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 말과 사물

 

말과 사물 | 현대사상의 모험 27 | 미셸 푸코 말과 사물 | 현대사상의 모험 27 | 미셸 푸코 - 10점
미셸 푸코 (지은이),이규현 (옮긴이)민음사

서문
1부
1장 시녀들
2장 세계의 산문
3장 재현하기
4장 말하기
5장 분류하기
6장 교환하기

2부
7장 재현의 한계
8장 노동, 생명, 언어
9장 인간과 인간의 분신들
10장 인문과학

해설
찾아보기


서문
16 이 연구에서 우리가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경험이다. 이 연구는 16세기부터 우리의 것과 같은 문화의 한가운데에서 이 경험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가령 말해진 그대로의 언어, 지각되고 분류되는 그대로의 자연, 실행된 그대로의 교환을 마치 흐름에 역행하기라도 하는 듯이 거슬러 올라가면서,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교환의 법칙, 생물의 규칙성, 말의 연쇄와 말이 갖는 재현의 가치가 질서의 양태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우리의 문화는 어떤 방식으로 드러냈는가, 질서의 어떤 양태가 인정되고 상정되고 공간 및 시간과 엮였길래, 문법과 문헌학에서, 자연사"와 생물학에서, 부(富)에 관한 연구와 정치경제학에서 전개되는 그러한 인식의 실증적 기반이 형성되었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이와 같은 분석은 알다시피 사상사나 과학사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으로부터 인식과이론이 가능했는가. 어떤 질서의 공간에 따라 지식이 구성되었는가. 역사상의 어떤 선험적 여건을 바탕으로, 어떤 실증성의 조건 속에서 사상이 출현하고 과학이 구성되고 경험이 철학에 반영되고 합리성이 형성되고는 아마 오래지 않아서일 터이지만 뒤이어 해체되고 사라질 수 있었는가를 찾아내려는 연구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과학을 마침내 공인해 줄지 모르는 객관성 쪽으로 인식이 진보하는 과정을 기술하려는 것이 아마 아닐 것이다. 우리가 명백히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인식론적 영역, 즉 인식이 합리적 가치나 객관적 형태에 대한 모든 기준과 무관하게 검토되고 인식의 실증성이 파묻히며 이런 식으로 인식의 완벽성이 증대하는 역사보다는 오히려 인식을 위한 가능 조건의 역사가 드러나는 에피스테메인데. 이 이야기에서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인 것은 지식의 공간에서 경험적 인식의 다양한 형태를 야기한 지형이다. 우리의 시도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역사라기보다는 오히려 '고고학이다. 

이 고고학적 탐구는 서양 문화의 에피스테메에 두 차례의 중대한 불연속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하나는 (대략 17세기 중엽에) 고전주의 시대의 막을 여는 불연속이고, 다른 하나는 19세기 초엽에 우리의 근대성의 문턱을 가리키는 불연속이다. 우리의 사유에 토대가 되는 질서의 존재 양태는 고전주의적 질서의 존재 양태와 동일하지 않다. 아무리 우리가 르네상스 시대에서 오늘날까지 유럽적 라티오의 거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감지하더라도, 린네의 분류법은 어느 정도 수정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일종의 타당성을 지닐 수 있고 콩디야크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가치론은 어느 정도 19세기의 한계효용설(用說)에서 재발견되고 케인즈는 자신의 분석과 캉티용의 분석 사이에서 정말로 친화력을 느꼈고 (포르루아의 저자들이나 보제에게서 발견되는 그러한) 일반문법은 오늘날의 언어학과 그렇게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사상과 주제의 차원에 속하는 이 모든 준(準) 연속성은 아마 표면효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고고학의 차원에서는 누구나 알다시피 실증성들의 체계가 18세기와 19세기의 전환기에 대대적으로 변했다. 이는 이성이 진보를 거듭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 양태와 사물을 분류하고 지식의 대상으로 정립하는 질서의 존재 상태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20 19세기부터 완전히 변하는 것은 바로 이 지형인데, 모든 가능한 영역의 토대로 작용한 재현의 이론이 사라지고, 그러자 사물에 대한 자연발생적인 도표 겸 최초의 격자이자 재현과 존재물 사이의 필수적인 중계 지점으로 간주된 언어가 자취를 감추고, 깊은 역사성이 사물의 중심으로 침투하고 사물을 분리하고 사물을 고유한 일관성에 따라 규정하고 시간의 연속성에 함축되어 있는 질서의 형태를 사물에 부과하고, 교환과 화폐의 분석이 생산에 대한 연구로 대체되고, 유기체의 분석이 분류학상의 특징에 관한 탐구보다 우세해지고, 특히 언어가 특권적인 지위를 상실하고는 어김없이 두터운 과거를 지닌 일관성 있는 역사의 형상이 된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이해 가능성의 원리가 사물의 생성에서만 모색되고, 사물이 재현의 공간을 떠나 버리면서, 사물이 오그라듦에 따라, 이번에는 서양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지식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기이하게도 인간은 순진한 시각으로 보자면 소크라테스 이래 가장 유구한 탐구의 대상으로 간주되지만, 아마 사물의 질서에 생겨난 어떤 균열, 어쨌든 지식의 영역에서 최근에 사물의 질서가 새롭게 배치되면서 모습을 드러낸 형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인본주의를 둘러싼 온갖 환상, 인간에 관한 반쯤 실증적이고 반쯤 철학적인 일반적 성찰로 이해된 '인간학'의 온갖 안이함은 이로부터 움텄다. 그렇지만 인간은 최근의 발견물이자 출현한 지 두 세기도 채 안 되는 형상이며 우리의 지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순한 주름일 뿐이라고. 우리의 지식이 새로운 형태를 띠자마자 인간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위안과 깊은 안도감도 역시 이로부터 싹텄다.

