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오버리: 피와 폐허 2

 

피와 폐허 2 | 피와 폐허 2 | 리처드 오버리 피와 폐허 2 | 피와 폐허 2 | 리처드 오버리 - 10점
리처드 오버리 (지은이),이재만 (옮긴이)책과함께

제5장 | 전쟁터에서 싸우기
제6장 | 전쟁경제: 전시의 경제
제7장 | 정당한 전쟁? 부당한 전쟁?
제8장 | 민간 전쟁
제9장 | 전쟁의 감정지리
제10장 | 범죄와 잔혹행위
제11장 | 제국들에서 국가들로: 달라진 글로벌 시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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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 제국들에서 국가들로: 달라진 글로벌 시대
1299 전후 영국 각료 페틱-로런스Pechick-Lawrence 경의 표현대로 승전국들이 아직도 "원시적 문명 상태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제국 통치를 고수하려 했음에도 2차대전의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결과는 20년 내에 유럽의 제국 프로젝트 전체가 무너지고 민족국가들의 세계가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1960년, 영국의 아직 남은 최대 식민 속령이었던 나이지리아는 독립을 인정받고 오카포르의 말대로 "아프리카 사람들의 존엄성"을 되찾았다. 

1313 1945년 종전의 결과는 지난 1919년 종전의 결과, 즉 대중의 민족자결 요구가 제국주의 열강의 저항에 부딪혀 사라졌던 결과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1945년에 주요 승전국 4개국 중 3개국-미국, 소련, 중국은 제국 권력의 생존과 식민지 소유에 반대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국제연합의 선임 회원국으로서, 그리고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이 새로운 국제기구가 전시 위기를 겪은 자기네 제국을 보호하고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랐지만, 양국의 미망은 금세 진압되었다. 2차대전은 유럽 제국들에게 분수령이 되었다. 반식민 비판자들은 추축국과의 전쟁은 그저 유럽 국가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주장했다. 

1319 반제국 민족주의의 물결은 이번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성 제국주의 열강은 편법 타협책과 극심한 폭력을 대충 섞어 이 물결에 대응했다. 

1333 동남아시아에서 종말을 맞을 때까지 제국들은 종전 후에도 10년간 전시의 폭력과 강압을 이어갔다. 독립은 잃어버린 영토를 다시 식민화할 방도를 알지 못한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쟁취한 것이기도 했다. 

1340 식민지에서 벌어진 '전쟁 이후의 전쟁들'은 1870년대에 시작해 1940년대에 정점을 찍고 1960년대에 끝난 새로운 영토제국주의 시대의 혼탁하고 난폭한 종결부를 이루었다. 

1372 미국 제국의 경우도 똑같이 문제가 된다. 미국은 새로 얻은 권력을 정치적 압박, 경제적 위협, 전 세계에 걸친 정보 감시와 군대 주둔을 통해 표출했지만, 그래도 영토제국은 아니었다.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점령지역에서 미국 군정은 공공 서비스를 복구하고, 재건 프로젝트에 자본을 대고, 이전의 적국이 의회제 아래에서 완전한 주권을 되찾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도왔다.  

1377 1928년 레너드 울프가 예측했듯이, 영토제국의 마지막 단계는 "평화롭게 묻히"지 못하고 "피와 폐허"로 넘쳐났다.


옮긴이의 말
1431 제2차 세계대전의 개전일은 언제인가? 관례적인 답은 나치 독일이 인접국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9월 1일이다. 위키백과와 두산백과 모두 2차대전의 개전일로 이 날짜를 지목한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2차대전 통사관련 역사서들도 하나같이 1939년을 시작점으로 잡는다. 

1431 이는 2차대전 참전국들의 표준 역사관과 공식 전쟁사에 부합하는 서술로서, 이 관점의 암묵적 전제는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이 전 세계적 전쟁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리처드 오버리는, 이 책의 부제에 명시되어 있듯이, 2차대전의 시작점으로 1939년이 아닌 1931년을 지목한다. 1931년은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 관동군이 만철의 철도 노선을 고의로 폭파함으로써 '만주사변'을 일으킨 해다. 이렇게 동아시아에 먼저 주목한 오버리는 이어서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1930년대 독일의 재무장과 제국 프로젝트 등을 살펴본 후에야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다룬다. 이는 2차대전이 유럽 국가들 간의 갈등에서 연원했다는 종래의 통설에서 벗어나는 견해이자, 전쟁 기간을 1939~1945년에서 1931~1945년으로 넓혀서 이 전 지구적 분쟁을 '장기 2차대전'으로서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다. 

1432 일반적인 2차대전 전쟁사는 이 분쟁을 강대국 간의 충돌로 규정하고 그 기원을 분석하면서 전기의 군비 경쟁, 외교 위기, 이데올로기 갈등 같은 요인들을 강조한다. 그에 반해 오버리는 장기 2차대전을 기성 제국들(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과 1930년대에 새로운 영토제국주의의 물결을 일으킨 신흥국들(일본, 이탈리아, 독일) 간의 충돌로 규정하고, 이 분쟁의 핵심에 '영토제국'이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2차대전은 세계 도처에 영토─식민지, 보호령, 수출입항, 조약상 특권 영역 등─를 보유한 채 전 지구적 제국 질서를 구축해둔 기존의 영토제국들과, 그 제국 질서에 반발해 국외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새로이 영토제국이 되려는 신흥국들간의 충돌이었다는 것이다. 

1433 오버리의 통사는 2차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영토제국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기존 통사들과 차별화된다. 이 접근법은 무엇보다 2차대전을 유발한 요인들을 더 장기적이고 폭넓은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1434 다른 통사들과 차별화되는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은 2차대전을 총력전으로서 서술한다는 것이다. 물론 2차대전이 총력전이었음을 부인하는 역사가는 없을 것이다. 전쟁 수행을 위해 국가의 가용한 인적·물적 자원과 역량, 더 나아가 잠재력까지 총동원하고 군대의 요구를 민간사회의 요구보다 우선시했다는 점에서 2차대전은 다른 어떤 전쟁보다도 총력전이었다. 그렇지만 2차대전이 총력전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과 총력전으로서의 전쟁사를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1434 2차대전은 역사학계에서 단연 철저히 연구된 거대한 주제이기에 군대와 민간사회 양편의 전쟁 수행을 하나의 저서에서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것은 어지간한 역사가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이런 난점이 있는 까닭에 일반적인 2차대전 통사는 전쟁의 배경과 위기에 대해 간략히 서술한 뒤 본격적인 군사 분쟁으로 넘어가 각국 지도부와 군부의 결정 및 전략, 전쟁의 전개와 그에 따른 공세 및 수세 등에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하며, 그 외의 주제는 소략하게 다루는 데 그친다. 반면에 이 책은 제3장까지 군사 분쟁에 관한 서사를 마친 뒤 제4장부터 제10장까지 총력전이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는 2차대전의 핵심 문제들에 대해 서술한다. 

1436 영어권에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2차대전에 관한 단권 역사서로는 가장 포괄적인 역작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장된 평가가 아니다. 이 책만큼 총력전으로서의 2차대전을 제대로 다루는 통사는 내가 알기로는 거의 없다. 성실한 역사가인 오버리는 젊어서부터 많은 책을 썼지만 2차대전 통사는 70세를 지나서 펴낸 이 책이 유일하다. 독자들이 군사사에 치중하는 통사를 넘어 군대와 민간사회 양편의 전시 경험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이 책을 통해 장기 2차대전의 역사를 더 넓고도 깊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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