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20세기 동아시아 역사(1)-2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5
- 2025. 11. 21.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옥스퍼드 세계사」를 듣고 정리한다.
2025.11.19 🎤 20세기 동아시아 역사(1)-2
2025.11.19 🎤 19세기 동아시아 역사(2)-2
일시: 2025. 11. 19.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수원시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4246
강의 자료: https://litt.ly/booklistalk
"1930년대" 강의자료를 보자. 앞선 시간에 얘기했던 식민화 시대하고 탈식민화 시대하고 문화적 정체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각자가 아주 오래된 전통을 가진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보편화universalization될 수 있는, 보편화가능성universalizability을 가진 문화적 전통이라고 하는 것을 갖추고 있기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친 1920년대는 전간기戰間期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유럽에서만 타당한 개념이며, 동아시아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 중요한 말이다. 유럽은 1차 대전이 끝났고 2차 대전 사이에 쉬는 기간이 전간기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는 1차 대전이라고 하는 것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인데, 이 새로운 시대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근대라고 하는 시대, 유럽에서는 1800년대 후반부터 시작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동아시아는 193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이때 동아시아 세계는 1920년대에 서구의 식민지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사실 완전히 식민지가 된 것이 동아시아의 근대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정치적으로는 새로운 국가 모델이 등장하고 워싱턴체제가 형성, 다양한 행위자들 등장"했다. 국제정치라고 하는 건 세계적으로는 라는 말이며 동아시아에서는 해당이 안 된다. 그다음에 "사상·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는 사회주의, 민족자결, 내셔널리즘, 민주주의, 평화주의 등과 ‘근대’가 아시아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아시아에서의 근대는 식민지 근대colonial modern이다. '모던 보이'라는 말이 있다. 1900년 식민지 시대의 경성이라고 하는 것,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책들도 있고, 이게 말하자면 식민지 근대인데 우리에겐 근대인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면서 이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밀고 들어왔다. 한국 사회에서의 근대는 식민지 근대였고 미국은 현대로서 경험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식민지인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modern이라는 말이 근대라는 말도 되고 현대라는 말도 되는데, colonial modern이라는 것은, 일제 때 식민지는 구체적인 영토 식민지였는데, 이제 문화적인 식민지, 정신적인 식민지로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식민지 근대를 거쳐서 modern, 현대의 근대까지 왔다.
그 다음에 "일본계 기업이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였고", "1930년대에는 독립·자치에 대한 움직임이 강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그때 서양에서 들어온 그 이념들이 "사회주의, 민족자결, 내셔널리즘, 민주주의, 평화주의"이다. 우리는 이미 colonial modern이라든가 또는 197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서구의 기원을 둔 이념들을 한 바닥 다 겪어봤다. 좌파 빨갱이라는 말은 이제 낡은 의미로, 아직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은 곳, 완전한 의미에서 탈서구화되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없는 곳에서 먹히는 말이다. 냉전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것이 유지가 되고 있었는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제국으로서의 위상이 떨어질수록 미국은 이데올로기 공세를 그만두게 된다. 우리나라는 다 극복했는데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직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상적으로 아직도 미국은 빨갱이 공세가 먹히는 곳으로 그러면 뒤처지는 것이다. 사회주의, 민족자결, 내셔널리즘, 민주주의, 평화주의가 들어왔는데 이때만 해도 사회주의라고 하면 소련이 사회주의의 본국이었다. 그래서 소련에 의존해서 민족 해방 운동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그다음에 "192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일본과 영국, 미국 간의 협력도 파탄이 나면서 만주사변,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동아시아는 전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지금 읽은 항목에서 개요인데, 이 개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 새로운 시대라고 하는 것이 새로운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식민지 근대였더라 하는 것이다. colonial modern 개념을 잘 알아야 되고, 그다음에 "경제적 측면에서는 일본계 기업이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했다는 것이 미국과 마찰을 일으키게 된 결정적인 요소이다. 현대사에서, 2차 대전 이후의 역사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로 가장 걱정하는 사태는 소련이 멸망해서 여러 나라로 해체된 것이다. 중국에 56개 소수민족이 있는데, 그 소수 민족들 중에서 중국 이외의 지역에 나라를 갖고 있는 건 조선족 밖에 없다. 중국은 자기네 나라가 분열되는 것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있다. 그러니까 대만은 분리 독립되어 있는 상태나 다름없는데 실질적으로는 중국에 경제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대만 사람하고 중국 본토 사람하고 결혼해서 살고 있는 사람이 100만 명이 넘는다. 대만도 사실은 중국하고 분리 독립돼 있다고 말은 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만은 명나라 시절에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다. 대만이라고 하는 나라는 일제 식민지 시대 때 타이페이가 수도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시대 때 서울이 수도가 된 게 아니다. 국제적으로도 서울은 아주 희귀한 도시이다.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어마어마하게 큰 강이 흐른다.
