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호슬리: 바울과 로마제국

 

바울과 로마제국 | 리처드 A. 호슬리 바울과 로마제국 | 리처드 A. 호슬리 - 10점
리처드 호슬리 (지은이),홍성철 (옮긴이)기독교문서선교회(CLC)

편집자 한국어판 서문
역자서문
전체 서론

제1부 로마 제국주의 구원의 복음
서론
1.로마 제국의 영광
2.진정한 예언의 성취자
3.종교 의식과 권력
4.권력의 형상들

제2부 후원관계와 제사장직과 권력
서론
5.후견인과 수혜관계의 권력관계
6.로마 고린도서에서의 후견인과 수혜관계
7.베일 속에 싸여진 권력

제3부 바울의 반제국주의 복음
서론
8.로마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킨 복음
9.데살로니가전서에서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바울의 종말론
10.십자가의 반제국주의 메시지
11.로마 제국주의의 선전과 로마서 13:1-7

제4부 로마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대안 사회 건설
서론
12.데살로니가에서의 로마 제국주의 사상
13.평등 사회의 제자도 실천
14.고린도전서에서 대안 사회로서의 바울 공동체 연구 사례


전체 서론
13 기독교는 로마 제국이 세계를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 통치했던 시대에 태어났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 제국이 공인한 기독교가 초기에는 로마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출발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 제국과 로마 제국의 질서에 거스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처세한 종교 지도자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분은 예루살렘 제사장의 귀족 정치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통치 이데올로기에 대항했다. 그리고 그분은 갈릴리에서 시작한 예수 운동의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회복 운동을 주도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바울 사도를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인물로만 보며, 그가 유대주의를 반대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유대교를 반대하였다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로마가 통치하는 '악한 시대'의 종식을 기대하며, 로마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데살로니가(Thessalonica), 빌립보(Philippi), 고린도(Corinth) 그리고 에베소(Ephesus)와 같은 로마 대도시의 '공의회' 였던 에클레시아(ckklesia)에 반대해,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긴박성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인 교회를 대안사회로서 로마 대도시 가운데 세우기를 열정적으로 원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인 교회는 당시의 로마 계급주의 사회에 대항하여 평등한 교회 공동체의 건설을 그 목표로 하였다. 바울 사도는 그 당시 멸망해가고 있는 로마 사회가 대안 사회로서 이제 갓 태어나 새롭게 출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인 평등한 교회 공동체(갈 3:28 참조)들로 말미암아 정복당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라"(고전 7:29-31)는 말씀에 근거하여 로마가 지배하는 사회가 점점 멸망해 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신약성경의 기록 시대가 끝날 무렵의 그리스도인들로 알려진 예수 운동의 변증가들 (Apologists)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체제를 전복할 만한 심각한 위협을 주는 공동체가 아니라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에 기독교 변증가들이나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한 자들, 곧 사자에게 던져질 운명에 처해 있던 순교자들은 로마 황제를 주로 섬기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주로 섬긴다고 고백했다. 그 결과 로마인들은 로마 제국의 질서와 숭배 사상에 관해 그리스도인들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가운데 A. D. 313년 콘스탄틴(Constantine) 대제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해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하였다. 그때부터 교회와 국가 사이에 일상적인 긴장들과 명백한 갈등 등이 있었지만, 제도화된 교회는 로마 제국 황제의 세속적 권력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부르주아 혁명(the bourgeois revolutions)의 결과로서 교회와 국가는 서로 분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고유의 영역을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동의했다. 교회와 국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고유의 영역을 주장한 결과로 기독교 신학과 성경 연구는 오직 종교 영역에만 초점을 맞추어 갔다. 그 결과 기독교 신학과 성경 연구는 성경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영적인 문제뿐만이 아닌 정치, 경제 그리고 삶을 아우르는 균형잡힌 시각을 잃어 가는 경향을 띄게 되었다." 대학의 연구 기관에서 학자들은 신약성경을 연구하되 영적인 문제에만 한정하여 연구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으로 국가의 후원으로 일어난 19세기 영문학도" 국가 또는 제국주의 정치라는 주제를 소설에서 배제한 체 오직 문화 영역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19세기의 바울 신학 연구자들은 기독교를 편협하고 배타적인 유대 종교로부터 파생된 우주적이고 순수한 영적 종교로 보았다. 또 그들은 신약시대에 탄생한 기독교의 등장에만 그 연구의 초점을 맞추었다. 학자들은 신약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1세기의 기독교가 로마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라는 정치적 압제 가운데 있었던 것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유대인을 박해(B. C. 175-163)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학자들은 A. D. 70년에 발생한 로마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시작된 유대주의의 박해 가운데서 꽃피운 기독교의 배경 정도로 로마 제국주의 숭배 사상을 생각했다. 따라서 학자들은 로마 제국주의 숭배 사상을 기독교의 '역사적 상황을 구성하는 배경 수준에서 편협하게 여겨왔던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은 정치가 아닌 종교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로마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암시들만 있을 따름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특히 1세기 로마 제국주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도구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단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도 바울이 로마 제국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증거로서 학자들은 바울이 유대인의 살해 위협을 피하기 위해 시저(Caesar)에게 호소한 것을 제시하는데, 그동안 로마제국주의 사상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최근의 제3세계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의 중요성에 관해 연구해 오고 있다. 제3세계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나는 신약성경 연구를 위해 1세기 로마 제국의 중요성을 현대의 제국과 관련시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약성경의 역사가들은 구약을 연구하는 데 있어 고대 근동지역 제국들의 중요성, 이스라엘을 둘러싼 제국들의 역사들 그리고 그 상황 가운데 계시된 예언적 계시를 다루어 왔다. 그러나 신약성경 연구가들은 신약을 연구하는 데 있어 그 당시 시대적, 정치적 배경이 되었던 로마 제국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오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역사적 예수 연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예수 운동과 복음의 전통이 전개된 로마 제국주의 배경에 대해서 뒤늦게 연구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 중의 하나는 팔레스틴(Palestine) 지역에서 로마 제국주의의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역사적 배경을 다루며, 다른 하나는 헬레니즘 로마 세계에서 그 당시 로마 제국주의 상황을 다룬다. 또 바울 서신에 관한 약간의 연구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 제국주의 사상에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학자들이 바울의 선교사역의 현장에서 로마 제국주의 배경을 연구하는 데 있어 관심이 적었다고 여겨왔다. 나는 이와 관련된 질문들과 연구를 통해 로마 제국주의의 사상과 함께 바울 신학을 연구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그에 관한 연구를 시도하고자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연구 논문들은 로마 제국주의 숭배 사상이 기독교의 복음과 초대교회의 기독교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 이 책의 제1부(로마 제국주의 구원의 복음)와 제2부(후원관계와 제사장직과 권력)는 로마 제국주의의 후견인과 수혜관계들이 어떻게 전 로마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로마와 로마 지방 사이의 조직을 잘 갖추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로마 제국주의 권력관계가 어떻게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인 모든 분야들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제3부에서는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사용한 중요한 용어의 단어들과 상징들이 로마 제국주의 숭배 사상의 용어들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로마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용어들을 채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설명할 것이다. 또한 로마 제국주의의 용어들이 예수 운동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변형되어 사용되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로마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사용된 용어들을 사용함으로, 유대주의에 대항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종교와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항했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다. 제4부에서는 사도 바울이 건설한 교회 공동체는 단순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 것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 나는 사도 바울이 로마 지방에 흩어져 있던 지역 교회인 에클레시아가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국제적인 반제국주의 대안 사회(International alternative society)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했던 것이 그의 기본적인 의도였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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