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20세기 동아시아 역사(2)-1

 

2025.11.26 🎤 20세기 동아시아 역사(2)-1

2025.11.26 🎤 20세기 동아시아 역사(2)-1
일시: 2025. 11. 26.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수원시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4246

강의 자료: https://litt.ly/booklistalk


오늘은 4페이지 "‘패전’이라는 말이"부터 오늘 강의한다고 했다. 그러면 아시아태평양전쟁과 ‘대동아공영권’(1942-1945), 1942년에서 1945년 시기가 특히 대동아공영권에 해당하는데, 1942년에서 1945년에 일본이 식민지배를 하던 곳들은 가장 엄혹하게 착취가 일어나는 것이다. 일본에게는 대동아공영권이고 식민지배를 받는 지역에 대해서는 극악무도한 자취가 일어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잠깐 앞 페이지로 넘어와서 2페이지를 보면, 패전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전에 패전과 연결되어 있는 이전의 역사를 봐야 한다. "19세기 말-1900년대"의 세번째 항목인 미국과 동남아시아를 보자.  

미국·에스파냐 전쟁이 1898년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1865년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잘 알아놓아야 한다. 미국 사람들이 자기 네의 나라 역사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에 대해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그것을 그대로 타임라인을 따라가면 미국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국을 이해하게 되는데, 사실 그게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이 조지 워싱턴과 독립전쟁을 엄청나게 기념하는데 엄청나게 중요하지는 않다. 왜 그러한가. 독립 후에도 미국은 한참 동안이나 영국에 의존해서 살았던 나라이다. 면화를 재배하는 남쪽하고 공업이 중심이 되는 북쪽이 있는데, 북쪽은 독자적인 어떤 공업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니라 OEM 방식으로 영국에서 하청 주문을 생산했다. 남쪽의 면화는 생산해서 영국으로 보냈다. 그러니까 북아메리카 대륙의 미국이 정치적으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을지는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영국의 일종의 속국이었다. 그런데 남북전쟁이 왜 일어났는가. 노예 문제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남부 쪽에서 면화 재배를 하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해서 분리 독립하려고 해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1865년 게티즈버그 연설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미국 사람들은 남과 북이 하나이고 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하는 one state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미국은 각각의 주가, 지금은 우리가 주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다 별개의 나라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게티즈버그 연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시피,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링컨이 강조하는 바는 우리는 하나의 나라one nation라는 얘기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는 워싱턴인지 몰라도 오늘날의 미국은 링컨이라는 말이다. 오늘날의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념을 만든 사람이 링컨이고, 그 이념의 집약체가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1865년에서 1898년이면은 3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이 시기에 미국이 남북전쟁이 끝난 다음에 one state라고 하는 의식을 갖기 시작하고, 이때가 19세기 후반인데, 19세기 후반에 유럽은 제국주의가 퍼져나갔다. 특히나 미국은 영국한테 곧바로 그것을 배웠다. 자기네가 당해봤으니까 당해본 놈이 남을 괴롭히기도 쉽다. 자네가 영국한테 배운 것을 이제 한번 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던 터에 걸려든 놈이 에스파냐이다. 그래서 싸움에서 이기는데, 에스파냐가 식민지로 갖고 있던 필리핀과 쿠바를 가져온다. 미국·에스파냐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이다. 나중에는 대백색함대라는 것을 만들어서 지구를 한 바퀴 돌게 한다. 미국 제국주의의 아버지이다. 이때 카리브 해 지역을 미국의 앞마당으로 챙긴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무렵에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있었다. 그리고 청일전쟁이 1894~1895년이다. 미국도 막 제국주의적인 식민지 침탈에 나섰고, 일본도 청일전쟁을 통해서 제국주의 침탈에 나섰다. 일본은 계속해서 영토 제국을 추구하니까 중국은 무너뜨렸고 러시아와 붙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로 제1 주적이 러시아이다. 북쪽으로는 러시아이고, 청나라는 무너뜨렸고, 조선은 자기네 밑으로 두었다. 미국도 이제 막 제국주의적인 어떤 확장을 시작하고 일본도 막 시작을 하는데 아직 태평양에서 붙을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필리핀 식민지화, 하와이 병합 등을 통해 미국이 새로운 제국주의자로 등장", 미국이 일본하고 다툴 수 있는 조짐이 여기서 생긴 것이다. 이게 1800년대 후반부터 빌드업이 된 사태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이게 미국에서 만든 역사는 그렇지 않은데, 미국에서는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지금까지의 역사를 미국의 입맛대로 만들어서 퍼뜨린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동남아시아 대륙 분할을 마무리"했다. 특히 프랑스 중심으로, 그리고 태국은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면 지금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이 러시아와 붙었고, 그다음에 아직 태평양에서 미국하고는 붙지 않았다. 독일이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두 군데로 전선을 나눴기 때문에 졌다고 하는 것이 대체로 전쟁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바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미국하고 전쟁을 안 했으면 그랬지 않았을까 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요즘에 태평양 전쟁에 관한 새로운 사료들이 발굴되면서 그렇지 않고 미국에서 일본을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라는 것이 거의 확정적으로 퍼져 있다. "미국 정부의 중재, 일본이 더 이상 승리를 거두는 것을 억제하려는 의도", 일본도 러일 전쟁에서 간신히 이겼다. 승리는 승리인데 상처를 잔뜩 입은, 피로스의 승리였다. 여기서 일본이 러시아를 계속 치고 들어가면 만주까지 완전히 챙길 것 같으니까 중재에 나섰고, 그게 바로 가쓰라 다로와 윌리엄 태프트의 밀약이다. 일본이 조선에 대한 종주권 확립을 인정하고 그 대신에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용인한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슬슬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에서의 지배권을 놓고 세력 싸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의 연장선상이 태평양전쟁이다. 그러면 태평양전쟁이 끝났을 때, 이제 4페이지를 보면, 몇 가지 의문 사항이 있다. 태평양전쟁을 할 때 일본은 오키나와 전투를 거치면서 속된 말로 작살이 났다. 그러니까 도쿄 대공습을 했는데 심하게 말하면 돌멩이밖에 안 남아 있는 상태로 도쿄가 완전히 불에 탔다. 미국과 일본은 1894년에서 1945년, 50년 정도에 걸친, 태평양에서의 패권을 놓고 싸움을 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영토제국을 추구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면서부터는 더이상 영토제국을 추구하지 않고 거점 항구를 중심으로 한다. 그러니까 그때부터는 제국이라고 말하지 않고 패권국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 다음에 '패전'이라는 말이 일본 신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45년 8월 15일이고, 천황에 의해 ‘전쟁 종결의 조서’ 방송이 행해진 지 4일이 지난 1945년 8월 19일이다. 그러니까 패전이라는 말을 일본에서 쓴 게 8월 19일이다. 일본은 오키나와 주민 포함해서 30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동아시아 전체에서 1000만 명 넘는 사람 희생되었다. 그 다음에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포함해서 이 날을 기리는데, 한국은 광복절, 북한은 해방기념일, 타이완은 광복절이 10월 25일이다. 일본 타이완총독부와 중화민국 타이완성 장관의 항복문서조인이 이루어졌다. 중국은 9월 3일을 전승절로 한다. 그다음에 버마는 무용의 날이라고 하고, 바타안 죽음의 행진 희생자를 애도하는 날, 태국은 8월 16일을 평화의 날이라고 하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상대로 한 독립 전쟁에 돌입한 후 독립을 선언한 날이기 때문에 8월 17일하고 9월 2일이다.  

