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옥스퍼드 세계사 26 ─ 제5부 제13장. 관계와 제도, 분쟁, 서구 헤게모니의 시작부터 미국 패권의 시작까지(2)

 

2025.10.29 🎤 옥스퍼드 세계사 26

25강: 제5부 제13장. 관계와 제도, 분쟁, 서구 헤게모니의 시작부터 미국 패권의 시작까지(2)
일시: 2025. 10. 29.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수원시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4246


다음 주부터 4주에 걸쳐서 19세기, 20세기 동아시아사를 네 번에 걸쳐서 하는데 강의 자료는 별도 제공할 것이다. 읽은 책들 중 이것저것 참조해서 만든 자료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근현대통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나온 책을 번역한 건인데, 원래 얇은 책으로 10권으로 된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 다시 정리해서 한 권으로 만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 주부터 설명할 것이다. 중국사 그다음에 인도네시아사, 베트남사, 인도네시아의 역사도 중요하고 베트남의 역사도 중요하고 태국의 역사 정도는 우리가 다 읽어야 한다.  

《옥스퍼드 세계사》 616페이지를 냉전을 보자. 중요한 부분을 짚어보겠다. "1946년부터 1989년까지 국제 권력 정치를 규정한 것은 소련이 이끄는 공산권과 미국이 이끄는 반공권의 대립이었다." 이게 바로 냉전이다. 1946년부터 1989년까지이다. 지난번에 세계화라고 하는 것을 얘기하면서 세계화는 3단계에 걸쳐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세계화가 1947년인데 냉전 시기와 겹친다. 그러니까 사실 세계화 2단계하고, 3단계가 냉전 시기에 해당한다. 1946년에서 또는 1947년에서 1989년까지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개의 성격을 가진 어떤 흐름이 세계에 흘렀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1989년 이후에는 오로지 세계화만 그리고 그 세계화의 속도는, 사실 냉전이라고 하는 것이 있으니까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가령 가정을 해보면, 소련이 여전히 공산국가이고 베트남이 아직도 저렇게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중국과 소련, 동유럽이 나름대로 지역 경제를 이루면 굳이 자본주의화하지 않아도 먹고 살 만하다. 옛날에 냉전 시대처럼 그대로 있다고 하면 트럼프가 저렇게 깽판을 치지 못한다. 그러니까 다시 얘기해 보면 냉전이라는 흐름이 하나 있고 세계화라는 흐름이 있는데 세계화라는 것은 네가 어떤 이념을 믿거나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손해와 이익에 따라서 자유로운 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외가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사실은 냉전의 혜택을 입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냉전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혜택을 입을 만하게 고생을 했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압축 성장에 적합한 특성들이 있었다. 빨리 빨리라든가 그다음에 극단적으로 효율을 중시하는 문화이다.  

이해하기 쉽게 구도를 얘기해 보자면 냉전이라고 하는 것은 이념적인 것이다. 자기한테 손해가 되는가 이익이 되는가를 따지지도 않고 이념 편향적으로 뭔가를 벌이는 것이다. 자유무역 정신을 가진 사람은 내가 저 놈이 밉지만 이익이 되니까 따라간다 하는 것이다. 한국은 그것의 혜택을 받았고 일본도 그것의 혜택을 받았다. 아주 명료하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하는 한국,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이 네 개의 나라는 냉전의 최대 수혜자이다. 홍콩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을 한 뒤를 위해 미국 의회에서 홍콩 특별법안이라는 것을 예전에 통과시켜 놓았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인데 이제는 홍콩아 쓸모가 없어져서 아마 곧 폐기가 될 것이다. 홍콩은 진작부터 미국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계속 그렇게 했고 타이완도 마찬가지이다. 그다음에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고, 그다음에 싱가포르는 왜 냉전의 수혜자인가. 싱가포르 앞바다에 있는 말라카 해협을 중국이 남중국해로 진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말라카 해협은 중국의 남중국해와 접하는데, 중국으로 들어가는 석유, 유럽에서 오는 물동량의 3분의 2가 말라카 해협을 지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냉전의 산물이다. 그런데 냉전이 끝났기 때문에 그다음을 준비해야 되는데 홍콩에서는 준비를 못했다.  

