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19세기 동아시아 역사(2)-2

 

2025.11.12 🎤 19세기 동아시아 역사(2)-2

2025.11.12 🎤 19세기 동아시아 역사(2)-2
일시: 2025. 11. 12.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수원시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4246

강의 자료: https://litt.ly/booklistalk


지금까지는 19세기 동아시아에 대한 일반론이고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을 얘기했다. 이제 속도감 있게 중요한 사건을 짚어갈 것이다. "청일전쟁(1894-1895)과 동아시아", 청일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중국은 동북아시아에서는 확고한 영향력이 있었고 동남아시아에 대해서는 그런 게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남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쉽게 되었다. 그게 국제 관계의 냉혹한 현실이다. 그런데 청일 전쟁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 아까 말한 영향력, 중국의 영향력이 확실하게 깨지는 사건이 청일전쟁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일본이 인수한 것이 청일전쟁이다. 청일전쟁을 국제관계론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청일 전쟁을 통해서 일본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패권, hegemony를 갖게 되었다고 하려면 일본이 뭔가 준비를 했어야 했다. 일본은 당나라 때 견당사를 몇 번 보내고 그 이후로는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었다. 독자적이었다. 그러니까 1800년대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는 지켜야 될 전통이 없었다. 그래서 외부의 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지킬 게 없는 나라들은 쉽게 외부의 것을 받아들인다. 일본이 딱 그 시기이다. 일본이 어떻게 해서 근대화에 앞서 갔는가. 바로 지켜야 될 게 별로 없어서이다. 일본의 1800년대 메이지유신이라고 하는 것, 메이지유신으로 근대적인 통일국가를 수립하려고 했고, 훗날 아시아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게 되지만 이는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세계의 대국 또는 열강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이지유신을 거쳐서 청일전쟁과 러 전쟁에 승리하여 아시아의 패권을 잡게 된 것이 일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이것을 길이길이 본받아서 항상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일본의 앞날을 설계해야 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일본에서 극우파이다. 메이지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청일전쟁, 러일 전쟁에서 이겼고, 그러니까 중국하고 대립각을 세우고 그다음에 그 바탕에서 한반도를 침략했다. 1880년대 시점에서는 서양 방식의 국가 건설이 올바른가에 대한 결말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어쨌든 러일 전쟁에서 이겼다. 그때 일본으로 유학생들이 쏟아져 들어간다. 이를테면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과 같은 사람들이 일본에 유학을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본’을 배우려 했다기보다는 일본이 수용한 ‘서양근대’를 배우려 했다." 어떻게 해서 일본이 저렇게 되었을까. 가만히 보니까 일본이라는 나라가 열강으로부터 뭔가를 배웠다. 그 배운 사람이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갔던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그 나라로 직접 가기는 멀고 하니 가까운 일본에 가서 배워봐야겠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가 러일전쟁에서 이김으로써 서양에서도 아시아에 싸움 잘하는 놈이 하나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아시아라고 하는 이름을 붙였는데 원래 아시아라고 하는 땅은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 고대 이오니아 철학자들 말할 때의 지역을 아시아라고 불렀다. 그것을 가져다가 이제 대륙 전체를 가리키는 말을 쓰게 되었다. 동쪽 아시아이니까 동아라는 말이 거기서 나왔다.  

"청일전쟁의 의의", 청나라의 위신이 하락했다. 위신이 하락했다 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이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해서 뭔가 얘기할 때 패권이라고 하는 것은 영향력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hegemony이다. "청·조선·일본 사이에 조규條規에 근거한 관계가 끝남으로써 동아시아 국제 관계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조규에 근거한 관계, 조규라고 하는 것은 조약이 아니라 전근대적인 약정이다. 약정, 서로 사이 좋게 지냅시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일본은 청나라하고 싸운 다음에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고, 일본이 타이완을 점유했다. 일본의 최초 해외 식민지가 타이완이다. 물론 그전에 이제 홋카이도도 있고 한데 어쨌든 다른 나라하고 싸워서 다른 나라 영토에 들어 있던 것을 자기네가 점유한 게 타이완이다. 그리고 류큐, 오키나와를 편입시키고 그다음에 아직도 영토 분쟁이 있는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분쟁이라고 하는 게 청일전쟁부터 있던 것이다. 일본은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사할린 영토를 가지고 다투고 있고, 서쪽으로는 센카쿠 열도를 가지고 다투고 있고, 그다음에 우리하고는 독도를 가지고 다투고 있다. 그게 다 청일전쟁에서 시작이 되었다. 오늘날 동아시아 3국이 처해 있는, 러시아까지 포함하면 4개국이 처해 있는 국제 관계에서 영토 문제라고 하는 것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시기에 생겨난 것이다.  

