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철학

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철학 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철학 - 10점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지은이),안성찬 (옮긴이)한길사

 

책을 내면서·5
해제│역사주의의 위대한 헌장·11

1 인류문명의 탄생과 성장: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로마 문명까지·27
2 인류문명의 보편적 확산: 중세에서 근대까지·81
3 추기│인류문명에 대한 역사철학적 성찰: 계몽주의적 역사관 비판·135

보론1: 신인문주의의 교육이념·181
보론2: 풍토이론과 역사철학·213

헤르더 연보·233
찾아보기·235



29 가장 오래된 세계사, 민족 이동, 언어, 관습, 발명, 전통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점점 더 많은 것이 밝혀지고 있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때마다 인류 전체가 하나의 기원으로부터 생겨났을 개연성이 그만큼 더 커지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생성한 행복한 풍토에 대한 지식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 이 풍토 속에서 창조의 섭리가 선물한 지극히 온화한 영향 아래, 더없이 온유한 운명의 손길이 자신의 주변에 베풀어준 도움 아래, 한 쌍의 인류가 실을 자아내기 시작하여 그 이후로 이것이 서로 얽혀 멀리멀리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는 최초에 일어난 모든 우연한 사건들조차도 모성적 섭리의 도구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 섭리는 온갖 선별과 주의를 기울여 전 인류를 내포하는 섬세한 두 개의 씨앗을 성장시켰다. 이 고귀한 종(種)의 창조주께서, 그리고 수천 년의 시간과 영원 너머까지 이르는 그분의 눈길이 이러한 선별과 주의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까지나 믿어야만 한다. 자연이 산출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이 최초의 성장과정은 물론 소박하고 섬세하며 경이로웠다. 이 씨앗은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생명을 배태한다. 배아는 감춰진 채로 형성되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세상에 나온다. 철학자의 안경을 통해 보면 이것을 선험적으로 옳다고 인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가장 오래된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인류의 최초 성장과정의 역사는 너무 간략하고 허황되게 들려, 경이로운 것과 감춰진 것을 그 무엇보다도 미워하는 우리 시대의 철학적 정신 앞에서는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역사는 진실이다. 한 가지 사실만 지적해두겠다. 길었던 생애, 고요하게 서로 연관되어 결과를 빚어내는 자연, 한마디로 가부장들이 지배했던 영웅시대야말로 모든 후손들의 선조들이 인류의 최초의 모습을 상상하고 또 언제까지나 이를 모범으로 자신을 교육하도록 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했다. 이는 빛으로 충만한 이 시대의 두더지 눈조차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단지 이 세계를 헛되이 떠돌며 스쳐지나갈 뿐이다. 이 세상에 드리워진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그 모든 선하고 악한 것들을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것은 극히 적은데, 왜냐하면 우리는 이 지상에서 그 모든 것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가지고 떠나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우리의 시대, 우리의 인생역정, 우리가 모범으로 삼는 것들, 우리의 사업. 우리의 느낌, 지상에 대한 우리의 영향의 총량은 야간 초병의 허망한 꿈, 헛소리에 불과하다! 주께서 그 모두를 쓸어갈 것이다. 우리가 발전시켜 지니게 된 커다란 힘과 재주, 우리의 기력과 활력, 연령대와 사상이 빠르게 질주하는 가운데 마치 물거품처럼 하나가 다른 하나를 쫓아가 부숴버리는 것을 생각해보라. 힘과 분별, 역량과 지혜, 소질과 선의 사이에 흔히 생겨나는 부조화한 관계가 이 타락한 세기의 특징이 되고 있음을 생각해보라. 이 모든 것을 돌아볼 때 모든 의도와 신중한 지혜가 어린 시절의 엄청난 잠재적 힘을 인생이라는 유희의 짧고 무력한 시간을 통해 조절하며 지키고 있는 듯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 최초의 고요하고 영원한 나무의 삶, 가부장시대의 삶이야말로 인류가 최초의 성향과 관습과 제도의 뿌리를 내리고 토대를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 아니었을까? 

137 천상의 바람은 너무나 신선해서, 이제 사람들은 나뭇가지 끝에서 흔들리는 즐거움에 빠져 슬픈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전체건 부분이건 간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 한다. 신의 위대한 피조물! 세 대륙과 6천 년의 세월이 빚어낸 작품! 수액이 가득 찬 섬세한 뿌리, 날씬하게 피어난 새싹, 강인한 줄기, 서로 얽혀 힘차게 뻗어 오르는 가지, 넓게 드리워 바람에 흔들리는 잔가지이들 모두가 서로에게 바탕을 두고 있으며, 다른 것으로부터 성장해 나왔다. 신의 위대한 피조물이여!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이 과정 전체를 돌아볼 때, 상호의존적인 이러한 성장과 진보가 결코 협소한 교과서적 의미의 완성은 아닐 것이다. 새싹은 더 이상 씨앗이 아니고, 나무는 더 이상 새싹이 아니다. 줄기 위에는 왕관이 씌워져 있다. 그러나 가지가 저마다 줄기와 뿌리가 되려 한다면 나무가 어떻게 되겠는가? 오리엔트인, 그리스인, 로마인은 오직 한때 이 세계에 존재했을 뿐이다. 운명을 끌어들이는 자기장은 오직 한 시점, 한 장소에서만 작동한다면!, 그러므로 우리가 동시에 오리엔트인, 그리스인, 로마인이 되려 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지금의 유럽이 일찍이 존재했던 모든 세계보다 더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고? 어떤 이유로? 지금의 유럽이 더 계몽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적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시대의 아첨꾼에게 계몽의 의미를 묻는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 계몽을 통해 유럽이 더 많은 미덕을 지니게 되었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묻는다면? 계몽이란 이런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듣고, 더 많은 것을 읽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평온하고, 참을성 있고, 온유하고, 무위도식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 지당하다. 더 많은 미덕을 열거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 마음의 바탕은 항상 부드럽기 그지없다! 달콤한 사탕발림이여! 이 모두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꼭대기에 있는 가늘고 여린 잔가지라서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속살댄다는 것이다. 그러나 햇살은 우리를 관통하여 아름다운 빛의 유희를 펼친다! 우리는 가지와 줄기와 뿌리를 딛고 높이 서서 먼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점을 잊지 말라! 멀리까지 아름답게 속살댄다! 지난 시대의 상황. 그 활력과 공간과 요소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악덕과 미덕도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님을 사람들은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이것 자체는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찬양하고 참칭하는 서툰 기만을 저지르고, 온갖 것을 끌어 모아 자기자랑을 늘어놓음으로써 우리의 교육방식이 무언가를 성취하고 있는 것처럼 현혹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과거의 모든 시대에 대해 "조소와 허위로 가득 찬 편협한 소설"을 써서,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의 윤리를 조롱하고 폄하하고 있다. 그리하여 건전하고 겸손하고 공정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그러한 이른바 세계 전체를 다루는 실용적 역사서들에서 혐오스러운 종이뭉치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지구 전체가 사람들이 그 위에서 까마귀 소리를 내며 먹이를 찾아다니는 거름더미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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