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4) ─ 資治通鑑

 

2026.01.17 δ.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24) ─ 資治通鑑

첸무, ⟪중국사학명저강의⟫(錢穆, 中國史學名著)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ChienMu-10

 

사마광司馬光, 자치통감資治通鑑

산정작업刪定作業
1. 매우 많은 사실들이 삭제되어 기록되지 않았다. 
• 기본적으로 기록의 원칙은 군신君臣의 사적事迹과 관련한 것만 기록한다는 것.
• 본래 통지通志를 쓰기 시작하면서 책명冊名을 '편집역대군신사적編集歷代君臣事迹'이라 했다.
•  다른 사서에서는 중시된 인물이 제외된 경우가 제법 많다. 이는 후세 사람들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2. 정통正統에 대한 관점
• 삼국시대三國時代를 서술하면서 위魏를 정통으로 하는 것에 많은 이들이 불만.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는 위魏를 중심으로 하지만, 위지魏志, 촉지蜀志, 오지吳志를 평등하게 칭하므로 위를 높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후일에 주자朱子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하게 된 동기
• 조조의 천하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후세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 맹자孟子가 제齊나라를 높게 평가함을 두고 맹자를 회의(의맹疑孟). 이는 사마광司馬光이 존군尊君, 중앙정부中央政府에 의한 통일을 옹호했기 때문. 이러한 점이 송유宋儒의 옹호를 받은 것도 사실.

3. 연호年號의 기재 방식에 만족스럽지 않은 점이 있다.
• 한 황제가 여러 연호를 사용한 경우, 마지막에 사용한 연호만을 기재. 사실에 대한 이해가 혼란스러워진다.


역사서술(사사寫史)
역사연구(고사考史)
역사평론(평사評史)

• 평사評史
'신광왈臣光曰'.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평론. 단순한 느낌을 적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올바름에 대한 기준으로써 평가評価한 것. 어떤 것은 후세 사람들의 불만을 샀다.

• 사사寫史
어떤 사건,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사태를 서술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
변화의 기점起點이나 귀결歸結에 대한 균형있는 시작의 문제
사서史書의 위대偉大함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전목 선생의 중국사학명저강의, 지난주에 이어서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이야기를 마저 하겠다. 책을 보면 전먹 선생이 그런 얘기를 한다. 역사를 쓴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를 쓴다는 것은 역사를 서술하는 게 있고, 역사를 연구하는 게 있고, 역사를 평론하는 게 있다. 그래서 역사 서술, 역사 연구, 역사 평론 이렇게 세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사마광司馬光에 있어서 역사 연구는 무엇인가. 기존에 있던 사료들을 정리하고 어떤 것을 가려서 쓸 것인가. 지난 시간에 말했던 것처럼 산정刪定을 하는 것이다. 일단 뽑아서 쓸 것들을 골라내는 것이 역사 연구가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그렇게 가려서 뽑아 쓴 것을 평가하는 것이다. 누구는 잘했네 누구는 못했네 뭐 그런 것들을 말한다. 그다음에 그런 것을 평가하려면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가에 관한 기준이 있어야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역사 철학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다음에 세 번째가 역사 서술이다. 서술이라는 것은 이제 자기가 가져다 놓은 사료들을 어떤 순서로 쓸 것인가, 어떤 것을 중요한 것으로 삼아서, 말하자면 핵심은 이것이고 부수적인 것은 이것이고 이렇게 골라서 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역사 서술과 역사 연구와 역사 평론, 이런 것들은 어디에서 이 영역이 딱 갈리는 게 아니다.  