그다음에 "공통 체험으로서의 근대", 19세기 후반 빠르게 이루어진 세계의 일원화, 동아시아는 영국, 러시아, 미국의 팽창에 직면했고, 영국 해군을 앞세운 서양의 강력한 군사력 앞에 패배함으로써 근대적 군대 건설이 급선무로 인식되었다. 이런 것들이 우리 동아시아가 직면한 문제가 될 것이고, 영국의 국제 공공재가 공급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세계라고 하는 것이 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만국이라고 하는 개념, 온 사방에 나라가 있다 라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서로 죽이고 살리는 전쟁도 할 수 있는, 세계의 여러 나라가 있구나 라는 개념, 이것은 무력이라고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 동아시아의 수용방식은 다원적인데 "각각의 근대가 기층 사회의 토대 위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표현이다. 우리가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오늘날의 모습도, 아무리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문화, 인터넷을 사용하고 스마트폰 사용하고 어쩌고 한다 해도, 그 각각의 특정한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다르다. 아무리 오랫동안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일본은 왠지 좀 덜 서양화된 측면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것들은 기층 사회의 토대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다음에 "19세기 말-1900년대", 여기까지가 가야 근대이다. "청일전쟁 후의 동아시아"를 보면 여기서 핵심은 "시모노세키 조약의 조건에 러시아가 반발"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아직 러일전쟁이 아직 벌어지기 전이니까, 러시아가 나왔다고 하면 영토 제국을 추구한다 라는 것을 머릿속에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일본은 청일전쟁을 한반도 땅에서 치렀는데, 일본은 타이완을 챙겼으니까 그다음에는 한반도로 진출을 한다. 한반도에 진출하지 못하게 하려고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시켰던 것이다. 바로 그때 을미사변 이후에 아관파천 이런 것들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일본과 러시아 정부는 협상을 하고 러시아는 계속해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청나라하고도 비밀 협약을 맺는다. 그다음에 야마가타 아리토모, 중요한 사람이다. 메이지유신에 큰 기여를 한, 메이지유신 이후에 메이지천왕 시기에 일본을 이끌어간 5명의 원로를 메이지 5걸이라고 부르는데, 이 사람들 중에서도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북방에 관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선을 남북으로 나누어 각각 러·일 세력권으로 삼자는 구상 제안했다. 이는 조선을 중립국으로 하자는 것으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눠 먹으려는, 나중에는 미국하고 소련이 한다. 청일전쟁 이후로 국제 관계 속에 들어갔을 때부터 우리나라는 항상 러시아, 일본, 중국과 같이 영토 제국이 되고자 하는 나라들이 노리는 땅이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땅으로,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독립을 지키고 사람들을 비참한 상황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그런 국제 관계에 대해서 아주 조밀한 눈을 가진 사람 또는 그런 관료들이 있어야 한다. 조선을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권으로 삼자는 구상을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내놓았다. 그리고 민영환은 조·러 동맹과 러시아에 의한 조선의 보호 촉구했다. 러시아가 그후 조선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방침이 없었다. 이에 일본은 강한 압박을 구상하고 러시아가 더 이상 조선 땅으로 못 들어오게 한다. 그래서 이제 러시아하고 러일전쟁으로 가게 된다.  