"만주사변満洲事変(1931.9.)", 예전에는 폴란드 침공이 일어난 1939년으로 봤는데, 요즘에는 1931년 9월을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본다. 그다음에 류타오후柳条湖 사건(1931.9.),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1937.7.7.), 이런 것들이 계속되면서 중일 전쟁으로 전개되었다. 그다음에 도이칠란트의폴란드 침공(1939.9.)이 1939년 9월, 2차 세계대전 경과가 이렇다. 그다음 "‘가지지 못한 나라’인 일본과 독일", 중요한 포인트이다. 일본과 독일은 자기네가 가지지 못한 나라다 라고 생각해서 가지고 있는 나라들에게 좀 내놓으라고 전쟁을 시작한 게 2차대전이다. 그다음에 "광역질서론의 등장", 일본은 대동아공영권, 도이칠란트는 생활공간Lebenswelt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광역질서론이라고 얘기한다. 그런 것들이 있었고 그런 와중에 베르사유 체제는 유럽에서 1차 대전이 끝난 다음에 만들어졌던 체제이고, 워싱턴 체제는 워싱턴제는 미국에서 전 세계 해군들을 옥죄는 체제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다음에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이때가 심각한 게 무엇이냐 하면 자본주의가 한 번쯤 무너질 때가 된다.
그래서 일본은 "총동원체제, 조선과 타이완의 황민화 운동, 중일전쟁 전면화로 인해 열린 동아시아 세계의 새로운 공간", "동아시아 광역질서 구상, 국제정치·경제 체제 개편"되었다. 동아시아에서 질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세계공황과 금본위제도의 붕괴",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미국은 과잉생산으로 인한 자본집중, 경제거품 —> 주가폭락 —> 1929.10.24. 검은 목요일", 검은 목요일은 유명한 날인데 20세기 들어서 자본주의가 엉망이구나를 사람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준 사건이다. 그다음에 "영국은 금본위제 포기, 이로써 금본위제도와 자기조정시장에 의한 자본주의 붕괴"되었다. 네모를 쳐놓아야 한다. 영국이 세계제국으로서의 주도권을 내주게 된 경제적인 사태이다. 아주 명시적으로 드러난 건 2차 대전이 끝난 다음이지만 사실상 1차 대전이 끝나고 전간기에 영국이 세계 제국으로서의 위치를 잃었다. 세계 제국은 국제 공공재를 공급해야 한다. 국제 공공재 중에서 군사력이 있어야 되고, 다시보면 "교통, 통신, 무역관리, 역병관리, 도시 결제 수단"이다. 교통, 통신, 무역관리, 역병관리는 돈으로 한다. 그러니까 이 중에서 하나를 들어라 라고 하면 도시 결제 수단이다. 영국에서는 금본위제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금본위제라는 게 영국이 금을 제일 많이 갖고 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였다. 미국도 그렇게 해서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달러를 무한히 찍으면서 불태환화폐로 만들었다. 통화 관리에서 실패하게 되면 이제 세계제국은 손을 놓아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미국에서 110만 명이 죽었다. 역병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뉴욕이나 이런 데가 상징적인데,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제국으로서의 위상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니까 "교통, 통신, 무역관리, 역병관리, 도시 결제 수단", 이 다섯 개를 외워야 되는 것이다. 역병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다음에 앞서나온 중일전쟁, "만주사변 이후 일본 관동군은 일만日満블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북지北支(중국 북부)까지 포함하는 일만지日満支경제블록 결성", 중일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중국까지 자기네 식민지로 만들어야겠다 라고 한 것인데, 이게 사실은 일본 멸망의 지름길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다음에 "광역질서 구상과 광역경제권의 양면성"을 보면, "광역경제권, 동남아시아", 왜 미국과 일본이 싸움을 하게 되었는가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동남아시아로 값싼 일본제품 유입되었는데, 미국의 자동차 산업으로 고무 수요가 늘어나서 원재료 수출이 증가했다. 