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커쇼: 유럽 1914-1949 - 죽다 겨우 살아나다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9. 9.
![]() |
유럽 1914-1949 | 유럽 | 이언 커쇼 - ![]() 이언 커쇼 (지은이),류한수 (옮긴이)이데아 |
들어가는 글·13
감사의 말·19
서문: 유럽의 자기파괴 시대·22
1. 벼랑 끝에서
2. 대재앙
3. 요동치는 평화
4. 화산 위에서 춤을 추다
5. 짙어지는 어스름
6. 위험 구역
7. 구렁텅이를 향해
8. 지상의 지옥
9. 암울한 몇십 년 동안의 소리 없는 이행
10. 잿더미로부터
옮긴이의 글·865
참고문헌·870
삽화 및 지도 목록·903
찾아보기·905
서문: 유럽의 자기파괴 시대
22 유럽의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뒤이은 (그 자체가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산물인) 40년 이상의 '냉전'이 20세기를 규정했다. 20세기는 예사롭지 않게 인상적이고 비극적이고 한없이 매혹적인 세기였으며, 20세기사는 격변과 굉장한 변혁의 역사였다. 20세기 동안 유럽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1815년 이후 한 세기 동안 문명의 절정이라고 자부해온 유럽 대륙이 1914년과 1945년 사이에 야만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그러나 파국적인 자기파괴 시대 뒤에는 (비록 화해 불가능한 정치적 분단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렀을지라도)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안정과 번영이 따랐다. 그 뒤로 재통합된 유럽은 거세지는 세계화와 심각한 외부 도전에서 비롯한 엄청난 내부 압력에 직면해서, 심지어는 2008년의 금융 붕괴가 그 대륙을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새 위기 속에 빠뜨리기 전에도 차츰차츰 심해지는 내재적 긴장을 겪었다.
제2권은 1950년 이후 시대를 탐구할 것이다. 이 제1권은 20세기 전반기, 즉 양차 세계대전 시대 유럽의 자기파괴를 살펴보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뿜어 나오는 위험한 힘들이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과는 뗄 수 없는 미증유의 제노사이드와 함께) 파란만장한 20세기 유럽사의 진앙이자 결정적 일화인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상상하기 힘든 강도의 비인간성과 파괴로 끝났는지를 탐구한다.
이후의 장들은 이 대파국의 원인을 탐구한다. 여기서는 오로지 이 수십 년에만 나타나는 포괄적 위기의 맞물린 4대 요인을 찾아낸다. 이 4대 요인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종주의적 민족주의의 폭발. 둘째, 거세고도 조정 불가능한 영토 개정 요구. 셋째, 격심한 (이제는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구체적 구심점을 얻은) 계급 갈등, 넷째, (많은 관찰자가 최종적이라고 생각한) 자본주의의 장기 위기. 볼셰비즘의 승리는 1917년 이후의 중대한 새 구성 요소였다. 1920년대 중엽의 단 몇 해 동안 완화되었을 뿐 거의 늘 위기 상태에 있었던 자본주의도 그러했다. 다른 요인들은, 비록 훨씬 덜 격심한 형태로였을지라도, 1914년 이전에 존재했다. 그 어느 요인도 제1차 세계대전의 제1차적 원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각 요인의 새로운 독성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결정적 산물이었다. 이제 그 요인들의 치명적 상호작용은 엄청난 폭력의 시대를 낳았고,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그 4대 요인의 내적 연동으로 최악의 영향을 받은 곳이 대체로 유럽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중부 유럽, 동유럽, 남동부 유럽이었다. (스페인은 중요한 예외였을지라도) 서유럽의 형편은 더 나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제국이 해체되고 러시아혁명 직후의 러시아 내전에서 엄청난 폭력적 격동이 일어나면서 극단적인 통합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힘이 풀려났다. 그 민족주의에서는 국민 일체감이 보통은 인종적으로 규정되었다. 인종적인 민족주의 갈등은 (인종이 뒤섞인 유서 깊은 공동체들의 지역인) 더 빈곤한 유럽 대륙 동쪽 절반에서 특히 고질적이었다. 민족주의적인 혐오는 분개와 사회적 참상의 특별한 희생양으로 자주 유대인을 지목했다. 유대인은 서유럽보다 중부 유럽과 동유럽에 더 많았고, 서유럽 국가들의 동일 종교 신자보다 대개 덜 통합되고 하층 사회계급을 이루었다. 이 지역들은, 독일보다 훨씬 더 그러했는데, 지독한 반유대주의의 전통적 심장부였다. 일반적으로 서유럽에 존재한 더 큰 인종적 동질성은, 그리고 국민국가가 일반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진화해왔다는 사실은 긴장이 서유럽에서 비록 전혀 없지는 않을지라도 덜 심하다는 뜻이었다.
