당원들 ∣ 옹고집 영감∣ 무식자의 철학 / 로미오와 줄리엣
세례
42 예수님이 엄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아닙니다. 그냥 해본 소리입니다."
"돈 까밀로야, 정신 차려라."
예수님이 경고하셨다.
돈 까밀로는 제의로 갈아입고 제단 앞으로 갔다.
"아기 이름을 뭐라고 할 건가?"
"레닌 리베로 안토니오."
뻬뽀네의 아내가 돈 까밀로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러시아에 가서 세례를 받게."
돈 까밀로는 시뻘게진 얼굴로 솥뚜껑만큼 큰 손으로 세례반 뚜껑을 '탁' 소리 나게 닫아버렸다. 그러자 세 사람은 말없이 성당을 나갔다. 돈 까밀로는 제의실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추상같은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돈 까밀로, 너 아주 못된 짓을 저질렀구나! 빨리 가서 저 사람들을 불러다 세례를 주거라!"
"예수님, 세례는 절대 장난으로 주는 게 아닙니다. 세례는 성스런 겁니다. 세례는…”
“돈 까밀로! 감히 내게 세례가 뭔지 가르칠 셈이냐? 넌 커다란 죄를 지었다. 저 아이가 만약 지금 이 순간 목숨을 잃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아이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순전히 탓이다!"
"예수님, 과장이 너무 심하십니다!"
돈 까밀로가 억울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멀쩡한 아이가 왜 갑자기 죽겠습니까? 장미처럼 싱싱하고 살결이 뽀얗기만 하던데요."
"괜한 소리가 아니다. 갑자기 아이 머리에 기왓장이 떨어지거나 발작이 일어날 수도 있다. 넌 세례를 주었어야 했다."
"예수님,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저 애가 죽어서 지옥에 간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 아이는 불한당의 자식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천국에까지 머리를 들이밀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레닌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를 예수님이 계신 천국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천국의 명예를 생각해서 그런겁니다."
"천국의 명예는 내가 알아서 생각하겠다."
예수님이 버럭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나한테 중요한 건 착한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거다. 이름이 레닌이건 마르크스건 나한텐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넌 그 사람들을 설득해 볼 수도 있었다. 아이에게 이상한 이름을 붙여주면 커서 놀림감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늘 제 잘못이군요. 수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누군가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뻬뽀네가 혼자 아이를 안고 나타난 것이다. 그는 성당 안으로 들어오더니 문을 잠갔다.
"내 아들이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못한다면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소."
삐뽀네가 소리쳤다.
돈 까밀로가 웃음 띤 얼굴로 예수님에게 돌아서며 속삭였다.
"보십시오! 저런 놈이라니까요."
“저 사람의 처지가 되어 봐라. 저 사람이 사는 방식을 인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이해할 수는 있을 거다."
돈 까밀로는 고개를 저었다.
뻬뽀네는 강보에 싸인 아이를 의자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돈 까밀로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소매를 걷어 올렸다.
"다시 한 번 말하겠소. 내가 원하는 대로 아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다면 여기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소. 단 한 발자국도."
“예수님."
돈 까밀로는 간청하듯 말했다.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의 사제가 저 못된 공산당 두목의 명령에 굴복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신다면 뜻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내일 저들이 제게 송아지를 데려와서 세례를 달라고 강요해도 불평하지 마십시오. 아실 겁니다. 나쁜 선례를 만들어놓을 수 있다는걸...."
“이번 경우는 네가 저 사람을 이해시켜야 한다."
"저 인간이 제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요?"
"돈 까밀로, 한번 해보렴. 참아야 한다. 내가 했던 것처럼 말이야."
돈 까밀로는 몸을 휙 돌리며 말했다.
"좋아, 빼뽀네. 아이에게 세례를 주겠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이름으로는 안 돼!"
“왜 안 된다는 거요? 돈 까밀로!"
뻬뽀네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내가 산에서 싸우다가 등짝에 총알을 하나 맞은 뒤부터 얼마나 날렵해졌는지 가르쳐 드릴까? 비겁하게 뒤에서 걷어찰 생각일랑 하지 마! 그랬다가는 나도 의자로 후려쳐버릴 테니까!"
"안심하게, 빼뽀네. 비겁하게 뒤에서 걷어차지는 않겠어. 그렇지만 손 좀 봐야겠는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돈 까밀로는 빼뽀네의 귀밑에 주먹을 날렸다. 뻬뽀네는 갑자기 날아온 주먹을 맞고 뒤로 나자빠졌다. 하지만 그도 만만치 않았다. 벌떡 일어나 반격을 해왔다. 두 사람 모두 솥뚜껑처럼 생긴 큼지막한 주먹을 갖고 있었다. 휙휙 공기를 가르며 주먹이 날아다녔다. 20분 동안이나 성당 안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그때 돈 까밀로의 등 뒤에서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내라! 돈 까밀로! 아래턱을 공격해라, 아래턱을!"
제단 위의 예수님이었다. 돈 까밀로는 예수님의 말대로 빼뽀네의 아래턱을 힘껏 후려쳤다. 뻬뽀네는 보기 좋게 뒤로 나가떨어져 10분 가까이 널브러져 있었다. 잠시 후 빼뽀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턱을 문지르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웃옷을 입고 붉은 목도리를 두르고 나더니 아이를 안아 올렸다.
돈 까밀로는 어느새 제의로 갈아입고 세례반 앞에 장승처럼 서서 빼뽀네를 기다렸다. 뻬뽀네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름을 뭐라고 할까?"
"까밀로 리베로 안토니오."
삐뽀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돈 까밀로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토니오 대신 그냥 레닌을 집어넣자고. 그래서 '리베로 까밀로 레닌' 이라고 부르세. 까밀로가 옆에 붙어 있으면 제아무리 레닌이라도 별수 없을 테니까."
돈 까밀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멘"
빼뽀네는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세례식이 끝난 뒤 돈 까밀로가 제단 앞을 지나자 예수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돈 까밀로, 인정한다. 정치적인 면에서 네가 나보다 한 수 위로구나. 하하하."
"주먹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까밀로는 이마 위에 난 커다란 혹을 무심히 쓰다듬으며 오만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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