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표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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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표 | 사기 (민음사) | 사마천 - ![]() 사마천 (지은이),김원중 (옮긴이)민음사 |
역자 서문
해제
일러두기
1 삼대 세표(三代世表)
2 십이 제후 연표(十二諸侯年表)
3 육국 연표(六國年表)
4 진초지제 월표(秦楚之際月表)
5 한흥 이래 제후왕 연표(漢興以來諸侯王年表)
6 고조 공신후자 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
7 혜경 간 후자 연표(惠景閒侯者年表)
8 건원 이래 후자 연표(建元以來侯者年表)
9 건원 이래 왕자후자 연표(建元以來王子侯者年表)
10 한흥 이래 장상명신 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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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9 사마천이 황제로부터 당대까지 고금의 변화에 통달한다는 통변의 역사 인식에 따라 이천오백여 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사기』의 「표」는 흔히 십표라고도 불리듯, 모두 열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구성해 나가는 기전체라는 역사 서술 체제를 탄생시킨 『사기』이지만 이 「표」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사마천은 『사기』의 「태사공자서」에서 「표」를 지은 목적을 밝히면서, "'십이본기' 를 지음에 있어 모두 조례를 나누어 기록했다. 그러나 시대를 같이하는 것도 있고 달리하는 것도 있어서 연대가 확실치 않으므로 '십표'를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유지기도 「표」는 "기전체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은 것"임을 말하면서 사마천의 의견에 동조했다. 다른 한편으로 청대의 고증사학자인 조익은 "무릇 후장상과 삼공구경 가운데 공이 현저한 자들은 이미 전을 만들었는데, 이 밖에 공과가 없는 대신들도 다시 전을 만들어 기록했으며 때로는 그 나머지 사안들을 표에 만들어 실었다."라고도 했다.
10 『사기』 전체의 사건과 인물들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이 「표」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부문의 보충 자료에 불과한 사료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편인 「한흥 이래 장상명신 연표」을 제외한 아홉 편의 서문에서 사마천이 밝힌 각 편의 의미를 통해 우리는 사기 표의 가치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사마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묻힌 사건들도 이 「표」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본기」와 「열전」의 기록 범위를 더욱 확장한다. 또한 「본기」와 「열전」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혀 이 둘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각 편의 서문에서 드러난 사마천의 집필 목적은 춘추의 필법에 따라 자신이 보고 들은 흥망의 단서들을 가감없이 기록하여 후세의 군자들에게 일독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 특히 사마천은 「표」를 통해 역사적인 전환점이 사회의 윤리 변화와 그 맥을 같이한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 이에 사마천은 '변', 즉 변화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공화정, 공자의 죽음, 진나라 멸망, 진섭의 봉기, 고조 유방의 칭제 등 굵직한 사변을 그 중심에 두고 기술했다.
물론 이러한 사마천의 시각은 전국 시대 백가쟁명의 시대 속에서 피어난 것이지. 온전히 그만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예기』의 「예운」 편에서도 이미 공자의 유가 학설에 근거를 두면서 요순시대 대동의 세상과 삼대 소강의 세상 및 춘추 이래의 난세 등을 역사 발전의 연속성의 시각에서 다루었다. 그리고 『한비자』의 「오두」 편에서도 법가의 진화론적 시간관을 기록하면서 상고와 중고 및 근고의 개념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서한 시대에 유행한 오덕종시설이나 삼통설 등은 모두 순환론적 역사론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러한 관점들이 사마천에 의해 재확인된 것이다. 단 다른 사람들의 시각이 비교적 단선적이고 사변적인데 비해 사마천은 역사의 발전 규율에 관한 확고한 인식을 보여주었으니, 그가 「고조 공신후자 연표」의 서문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은 바로 이런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오늘날 세상에 처해 있으면서 옛날의 이치를 기록하는 것은 스스로 거울로 삼으려는 까닭이지만 반드시 〔옛날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제왕들이 저마다 예법을 달리하고 정무를 달리하지만 성공하는 것으로써 계통과 벼리로 삼은 것이니 어찌 같은 것만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사마천은 역사를 성공의 잣대로만 평가하지 말라고 말한다. 황제로부터 진시황을 거쳐 한 무제의 대통일에 이르는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제왕의 덕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사마천의 의도이니, 제왕의 업을 행하는 자는 분명 홍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망한다는 논지가 짙게 깔려 있다.
17 세표와 연표, 그리고 월표를 창안하면서 일백 년의 한대 역사를 여섯 개의 표로 만들어 당대의 것을 상세히 다루고 과거의 것을 소략하게 다루는 사마천의 역사 서술 원칙은 춘추, 전국, 진초의 시기의 동란이야말로 역사의 진보를 의미하는 변동기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마천은 표의 기술 방식과표 구성에 일정한 흐름을 주어 '무언의 글'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 은, 주 삼대를 정리하면서 도덕과 의리를 말하였고, 춘추 전국 시대의 벼리를 세우면서 무력 정벌의 혼란함을 담았고, 진한의 통일 과정을 요약하면서 천하 통일이란 것이 한 개인의 자질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공간과 시간은 항시 움직이는 물질세계의 두 가지 기본 축인데 사기 표는 이를 날줄과 씨줄처럼 엮어 광범위한 역사적 시공간을 직조해 낸 것이다.
18 『사기』 이후 『한서』에서 '표'라는 체제가 재현되면서 중국 정사의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표는 등한시되었고, '본기제'와 '열전'을 갖추어 기전체를 표방한 당나라 이전 열세 종의 정사 모두에 표가 없다.
표에 대한 재평가는 송대를 기다려야 했다. 송대 이래 표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들이 나타났으며, 그것은 정사 편찬 작업에 표가 들어가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신당서』의 사례에서 보여지듯 '표'가 정사에 재등장하면서 그 역할이 재인식되었고 청대의 정초가 "『사기』라는 책은 그 공이 십표에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표의 가치와 위상이 높아졌다.
비록 일부의 문제점과 오류가 거론되지만 이 「표」는 황제 이후 사마천의 당대에 이르는 역사적 궤적을 일목요연하게 계보화 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현대적 의미로 재조명될 충분한 지평을 개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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