더욱이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과 대다수 중립국은 서유럽에 있을 터였다. 구겨진 국가 위신과 물적 자원을 둘러싼 분쟁, 공격적인 인종적 민족주의의 사육장이 동쪽일수록 훨씬 더 큰 역할을 했다. 유럽 대륙 한복판에서는 가장 중요한 패전국이고 유럽의 향후 평화에 핵심적인 국가이며 서쪽으로는 프랑스와 스위스부터, 동쪽으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까지 국경이 뻗어 있는 독일이 승리한 연합국이 자국을 다루는 태도에 큰 분노를 품었고, 베르사유조약 개정론의 포부를 오래지 않아 드러냈다. 더 남쪽과 동쪽에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제국, 오스만제국의 몰락이 새로운 국민국가를 낳았는데, 이 국민국가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 얼기설기 짜 맞춰지는 경우가 잦았다. 정치에 독이 되는 민족주의적·인종적 혐오가 이 지역들을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살육장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7 반혁명은 좌파의 혁명적 호소력처럼 계급 갈등의 혹심함과 우려를 활용했다. 반혁명운동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맹렬한 반볼셰비즘과 결합할 수 있는 곳에서 가장 광범위한 호소력을 얻었다. 다시 볼셰비키의 위협이 크게 어른거려 보이는 중부 유럽과 동유럽의 나라들이 특히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국제적 위험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피해망상에 가까운 볼셰비즘 혐오가 결합하여 우파 대중운동의 창출을 거든 곳에서 일어났다. 우파 대중운동은 이탈리아에서, 더 뒤에는 독일에서 국가권력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이 경우에 극우를 밀어붙여 권좌에 올려보낸 혐오투성이 반볼셰비키 민족주의 에너지가 대외 공격으로 유도될 수 있었을 때, 유럽의 평화는 큰 위험에 빠졌다.
다른 세 요인을 뒷받침하고 그 세 요인과 상호작용을 하는 넷째 요인은 두 세계대전 사이에 지속된 자본주의의 위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세계경제를 크게 교란하고,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유럽의 주요 경제체제가 매우 허약해지고, 독보적인 경제 열강인 미국이 유럽의 재건에 전적으로 관여하기를 주저한 탓에 재앙이 일어났다. 유럽의 문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세계적 파장으로 말미암아 심각해졌다. 일본이 극동에서, 특히 (정치적 혼란에 시달리는 중국에서 유럽인들을 밀어내면서 자국 시장을 확대했다. 대영제국은 고조되는 정치적 도전과 경제적 도전에 직면했는데, 그 경제적 도전은 특히 인도에서 뚜렷했다. 인도에서 토착 직물 산업의 성장과 뒤이은 수출 시장의 상실이 영국의 경제적 재난에 보태졌다. 그리고 러시아가 혁명과 내전의 여파로 세계경제에서 사실상 사라졌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전 지구적이었지만, 유럽에서 특히 심했다.
사상누각으로 판명된 너무나 짧은 한 차례 호황의 앞뒤에는 1920년 대 초엽의 인플레이션 위기와 1930년대의 디플레이션 위기가 있었다. 단지 짧은 시간으로 분리되는 격심한 경제적·사회적 탈구의 그 두 국면은 궁핍과 궁핍의 공포가 정치적 양극단을 마구 부추기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경제 혼란만으로 정치의 대격변이 일어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정치의 대격변이 일어나려면, 허약해진 핵심 권력층을 대중 동원에서 나오는 새로운 압력에 노출시키는 기존의 이념적 분열과 심한 문화적 분리로 뒷받침되는 국가 정통성 위기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같은 조건이 유럽의 여러 지역에 존재했다. 국가의 위신을 잃고 대열강의 지위에 올라선다는 기대가 좌절되었다는 느낌이 만연하고, 그 느낌에 기대어 극단적인 통합 민족주의가 그 국가가 직면해 있다고 주장하는 사악한 적의 힘에서 에너지를 끌어내는 강력한 운동을 길러낼 수 있는 곳, 그리고 권위가 약해진 국가에서 권력에 도전할 위치에 있는 곳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따라서 유럽을 자기파괴의 벼랑으로 몰고 가는 포괄적인 정치적, 사회·경제적, 이념·문화적 위기가 일어나려면 그 위기의 4대 구성요소가 맞물려야 했다. 그 같은 상호작용은 이런저런 정도로 대다수 유럽 국가에 영향을 미쳤고, 심지어 서유럽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특히 한 나라, 즉 독일에서는 4대 요소가 모두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존재했고, 서로를 보완하면서 폭발 효과를 냈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가 그 포괄적 위기를 능란하게 이용하면서 힘을 행사하여 그 위기를 극복한다는 발상으로 독일 국가에 대한 자신의 독재적 통제력을 굳힐 수 있었을 때, 유럽에 전반적 파국이 일어날 공산이 눈에 띄게 커졌다. (비록 제1차 세계대전 뒤에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을지라도) 독일의 군사적 잠재력과 경제적 잠재력이 매우 컸으므로, 그리고 독일의 베르사유조약 개정 요구와 팽창주의적 야망이 그토록 많은 다른 나라의 영토적 통합성과 정치적 독립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주었으므로, 유럽의 위기가 새 전쟁의 파국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졌다. 