그다음에 "세기말의 제국주의적 아시아 분할"에서 일본이 유럽 열강을 자극을 해서 프로이센도 여기에 들어왔고, 러시아를 자극해서 러시아는 남만주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고, 그다음에 일본은 우리한테 만주를 주면 일본은 한반도를 너희한테 넘길게 하는 식으로까지 얘기한다. 그게 만한교환론滿韓交換論이다. 게다가 황해를 둘러싸고 러시아, 영국, 프로이센, 일본이 서로 적대하는 형국을 형세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은 에스파냐·미국 전쟁이 끝난 다음에 필리핀을 식민지화하고 그다음에 하와이 병합 등을 통해 새로운 제국주의자로 등장하게 된다. 

그다음에 이 상황에서 일단 동남아시아는 그냥 두더라도 일본하고 러시아하고 한판 붙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영토 제국을 추구하는 두 나라 중 일본이 아슬아슬하게 러일전쟁에서 이겼다. 미국 정부는 러일전쟁이 끝난 다음에 중재를 했는데, 일본이 더 이상 승리를 거두는 것을 억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미국은 가쓰라 다로桂太郎-태프트William Taft밀약을 맺는다. 일본이 조선에 대한 종주권 확립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임을 인정하고 그 대신에 미국의 필리핀 지배 용인한다. 이것을 일본에서 깬 게 진주만 습격이다. 그래서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에 조선의 보호국화를 성취하게 되고 그게 바로 을사늑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을사늑약이라고 하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시작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1905년이라고 하는 것이 한반도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의 출발점이다.  

그다음 항목을 보면 "동아시아의 제국주의적 분할", 1905년이 기점이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에 일본의 조선 및 남만주 권익 상호 인정, 러일 전쟁의 여파가 이렇게 크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간신히 이겼다. 만약에 일본이 조금 졌다고 하면 역사가 바뀌는 것이다. 우리는 1905년 이후의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낼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1905년 이후에 동아시아 역사가 어떠한가. 인도차이나 반도는 차치하고, 조선 및 남만주 권익을 인정하고, 영국과 러시아의 협상 타결로 페르시아는 양쪽 세력권이 분할되었다. 이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이 끝났다.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으로 가고, 티베트 내정은 내버려 두기로 했고, 19세기 이후 그레이트 게임은 정리가 되었다. 이게 1905년, 120년 전의 상황이다.  

일본은 견고해진 조선 지배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분할 현상을 승인했다. 즉 1905년 사건의 가장 뚜렷한 귀결은 일본이 동아시아의 패권에서 Imperium으까지 가려는 발돋움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러시아하고 중국하고 항상 밀고 당기는 그런 외교 관계를 계속 유지해서 일본이 일본열도 바깥으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일본이 군사력을 일본 외부에 투사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우리나라 외교의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이다. "영국·프랑스·러시아·일본의 연대가 조선 지배를 강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러다가 이제 1910년 한국병합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1905년 사건의 최종 귀결,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열강은 일본의 ‘한국병합’을 아시아 분할의 최종 완료로 수용"했고, 이렇게 됨으로써 일본은 이제 열강의 동료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만주를 챙겼다. 독립국으로 남은 나라는 동남아시아의 시암 왕국인데, 이게 태국이다. 