이 연구는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를 기술하는 작업과 어느 정도 메아리처럼 호응하는 것이 사실이다. 르네상스 시대 말기를 출발점으로 하여 우리가 여전히 머물러 있는 근대성의 문턱을 19세기로의 전환기에서 찾아내는 이 연구는 광기의 역사와 시대 구분이 동일하다. 그렇지만 광기의 역사는 하나의 문화를 한정하는 차이가 이 문화에 의해 전반적인 덩어리의 형태로 설정될 수 있는 방식의 검토였던 반면에, 이 연구는 하나의 문화가 사물들의 근접을 터득하는 사물들의 친근성에 관한 도표와 이 친근성을 검토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질서의 확립 방식을 관찰하려는 것이다. 요컨대 이 연구는 닮음의 역사이다. 어떤 조건에서 고전주의적 사유는 말, 분류, 교환의 근거이자 이것들을 뒷받침하는 유사 또는 동등 관계를 사물들 사이에 반영할 수 있었을까? 흐릿하고 막연하고 정체불명이고 사소한 것 같은 차이들의 바탕 위에 확립되는 동일성의 광범위한 격자를 규정하는 것은 역사상의 어떤 선험적 여건으로부터 가능했을까? 광기의 역사는 타자의 역사, 하나의 문화에 대해 내부적이고 동시에 생소한 것, 따라서 (내부의 위험을 몰아내기 위해) 배제해야 하지만 (타자성을 축소하기 위해) 감금해야 하는 것의 역사라고 한다면, 사물의 질서에 관한 역사는 동일자의 역사, 하나의 문화에서 분산되고 동시에 서로 유사한 것. 따라서 표지에 의해 식별해야 하고 동일성을 특기해야 하는 것의 역사일지 모른다. 

그리고 질병이 인간의 육체와 생명의 핵심에까지 도사리고 있는 무질서나 위험한 타자성일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일정한 규칙성, 유사성 및 유형을 지닌 자연 현상이라고들 생각한다면,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타자에 대한 한계-경험에서부터 의학 지식을 구성하는 형태들까지. 그리고 이 형태들에서부터 사물의 질서와 동일자의 사유까지, 고고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고전주의 시대의 지식 전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를 고전주의적 사유로부터 분리하고 우리의 근대성을 구성하는 문턱이다. 인간이라 불리면서 인문과학의 고유한 공간을 열어 놓은 이 기이한 지식의 형상은 근대성의 문턱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출현했다. 서양 문화의 가장 깊은 지층을 파헤치려는 우리의 시도는 바로 잠잠하고 겉보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듯한 우리의 밑바탕에 단절, 불안정성, 균열을 되돌려주려는 것인데, 우리의 발아래에서 다시 뒤흔들리는 것은 바로 이 밑바탕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