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 J. 보그: 마커스 보그의 고백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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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보그의 고백 | 비아의 말들 | 마커스 J. 보그 - ![]() 마커스 J. 보그 (지은이),민경찬,손승우 (옮긴이)비아 |
들어가며
1. 상황은 중요하다
2. 신앙은 여정이다
3. 하느님은 실재하며 신비이다
4. 구원은 내세보다 여기에서의 삶에 관한 것이다
5. 예수는 성서의 규범이다
6. 성서는 문자적으로 사실이 아니어도 참일 수 있다
7.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중요하다 - 그러나 우리의 죗값을 치렀기 때문은 아니다
8. 성서는 정치적이다
9. 하느님은 정의를 열망하시며 가난한 이들을 깊이 돌보신다
10. 그리스도인은 평화와 비폭력으로 부름받았다
11.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15 일흔이 되니 뜻밖의 변화도 있다. 놀랍게도,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는 것이다. 삶을 살며 배운 가장 중요한 내용, 가장 중요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물론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70년이라는 세월이 지혜를 보증해 주거나 독단적이어도 된다는 자격증을 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고집 센 바보 늙은이가 되기란 너무나 쉬운 일이다.
사순절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 머릿속에서는 이 책을 이루게 될 세 개의 중심축(기억, 회심, 확신)이 떠올랐다. 먼저 '기억'이 있다. 이 기억에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비롯해 이후 수십년 동안 축적된 삶의 장면들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회심'들이, 삶의 방향이 바뀐 전환점들이, '그리스도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내 이해가 바뀐 경험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내 안에는 '확신', 즉 내가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쉽사리 흔들리지 않으며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나는 기억, 회심, 확신이라는 세 가지가 서로 얽히고 흐르며 우리 삶전체를 빚어낸다고 생각한다.
22 오늘날의 분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름표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이런 이름표 붙이기가 고정관념이나 왜곡된 심상을 낳을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름'Label와 '명예훼손libed은 한 글자 차이다. 하지만 이름표 붙이기는 차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고,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기도 하다. 이러한 위험성을 염두에 두고 나는 오늘날 미국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다섯 범주(보수conservative 그리스도교인, 관습적인 conventional 그리스도교인, 확신 없는uncertain 그리스도교인,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교인, 진보progressive 그리스도교인)로 나누어 보려 한다. 양상은 조금 다르겠지만, 이러한 그리스도교인 유형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각 범주에는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 어느 한 범주가 선을 독점하지도 않는다. 또한, 범주는 칼 같이 나뉘지 않는다. 보수적이면서 관습적인 그리스도교인이 있을 수 있고, 관습적이면서 불확실한 그리스도교인도 있을 수 있고, 관습적이면서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교인도, 다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보수 그리스도교와 진보 그리스도교는 상반되며 결코 양립할 수 없어 보인다. 보수 그리스도교와 진보 그리스도교 사이에는 거대한 분열이 있어서, 오늘날 그리스도교 스펙트럼의 양극단을 이루고 있다.
77 신비 체험과 회심은 내 지적 신념에도 영향을 미쳤다. 두 가지는 이미 언급했다. 신비 체험을 통해 나는 하느님이 실재한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동시에 하느님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가 바뀌었다. 세 번째 변화는 본질의 차원에서 지성과 그리스도교, 이성과 종교 사이에는 갈등이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갈등이 있다면, 종교를 오해하거나 절대화하거나, 비종교적 세계관을 절대화했기 때문이다. 혹은 둘 다일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이른바 '신무신론자'new atheist들을 꼽을 수 있는데 그들은 종교는 가장 불합리한 부분만을 바라보되 현대 과학은 과도할 정도로 맹신한다. 그들에게는 현대 과학이 현실과 실재에 대한 최종 해답을 제공하는 종교와도 같다.
네 번째 변화는 그리스도교인이 된다는 것이 '올바른' 신념, 지적으로 '정확한 신학을 갖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굳이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 책의 많은 부분이 그리스도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즉 하느님, 성서, 예수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의 변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인이 된다는 것은 지적으로 올바른 신학을 갖는 것이 아니다. 긴 세월, 수없이 많은, 단순한 그리스도교인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멸시의 의도가 없다. 다만 그들에게는 사유하고 탐구하는 일이 신앙생활의 중심이 아니었음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올바른 신앙 조항들이 무엇인지 집착하지 않았고, 지적인 문제로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신앙생활의 핵심은 하느님과 예수를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데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많은 그리스도교 성인은 '단순한' 그리스도교인이었다.
94 신약성서에서 새로워진 점은 내세를 긍정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는 가장 흔히 '부활'로 일컬어지는) 내세에 대한 믿음이 커졌던 앞선 두 세기 동안 유대교 내에서 일어난 발전의 산물이다. 기원후 1세기경에는 아마도 대다수 유대인이 내세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신약성서에 알려진 대로 예수와 바울,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교인들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메시지의 핵심은 내세가 아니었다. 예수가 전한 이야기의 핵심은 '어떻게 천국에 갈 것인가'가 아니었다. 공관복음(마태오, 마르코, 루가)에서 그가 전한 이야기의 핵심은 "하느님의 나라"였다. 가장 먼저 기록된 마르코복음서에서 예수의 첫마디는 "하느님의 나라가 왔다는 것이었다(마르 1:15). 이 하느님의 나라는 천국이 아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땅을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기도가 선포하듯 말이다.
174 성서 이야기들에서 비유적 의미를 찾는 일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의미를 찾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비유적 해석은 이야기 속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를 믿는 데 강조점을 두지 않고, 그 이야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고 받아들이는데 무게를 둔다. 믿음이란 실제로 일어났을 법하지 않아 보여도 이야기의 사실성을 믿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믿음은 훨씬 더 중요한 무언가와 관련이 있다. 믿음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믿음은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며, 그분에게 충실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은 오만한 자기 확신도, 불안한 자기 의심도 아니다. 믿음은 깊은 평온함 가운데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182 예수가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죽었다는 이해가 유일하게 올바른 해석이라는 주장에는 역사적 문제가 있다. 그리스도교 초기 천 년 동안 그런 해석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신약성서에서도 그러한 이해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부차적인 비중을 차지했을 뿐이며 어떤 학자들은 아예 그런 식의 이해는 있지 않았다고 보기도 한다. 어쨌든 예수의 죽음에서 대속을 강조하는 관점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아니었고, 따라서 성서에 바탕을 두며 전통에도 충실한 그리스도교 신앙으로는 보기 어렵다.
193 이 사실은 부활의 의미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활은 하느님께서 예수와 그의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열정을 긍정하신 사건이며, 그를 죽인 권력자들에게 '아니'라고 선언하신 사건이다. 이처럼 성금요일과 부활절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 물론 정치적인 의미를 넘어선 더 깊은 의미도 담겨 있다. 하지만 예수의 죽음을 대속으로만 이해하는 관점은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신 사건이 지닌 정치적 의미를 가릴 뿐 아니라, 아예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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