616페이지를 보면 "1946년부터 1989년까지 국제 권력 정치를 규정한 것은 소련이 이끄는 공산권과 미국이 이끄는 반공권의 대립이었다. 이는 군사, 정치, 이데올로기, 문화, 경제를 망라한 대립이다." 냉전은 기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벌어진 것이다. 셋째 문단을 보면 베트남 전쟁이 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하고 물러났는데, 그것이 미국한테는 엄청난 트라우마가 되었고 그때 이후로 미국은 일부러라도 손해와 이익을 따지지 않고 이념 전쟁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발생한 분쟁들 다수의 원인인 탈식민화는 그 기원, 경과, 결과면에서 냉전과 달랐으며, 따라서 두 가지를 섞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탈식민화라고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사실 1946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예전에 유럽의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식민지를 벗어나는 운동이 활발했던 것이고, 심지어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사건들 아프가니스탄도 결국 탈식민화의 흐름 속에서 봐야 될 정이다. 탈식민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가 하는 것은 세 번째 주에 얘기할 것이다. 《동아시아 근현대통사》의 8장이 베트남 전쟁의 시대: 1960~1975년이고, 9장아 경제발전과 민주혁명: 1975~1990년인데, 특히 1945년에서 1960년 그리고 1965년 1975년 시기가 탈식민화 시기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해방이 되었는데 동남아시아 지역은 상당히 지연이 되었다. 그런 것들은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하면서 얘기하겠다. 지금은 이 구도가 있다는 것만 알고 지나가면 된다. 

618페이지를 보면 "서유럽 식민제국들의 몰락을 계기로 특히 중동,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에서는 공산권과 반공권이 경쟁할 여지가 생겼다." 이게 중요한 부분이다. 서유럽 식민제국들, 특히 영국과 프랑스가 2차 대전이 끝나면서 과거에 자기들의 식민주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거기가 중동 그다음에 사라 이남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이다. 중동 지역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사라 이남 아프리카는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그다음에 중앙아메리카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스페인은 진작에 영국한테 넘겨줬다. 그다음에 남아메리카도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그러니까 "공산권과 반공권이 경쟁할 여지가 생겼다"고 했는데 그게 1960년대이다. 1960년대는 영국이라든가 프랑스가 완전히 물러난다. 특히 지표가 되는 사건이 샤를 드골이 알제리에서 완전히 철수한 사건이다. 그러니까 프랑스는 1960년대에야 알제리에서 물러났는데 그게 핵심 포인트이다. 그렇게 되면서 아프리카 지역에 앙골라 내전 이런 것들을 소련이 개입한다. 그다음에 남아메리카에도 개입을 한다. 대표적인 사건이 쿠바 미사일 사건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 지역들이 원래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식민지였는데 이들이 빠져나가니까 힘의 공백이 생긴다. 그러니까 거기서 공산권과 미국의 패권 다툼이 벌어지기 시작을 했던 것이다. 아프리카 지역은 소련과 중국에서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지역이다. 

618페이지를 보면 "1980년대 초 미국과 소련 사이의 긴장 관계가 다시 불타올랐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 좀 가라앉은 줄 알았더니 다시 아프가니스탄, 그런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전면 개입을 함으로써 결국 소련 스스로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냉전이 끝났는데 냉전이 끝난 다음에는 미국 일극체제라고 하는 것이 전 세계에 펼쳐졌다. 미국으로서는 세계화라고 하는 것, 세계화된 자유무역, 자본주의 이것을 펼쳐 보일 수는 있겠지만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그것 자체로 있다. 미국이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자기네 나라의 통화를 찍어내어서 그렇게 해 나가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경제이고 그것이 오늘날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623페이지 새로운 세계 질서인가, 비대칭적 불안정성인가를 보면 "1991년 소련이 몰락하자 미국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출현할 것으로 전망이 되었다." 그래서 "금융시장의 자유화와 국유 자산의 민영화를 포함하는 자유시장 자유주의와 연관된 미국식 경제 모델", 이것을 가지고 움직여 가는 게 바로 세계화이다. 그 경제 모델이 가장 발전한 나라가 미국이다. 이 경제 모델이 세계화된 경제를 이끌어갔지만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는 다 불투명해져 버렸다.  

