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돈 까밀로와 못생긴 마돈나 (리커버 특별판) |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리커버 특별판) 2 | 죠반니노 과레스끼 - ![]()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은이),이승수 (옮긴이)서교출판사 |
자전거 도둑| 피는 물보다 진하다| 화가 |축제 |뻬뽀네의 감동| 크리스티나 선생님의 죽음 |다섯 더하기 다섯 개 |승전 기념일| 공포심 |공포심2 |장미빛 아기| 사라진 걱정거리| 미국에서 온 구호품| 중대한 하루 |숙청 계획 |집단농장과 트랙터 |국보급 천사상| 돈 까밀로와 못생긴 마돈나 |초록 모자 |사냥개와 우정 |명창 만드는 법 |우울한 일요일| 등불과 빛| 결혼 작전| 뚱뚱보와 홀쭉이| 한밤중의 질주 |하느님과 말과 자동차 |회개와 보속
크리스티나 선생님의 죽음
97 다음 날 아침, 삐뽀네는 모든 정당의 대표자들을 읍사무소에 소집하였다. 그러고는 크리스티나 선생님의 죽음을 알렸다. 선생님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인민들은 장엄한 장례식을 치러드러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주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읍장으로서 여러분을 부른 거요. 내 마음대로 일을 처리했다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오. 사실 크리스티나 선생님은 관을 어깨에 지고 운구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소. 그리고 관 위에 왕가의 문장이 찍힌 깃발을 덮어달라고 부탁하셨소. 이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말해주시오."
맨 먼저 사회당의 대표가 말을 꺼냈다. 그는 대학까지 나왔기 때문에 언변이 유창했다.
"단 한 사람의 명복을 기리고자 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던 수많은 동지들의 죽음을 모욕하는 행위를 할 수는 없소!"
토론이 진행되면서 열기는 더해졌다. 그 결과 크리스티나 선생님은 군주제 아래에서 일을 했지만 결국 조국을 위해 일한 것이니 관 위에는 지금의 조국을 대표하는 깃발을 덮는 게 옳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좋소!"
마르크스보다도 더 마르크스주의자인 베골리니가 동의했다.
"향수에 젖어 있던 감상주의 시대는 지나갔소. 왕가의 문장이 찍힌 깃발을 원했다면 좀 더 일찍 돌아가셨어야 했소!"
"바보 같은 소리!"
그러자 이번에는 공화주의자 대표가 나섰다.
"장례식에서 왕의 문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오히려 인민들이 분노를 일으켜 장례식이 변질될 거요. 만약 장례식이 정치 집회로 변하면 그 숭고한 뜻이 반감되거나 파괴될 거요."
이윽고 기독교민주당 대표의 차례였다.
"고인의 뜻은 신성한 거요."
그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인이 되신 선생님의 뜻은 더더욱 신성합니다. 우리 모두 그분을 사랑했고 존경했으며 그분의 놀라운 활동을 하늘의 사명이라 여겼소. 선생님께 대한 존경심을 길이 전하고자 우리는 여기 모여 발생할지도 모르는 작은 불상사를 미리 피하려고 애쓰고 있소. 그런 불상사가 성스런 추모 행사를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오. 그러니 우리도 왕실기 사용에 반대하는 다른 분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요."
빼뽀네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돈 까밀로를 향해 돌아섰다. 그도 그 자리에 와 있었다. 돈 까밀로의 안색이 창백했다.
"신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의견을 말하기에 앞서 읍장님의 생각을 먼저 밝히는 게 좋지 않겠소?"
빼뽀네는 잠시 어물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읍장으로서 여러분의 협조에 감사하오. 나는 고인이 부탁한 깃발을 사용하지 말자는 여러분의 의견에 동의하오. 하지만 이 마을은 읍장이 아니라 공산당이 다스리는 곳이오. 나는 공산당 대표로서 여러분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 크리스티나 선생님은 고인이 원했던 깃발을 덮고 묘지에 묻힐 것이오. 난 살아 있는 여러분의 뜻보다 고인의 뜻을 따르겠소. 만일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창 밖으로 던져버리겠소! 신부님도 한 말씀 하시오."
"나는 창 밖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소."
돈 까밀로가 만족한 듯 양팔을 벌리며 대답했다. 다음 날, 크리스티나 선생님은 빼뽀네, 브루스코, 비지오, 풀미네가 어깨에 맨 관 안에 누워서 묘지로 갔다. 네 사람 모두 목에 붉은 손수건을 매고 있었고 관 위에는 고인의 깃발인 왕실기가 덮여 있었다.
이것이 엉뚱하기 짝이 없는 이 바싸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마을은 태양이 사람들의 머리를 따갑게 망치질하는 곳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성적인 판단으로 말하고 행동하기보다 몽둥이가 먼저 나가는 곳이다. 하지만 적어도 죽은 선생님의 뜻을 따를 줄 아는 곳이기도 하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터 윙크: 성서는 변혁이다 (0) | 2025.09.22 |
---|---|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철학 (0) | 2025.09.22 |
가츠라 쇼류: 유식과 유가행 (0) | 2025.09.14 |
탁명환: 기독교 이단연구 (0) | 2025.09.14 |
베티나 슈탕네트: 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0) | 2025.09.14 |
남무성: 재즈 잇 업! Jazz It Up! - 출간 15주년 특별 개정증보판 (0) | 2025.09.09 |
한스 큉: 왜 그리스도인인가? (0) | 2025.09.09 |
이언 커쇼: 유럽 1914-1949 - 죽다 겨우 살아나다 (0) | 2025.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