이때 대미수출과 대일수입에 의해 경제의 순환궤도가 태평양을 한 바퀴 도는, 미국 → 동남아시아 → 일본 → 미국이라는 일종의 삼각분업 체계가 형성되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를 꽤 오랫동안 공들여서 개발했고 물건을 만들어서 미국으로 수출을 했다. 그러니까 일본은 남태평양을 사실상 경제적으로 식민지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이 남태평양에서 경제적 식민지를 놓고 대립이 있었던 것이다. 싸울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1930년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진출은 광역경제권을 만들었는데, 이는 미국·영국·네덜란드와의 경제적 대립을 심화시키고, 현지 사람들에게도 괴뢰국가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을 갖게 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다음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거 "난방공영권"이라는 게 있다. 일본에서 선전을 한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경제적으로 ‘미개발된 방대한 자원이 방치’되어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구미 지배하에 예종’을 강요당하고 있고, 문화적으로 ‘지극히 낮은 단계’에 있다는 지역이미지 유포, 이에 ‘아시아를 위한 아시아’라는 프로파간다를 내건 성전聖戰으로서의 대동아전쟁"을 시작했다. 그런데 "동남아시아의 정치지도자들은 전시 일본에 대한 협력을 지향"했다. 이게 심각한 문제이다. 그래서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동남아시아에서는 친일청산이라는 것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 왜 그러했는가. 동남아시아는 일본이 지배한 시기가 그들의 역사에서 가장 문명화된 시기이다. 그 이전에 뭐가 없다. 우리는 일본이 지배한 시기가 가장 문명화된 시기였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밖에 없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있는 사람은 일단 국가 자체가 없었고 부족 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ethnic group만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의한 식민지배를 받은 이후에 해방이 되었을 때 신식민지가 또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었다. 탈식민화가 됐는데 탈식민화가 그다지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무엇을 회복할 게 없는 사람들, 그게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뭐가 되는 나라가 호치민이 이끈 베트남독립동맹회Vietminh이었다.베트남은 한자 문화권이라고 얘기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중국처럼 식민지가 되기 이전에 회복해야 될 뭔가를 가지고 있던 나라이다. 민족주의라는 통용되는 나라였다.
전 시기 항일 운동의 네 가지 유형은 구 종주국과 연합국과의 관계에서 조직된 운동으로 필리핀의 미 극동군USAFEE, 자유태국운동, 그 다음에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항일운동으로 호치민이 이끈 베트남독립동맹회Vietminh, 말라야 항일인민군MPAJA, 필리핀 항일인민군, 그다음에 일본군이 창설과 훈련에 관여한 조직에 의한 항일운동이 인도네시아의 페타Peta향토방위의용군에 의한 봉기, 그다음에 ‘자연발생적’ 항일운동으로 쌀, 노동력 강제공출에 대한 불만과 궁성요배 같은 문화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 우리나라이다. 자연발생적 항일운동이라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문화적인 전통을 가진 자들이 항일 운동을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항일 운동은 당연히 민족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고, 바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는 민족 혼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조선어학회 사건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된다. 전 세계의 반식민지 운동, 탈식민지 운동에서 자기네 나라의 언어를 가지고 그렇게 한 사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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