619페이지 변화하는 정체성을 보면 "핵심 요소는 사회 구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620페이지를 보면 "이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은 특히 19세기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오늘날에는 다소 한계가 있어 보인다." 오늘날 세계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으로 안 된다는 얘기이다. 지금 이 섹션은 사상에 대해서 다루는데, "서구 지식인들이 마르크스주의 대신 택한 다른 분석은 정체성 ─ 특히 젠더 정체성, 섹슈얼리티 정체성, 종족 정체성─에 근거하는 분석이었다." 정체성 정치학identity politic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도 오늘날에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있다. 그다음 "비서구의 범주는 대개 서구의 범주와 다르며, 비서구에서 과거처럼 서구의 개념들이 유보 조건 없이 사용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렇다. 그러니까 종족 분열이라든가 이런 것은 없다. 우리도 오늘날에는 서양에서 뭔가 개념이 유행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확 퍼지고 그러지 않는다. 서양 철학도 이제 그렇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 우리의 범주를 달리 생각한다. 그다음에 종교 섹션은 그냥 지나가도 된다.  

631페이지 에필로그를 펴보자. "발상과 수렴은 아마도 새롭거나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거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다음에 632페이지 "세계의 주도권은 부와 무력의 균형이 변화함에 따라 계속 이동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 마나 한 얘기이다. 그다음에 633페이지를 보면 "지역 동맹이 부족하고 모든 인접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어느 지역이든 간에 그 지역의 광역 질서권이 형성되는데, 가장 그게 안 되는 데가 동북아시아이다. 한국과 일본과 중국은 협력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업신여긴다. 전 세계에서 중국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다음에 "중국의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일당 국가와 시장 경제라는 지속 불가능해 보이는 조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중국 체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당 독재인데 시장 경제에 안 맞는 것이다. 네모난 동그라미 같은 것이다. 중국이 얼마나 이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시장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정이 지연되면 역사를 보면 전체주의 체제는 궁극적으로 실패한다. 스파르트가 남긴 유산이 뭐가 있는가. 그 당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최종 승자가 스파르타인데 스파르타를 이긴 게 페르시아이다. 페르시아도 그에 못지않은 강대국이고 전체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이겼다.  

633페이지를 보면 "환경을 가장 크게 훼손하는 인위적인 원인은 바로 소비다." 이건 꼭 기억을 해둬야 한다. 소비를 줄이는 게 결국 환경 훼손을 막는 핵심이다. 소비자주의consumerism 얘기가 지금 634페이지까지 쭉 있다. 635페이지 "지나친 계획과 무모한 규제 완화 사이에서, 전제정과 민주정, 전체주의와 무정부 상태, 권위주의와 자유 지상주의, 다원주의와 종족 중심주의, 이데올로기적 세속주의와 비이성적 종교 사이에서 허둥대고 있다." 정반대되는 두 가지 항목들을 쭉 나열을 했다. 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간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중간을 알려면 공부를 해야 되는데 그 공부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법이 조밀하질 않다. 조밀하지 않기 때문에 법의 빈틈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나쁜 짓을 할 수가 있다. mos maiorum, 조상이 물려준 관습이라는 뜻으로 미국은 그런 관습으로 채워왔다. 그 관습이라고 하는 것이 유지되려면 관습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유지되어야 되는데, 그 관습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교육이 있어야 한다. 미국 사회도 급속한 소비주의, 세계화의 파편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까 교육이 안 된 사람이 많고 공교육을 마치지 못한 사람이 많으니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모른다. 그러니까 지나친 계획과 무모한 규제 완화 이것들이 양극단에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어떤 방법을 했는가. "체제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다시말해 국가와 사회의 배열을 손질해 사람들을 유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이렇게 개혁하면 좋겠다 라는 얘기는 많이 나왔다. 지금 내린 결론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올바름으로 이끄는 소규모 집단의 결속이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한다. 거창하게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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