이 날짜들을 기억해야 될 필요는 없고, 우리에게는 광복절이라고 하는 것이 태국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고,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느냐를 봐야 되는데, 특히 눈여겨 봐야 되는 게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다. 일본의 패전 이후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데,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를 그리고 베트남은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시작을 해야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동아시아 세계의 불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곧바로 1945년부터 1975년까지 아시아 전쟁의 시대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는 게 1975년이다. 30년의 아시아 전쟁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하면 어쨌든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알고 생각해야 한다. 동아시아 세계가 온전히 자주 독립국가들로서 채워지게 된 게 1975년이다. 동아시아 세계에서 과거에 통일 민족국가를 세워봤던 나라는 한국하고 중국, 베트남, 한자 문화권밖에 없다. 한자 문화권이라고 하는 말은 중국의 문화적인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아시아 세계에서 어떤 특정한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국가를 세웠던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그다음에 베트남은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 전쟁에 돌입했다는 것이 되게 중요한 포인트이다. 아시아전쟁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결국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식민제국들이 물러나지 않았고 사실상 이것의 뒷배를 봐준 나라가 이 지역의 패권 세력인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식민지 해방 전쟁을 통해서 네덜란드로부터 해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전 지구적인 냉전 체제 하에서 치러진 전쟁이었기 때문에 냉전의 흔적을 묻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냉전의 흔적이 묻었는데 완전히 해결이 안 된 상태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베트남은 온전히 프랑스를 상대로 한 독립전쟁을 시작해서 냉전의 거대한 빅브라더인 미국을 물리치고 독립을 이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동아시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를 만든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이다. 그런 역사적인 자존심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전쟁 종결 후의 아시아"을 보면 "유럽과는 달리 아시아에서는 식민지 독립을 위한 전쟁과 냉전체제에서의 동서 양 진영의 대립과 밀접히 관련된 전쟁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리고 "전쟁 직후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했다. 일본은 자기네가 아시아에서 식민 지배를 했던 것들을 모른 채 했고, 미국은 면죄부를 주었고, 결국 한국전쟁이 났을 때 필요한 물자 생산 기지가 되었다. 그다음에 "역외 열강(미국과 소련, 동남아시아 지역의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개입에 의해 치열한 투쟁을 동반"했다. 아시아에서는 2차 대전이 끝난 다음에 아직 식민지배가 온전히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역외 열강, 제국 열강이 아시아로 돌아오고 있었다는 사태가 하나 있고, 그다음에 미국 중심의 냉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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