그 위기가 유럽 대륙에서 가장 불안정한 지역인 중부 유럽과 동유럽에서 터지리라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었고,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동쪽 지역들이 가장 심한 파괴와 기괴한 비인간적 행위가 벌어지는 현장으로 바뀌리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은 황폐화는 새로운 극단을 보여주었다. 문명이 이처럼 심대하게 허물어진 도덕적 결과는 20세기의 나머지 기간에, 그리고 그 뒤로도 느껴질 터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생겨난 아수라장과는 극히 대조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놀랍게도 20세기 후반기에 유럽의 재탄생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자본주의의 깊고 긴 위기와 더불어 인종· 국경 ·계급 갈등 고조에서 그 유산을 남겼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바로 그 파괴의 소용돌이에서 이 연쇄를 흩날려 버렸다. 소련의 동유럽 지배는 내부의 인종적 분리와 소요를 꾹꾹 억눌렀다. 전쟁 직후의 대규모 민족 청소는 중부 유럽과 동유럽의 지도를 재형성했다. 독일이 완전히 패배하고 파괴되고 분단되면서 유럽을 지배한다는 꿈이 깨졌다. 서유럽에서는 협력과 통합을 위해 민족주의적 반감을 기꺼이 누그러뜨리겠다는 새로운 태도가 있었다. 새로운 초열강들의 존재로 말미암아 이제는 국경이 고정되었다. 극우를 부추겼던 예전의 반볼셰비즘이 서유럽의 국가 이념으로 전환되면서 안정된 보수주의 정치가 육성되었다. 특히 개혁된 자본주의가 (이번에는 미국의 적극적 주도로) 유럽 대륙의 서쪽 절반에서 굉장한 번영을 만들어냈고, 그래서 정치적 안정성이 지탱되었다. 1945년 이후의 이 모든 근본적 변화가 합쳐져서 양차 세계대전의 시대에 유럽 대륙을 거의 파괴했던 위기 요소들의 모태를 제거했다.
결정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비스마르크 시대를 넘어 1815년 나폴레옹 시대의 종결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 대열강의 유럽 대륙 지배권 쟁탈전 체제를 단번에 영원히 깨뜨렸다. 비록 이제는 이념과 정치가 갈가리 찢긴 유럽일지라도 다시 태어난 유럽에서 유일하게 남은 열강은 미국과 소련이었고, 이 두 열강은 철의 장막 너머로 서로 노려보면서 자기 형상에 따라 여러 나라와 사회를 재건하는 일을 관장했다. 극히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양대 초열강이 1949년에 원자폭탄을, 그리고 4년 안에 파괴력이 훨씬 더 무시무시한 수소폭탄을 보유하자 양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은 황폐화를 무색하게 할 수준의 파괴를 일으킬 조짐을 보이는 핵전쟁의 유령이 그 요인이었 다. 그것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함으로써 유럽에서 1945년에는 매우 가망 없어 보였던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내는 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
이 요인들이 어떻게 뒤엉켜 동과 서에서 유럽을 바꾸었는지는 제2권의 탐구 주제로 남겨둔다. 제1권에서는 어쩌다 유럽이 그토록 격렬하고 요란한 한 세기의 전반기 동안 깊디깊은 수렁에 빠졌는지, 어떻게 그러고서도 대단하게도) 이미 1945년에 바닥을 치고 4년 안에 놀라운 회복의(낡은 유럽의 잿더미에서 새 유럽이 뛰쳐나올, 즉 지상의 지옥에서 되돌아오는 길에 나설)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했는지 이해해 보려 한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무성: 재즈 잇 업! Jazz It Up! - 출간 15주년 특별 개정증보판 (0) | 2025.09.09 |
---|---|
한스 큉: 왜 그리스도인인가? (0) | 2025.09.09 |
크리스토퍼 모스: 천국을 다시 묻다 (0) | 2025.08.31 |
조반니노 과레스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0) | 2025.08.31 |
앤드류 보위: 독일 철학 개론 ─ 칸트에서 하버마스까지 (0) | 2025.08.31 |
마크 A. 매킨토시: 신앙의 논리 (1) | 2025.08.24 |
미조구치 유조, 마루야마 마쓰유키, 이케다 도모히사: 중국사상문화사전 (0) | 2025.08.24 |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엔치클로페디 ─ 제1부 논리의 학 (0) | 2025.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