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1) ─ 新五代史, 新唐書

 

2025.12.13 δ.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1) ─ 新五代史, 新唐書

첸무, ⟪중국사학명저강의⟫(錢穆, 中國史學名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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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오대사新五代史의 의법義法 [뜻과 원칙]
1. 호칭呼稱
오대五代(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후량後梁의 첫째 본기本紀는 주온朱溫의 것. 후일 당唐이 그에게 이름을 내려 주전충朱全忠이라 함.
설거정薛居正은 처음부터 주온朱溫을 '제帝'라 칭함.  
구양수歐陽脩는 처음에는 주온朱溫이라 하고, 당唐이 이름을 내리고 난 다음에는 주전충朱全忠, 이후 왕王에 봉封해진 다음에는 왕王이라 칭함. 그가 황제를 찬탈한 다음에는 '제帝'라 칭함.  
이는 사기史記의 서술 원칙을 따르는 것. 사기史記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패공沛公 시절에는 제帝라 칭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패공沛公이라 칭하지도 않았다. 
이로써 주온朱溫은 낮은 신분에서 제帝를 찬탈한 지위로 올라간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민족異民族이 중국中國에 들어와 제帝를 칭한 경과도 밝혀진다.

"공자가 춘추를 지은 것은 난세였기 때문에 치법을 세우고자 한 것이었고ㅡ 내가 본기를 서술한 것은 치법을 통해서 정통성이 없는 군주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공자작춘추孔子作春秋 인난세이립치법因亂世以立治法 여술본기余述本紀 이치법이정난군以治法而正亂君) 
─ 공자孔子의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대법大法을 가지고 난군亂君을 바로 세움.

2. 신하臣下의 행적行寂 기록記錄
오대五代의 시기는 짧았고 왕조는 몇 년, 십수 년에 불과했다. 신하가 된 사람은 한 왕조에서 관직을 마친 이는 매우 드물고, 한 사람이 몇 대代에 결쳐 관리를 지냈다. 이는 난세亂世의 한 현상. 
설거정薛居正은 한 사람이 어느 왕조 시기에 죽으면 그 왕조에 수록하였으니 이는 오대사五代史의 특수한 점을 놓친 것.
구양수歐陽脩는 한 사람이 여러 왕조를 섬긴 경우 그들을 따로 잡전雜傳에 수록. 

3. 논찬論贊[평가와 칭찬]
신오대사新五代史에 실린 논찬論纂은 모두 '오호嗚呼'라는 두 단어로 시작. "이는 쇠약했던 시대의 책"(차쇠세지서야此衰世之書也)이므로 찬贊할만 것이 없다. 구양수歐陽脩는 탄嘆을 썼다. 오대五代의 많은 이들은 탄嘆의 대상이 될 뿐이었기 때문.

4. 사태를 지칭하는 술어를 정확하게 사용
공攻. 양쪽의 군대가 동등한 지위에서 교전하는 경우
벌伐.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중앙 정부의 군대가 지방 정부의 군대를 공격
토討. 죄를 지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경우
정征. 천자가 직접 군사를 이끌었을 경우

취取. 군대를 거느리고 땅을 얻은 경우, 쉽게 얻는 경우
극克. 어렵게 얻은 경우
항降. 적이 직접 항복한 것
부附. 관할 지역을 가지고 항복한 것을 

반叛. 이곳을 배반하고 저곳으로 귀부歸附한 것
 이곳의 입장에서는반叛이고 저곳의 입장에서는 부附.
 "후량을 배반하고 후당에 귀부했다." (배량부당背梁附唐)
반反. 윗사람을 배반했지만 다른 이에게 귀부하지 않고 반란反亂을 일으킨 경우

사死. 사절死節. 나라와 공적인 일을 위해 죽은 경우. 일종의 충절忠節
자살自殺. 사死의 정도에 이르지 못한, 그저 단순히 스스로 목숨을 끊음

복주伏誅. 큰 죄가 있어 당연히 죽여야 할 경우
타살他殺. 단순히 그를 죽인 것. (시해弑害)


송나라 때 구양수歐陽脩가 쓴 신오대사新五代史와 신당서新唐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신오대사新五代史부터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신오대사新五代史 서술의 뜻과 원칙에 대해서 말하고 다음 주에는 신당서新唐書를 얘기하고자 한다. 신당서新唐書와 신오대사新五代史가 현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목 선생에게는 굉장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우리는 별로 그다지 의미가 없으니까 이 책에서 배울 수 있을 만한 게 뭔가를 보겠다.  