요즘에 《세계사의 탄생 - 전통과 주제와 서술 방식 | 케임브리지 세계사》를 읽어보면 시대 구분론이 있다. 시대 구분은 그냥 연대기로만 하면 될 텐데 무엇때문에 시대 구분을 하는가. 시대 구분을 한다 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건이 중요하냐 중요하지 않냐 이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데이비드 노스럽이 슨 챕터 5 분화에서 통합으로: 세계사의 구심력과 원심력을 보면, 이 사람은 1500년을 기준으로 해가지고 둘로 나눠서 본다. 1500년에 일어난 사건들이 역사적으로 보면 굉장히 중요하니까 그렇게 보겠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뭐가 중요한지를 보려면 질적인 평가를 해야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 사건이 자기 머릿속에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평론이라는 것이 개입되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나눠 놓고 나서 그 사건이 또는 그 시대가 중요하다고 해서 어떤 것을 실마리로 잡아서 쓸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서술에 해당하는 것이겠다. 그러니까 역사 서술과 역사 연구와 역사 평론은 서로가 서로를 맞물려 가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케임브리지 세계사》를 읽을 때도 이 세 가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과거에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쓸 때도 이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역사책은 전목 선생의 중국사학명저강의가 고대 중국의 역사책, 송나라 때 역사책을 가지고 다루고 있는 것 같아도 곰곰이 이렇게 잘 살펴보면 오늘날에도 이것이 필요한 영역들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번에 산정刪定 작업을 할 때 세 가지 정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매우 많은 사실들이 삭제되어 기재되지 않았다. 뭐가 중요하다 뭐가 중요하지 않다 하는 기준이 사마광은 다른 사람들하고 달랐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제 첫 번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정통에 대한 관점이 다른 사람들하고 달랐다. 짐작하건데 정통에 대한 관점이 달랐기 때문에 아마 사마광이 생각하기에 이건 빼버려도 되겠다 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예를 들어서 말하는 게 무엇인가 하면 사마광은 위나라 조조를 정통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왜 조조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는가 하는 것들에 대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통에 관한 관점이라는 것은 역사를 평론하는 기준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세 번째가 연호가 정확하지 않았다 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연호의 기재 방식에 만족스럽지 않은 점이 있다. 고대 중국의 역사라고 해서 소홀히 지나가서는 안 되는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 번째부터 보면 기본적으로 기록의 원칙을 군신君臣의 사적事迹과 관련한 것만 기록했다. 사마강은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이다. 오늘날의 용어를 가지고 말하면 정치사가 사마광에게는 중요한 것이었겠다. 그러다 보니까 전목 선생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게 뭐냐하면, 어부사漁父辭를 쓴 굴원屈原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도 굴원屈原을 굳이 역사책에 쓸 필요가 있나 하는 뭐 생각을 좀 해본다. 사마광은 역사책을 쓰면서 숨어 있는 고수들, 은사, 그다음에 덕이 높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거의 기록을 하지 않았다. 굴원屈原은 문학적으로는 굉장히 탁월한 사람인데 정치적으로는 그렇게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전목 선생은 일정 기간 동안 초나라의 외교를 맡아본 적이 있는데 왜 굴원屈原을 빼놓았는가를 말한다. 그 유명한 어부사漁父辭를 보면 정치적으로 쟁론을 벌이다가 결국 왕의 미움을 받아서 쫓겨난 것인데 그런 점들에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런데 여러 차례 그 얘기를 한다. "사마광은 자칫 통감을 편찬하면서 자신만의 주장과 기준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삭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료 가운데 구원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이 사람을 기록하지 않았는데, 왜 기록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 후대의 역사가들이 굉장히 깊은 관심을 갖고 논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사마광광司馬光 정도 되는 사람이 위대한 역사학자 중에 한 사람인데 도대체 왜 빼놓았을까. 다시 말해서 사마광의 평가 기준에 대한 얘기가 굉장히 많았다. 그러다 보니까 후대에는 또는 다른 사서에는 중시된 인물이 제외된 경우가 제법 많고, 바로 그 때문에 후대 사람들에게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겠다.  

그것은 정통正統에 관한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사실 사마광의 정통론은 문제가 많아서, 문제가 많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 기록이 빠져 있는 사람들 못지않게 사마광의 정통론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았고, 특히 위나라의 조조를 사마광이 굉장히 높게 평가를 하면서 조조를 정통으로 삼은 것, 이게 주자朱子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편찬하게 된 동기가 되기도 한다. 주자朱子가 보기에는 조조를 이렇게까지 높이 살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비록 사마광은 왕을 높이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중앙 정부의 통일, 말하자면 통일된 중앙정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 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극단적으로 하다 보니까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다음 주부터 읽게 될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쓰게 한 그런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그다음에 사마광의 연호年號의 기재 방식이 만족스럽지 않은 점이 있다. 이것은 제가 봐도 좀 문제인 것 같다. 황제 한 사람이 꼭 자기가 재위하던 기간 중에 연호年號를 한 개만 쓰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여러 연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꼭 1월 1일에 딱 맞춰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마광은 맨 마지막으로 사용한 연호에 대해서만 기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실에 대한 이해가, 언제 그 일이 벌어졌는가 정확하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런 것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마광이 역사를 평가한 기준, 즉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평론은 단순한 느낌을 적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올바름에 대한 기준으로써 평가를 한 것이어서 비록 어떤 것은 후세 사람들의 불만을 샀다고는 하지만 상당히 많이 본받을 만한 점이 있었다. 평가가 탁월하다 라기보다는 이런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평가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사마광의 역사 평론이 대단하다. 그다음에 역사 서술에 대해서는 전목 선생이 굉장히 탁월한 점이 있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예를 들어서 말을 해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적벽대전에 대해서 말한다. 어떤 것을 서술한다 할 때 적벽대전을 쓰면서 노숙과 손건의 대화를 그 시작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게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니까 이 사실을 어떤 것을 실마리로 잡아서 쓰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에 대해서 사마광은 아주 좋은 모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역사책이 있을 때 그 역사책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위대한 역사책이라고 말할 때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위대한 역사책이라고 말을 하는가. 그게 참 곤란한 지점들이 꽤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역사 책들을 가지고 얘기할 때, 가령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인용을 한다. 그런데 제가 아놀드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을 아마 여러분들은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역사책을 꽤나 읽었다고 하는 처지인데, 아놀드 토인비를 가지고 무언가를 얘기한다는 것은 그냥 무당 점괘를 가지고 얘기하는 게 낫다 라는 정도로까지 저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도전과 응전 이런 것을 기준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하지 않나 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위대한 역사책, 역사책의 위대함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도대체 무엇에 기준을 두고 우리가 판단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이 사마광의 역사책에 대한 전목 선생의 평가를 읽고 느낀 소감이다. 이번 주에는 이렇게 간략하게 정리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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