이제 19세기 말까지의 사건이 일단락이 되었다. 그러면 이제 1차대전과 1930년대 항목이 있다. 1차 대전이 1914~1918년이고, 1930년대부터가 본격적으로 20세기이다. 그러니까 1930년대 되면 20세기가 거의 절반 정도까지 간 것인데, 장기 19세기라고 부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30년대가 되기 전까지는 대체로 1800년대 말에 만들어진 형세들이 대체로 쭉 이어진다. "1930년대"에서 두 번째 항목을 보면 "만주사변満洲事変(1931.9.)"이 있다. 여기서는 아시아에서뿐만 아니라 2차대전에 대해서 얘기할 때도 만주사변부터 시작을 한다. 1939년 폴란드 침공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만주사변부터 시작을 한다. 2차 세계대전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만주사변이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20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할 때는 2차 세계대전부터이다. 2차 세계대전의 출발점이 만주사변이다. 그러면 1차 세계대전에서 만주사변까지가 대체로 보면 19세기 말에 형성된 세계 질서가 그대로 그때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동아시아 세계에서 1차 세계대전은, 우리나라는 직접적으로 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가 아니었다. 그러면 이때 일본이 무엇을 했는가. 일본의 패권이 엄청나게 늘어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우리는 1919년에 3.1 운동을 했고, 그것을 보고 중국에서 5·4운동을 시작했다.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1900년대 초, 1914년 1차대전부터 1931년 만주사변에 이르기까지, 이때는 제국주의 질서가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에도 꽉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면 제국이 어떻게 해먹었는가 얼마나 괴롭혔는가가 중요한 사건이고, 그렇게 괴롭히는 것에 대해서 피식민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저항했는가가 중요한 사건이겠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국제 관계가 어떻게 요동치고 바뀌었는가, 행위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됐는가를 봐야 되는데, 이미 러일 전쟁 이후부터 질서가 잡혔다는 말이다. 때리는 놈하고 맞는 놈하고가 딱 정해져 버렸다. 그러면 때리는 놈은 얼마나 심하게 때렸냐를 봐야 되는 것이고, 맞는 사람은 얼마나 강하게 저항했는가를 봐야 된다. 즉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을 해봐야 된다. 19세기 말에서 1905년 러일 전쟁까지는 행위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일단 제국주의 질서가 굳어졌다. 그러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피지배자들이기 때문에 1914년에서 1918년, 그리고 1931년 될 때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3.1운동이고,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5·4운동이다. 일본에서 무엇을 했는가는 나쁜 짓을 더 정교하게 많이 하기 위해서 하는 짓이다. 피지배자들은 어떻게 저항했는지가 제일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니까 한반도에서는 1910년에 일본에 병탄이 되고 그다음의 역사는 3.1운동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서 일본이 추구한 것은 대국화이다. 계속 일본은 식민지배를 확대했다. 즉 영토 제국을 추구했다. 일본이 가장 공들여서 식민 통치를 했던 데가 조선이다. 조선 총독이 군사·사법·행정·입법 권력 독점했다. 병영반도화 그리고 식민지적 근대화 정책을 했고, 조선교육령, 사립학교 규칙, 토지 정책, 종교 정책 등 온갖 것을 다했다. 그다음에 중국에서는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그다음 항목을 보면 "제1차 세계대전과 동남아시아", 이 시기에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일종의 민족주의적인 생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호치민, 응우옌 아이꾸옥이다. 베트남은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베트남식으로 한자를 읽는 것이다. 

그다음에 버마,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를 보자. 인도네시아인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기에 이슬람은 원주민 결집의 상징이었고 사회민주주의동맹은 동아시아공산주의동맹으로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음으로써 동아시아 최초의 공산당이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은 원주민 결집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공산주의 전통이 꽤 있다. 그래서 그 공산당을 척결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제노사이드가 있었다. 그다음에 태국은 민족의 이익과 태국민족이 신봉하는 불교를 옹호한다는 명분으로 왕정을 유지했다. 불교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그 나라를 결집시키는 데 역할을 했는가, 그러니까 여기서 종교라든가 특정한 이념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다음에 필리핀을 보면 필리핀 인 엘리트층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여 혁명세력으로부터 분리했고 공교육 수혜자들은 미국 숭배자가 되고 국민형성이 늦어졌으며 왜곡했다. 필리핀의 경우 문화적인 위력이 없으니까 미국 문화에 잠식을 당하고. 결국 필리핀에서는 엘리트층은 영어를 쓰고 엘리트층이 아닌 사람들은 타갈로그어를 쓴다. 우리나라도 만약에 조선이라고 하는 문화적인 배경이 없었으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다음에 "세계사 속의 1920년대", 국제정치사적인 측면의 변화가 있는데,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의 발언권이 약해졌고, 그다음이 중요한데, 미국, 소련, 일본의 발언권이 강해졌다. 그다음에 미국의 대량생산 체제, 대중 소비사회 이런 것들이 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다. 청일전쟁이 궁금하면 가토 요코 교수가 쓴 《왜 전쟁까지》와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을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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