지난번에 신오대사新五代史와 설거정薛居正의 오대사五代史를 비교한 얘기가 있었는데, 오늘은 뜻과 원칙을 보겠다. 오대五代라는 게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인데 오대에 어떤 나라가 있고 십국이 어떤 나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먼저 호칭의 문제가 있다. 호칭 문제가 간단치 않다고 생각을 하는데, 오대五代라고 하면 양, 당, 진, 한, 주 이렇게 5개 나라가 화북 지역에 있었다. 춘추전국 시대부터 이미 있던 나라들이다. 나라 이름이 익숙하다. 전에도 말했듯이 중국의 나라 이름은 그 나라를 세운 사람의 고향 지역 이름을 따서 대게 짓는다. 이전에도 있었기 때문에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첫 번째 있던 나라가 후량인데, 설거정薛居正은 첫 번째 본기本紀가 주온朱溫인데, 후일 당나라에서 그에게 이름을 내려서 주전충朱全忠이라고 했다. 설거정薛居正은 처음부터 주온朱溫을 황제라고 칭했다는 얘기이다. 구양수歐陽脩는 그렇지 않고 처음에는 주온朱溫이라고 하고 그다음에 당나라에서 그 사람에게 주전충충朱全忠이라고 이름을 내리니까 그 시점부터 주전충충朱全忠이라고 서술하고, 그다음에 왕후에 봉해진 다음에는 이제 왕王이라고 칭한 다음에 황제를 찬탈한 후에야 제帝라고 칭했다. 사기史記의 서술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사기史記는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패공沛公이던 시절에는 제帝라고 칭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패공沛公이라 칭하지도 않았다. 그냥 유방이라고 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이런 방식을 택했다. 그러니까 사마천을 따라서 이렇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호칭을 이렇게 해주다 보면 주원이라는 사람이 낮은 신분에서 제帝를 참탈한 지위로 올라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전목 선생은 그런 것들이 역사 책에서는 되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중국 화북 지방은 이민족이 들어와서 제帝를 칭한 경과도 있다. 그렇게 호칭만 이렇게 살펴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양수가 자기의 그런 서술 방식을 설명해서 말하기를 "공자가 춘추를 지은 것은 난세였기 때문에 치법을 세우고자 한 것이었다." 공자가 쓴 역사책이라고 하는 춘추는 사실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이런 난세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치법治法, 통치의 원칙, 의법義法, 의에 근거하여서 법을 세운다고 되어있다. 올바름에 근거해서 원칙을 세운다. 여기서 법은 시행하는 원칙이고,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을 구별을 해야,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은가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령이 나온다. 그러면 거기서 원칙이 세워지는 것이다. "내가 본기를 서술한 것은 치법을 통해서 정통성이 없는 군주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한자 원문을 보면, 공자작춘추孔子作春秋 인난세이립치법因亂世以立治法 여술본기余述本紀 이치법이정난군以治法而正亂君. 한자는 전체 문장을 대강 짐작을 하고 그다음에 각각의 글자들을 설명에 들어가야 된다. 난군亂君이라고 하면 어지러운 군주, 어지러운 군주는 정통성이 없는 군주이다.  

그다음에 두 번째가 신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인데 오대五代가 짧다. 후량後梁이 30년 그다음에 후당後唐이 30년이고, 그런 다음에 나머지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는 불과 몇 년 있다가 망했다. 망했다기보다는 연속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신하가 된 사람은, 가령 후당에서 신하를 하다가 얼마 안 있어가지고 망해버렸다면 관료라고 하는 자들은 그대로 이어간다. 그러니까 한 왕조에서 관직을 마친 이는 매우 드물고 한 사람이 몇 대에 걸쳐 관리를 지냈다. 이게 난세亂世의 현상이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 보이는가. 설거정薛居正은 그렇게 못했다는 것인데, 설거정薛居正은 한 사람이 어느 왕조 시기에 죽으면 그 왕조에 수록을 했다. 예를 들어서 후당에서 관료를 시작을 했다가 후한에서 죽었다고 하면 후한에서 죽은 것이니까 후한에다가 기록을 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사람은 후한에서 나서 후한에서 일을 했구나 라고 판단하기가 쉬운데 사실은 왕조가 짧으니까 그 앞에서부터 했을 것이다. 그 연원을 후대 사람은 추적해서 알 수가 없다. 결국 이렇게 짧은 시기의 관리들이 쭉 있었고, 이 사람은 후당부터 시작해서 후한까지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 오대사五代史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점을 놓친 거라고 할 수 있는데, 구양수는 잡전雜傳에다가 수록을 했다. 가령 구삼돌이 있었다고 하면 잡전雜傳에다 수록을 해버리니까 삼돌이는 당나라에서 관리에 등용되었다가 한 시대에 죽었다고 하면 복잡하고 다양한 그 사람의 이력을 써놓을 수가 있다. 그게 구양수의 신오대사新五代史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이 사람이 어느 시대에, 어느 왕조에서 등용이 되어서 어디를 거쳐서 지금 어느 왕조에 죽었구나 라는 것을 명료하게 알 수 있다.  

