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세가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5. 11. 21.

|
사기세가 | 사기 (민음사) | 사마천 - ![]() 사마천 (지은이),김원중 (옮긴이)민음사 |
개정판 역자 서문
역자 서문
해제
일러두기
1. 오태백 세가(吳太伯世家)
2. 제 태공 세가(齊太公世家)
3. 노 주공 세가(魯周公世家)
4. 연 소공 세가(燕召公世家)
5. 관·채 세가(管蔡世家)
6. 진·기 세가(陳杞世家)
7. 위 강숙 세가(衛康叔世家)
8. 송 미자 세가(宋微子世家)
9. 진 세가(晉世家)
10. 초 세가(楚世家
11. 월왕 구천 세가(越王句踐世家)
12. 정 세가(鄭世家)
13. 조 세가(趙世家)
14. 위 세가(魏世家)
15. 한 세가(韓世家)
16. 전경중완 세가(田敬仲完世家)
17. 공자 세가(孔子世家)
18. 진섭 세가(陳涉世家)
19. 외척 세가(外戚世家)
20. 초 원왕 세가(楚元王世家)
21. 형·연 세가(荊燕世家)
22. 제 도혜왕 세가(齊悼惠王世家)
23. 소 상국 세가(蕭相國世家)
24. 조 상국 세가(曹相國世家)
25. 유후 세가(留侯世家)
26. 진 승상 세가(陳丞相世家)
27. 강후 주발 세가(絳侯周勃世家)
28. 양 효왕 세가(梁孝王世家)
29. 오종 세가(五宗世家)
30. 삼왕 세가(三王世家)
『사기』 목록
참고 문헌
찾아보기
공자 세가(孔子世家)
680 공자는 역사의 기록에 의거하여 『춘추』를 지었으니 위로는 은공에 이르고 아래로는 애공 14년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두 임금의 역사를 다루었다. 춘추는 노나라의 역사를 주축으로 하고, 주나라를 가까이하고 은나라의 제도를 참고로 하여 삼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 문사는 간략하지만 제시하고자 하는 뜻은 넓다. 이에 오나라와 초나라의 군주가 스스로 왕이라고 일컬었지만, 『춘추』에서는 낮추어 원래의 작위인 자작으로 일컬었다. 천토의 회맹은 실제로는 제후가 주나라의 천자를 부른 것이지만 『춘추』에서는 그 사실을 피해서 "천자가 하양으로 사냥 나갔다."라고 기록했다. 이런 사실을 유추하여 당대의 법통을 바로잡는 기준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제후들에 대해〕 폄하하고 꾸짖는 의도는 후에 왕이 된 자가 이것들을 거론하여 열어 주려는 데에 있다. 『춘추』의 대의가 행하여지면 천하에서 난을 일으키는 신하나 못된 자식들이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공자가 자리에 있을 때, 송사를 들었을 때에도 문헌으로 다른 사람과 의논해야 할 때에는 혼자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춘추』를 지을 때에는 기록할 것은 기록하고 추려 낼 것은 추려 냈으므로 자하와 같은 제자들도 한 문사도 더하거나 뺄 수 없었다. 제자들이 『춘추』의 뜻을 전수받은 뒤, 공자는 말했다.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며, 나를 비 난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 또한 춘추』 때문일 것이다."
682 자공이 말했다.
"군주는 아마도 노나라에서 천명을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이전에 말씀하시기를 '예법을 잃으면 혼란해지고, 명분을 잃으면 허물이 생긴다. 뜻을 잃게 되면 혼란해지고, 해야 할 바를 잃으면 과실인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살아생전에 중용하지 못하고서 죽은 후에 애도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러고는 또 〔제후의 신분으로〕 '나 한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은 실로 명분에 맞는 말이 아니다."
공자는 노나라 도성 북쪽의 사수 부근에 매장되었다. 제자들은 모두 3년간 상복을 입었다. 그들은 3년 동안 마음에서 우러나는 슬픔을 다하고 서로 이별을 고하고 헤어졌는데, 헤어지면서 통곡하고는 각자 다시 슬픔을 다하였으며, 어떤 제자는 다시 머무르기도 했다. 오직 자공만은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모두 6년 동안 있다가 떠났다. 공자의 제자들과 노나라 사람들이 무덤가에 와서 집을 짓고 산 사람들이 100여 가구나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이곳을 '공리'라고 이름 지었다. 노나라에서는 대대로 서로 전하여 새해를 맞을 때마다 공자의 무덤에 제사를 받들었으며, 많은 유생들도 공자의 무덤에 모여서 예의를 논하고 향음례를 행하고 활쏘기를 했다. 공자의 무덤은 크기가 1경이나 되었다. 공자가 살던 집과 제자들이 쓰던 내실은 훗날 공자의 묘로 만들어져, 공자가 사용하던 의관과 거문고, 수레, 책 등이 소장되었는데, 그것은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 동안이나 끊어지지 않았다. 고황제가 노나라를 지나게 되었을 때 태뢰로써 공자의 묘에 제사 지냈다. 그 뒤 제후와 경대부, 재상이 부임하러 가면 항상 먼저 공자의 묘를 참배한 연후에 정사를 처리했다.
383 태사공은 말한다.
"「시」에 이런 말이 있으니, '높은 산처럼 우러러보고, 큰 길처럼 따라 간다.'라고 한다. 비록 그 지경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그곳으 로 가고 있다. 나는 공씨의 책을 읽어 보았는데, 생각이 그 사람됨까지 미쳤다. 노나라에 갔을 때, 중니의 묘당, 수레, 의복, 예기를 참관하던 중, 여러 유생들이 그 집에서 때때로 예를 익히는 것을 보니 존경하여 사모하는 마음이 우러나 머뭇거리며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천하에는 군왕에서 어진 사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살아 있을 때에는 영예로웠으나 죽으면 끝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여남은 세대를 전해 내려오면서도, 학자들이 그를 받들었다. 천자와 왕후로부터 중원의 각 나라 중에 육예를 말하는 자는 모두 공자에게서 그 절충점을 찾고 있으니 가히 공자는 지극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반니노 과레스키: 돈 까밀로와 뽀 강 사람들 -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5 (0) | 2025.11.21 |
|---|---|
| 막스 베버: 사회학의 기초개념 (1) | 2025.11.21 |
| 리처드 오버리: 피와 폐허 2 (1) | 2025.11.14 |
| 리처드 오버리: 피와 폐허 1 (0) | 2025.11.14 |
| 미셸 푸코: 말과 사물 (0) | 2025.11.14 |
| 마커스 J. 보그: 성서 제대로 다시 읽기 (0) | 2025.11.07 |
|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미학 강의 - 베를린 1820/21년 (0) | 2025.11.07 |
| 마커스 J. 보그: 마커스 보그의 고백 (1) | 2025.11.0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