그다음에 세 번째로는 논찬論贊이 있는데, 논찬論纂은 평가[論]와 칭찬[贊]이다. 재미있게도 신오대사新五代史에 실린 논찬論贊은 모두 '오호嗚呼'라는 두 글자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오호嗚呼라고 하는 것은 한탄하는 것이다. 구양수의 얘기로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차쇠세지서야此衰世之書也, 쇠약했던 시대의 책이다. 그러니까 칭찬할 만한 게 없는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오호嗚呼, 오호는 탄嘆이다. 그러니까 논찬論贊이라기보다는 논탄論嘆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겠나 한다. 오대五代의 많은 이들은 탄嘆의 대상이 될 뿐이었기 때문에 오호라는 말로 시작한다. 오호라는 말로 시작을 하면 어떤 경우에는 오호통재嗚呼痛哉라는 상투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두 글자로써 하나의 시대를 평가하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네 번째에 보면 확실하게 드러나 보이는데, 사태를 지칭하는 술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였다. 이것은 꼭 한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도 배워야 한다. 예를 들어서 양쪽의 군대가 동등한 지위에서 교전하는 경우에는 공攻이라고 했다. 그러면 공攻이라는 말을 쓰면 우리는 그 단어 하나로부터 양 편이 서로 동등한 지위에서 교전을 하는구나 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거나 중앙 정부의 군대가 지방 정부의 군대를 공격하게 하는 경우에는 벌伐, 그러면 천자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작은 나라를 공격하러 갔다고 정벌征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놈이 반란을 일으켜서 천자가 가만두면 안 되겠구나 해서 하면 토벌討伐이다. 죄를 지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경우에 토討락 했고, 천자가 토벌討伐을 하러 갔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당나라 때 중국에서 과거에 급제하고 그 나라 뭐를 했는데, 최치원이 유명해진 게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다. 그러니까 황소를 토벌하는 것에 관한 얘기이다. 그러면 죄를 지은 거라는 의미가 제목에 나오는 것이다. 큰 쪽에서 작은 쪽으로 하는 것이 벌伐이다. 그러니까 어떤 단어를 쓰느냐, 어떤 글자를 쓰느냐에 따라서 이 사태를 그 서술자가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역사 책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도, 가치 중립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판단의 가치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막스 베버의 얘기가 되는데, 가치 판단과 사실 판단이 있는데 우리는 일상적으로는 가치 판단을 많이한다. 어떤 단어를 쓸 것인가 하는 것들을 궁리해 보는 게 중요하지 않나 한다. 

그다음에 전쟁이 일어난 다음에 군대를 거느리고 땅을 얻은 경우에는 취取이다. 쉽게 얻었다고 하면 취取를 쓰고 어렵게 얻은 경우는 극克이다. 그다음에 적이 직접 항복했다고 하면 항降이다. 자신의 관할 지역을 가지고 항복한 것을 부附라고 한다. 확장해서 반叛이라고 하는 단어하고 연결시켜서 보면, 이곳을 배반하고 저곳으로 귀부歸附하는 것, 자기 땅을 가지고 항복해 들어가는 것이 귀부歸附이다. 이쪽 입장에서는 반叛이고 저쪽 입장에서는 땅을 가지고 왔으니까 부附이다. 그러니까 반叛이라든가 부附라든가 이런 단어들이 어떤 입장에서 보는가 그리고 그 사태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하나 들면 배량부당背梁附唐이라고 쓰면 후량을 배반하고 후당에 귀부했다. 그러면 당나라 입장에서는 부附이다. 그런데 다른 쪽으로 간 게 아니라 그냥 그 나라에서 난리를 치면 반란反亂이다. 그러니까 같은 반 자라도 저쪽으로 가버리면 반叛을 쓰는 것이고 저쪽으로 안 갔으면 반反을 쓴다.  

그다음에 죽을 사死는 신오대사新五代史에서는 나라와 공적인 일을 위해 죽은 경우에는 일종의 충절忠節이라고 봐서 사절死節이라고 썼다. 사死의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는데 그저 단순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할 때는 자살自殺이다. 사死를 이렇게 쓰는데 자기가 죽은 경우에는 사절死節과 자살自殺을 구별해서 쓸 수 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보면 복주伏誅라는 단어가 있다. 큰 죄가 있어 당연히 죽여야 할 경우는 복주伏誅이고, 타살他殺은 단순히 그를 죽인 것이다. 그래서 주살誅殺하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주誅가 왜 나왔는가. 큰 죄가 있어 당연히 죽여야 할 경우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은 마땅한 것이 되는 것이다. 마땅함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근거해서 죽여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 위에 의義가 있다. 이런 단어를 가지고 어떻게 표현을 할 것인가. 이런 문제는 굉장히 민감하고도 중요한 부분이고, 그게 바로 역사가의 포폄褒貶을 드러내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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